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55화 (355/616)

〈 355화 〉 355. 조조의 우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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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술의 아내,

진씨가 오열하며 소리쳤다.

“제발… 제발 이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차, 차라리 제가 죽겠습니다!”

남편을 잃은 여인이 제 아들을 품에 안으면서 절규했다.

제발,

제발 이 어린 것만큼은….

차라리 아들 대신에 죽겠노라며 희생을 자청했다.

죽음조차 불사하는 모성애를 본 장졸들은 착잡함에 물든 표정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성렴. 후성.”

강하게 반발하는 진씨의 모습에 잠시 입을 다물었던 이성휘가 두 무장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명령에 고개를 끄덕인 성렴과 후성은 병사들을 보내어 여남원씨 일가를 제압하도록 지시했다.

그때,

“살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갑주를 두른 병사들이 서서히 다가오는 것을 본 어린 소년이 간절한 눈길로 이성휘를 응시했다. 뒤이어 무릎을 꿇으면서 두 손을 싹싹 빌기 시작했다.

큼지막한 눈망울에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호소하는 어린 소년의 모습에 좌중이 숙연해졌다.

차마 볼 수 없었는지,

조조군 장수들은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돌렸다.

“으읏.”

“…….”

여포와 장료 또한 마찬가지였다.

구슬픈 통곡에 가슴이 아렸는지,

어깨를 바들바들 떨면서 침음을 삼켰다.

뒤에서 상황을 지켜보던 순유와 가후도 어린아이의 최후를 지켜볼 용기가 나지 않았는지 고개를 돌린 채 외면하고 있었다.

“집행하라.”

이성휘가 명령했다.

일말의 온정조차 없는,

싸늘하고 무거운 목소리였다.

아무런 감정이 담겨지지 않은 칼날이 바로 이러할까. 상대를 죽이기 위해 존재하는 칼날과 같았다.

“아악!”

“요야… 요야…!”

진씨와 원엽이 소리쳤다.

필사적으로 발악했으나,

젊은 부인과 어린 소녀가 병사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을 뿌리칠 수 있을 리 없었다.

결국 어린 소년은 제 숙부들과 함께 처형장으로 향해졌다. 이윽고 처형이 집행되었다. 외마디의 짧은 비명소리와 함께 핏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아아아악!! 아아아… 아아아아!! 요야, 요야! 내 아들, 내 아드을!!”

남편에 이어 눈앞에서 아들마저 잃었다.

아들의 잘려나간 목을 보며,

진씨는 두 눈을 까뒤집은 채 비명을 내질렀다.

옆에서 함께 지켜보던 어린 딸은 충격을 이겨낼 수 없었는지 혼절한 뒤였다.

여남원씨 일가가 파국을 맞이하는 순간을 빠짐없이 지켜본 이성휘는 수급을 담은 혁낭들을 본 뒤에야 등을 돌렸다.

“수급을 담은 혁낭들을 진류군에 보내라. 남은 시신은 잘 수습하여 장례를 치러줘라.”

“알겠습니다.”

시신을 그대로 방치했던 원술과는 달리,

이성휘는 형장에서 살해당한 시신들이 무사히 장례를 치르도록 허락해주었다.

폭군을 따랐거나,

폭군과 혈연관계였을 뿐이다.

무미건조한 웃음을 흘린 이성휘는 자신을 원망하고 저주하는 미망인의 외침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움직였다.

“…….”

터덜터덜 걸으면서 현장을 빠져나가는 이성휘의 모습을 본 하후돈은 심려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서둘러 뒤따랐다.

* * *

역적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일곱 살 밖에 안 된 어린아이를 죽였다.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다.

대역죄인의 친족들을 죽이지 않을 수 없었다.

구차한 변명들로 밖에 들리지 않는 명분을 읊던 이성휘는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두 눈을 부릅떴다.

‘그 어떤 잘난 대의명분을 대든…, 결국 일곱 살 아이를 죽였다는 것은 변치 않는다.’

집무실로 사용하고 있는 전각으로 돌아온 이성휘는 턱을 괸 채 사색에 잠겼다.

바닥을 나뒹굴던 소년의 머리.

목이 잘려나간 채 쓰러진 소년의 몸뚱이.

날카로운 가시들이 달린 쇠줄이 심장을 압박하듯이 꽉 옥죄어왔다.

수많은 생명들을 두 손으로 끊어냈던 천하제일검이 어린 소년의 죽음에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들어간다.”

짤막한 말과 함께,

문이 열리면서 하후돈이 들어왔다.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과 시선을 마주하게 된 이성휘는 잠시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다짜고짜 문을 열고 들어오는 것은 자주 있는 경우였지만… 설마 지금 상황에 문답무용으로 들어올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

“왜 그랬어?”

“후환을 제거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왜 네가 그 굴레를 떠안았냐는 말이야.”

“…….”

대역죄인의 아들은 결코 살려둘 수 없다.

불온의 근원이 될 것이며,

장차 분란의 화근이 될 위험이 있었다.

하후돈이 이성휘를 힐난하는 것은 원술의 어린 아들을 죽였기 때문이 아니다.

구태여 감당하지 않아도 될 죄책감의 굴레를 재 손으로 떠안은 미련함을 따지기 위해서였다.

“여남원씨 일가의 처분을 조정에 맡겼으면 될 일이었잖아! 왜 네가…!”

무인도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수많은 생명들을 죽여 왔더라도,

마음속의 동정과 연민이 완전히 마모될 수는 없다.

죄를 짊어진 고행자처럼 스스로 죄책감을 둘러메는 선택을 한 이성휘의 결정에 비통함을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

“만약 원양 님의 말씀대로 조정에 처분을 맡겼더라면… 원요는 대역죄인의 핏줄이라는 이유로 혹독하고 잔인한 고문을 당한 다음, 능지처참에 처해졌을 겁니다.”

즉결처분으로 단숨에 목을 벤 것은 오히려 어린 소년을 위한 배려였다.

모진 고문을 겪지 않도록,

군중들이 모인 저잣거리에서 능지처참을 당하는 굴욕을 겪지 않도록 목숨을 일찍 끊어주었다.

그리고….

“그리고 원요를 조정으로 압송했다면…, 맹덕 님께서 극형의 재가를 내리셔야 했을 겁니다.”

“아.”

이성휘의 말에 하후돈이 탄성을 흘렸다.

만약 자신의 말대로,

그 아이를 조정으로 압송했더라면….

최악의 불상사가 벌어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옹알이를 하는 귀여운 아들을 둔 조조가 만약 어린아이에게 극형을 선고하라는 재가를 내렸다면, 큰 멍에를 평생 떠안아야 했을 것이니.

“무사히… 잘 끝났습니다.”

“잘 끝났을 리가 없잖아. 결국 네가 고통을 떠안게 됐는데.”

“그게 제 본분입니다.”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든 하겠노라고 맹세하지 않았던가.

물론 지금까지 여러 번 누를 끼치고 말았지만….

이대로 끝나서 다행이다.

쓴웃음을 흘리면서 자조하듯 중얼거렸다.

“진짜 우둔하기는….”

진심으로 사촌을 연모하고 있다.

그는 우둔하게 보일 정도로 정직했다.

사촌에게 진심을 다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하후돈은 가슴의 떨림을 억누를 수 없게 되었다.

활화산이 힘껏 분출되듯,

그동안 억눌러온 감정이 한꺼번에 폭발했다.

안타까움에 찬 눈길로 스스로 고통을 받아들인 사내를 가만히 응시하던 하후돈은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물었다.

‘맹덕의 남편만 아니었으면…! 이 자리에서 확 덮쳐버렸을 텐데!’

천하제일의 사내,

오랫동안 그려온 이상형이 눈앞에 있다.

연모하는 아내를 위해 희생을 받아들이는 이성휘의 모습에 하후돈은 제 마음을 더 이상 외면할 수 없을 정도로 반해버리고 말았다.

* * *

무려 한 달 동안 이어진 조조군의 파장공세에 난공불락의 요새가 결국 함락되었다.

원술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고,

양주에서 세력을 과시하던 여남원씨 세력은 멸망하고 말았다.

수많은 제후들을 억누르면서 남방의 대군벌에 등극했던 원술군이 멸망했다. 소식을 들은 백성들은 천하통일이 머지않았다며 수군거렸다.

“분명 이번 활약으로 큰 상을 받겠지? 와, 진짜 부럽다.”

날렵한 장팔사모를 어깨 위에 짊어진 단발머리 소녀가 막연한 동경심을 중얼거렸다.

낙양대전의 승리에 이어,

이번에는 난공불락의 요새마저 무너뜨렸다.

한 달 동안의 공방 끝에 원술군을 멸망시킨 이성휘의 활약은 수많은 장수들을 매료시키기에 충분했다.

천하제일검의 휘하로 들어가게 되면 얼마나 가슴이 벅차오를까. 상상하는 것만으로 가슴이 두근거렸다.

“무인이 재물에 얽매여선 안 된다, 익덕.”

아름다운 흑발을 종아리까지 길게 늘어뜨린 여인이 두 눈을 날카롭게 뜨며 말했다.

그에 의자매가 입술을 삐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흥, 어린 소년들만 보면 꽁무니를 졸졸 쫓는 사람한테 듣고 싶지는 않네요.”

“그런 적 없다!”

“거짓말 마! 위병들한테 취조 받는 장면을 내가 다 봤는데!”

티격태격 싸우는 여동생들의 모습에 백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한숨을 폭 흘렸다.

씩씩한 것은 좋지만,

너무 혈기왕성해서 문제였다.

북해상 공융을 구출한 이후부터 계속 진류군에 체류하고 있었기 때문일까. 두 의자매들은 서로 티격태격하면서도 전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운장.”

“출격 준비를 모두 끝냈습니다.”

무양현(???)에서 2만의 군세를 소집한 유비군은 출격을 앞두고 있었다.

목적지는 양주 전선.

조정으로부터 구강군 인근에 잔존하고 있는 군벌들을 소탕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드디어 전장으로 복귀한다.

관우와 장비는 병장기를 단단히 움켜쥔 채 이를 드러내면서 웃었다.

“뒤처리 역할이긴 해도… 나가게 된 게 어디야.”

구강군 인근에는 수많은 군소 군벌들이 난립하면서 각축장을 벌이는 상태였다.

야망을 품은 황실의 종친부터,

거병을 계획하고 있는 지방관들에 이르기까지.

2만의 유비군은 그들을 모두 소탕하라는 조정의 명령을 받들게 되었다.

또한 군벌들을 일망타진할 때까지 구강군을 다스리라는 임무를 겸임하고 있었으므로, 근거지를 두지 못한 채 유랑하듯 떠돌기만 했던 유비군은 마침내 거점을 확보할 수 있었다.

“오랜만에 표기장군을 볼 수 있겠네.”

유비가 방긋 웃으면서 중얼거렸다.

그녀 또한 무장이다.

천하제일검을 가슴 깊이 동경하는 것은 당연했다.

‘언제 한 번 이성휘를 건드려보고 싶은데….’

순진무구한 마음속에 감춰진 시커먼 욕망이 고개를 치며들었다.

만약에 조조,

그 성격 더러운 여자가 보는 앞에서 이성휘와 잠자리를 하면 어떻게 될까?

소문에 의하면 자신의 남편과 바람을 피운 두 사촌들을 죽이려 했었다던데….

‘분명 날 죽이려고 들겠지? 그 여자는 원래부터 날 싫어했으니까.’

설원에 사는 눈토끼처럼 순진무구하게 생긴 처녀의 마음속에 숨겨진 피학적인 욕망이 눈을 떴다.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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