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3화 〉 353. 적통의 죽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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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흘이 넘도록 이어진 궁핍과 배고픔은 고립무원의 처지에 내몰렸던 원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
퀴퀴한 냄새가 나는 맹물.
건조한 모래알처럼 퍼석퍼석한 보리밥.
이따위 오물을 어떻게 먹는단 말인가?
안락한 환경에서 일말의 부족함 없이 살아온 원술이었기에 궁핍과 배고픔은 더욱 치명적이었다.
도탄지고에 빠진 구강군의 백성들은 보리밥조차 먹지 못하고 굶주림에 쓰러졌건만, 그럼에도 원술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상황 속에서 궁핍을 불평했다.
“자꾸 퍼석퍼석한 밥만 먹어… 목이 계속 막히는구나…!”
초췌한 몰골을 한 사내가 중얼거렸다.
메마른 입술을 달싹이며,
끊임없이 온갖 불평들을 늘어놓았다.
쿨럭쿨럭!
곧이어 원술은 불평을 멈춘 채 기침을 토해냈다.
기침이 계속 잦아졌다.
그때마다 입가를 타고 핏물이 주륵 흘러내렸다.
농성을 이어나가면 결국 조조군이 포위망을 열고서 진류군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간절한 희망이 꺾여가고 있었다.
“주군.”
“무슨 일이냐?”
장훈의 부름에 원술이 고개를 들었다.
“식량이… 결국 다 떨어진 것 같습니다.”
“그, 그럼 보리조차 없단 말이냐!”
사세삼공의 권위를 자랑하던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은 보리밥조차 먹지 못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눈부신 금은보화도,
살결처럼 부드러운 비단들도 없다.
대체 그 많던 재물들이 다 어디로 갔단 말이던가.
모든 권력과 재화들을 잃었다. 쇠퇴와 몰락을 겪은 끝에 신기루처럼 사라지고 만 것이다.
“놈들에게 투항을… 아니, 비천한 백정과 교섭하여 황실과 조정에 귀의하겠다…!”
원술은 결국 투항을 결정했다.
더 이상 승산이 없다.
빌어먹을 노비 년은 마지막까지 움직이지 않았다.
모든 희망을 놓았음에도 오만한 자존심만큼은 잃을 수는 없었는지, 황실과 조정과의 ‘교섭’을 운운하면서 끝까지 거들먹대는 모습을 보였다.
“적들에게 투항하시겠다는 말씀이십니까?”
“투항이 아니다! 황실과 조정에 귀의하겠다고 하지 않느냐!”
장훈의 물음에 원술은 노여움으로 가득한 목소리를 내질렀다.
굴욕을 숨기고 싶었는지,
대등한 입장에서 치르는 교섭이라 포장했다.
쌀 한 톨조차 없는 상황에서 오만함을 지껄이는 원술의 모습에서 광기를 느낄 수 있었다.
결국 투항을 결정한 원술은 장훈에게 붓과 종이를 가져올 것을 명령했다. 적의 진지에 친필서한을 보내어 자신의 의중을 알리기 위함이었다.
* * *
끼이익.
굳게 닫힌 옹성(??)이 움직였다.
무거운 쇳소리와 함께,
영원히 열리지 않을 것 같던 성문이 열렸다.
황실과 조정의 군기를 든 채 좌우에 도열한 조조군의 기수들이 서서히 열리는 성문을 바라보았다.
“원술….”
“드디어 낯짝을 드러내셨군.”
이윽고 수려한 금발을 자랑하는 미공자가 무리들과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후장군(???) 원술.
초췌한 몰골을 한 사내가 걸어왔다.
외성이 함락된 이후 계속해서 궁핍을 겪었는지, 안색이 산송장처럼 창백하기 짝이 없었다.
그럼에도 원술은 위풍당당한 발걸음을 크게 내딛으면서 오만한 면모를 보였다. 마지막까지 오만한 모습에 조조군 장수들은 어이가 없었는지 코웃음을 쳤다.
“내 패배를 인정하겠다. 패배를 받아들이고 황실과 조정의 뜻에 따르겠다. 여남원씨 가문의 명예를 걸고 맹세하겠다.”
금은보화로 치장된 휘황찬란한 갑옷을 걸친 원술이 고개를 까딱 흔들면서 입을 열었다.
그 거들덕대는 모습에,
조조군 장수들은 당장이라도 칼자루를 뽑아들 것처럼 두 눈을 부릅떴다.
오만한 모습에 열불이 치밀었다.
그 뻣뻣한 목을 단번에 날리고 싶을 정도였다.
“패배를 인정하니 다행이군.”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원술이 ‘명예로운 투항’을 할 수 있도록 친필서한에 적힌 조건들을 모두 들어주었다.
휘하 장수들을 집결시켰고,
황실과 조정의 군기를 기수들을 동원했다.
그리고 쩌렁쩌렁한 고각소리를 내며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을 맞이해주기까지 했다.
“황실과 조정에 귀의하였으니 어서 먹을 것들을 다오. 갈아입을 의복도 필요하다. 일단 꿀물을, 목을 축일 꿀물부터 다오!”
투항조건을 모두 받아들인 이성휘의 행동에 완전히 의심이 풀리게 된 걸까.
원술은 곧장 음식과 의복을 주문했다.
황실과 조정이 결코 여남원씨 가문을 외면할 리 없다. 분명 사세삼공의 명문가가 계속 명맥을 이어나가기를 원하고 있을 터.
그렇게 확신한 원술은 투항해온 패주(??)라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안하무인처럼 행동했다.
“원술, 패자에 대한 예우는 여기까지다.”
이성휘가 손을 들었다.
스릉!
장수들이 일제히 검을 뽑아들었다.
날카로운 병장기가 원술과 그의 무리들에게 겨눠졌다.
“이, 이게 무슨 짓이냐! 한나라 황실과 조정에 귀의하겠다고 하지 않았더냐!”
“황상께서는 네 목을 원한다.”
조조군의 정예병들이 사방을 포위했다.
결코 도망칠 수 없도록,
몇 겹으로 원술과 그의 무리들을 둘러쌌다.
자신에게 겨눠진 수많은 병장기들이 본 원술은 침음을 토해내면서 이성휘를 노려보았다.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을 시해할 셈이냐!”
내가 여기서 목숨을 잃는다면 사세삼공의 명문가는 명맥이 끊어지게 될 터.
지금까지 수많은 재상들을 배출하여 황실과 조정을 지탱해온 여남원씨 가문을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절대로 외면할 리 없지 않은가.
나는 죽지 않는다.
명문가의 고귀한 혈통이니.
전쟁에서 비참하게 목숨을 잃는 것은 비천한 혈통을 가진 족속들로 충분하다.
“끝까지 반성할 줄 모르는군.”
예리한 창검들이 목숨을 위협하고 있음에도 오만함을 버리지 못한 원술의 모습에 이성휘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부와 권력이 만든 독종,
죽어도 제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작자였다.
결국 죽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봉선.”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그 순간,
금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주먹을 휘두르면서 꼿꼿하게 선 원술을 때려눕혔다.
산송장처럼 초췌한 몰골이었던 원술은 너무도 무기력하게 쓰러지고 말았다. 쇠약해질 대로 쇠약해진 상태였는지 바닥에 쓰러진 원술은 기침을 토해냈다.
“주, 주군!”
그 모습에 장훈이 소리쳤다.
하지만 장훈은 병사들에게 붙잡히고 말았다.
“원공로, 네놈은 헛된 야욕을 위해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렸다. 구제와 구휼은커녕, 사치와 향락을 일삼으면서 지금의 지옥을 초래했다.”
네놈이 고기를 먹을 때,
백성들은 제 자식을 잡아먹어야 했다.
네놈이 술을 마실 때,
백성들은 썩은 개울물을 마시면서 갈증을 채워야만 했다.
이성휘는 흙투성이가 된 채 시름하던 원술에게 지금까지 범한 죄들을 규탄했다.
하지만 원술은 그럼에도 일말의 반성조차 없이 증오에 찬 눈길로 이성휘를 노려볼 뿐이었다.
“비천한 백정 따위가! 출신도 모를 백정 따위가 감히 여남원씨의 적통인 나를 우롱하다니!!”
원술이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소리쳤다.
죽어서도 저주하겠다며,
온갖 조롱과 함께 저주를 쏟아냈다.
그러나 이성휘는 태연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패주를 끌어내라.”
“예!”
곧 무관들이 달려들어 흙바닥에 쓰러진 채 발악하던 원술을 끄집어냈다.
죄인에게 어울리는 극형을 내리기 위해서였다.
“백성들을 도탄에 빠트린 주제에, 마지막까지 꿀물을 찾는 네놈에게 어울리는 것은 더러운 오물이다.”
두 팔을 단단히 붙잡은 병사들은 원술을 연못에 빠트렸다.
가축들의 분뇨를 쏟아부은,
지독한 악취가 진동하는 오수로 넘실거리는 연못이었다.
병사들에게 내동댕이쳐진 원술은 곧 머리부터 발끝까지 오물을 뒤집어쓰는 굴욕을 맞이했다. 오물에 빠진 원술은 크게 허우적대면서 어떻게든 살아남으려고 발악하는 모습을 보였다.
“허억…! 어푸, 어푸우…!!”
온몸에 오물을 뒤집어쓴 채 발버둥질하는 꼴사나운 모습을 수많은 인원들이 지켜보았다.
스스로를 적통이라 내세우며,
제 야망을 위해 만인을 고통에 빠트렸던 폭군이 오물을 헤집고 있는 모습은 실로 유쾌했다.
폭정과 폭압에 시달려온 구강군 백성들이 보았다면 그 누구보다 통쾌하게 웃었으리라. 과연 폭군에게 어울리는 최후였으니까.
“잠시 쉬게 한 다음에 다시 쳐넣어라.”
원술의 몸에는 밧줄이 묶여 있었다.
이성휘의 명령에 병사들은 밧줄을 힘껏 당겨서 오물에 빠진 채 익사하기 직전이었던 원술을 다시 끄집어냈다.
그리고 숨을 돌리게 한 뒤,
재차 분뇨와 오물들로 가득한 연못에 쳐넣었다.
“차, 차라리 나를 죽여라! 그냥 깨끗하게 나를 죽이란 말이다!”
원술이 악에 받친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러나,
형벌이 멈추는 일은 없었다.
지금까지 무고한 백성들에게 저질러온 악행들에 대한 응보를 위해서라도 그는 더욱 오랫동안 고통을 받아야 했으니까.
“나, 나를… 죽여라…! 제발 죽이란… 말이다…!”
입 안과 콧구멍까지 분뇨로 뒤덮인 원술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를 냈다.
제발 죽여 달라며,
체면을 내던진 채 자비를 구걸했다.
하지만 이성휘는 폭군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었다.
“표기장군, 하온데 패주의 수급은….”
“저따위 더러운 목을 어떻게 황상에게 가져간단 말이냐. 숨통이 끊어지거든 영원히 오물 속에 수장시켜라.”
성렴의 물음에 이성휘는 누구도 원술의 주검을 수습하지 못하도록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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