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50화 〉 350. 수춘성 공방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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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가 출진하기 전,
조조는 하후돈을 불러 당부의 말을 남겼다.
남편의 옆에 달라붙은 미녀들,
휘하 참모와 장수들이 감히 남편에게 꼬리를 치지 않게끔 경계하라는 임무를 내렸다.
“에이, 설마 또 그러겠어?”
“두 번을 했으면 세 번도 있는 법이다. 세 번 저지른 바람기를 또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고 어떻게 단언할 수 있지?”
“그건 그렇다만….”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어깨를 으쓱 흔들면서 중얼거렸다.
남편의 바람기 때문이겠지.
그것 때문에 한 차례 홍역을 치르지 않았던가.
그 날 이후,
사촌은 의부증(???)에 빠지고 말았다.
손톱을 잘근잘근 물어뜯으면서 불안에 떠는 사촌의 모습이 실로 딱하게 느껴졌다.
“설마 자렴에 이어 자효마저도 나를 배신할 줄이야…. 이제 믿을 것은 너뿐이다, 원양.”
“뭐, 믿어주는 건 고맙지만.”
사촌동생1에게 맡겼더니 곧 형부가 될 사내와 바람을 피웠고, 그를 경계하여 사촌동생2에게 일임했더니 마찬가지로 바람을 피웠다.
이 정도면 사촌동생이 문제가 아니라,
남편이 될 사내를 맡긴 여자에게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
“좋아.”
사촌의 간절한 부탁을 차마 거절할 수 없었던 하후돈은 당찬 어조로 제안을 받아들였다.
“원양, 너를 의심하여 자렴과 자효에게 부관을 맡긴 것은 나의 크나큰 실수였다.”
“그러게 나를 왜 의심해서….”
나를 설마 사촌의 남편이 될 사내를 빼앗는 파렴치한이라고 생각했단 말인가.
이성휘는 자신에게 있어 제부(??)에 해당한다.
남자에 미치지 않고서야,
제부에게 마음을 빼앗길 일은 없으리라.
물론 지금까지 몇 번 정도 이성휘에게 잠시 이성으로서 호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나… 이제 이성휘는 완전히 조조의 남편이 되었기에, 은연중에 품었던 마음을 대부분 정리한 뒤였다.
“너를 의심하고 두 불여우들을 믿다니… 이 조맹덕의 최대 불찰이었다.”
흑발의 여인이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안심하고 맡겼더니,
그 사이에 내 남편에게 꼬리를 쳐?
당장이라도 두 불여우들을 변방으로 유배를 보내버릴 것처럼 씩씩 숨을 몰아쉬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원양, 부관을 맡기겠다.”
“알았어.”
믿고 맡겼던 두 사촌들에게 배신을 당한 조조는 결국 하후돈에게 이성휘의 경계를 부탁했다.
패국의 여걸이라면 분명,
결코 불상사가 벌어지지 않으리라 믿기에.
남편의 곁에 언제나 늘씬한 몸매의 미녀들이 착 달라붙은 것이 의심스러웠던 조조는 하후돈에게 감시로 보냈다.
* * *
난공불락의 요새를 무너뜨리기 위한 공격은 계속해서 이어졌다.
충차가 연신 성문을 두들겼으며,
벽력거가 쏘아낸 바위들은 성벽을 사수하던 원술군 병사들에게 지옥을 선사했다.
그럼에도 수춘성은 함락되지 않았다.
이번에는 결코 당하지 않을 것이다. 원술군의 거센 저항에서 강한 집념을 엿볼 수 있었다.
“드디어 운제가 내걸렸다!”
“황실의 병사들이여, 용감하게 성벽을 오르라!”
침입자들의 공격을 불허했던 넓은 해자를 돌덩이와 진흙으로 메워버린 조조군은 곧 운제를 동원했다.
성벽들마다 운제가 내걸렸다.
뒤이어 병사들이 거침없이 운제에 몸을 실었다.
이번에야말로 기필코 원술군을 멸망시키리라.
두 번이나 원술에게 굴욕을 가한 조조군은 그에 만족하지 않고 마지막 숨통마저 끊으려 했다.
“적들의 공격에 충차가 무너졌습니다!”
“젠장! 어서 무너진 충차를 치워라!”
성벽 위에서 쏟아지는 원술군의 파상공세는 만승천자의 군대마저 고전할 정도였다.
날카롭게 쏟아지는 화살비,
쉴 새 없이 날아들면서 목숨을 위협했다.
벽력거들의 공격에도 견고한 위용을 자랑하는 성벽의 모습은 침입자들에게 절망을 안겨주고 있었다.
“먼저 궁수들이 있는 성루부터 노려.”
“예, 장군!”
날카롭게 몰아치는 화살세례 속에서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고개를 치켜들었다.
선두에서 군세를 지휘하던 하후돈은 벽력거들을 동원하여 성벽을 공격했다.
콰앙!
꽈과광!!
육중한 바윗덩이들이 낙하했다.
성벽 위에 우뚝 선 채 화살을 날리던 성루는 바윗덩이에 굉음과 함께 와르르 무너졌다.
그리고 뒤이어,
벽력거에서 불구덩이들이 쏘아졌다.
맹렬한 기세로 날아간 불구덩이는 성벽에 부딪치자마자 매서운 열기와 함께 불길을 토해냈다.
“오오! 제대로 명중했네!”
“자, 장군! 위험합니다!”
하후돈이 고개를 내밀면서 홍염에 물든 성벽을 바라보았다.
이윽고 위에서 화살들이 빗발쳤고,
하후돈을 호위하던 병사들은 방패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화살을 막아냈다.
“하마터면 애꾸눈이 될 뻔 했네. 그대로 화살에 맞았다면 정말 낭패였을 거야.”
날카로운 화살들에 벌집이 될 뻔한 상황이었음에도 하후돈은 여유로운 듯 웃음을 터트렸다.
과연 패국의 여걸다운 담력이다.
그녀의 모습을 본 병사들은 아연실색한 채 혀를 내둘렀다.
가장 위험한 전선에서 진두지휘를 하고 있는 하후돈의 모습에 감화된 병사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자리를 사수했다.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어라!”
“원술의 요새에 불이 붙었다! 놈들이 우왕좌왕하고 있다!”
콰직!
화염에 잠긴 성루가 무너졌다.
그 아래에 있던 원술군 병사들은 화마에 꿀꺽 삼켜지고 말았다.
불길에 무너지고 있다.
난공불락의 요새가 흔들리고 있다.
바람에 실린 채 흩날리는 불씨를 본 조조군 병사들은 고함을 내지르면서 일제히 성벽을 향해 내달렸다.
* * *
그 뒤로 조조군은 수차례 맹공을 퍼부었음에도 난공불락의 요새는 무너지지 않았다.
다수의 사상자들이 발생했으나,
결국 원술군은 성벽을 끝까지 사수해냈다.
여남원씨 가문의 권력을 수호하는 철옹성은 굳건하기만 했다.
“크하핫! 천하제일검이라 떠드는 놈도 결국 난공불락의 요새 앞에서는 어쩔 도리가 없던 모양이군!”
보름 동안 이어진 맹공에도 아군 장졸들은 계속 분전하여 적울 몰아냈다.
승전보를 들은 원술은 껄껄 웃으면서 조조군을 비웃었다.
나의 요새는 건재하다!
그 어떤 공격에도 무너지지 않으리라.
결국 함락에 실패한 조조군이 포위망을 풀고 물러나면 곧바로 반격하여 대승을 거두겠다며 호언장담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주군, 아군 병력들 또한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언제까지 오늘처럼 버틸 수 있을지….”
자신만만한 반응을 보이는 원술과 달리, 승전을 보고한 장훈의 낯빛은 어둡기만 했다.
오늘 수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었다.
아마 내일이면,
더 많은 병사들이 목숨을 잃게 되겠지.
적의 공세를 막아낼 때마다 점점 피폐해진 모습을 보이는 병사들을 볼 때마다 장훈은 죽음이 점점 다가오고 있음을 느꼈다.
“일군을 지휘하는 장수가 유약한 소리를 계속 지껄일 셈이냐! 병사들을 더욱 다그쳐서 적을 막아내라!”
“…….”
노여움에 찬 원술의 외침에 장훈은 입을 꾹 다물고서 고개를 끄덕였다.
병사들의 희생 따위는 전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소리치는 냉혈함에 낯빛이 굳어졌다.
“놈들을 모조리 물리친 다음, 나를 배반한 두 버러지들을 죽일 것이다! 여남원씨 가문을 배반한 대역죄를 물어 구족을 멸하리라!”
원술은 조조군을 격퇴한 다음에 성덕현에서 거병한 뇌박과 진란을 죽이겠다며 길길이 날뛰었다.
또한 감히 내 요청을 묵살한 채 그 어떤 지원도 해주지 않았던 무뢰한들을 가만두지 않으리라.
꽈앙! 꽈앙!
산송장처럼 창백한 낯빛을 한 남성이 걸상을 거세게 내리쳤다.
자신에게 굴욕을 가한 작자들을 단 한 명도 살려두지 않겠다는 증오가 느껴졌다. 두 눈을 부릅뜬 채 허공을 노려보는 모습에서 광기가 보이는 듯했다.
“주군, 계속된 공격으로 싸울 수 있는 병사들이 많지 않습니다. 일단 적들에게 외곽을 내어준 뒤에 내성에서 응전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이대도강(????),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 부분적인 손실을 감내한다.
장훈이 원술에게 계책을 진언했다.
외곽은 넓은 반경 때문에 상대적으로 사수하기 어렵다. 외곽을 버리고 내성에서 방어를 계속한다면 조조군을 능히 몰아낼 수 있을 터였다.
“닥쳐라! 감히 이 여남원씨 가문의 성에 적들의 더러운 흙발을 들이란 말이냐!”
원술이 장훈의 발치에 술잔을 내던졌다.
노여움을 금할 수 없었는지,
필사적으로 사수해낸 외곽을 포기해야 한다는 장훈의 말에 분노를 토해냈다.
지금 원술은 이성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기에 억지에 가까운 궤변을 늘어놓았다. 절대 적들을 수춘성에 들일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반발했다.
“이 철옹성을 호위하는 병력들이 수만 명에 달하지 않느냐! 사력을 다해 막아라! 결국 조조군은 아무것도 없지 못한 채 군량만을 축내다가 연주로 돌아갈 것이다!”
절대로 외성을 내어줄 수 없다.
병사들을 계속 내몰아라.
막대한 희생이 따르더라도 반드시 여남원씨 가문의 요새를 지켜내야 한다.
조조를 상대로 완전한 승리를 거머쥐고 싶었던 원술은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책을 뿌리친 채 병사들을 더욱 가혹하게 내모는 것을 선택했다.
“분명 놈들은 군량이 많지 않을 것이다. 군량이 떨어지기만 기다리면 된다. 결국 멍청한 놈들은 군량이 떨어진 뒤에야 불가능함을 깨달을 테니.”
앞으로 보름.
아니면 한 달.
결국 조조군은 굶주린 배를 움켜쥔 채 연주로 돌아갈 것이다.
원술은 감히 난공불락의 요새를 공격한 침입자들이 제 풀에 꺾이기만을 기다렸다.
* * *
표기장군 이성휘의 명을 받들어 성덕현으로 향했던 가후는 곧 어마어마한 성과와 함께 돌아왔다.
수만 석의 군량이 군중에 도착했다.
가후에게 설득당한 뇌박과 진란이 성덕현의 곡창에서 제공한 것이었다.
계속된 공방으로 군량을 많이 소모한 조조군은 원술을 배반한 장수들 덕분에 회생할 수 있었다.
“뇌박과 진란, 성덕현에 주둔하고 있던 모든 장졸들이 황실과 조정에 투항하였사옵니다.”
또한,
양주의 반란군이 투항의사를 밝혀왔다.
가후는 군량을 제공받는 것만으로 그치지 않고, 성덕현의 군세를 전쟁에 끌어들이기까지 했다.
“수고 많았다.”
“아니옵니다. 소녀는 주군의 패업을 위해 자그마한 보탬을 하였을 뿐이옵니다.”
이성휘의 말에 가후는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다.
찬사를 받아 마땅한 활약을 세웠으나,
영예로운 주군에게 칭찬을 받는 것이 쑥스러웠는지 겸양한 모습을 보였다.
군량 수만 석을 확보했다. 또한 뇌박과 진란으로부터 투항까지 받아냈다.
남은 것은 수춘성의 함락 뿐.
외곽은 거의 무너진 것이나 다름없었기에 총공세를 감행한다면 결국 난공불락의 요새는 흔적조차 남김없이 무너지게 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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