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6화 〉 346. 가시투성이 장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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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군을 버리고 구강군으로 온 이후,
여남원씨 가문의 명성을 이용하여 양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을 규합하면서 거대한 세력을 형성했던 원술군이 크게 휘청거렸다.
유능한 장수를 잃었다.
또한 수많은 병사들마저 땅에 묻었다.
예주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양성 전투’에서 패전했으며, 서주를 도모하려 했던 ‘팽성 전투’에서도 패전하면서 마지막 기회마저 잃고 말았다.
무능한 자에게 결코 세 번째 기회는 없다.
도전할 때마다 실패했고,
실패했을 때마다 매번 타인에게 책임을 돌렸다.
그렇기에 하늘은 마지막까지 원술의 손을 들어주지 않았다.
“뇌박과 진란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잠산의 병력을 이끌고 당도현(???)을 공격하고 있습니다!”
“단양태수 주흔이 주앙, 주우와 기병부대를 이끌고 역양(??)을 침범했다고 합니다!”
안에서는 반란.
밖에서는 침공이 벌어졌다.
원술군 장수였던 뇌박과 진란은 원술의 무능에 실망하여 잠산으로 들어가 스스로 도적이 되었다.
또한 원술의 양주 정벌로 인해 수세에 직면했던 단양태수 주흔은 동생들과 함께 반격을 가해왔다.
“감히 이 비천한 놈들이!”
각혈하면서 쓰러진 이후,
보름이 지난 뒤에야 가까스로 눈을 뜨게 된 원술은 최악의 상황을 받아들여야 했다.
차라리 그냥 피를 토하며 죽는 게 낫지 않았을까.
수춘성에 남은 부하들로부터 계속해서 악몽과도 같은 보고만 들어야 했다.
“어서 여강태수 육강에게 서신을 보내라!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이 도움을 요청하니, 병력과 군량을 한시라도 빨리 제공해달라고 말이다!”
원술은 여강태수 육강에게 도움을 요청한 뒤, 진왕(?王) 유총과 양주자사 진우에게도 도움을 요청했다.
병력과 물자를 맡겨놓은 것처럼,
그들에게 아무런 담보도 없이 도움을 받으려고 했다.
자신이 몰락을 앞둔 상태임을 전혀 받아들이지 못한 거만한 행위였다. 두 손 싹싹 빌어도 모자랄 판국에, 으름장을 놓듯 여남원씨 가문의 위광을 내세우면서 도움을 받아내려 했으니.
“그 자들이 과연 도와주겠습니까….”
장훈이 중얼거렸다.
부하들은 반기를 들었고,
계속 지지를 보내주던 사대부와 호족들은 돌아서버린 상태다.
반란과 침공을 동시에 받게 된 아군을 주변 지방관들이 도와줄 리 없지 않은가. 조금만 생각하면 알 수 있는 결과였다.
“나는 여남원씨 가문의 적통이다! 지금은 잠시 수세에 몰렸지만… 다시 세력을 수습한 다음에 환관 년과, 그리고 노비 년과 일전을 벌일 것이다!”
조조,
그리고 원소.
나를 업신여긴 두 계집년들을 기필코 나락으로 떨어트릴 것이다.
당장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상황이었음에도 원술은 조조와 원소를 향한 복수심을 드러냈다. 복수에 불타는 모습은 마치 망령된 고집에 빠진 광인을 보는 듯했다.
“주, 주군!”
수춘성을 방비하고 있는 장수들 중 한 명인 양강이 달려왔다.
급보가 도착했는지,
헐레벌떡 달려와 원술의 발치에 엎드렸다.
“회남(??)에서 백성들이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그리고…! 합비현(???)이 양주 사대부와 호족들의 군세에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원술군의 지독한 폭정에 시름하던 백성들이 민란을 일으켰다.
또한,
원술의 무능에 지쳐버린 사대부와 호족들이 합비현을 공격했다.
폭력에 억눌렸던 불만이 마침내 폭발한 것이다.
이제 원술은 이빨 빠진 짐승이다.
전쟁에서 기령을 잃었으며,
또한 가장 든든한 아군이었던 손견은 각자도생하듯 식솔들과 함께 달아나버렸다.
수춘성에 남은 장수들마저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세력에 큰 구멍이 생기고 말았다.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사방에서 적들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두터운 성벽과 넓은 해자를 자랑하는 수춘성은 분명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그러나,
비축된 식량이 얼마 되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외부 세력의 지원조차 바랄 수 없는 상황이었기에 당장 수춘성을 버리고 떠나야 했다.
만약 이대로 꾸물거리다간 성벽에 몸을 기댄 채 굶주림에 허덕이다가 죽게 될 것이었다. 그것을 우려한 장수들은 원술에게 피신을 권유했다.
“내, 내가 어디로 간단 말이냐…!”
장훈과 교유의 진언을 들은 원술이 이를 빠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높고 드넓은 천하에,
이 원공로가 의지할 곳이 없단 말인가!
따르는 무리들이 수만 명에 달했음에도, 절망에 빠진 원술은 결단을 내리지 못한 채 망설일 뿐이었다.
“원소에게 의탁하시는 건 어떻겠습니까!”
휘하 장수였던 척기가 발언했다.
그에 원술은 핏발 선 눈으로 망발을 지껄인 부하를 노려보았다.
“닥쳐라! 내 당장 벼락에 맞아죽더라도 노비 년의 치맛자락을 붙잡지는 않을 것이다!”
나더러,
노비에게서 태어난 년에게 의지하란 말이냐!
원소에게 의탁하라는 척기의 말에 울화통이 치밀게 된 원술은 격노에 찬 목소리를 내질렀다.
뒤이어 원술은 감히 망발을 지껄인 척기를 잡아 가두도록 명령했다. 곧 척기는 위병들에게 끌려 나갔다.
“나더러 노비 년에게 의탁하라고…? 고귀한 혈통인 내가 노비 년을 의지해야 한단 말이냐!”
쿨럭.
쿨럭──!!
실패를 받아들여야 했다.
좌절을, 절망을 받아들여야만 했다.
더 이상 하늘은 자신에게 기회를 내려주지 않을 것임을 겸허히 인정해야 했다.
연이은 실패들로 인해 절망의 밑바닥까지 떨어지게 된 원술은 울화를 참을 수 없었는지 핏물을 울컥 토해내고 말았다.
* * *
원술이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은 업성에도 알려지게 되었다.
천하를 도모하기 위해 남양군에서 구강군으로 세력을 옮기는 초강수를 두었음에도 결국 원술은 제 한계를 넘어서지 못한 채 실패하고 말았다.
실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고귀한 적통께서 천 길 낭떠러지까지 한 걸음을 남겨두고 있는 꼴이라니.
금발의 여인이 비웃음을 흘렸다.
지금쯤 절규하고 있을 이복동생의 꼴사나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제 분수도 모르고 설치더니… 꼴좋군요.”
같은 아버지에게서 태어난 남매였음에도 원소와 원술은 오랜 철천지원수였다.
여름과 겨울이 공존할 수 없듯,
열사(??)와 빙하(?)가 함께 존재할 수 없듯이.
이복동생이 죽을 위기에 직면했다는 소식을 들었음에도 원소는 일말의 동정심조차 베풀지 않았다.
어머니가 노비라는 이유로 차별과 학대를 받아야만 했던 원소는 자신이 누리지 못한 고귀한 혈통을 타고났음에도 기회를 잡지 못한 원술을 멍청한 광대로 취급했다.
“여남원씨 가문이 그토록 맹신하던 혈통이라는 것도 결국 무능을 감춰주진 못하는 모양이군요.”
옥좌처럼 화려하게 꾸며진 의자에 앉은 금발의 여인이 비웃음을 흘리면서 중얼거렸다.
늘씬한 두 다리를 꼰 채,
한손으로 턱을 괴고는 원술의 패망을 즐거워했다.
하북 4개 주를 장악하면서 천하의 절반을 거머쥐게 된 여장부는 그를 지켜보고 있던 장수들이 오한을 느낄 정도로 냉혹한 모습을 보였다.
“…….”
“…….”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고 하였던가.
원소에게서 흘러나오는 살의와 위압감을 좌중을 크게 압도할 정도였다. 그녀를 보필하는 참모들도 감히 나설 용기가 없었는지 침묵을 지켰다.
“…주군.”
무리들 중 한 명이 나섰다.
낙양에서부터 원소를 보필했던 참모, 곽도였다.
“물론 원술이 주군과는 결코 섞일 수 없는 원수임을 알고 있습니다만…, 그래도 여남원씨 가문의 혈통이지 않습니까.”
“구해야 한단 말인가요?”
한겨울의 맹추위를 담은 서릿바람보다 차가운 목소리가 울렸다.
그 목소리에 곽도가 움찔 떨었다.
마치 심장을 옥죄듯이,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에 숨통이 막혔다.
자신이 살얼음판 위에 있음을 직감한 곽도는 용기를 내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원술을 받아들인다면 여남원씨 가문을 따르는 모든 사대부와 호족들이 주군의 발치에 무릎을 꿇고 복종할 것입니다.”
동탁에게 멸문지화를 당한 이후,
여남원씨 가문은 원소를 따르는 파벌과 원술을 추종하는 파벌로 분열되었다.
만약 원술을 신하로 받아들인다면,
여러 대에 걸쳐 여남원씨 가문에 복종해온 모든 사대부와 호족들이 원소의 휘하로 모이게 될 것이다.
곽도의 말에 일리가 있음을 느꼈는지 참모들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원술을 신하로 받아들이라는 말이군요….”
무능한 도련님을 받아들인다면 유리한 고지들을 선점할 수 있겠지.
하지만 또한,
안하무인 같은 도련님을 받아들임으로서 떠안게 될 위험 또한 존재할 터였다.
원술은 절대로 개과천선할 위인이 아니다.
분명 제 주제도 모르고 가당치도 않은 욕심을 휘두르면서 분란을 일으킬 게 틀림없었다.
“받아들이지 않겠어요.”
“주군…!”
“원술은 결국 분란의 씨앗이 될 뿐이에요.”
득보다 실이 더 클 것이라고 판단한 원소는 곽도의 제안을 뿌리쳤다.
원술은 독이다.
품은 상대마저 죽이는 맹독.
동탁에게 쫓기고 있었을 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던 형주자사 왕예와 남양태수 장자를 끔찍하게 참살하지 않았던가.
인과응보,
결국 뿌린 대로 거두는 법이다.
배신으로 성공한 자는 결국 일말의 영광조차 거머쥐지 못한 채 허망하게 죽게 되리라.
“부하들의 배신으로 죽게 되겠죠. 형주자사 왕예를 시살하고 세력을 강탈했던 원술에게 참으로 어울리는 결말이 아닌가요?”
원소가 모멸감에 찬 웃음을 터트렸다.
붉은 눈동자가 요사스럽게 빛났다.
뚝뚝 흐르는 선혈처럼 지독한 열기를 품고 있었다.
노골적으로 증오와 멸시를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은 무심코 뻗은 손길을 피투성이로 만들어버리는 가시투성이 장미를 연상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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