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3화 〉 343. 절대 조조를 건드리지 마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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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씬한 몸매의 여인이 다급한 표정을 지으면서 문을 걷어차듯 열고 들어왔다.
꽈앙!
마치 짐승이 달려온 듯했다.
찰랑이는 금발과 함께 모습을 드러낸 여인은 얼굴에 금창약을 덕지덕지 바른 채 업무를 보고 있던 사내를 향해 소리쳤다.
“오, 오늘 등청하면서 들었는데…! 이게 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지금까지 계속 비밀에 붙여두었던 관계가 알려지게 되었다. 궁궐 사람들 중에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소문은 빠르게 퍼져나갔다.
발 없는 말이 천 리를 가는 것처럼 널리 퍼지게 된 소문은 이윽고 당사자의 귀에도 전해지게 되었다.
결국,
천하제일검의 정부(??)임이 알려졌다.
궁궐에 발을 들이자마자 자신에게 몰리는 눈초리들을 뚫어낸 여포는 곧장 사실관계를 확인하기 위해 이성휘에게 따지듯 물었다.
“미안하다. 먼저 전했어야 했는데… 지금 내 상태가 말이 아니라서, 미처 전하지 못했다.”
“얼굴은 왜 그래? 어디 암호랑이하고 싸웠어?”
“그래, 밤새도록.”
강한 압력에 짓뭉개진 과일처럼 흉하게 망가진 얼굴을 보고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경악을 금치 못했다.
마치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듯 했으니까.
두 눈을 휘둥그렇게 뜬 채 경악하던 여포는 곧 이성휘에게 어젯밤에 있었던 일을 듣게 되었다.
“맹덕에게 말했다.”
“미, 미쳤어?! 분명 날 죽일 텐데!”
포악하고 잔인하기로 유명한 조조가 아닌가.
무자비한 성정을 자랑하는 여자에게 모두 이실직고했다는 이성휘의 말에 여포가 놀라는 것은 당연했다.
죽는다.
죽게 될 거다.
분명 수천 명에 달하는 근위병들이 암습을 가해올 게 틀림없었다.
기둥에 꽁꽁 묶인 채 화형에 처해지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린 여포는 두 눈을 질끈 감았다.
아내가 있는 남편과 바람을 피운 간통죄로 만약 목숨을 잃게 된다면 분명 얼간이 같은 상간녀로 역사서에 기록될 터. 모멸감이 느껴지는 최악의 결말이다.
“아아아악!!”
금발의 여인이 제 머리를 감싸 쥐면서 소리쳤다.
깊은 고뇌에 찬 듯,
얼굴을 일그러뜨린 채 고통스러워했다.
그 모습을 옆에서 쳐다보고 있던 사마의는 반쯤 미친 광인을 보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인님!”
산뜻함이 느껴지는 발랄한 목소리와 함께 부드러운 인상의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발을 늘어뜨린 미녀,
여포와 함께 염문의 대상이 된 장료였다.
고뇌에 비명을 내지르는 여포와는 달리, 장료는 진심으로 기쁜 듯 배시시 웃으면서 이성휘에게 곧장 매달렸다.
“소식 들었어요, 마님에게 주인님과 저희들의 관계에 대해 말씀드렸다면서요?”
마치 고백을 받은 것처럼,
장료는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기뻐했다.
정실부인에게 몰래 만나던 정부들의 존재를 밝혔다는 것은 곧 허락을 받아내기 위함일 테니까.
여포와 함께 이성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된 장료는 혼례를 앞둔 새신부처럼 쑥스러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폭 매달렸다.
“헤헤헤….”
다정하게 팔짱을 끼면서 풍만한 젖가슴을 폭 내밀었다. 젖가슴으로 주인님의 팔을 슥슥 비비면서 유혹하듯 교태를 부리기까지 했다.
만약 조조가 이 불쾌한 광경을 보았다면 곧장 즉결심판을 명령했으리라.
“문원!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할 일이 아니잖아!”
“네?”
불륜의 발각으로 목숨이 위태로워졌기 때문일까.
무식과 저돌의 대명사가,
육탄공세 밖에 모르는 돌격녀는 지금까지 결별했던 지능을 되찾은 것처럼 매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새파랗게 질린 낯빛을 드러낸 여포는 분명히 조조가 자신들에게 앙갚음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를 죽일 거라고! 최대한 잔인하게…! 그 여자라면 분명 우리들을 산 채로 태워죽일 게 틀림없어!”
남편과 바람을 피운 상간녀들을 가만히 놔둘 아내가 천하에 어디 있겠는가.
병력을 총동원하여 자신에게 더할 나위 없을 치욕을 안긴 남편의 상간녀들을 제거할 게 분명하다.
대체 무슨 미래를 본 것인지…,
여포는 자신이 조조에게 처형당할 것이라며 온몸을 바들바들 떨어댔다.
“설마 그런 일이 벌어지겠어요? 주인님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계신 마님께서 그럴 리 없잖아요. 절대 주인님께서 싫어할 일은 하지 않을 테니까.”
불안에 떠는 여포를 향해 장료는 살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두려움을 다독여주었다.
물론 그녀는 질투가 많은 성정이나,
그래도 같은 사내를 연모하게 된 관계가 아닌가.
조조가 진심으로 남편을 연모하고 있음을 알고 있었기에 장료는 확고한 목소리로 단언했다. 결코 자신들에게 위해가 가해질 일은 없을 것이라고.
“나를 믿어라. 너희들은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가 지켜줄 테니. 내 이름을 걸고 약속한다.”
만약 이 모습을 조조가 보았다면 “불륜이나 저지른 난봉꾼 주제에 꼴값 떠네.”라고 말했겠지.
하지만 여포와 장료의 눈에 이성휘는 무척이나 의지가 되는 사내로 보였다.
얼굴은 여전히 엉망진창인 상태였지만.
“표기장군!”
이성휘가 장료와 함께 두려움에 빠진 여포를 달래고 있었을 때,
쿵쿵 육중한 발걸음이 문 너머에 도달했다.
쩌렁쩌렁한 목소리,
조조의 호위장인 허저가 틀림없었다.
자리에서 일어선 이성휘가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왔다. 곧이어 이성휘는 호위장 허저가 무거운 갑옷을 걸친 근위병들을 거느린 채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게 되었다.
“내, 내 말이 맞잖아! 진짜 병사들을 끌고 왔어!”
“진정하세요, 봉선 님.”
“방천화극을…, 젠장! 두고 왔어!”
이성휘는 여포의 애절한 비명을 뒤로 한 채 허저를 바라보았다.
수십 명에 달하는 근위병들이 허저의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근위병들은 여포의 예상처럼 기습을 목적으로 온 것이 결코 아니었다.
왜냐하면 표기장군부에 발걸음을 한 근위병들은 갑옷을 걸치고 있었지만, 병장기를 무장한 상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인가.”
“주군의 말씀을 전하러 왔습니다.”
이성휘의 물음에 7척에 달하는 거구를 자랑하는 허저가 예를 취하면서 말했다.
“표기장군부를 그대로 두되… 표기장군의 집무실을 사공부로 옮기도록 명하셨습니다.”
“사공부?”
이해하기 어렵다.
납득하기 어려운 명령이었다.
표기장군부를 그대로 두되,
자신의 집무실만을 사공부로 옮긴다니.
이성휘 없는 이성휘조(?)도 아니고 말이다.
속관들을 그대로 둔 채 표기장군의 집무실만을 사공부로 옮기는 것은 전례를 찾을 수 없는 일이었다.
“설마.”
여포와 장료를,
궐문을 들어서려다가 놀란 듯 발걸음을 멈춘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순유와 가후를 바라보았다.
그녀들의 면면을 본 이성휘는 곧 조조의 숨은 뜻을 헤아릴 수 있었다.
분명… 자신이 더 이상 다른 여자들과 바람을 피울 수 없도록 곁에 두겠다는 의중이리라.
맙소사. 이성휘는 질투에 빠진 아내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그럼 병사들은….”
“어르신의 짐들을 옮기기 위해서입니다.”
“…….”
단단히 뿔이 난 게 틀림없다.
어젯밤 이후,
조조는 더욱 남편을 불신하게 되었다.
불신하는 것은 당연했다.
남편이 여러 여자들과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이 드러났으니까.
‘물론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겠지만… 설마 이렇게까지 할 줄이야.’
주렁주렁 매달린 토란처럼 줄줄이 밝혀지게 된 문란한 내연관계에 질릴 대로 질려버린 조조는 더 이상 남편을 믿지 않게 되었다.
곁에 두고 직접 조지겠다,
그것이 바로 표기장군 이성휘의 집무실을 사공부로 배속시키려는 이유였다.
‘그래도 표기장군부는 해체되지 않고 그대로 존속하는 모양이군. 최악의 상황은 피했어. 혹시나 만약에 아만이 표기장군부를 해체해버리겠다고 선언해버리면 어쩌나 걱정했었는데.’
찰나의 순간에 머리를 굴리면서 자신의 생각을 정리한 이성휘는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
주군의 명령이라면,
일말의 망설임 없이 따를 수밖에.
여전히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던 이성휘였기에 아내의 명령에 고분고분 순종하기로 했다.
“문원, 너에게 표기장군부를 잠시 맡기겠다. 곧 돌아올 테니까 안심해라.”
“제가 표기장군부를요? 와, 제가 승진을 하다니!”
“…….”
표기장군을 대리하여 표기장군부를 잠시 맡게 되었다는 사실에 장료가 환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어이가 없는 상황이다.
옆에서 승진을 축하하는 여포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혀를 내두르면서 고개를 가로저었다.
“중강.”
“예, 어르신.”
이성휘의 부름에 허저가 무겁게 고개를 푹 숙이면서 대답했다.
“맹덕 님의 노여움은… 조금 가라앉으셨나?”
“크흠!”
허저의 묵직한 헛기침을 통해 이성휘는 여전히 아내가 흉신악살 상태임을 깨달았다.
어떻게 하면 화를 풀 수 있을까.
아니,
그것은 부질없는 생각이다.
결코 쉽게 풀릴 화가 아니라는 것은 노여움의 대상인 이성휘가 가장 잘 알고 있었다.
“…내 짐들을 어서 옮겨라. 분명 많지는 않을 테니 오래 걸리진 않을 거다.”
“알겠습니다.”
이성휘의 허락이 떨어지자 허저가 근위병들에게 턱짓을 보냈다.
갑옷을 걸친 근위병들이 이성휘의 집무실에 차례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히에에엑! 대, 대체 무슨 일임! 험상궂은 아저씨들이 백주대낮에 표기장군의 가구들을 훔쳐가고 있음! 큭, 이 사마중달이 표기장군의 물건들을 훔쳐가는 도둑들을 가만히 둘 것 같음?!”
우당탕, 소리와 함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분명 사마의의 목소리였다.
차압을 통보하는 빨간딱지를 붙이려고 들어온 사람들처럼 벌떼처럼 집무실에 출입한 근위병들의 모습에 비명을 내지른 것이리라.
“중강, 저 아이를 데려가도 되겠나?”
이성휘가 물었다.
그의 시선은 물건을 옮기고 있는 근위병의 바짓가랑이를 붙잡은 채 안간힘을 쓰고 있던 사마의를 향하고 있었다.
인형처럼 아기자기하게 생긴 흑발의 소녀를 훑어보던 허저는 ‘저렇게 작은 어린아이라면 괜찮겠지.’라고 중얼거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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