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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41화 (341/616)

〈 341화 〉 341. 부부 싸움은 칼로 하늘 베기(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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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의 찬바람이 화원(花?)을 크게 두르고 있던 팽나무들을 흔들었다.

휘청 흔들리는 나뭇가지,

바람을 타고 나뭇잎들이 사륵사륵 흩어졌다.

칠흑으로 물든 운치를 거닐고자 공원에 나온 것 같은 두 남녀는 호흡을 내쉬는 소리조차 생생하게 들릴 것처럼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귀관은… 귀관은 나를 아직도 연모하는가? 질투와 시기가 일상다반사인 이 성가신 여자를 사랑하고 있느냐는 말일세…!”

흑발의 여인이 비련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간절하게 호소하는 듯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 물음에,

이성휘는 숨이 잠시 멎는 것을 느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으니까.

장담할 수 있다.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바람을 핀 난봉꾼 따위가 하는 말들은 모두 거짓말처럼 들리겠지만… 그녀를 향한 사랑만큼은 진심이었다.

“한 번도… 단 한 번도 아만을 연모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습니다.”

이성휘가 말했다.

고개를 슬쩍 숙이면서,

제 가슴 위에 천천히 손을 올렸다.

촉촉하게 물든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고 있는 흑발의 여인과 시선을 마주하며 마음을 고백했다. 고백을 담아낸 목소리에서 쑥스러움의 감정이 느껴졌다.

“알고 있습니다…. 아만을 배신하고 신뢰를 깨트린 제 말은 한낱 변명에 불과하겠지요. 하지만 그럼에도 아만을 진심으로 연모한다는 말을 전하고 싶습니다.”

알고 있다.

내 말 따위는,

변명으로 밖에 들리지 않겠지.

자신을 속이고 두 사촌동생들과 관계를 맺은 사내의 말 따위를 신뢰할 여자는 천하에 없을 테니까.

“…미, 믿네.”

하지만 그런 예상과는 달리, 조조는 고개를 미약하게 끄덕이면서 이성휘의 고백을 받아들였다.

새빨갛게 물든 뺨.

부끄러움에 젖은 미소가 입가에 드러났다.

혼례를 맞이한 새신부처럼 두 손을 포갠 채 수줍어하는 반응을 보였다.

“귀관의 말을… 믿는단 말일세.”

몇 번을 속더라도,

몇 번을 배신당하더라도.

그럼에도 나는 귀관을 사랑한다.

며칠 동안 겪었던 아픔과 괴로움을 통해 자신의 진심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금까지 귀관은 내가 위험에 처할 때마다 언제나 나타나서 구해주지 않았는가? 항상 나를 위해… 목숨을 걸고 싸워주었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흉수들과 혈전을 벌이던 그 모습을 떠올렸다.

수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새카맣게 몰려든 적들을 향해 망설임 없이 달려들었다.

그는 나의 검이며… 또한 나의 영웅이다.

만약 지금까지 그의 헌신과 희생이 없었다면 원소보다 빨리 세력을 제패하지 못했겠지. 모두 이성휘가 곁에 있어준 덕분이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네. 귀관은 아주 못된 남편이지.”

망설이듯 말끝을 흐린 이성휘. 그에 조조는 진지한 표정을 지으면서 못된 남편의 불륜을 꼬집었다.

나쁜 놈.

못된 새끼.

어떻게 나를 두고 두 사촌동생들과 바람을 피울 수 있단 말인가.

자렴에 이어 자효까지….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을 모두 독차지한 욕심쟁이가 실로 괘씸했다.

영웅에게 삼처사첩(三?四?)은 당연하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해도 괘씸한 것은 괘씸한 것이었다.

“이 바람둥이! 난봉꾼, 파락호! 어떻게 귀여운 아들내미를 두고 바람을 피울 수 있는가!”

“…….”

자렴과 관계를 맺었을 때는 고백을 하기 전이었다.

또한,

자효와 관계를 맺었을 때는 분명 혼례를 올리기 전이었다.

그러나 괜히 사족을 붙였다간 도리어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는 격이 될 터였기에 입을 꾹 다물었다.

“사죄를 구하는 귀관의 진심어린 모습을 봐서 이번 한 번만 넘어가주려 하였더니… 생각할수록 괘씸하지 않은가! 내 어디가 부족하여 자렴과 자효에게 눈길을 준 겐가!”

“…….”

크흠.

크흠흠.

이성휘는 침묵했다.

입을 다문 채 침묵해야만 했기에.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인 채 분노를 발산하는 여인의 납작한 가슴을 곁눈질로 힐끗 쳐다본 뒤에 이글이글 불타고 있는 그녀의 두 눈을 마주했다.

“흥!”

조조는 팔짱을 낀 채 온몸으로 불쾌한 감정을 발산했다.

납작한 가슴에 어울리는,

실로 빈약한 수준의 아량이었다.

비좁은 아량을 가진 여인은 그 어떤 경우에도 믿겠다는 말을 단번에 번복하듯 불륜을 트집 잡았다.

“아만.”

이성휘가 어르는 듯한 목소리로 불렀다.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그녀에게 부드럽게 권유하듯 두 팔을 좌우로 뻗으면서 품을 내밀었다.

“귀관, 지금까지 범한 중죄들을 겨우 포옹으로 무마하려는 것인가! 실로 후안무치하기 짝이 없는 안일한 작태로군!”

이성휘의 행동을 이해한 조조가 분통을 터트리면서 강한 적개심을 표출했다.

겨우 포옹 따위로,

이 조맹덕의 노여움을 달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그 안일함에 혀가 내둘러졌다.

후안무치하다.

실로 가당찮은 유화책이 아닌가.

“으으!”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경계하던 흑발의 여인은 이윽고 눈치를 슬쩍 살피더니 한 걸음을 내딛었다.

한 발,

두 발….

도둑고양이처럼 살금살금 걸음을 내딛은 조조는 곧 이성휘의 품에 폭 안겼다.

두 팔을 그의 허리에 두르며,

연모하는 사내의 넓은 가슴에 얼굴을 파묻었다.

발꿈치를 꾹 들면서 품에 안겨든 조조는 그간 남편의 온기가 그리웠는지 적극적으로 매달렸다. 품에 얼굴을 파묻은 뒤 그의 체취를 킁킁 맡았다.

“이, 이번만… 일세.”

귀까지 새빨갛게 물든 흑발의 여인이 병아리가 삐약 소리를 내는 것처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반칙이다.

이건 반칙이 아닌가.

이성휘의 품에 안긴 조조는 그간의 응어리들이 사르륵 녹기 시작하는 것을 느꼈다.

경칩을 맞이한 듯이 얼음장처럼 꽁꽁 얼어붙은 마음이 녹아내렸다. 녹아내린 얼음은 졸졸 흐르는 개울물이 되어 따스한 봄이 왔음을 알려주었다.

“나쁜 놈! 귀관은 정말 나쁜 놈일세.”

“죄송합니다.”

“내게 이 정도의 무례를 저지르고도 목숨을 건사한 인물은 귀관이 유일할 것이네.”

“용서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당장이라도 눈물이 범람할 것처럼 글썽글썽한 눈으로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냉철하고 무자비한 성정이지만,

자신에게만큼은 한없이 따뜻한 그녀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고개를 숙인 채 조조와 시선을 마주한 이성휘는 들끓는 격정을 참을 수 없었는지 단번에 그녀의 입술을 빼앗았다.

“으응…!”

거친 감촉이 입술을 덥석 물었다.

입술을 타고 흐르는 온기,

따스함이 입술을 부드럽게 압박했다.

슬픔을 뿌리친 채 화해를 나눈 두 남녀는 그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잊고 싶었는지 포옹과 입맞춤에 열중하는 모습을 보였다.

* * *

파탄 직전으로 내몰렸던 두 남녀가 포옹과 함께 격렬한 입맞춤을 나누기 시작했다.

내리쬐는 달빛.

부드러운 분위기를 내는 밤하늘의 장막.

은은하게 빛나는 배경의 중심에 선 채 입맞춤을 나누는 두 남녀의 모습은 실로 낭만적이었다.

“와아….”

달밤의 부엉이처럼 담장 너머로 치정극을 훔쳐보고 있던 흑발의 여인이 감탄음을 중얼거렸다.

평동장군 조홍,

그녀는 매혹에 빠진 표정을 지으면서 격렬한 입맞춤을 하고 있는 언니와 ‘남편 겸 형부’를 바라보았다.

정말 낭만적이다.

보는 사람들이 황홀경을 느낄 정도의 낭만이었다.

옆에서 함께 훔쳐보고 있던 여인도 조홍과 마찬가지로 황홀경을 느꼈는지 두 눈을 크게 뜬 채 보고 있었다.

“아아….”

조홍과 함께 몰래 훔쳐보고 있던 조인이 도톰한 입술을 슬쩍 벌리면서 신음을 흘렸다.

응큼한 망상을 하고 있는지,

애타는 표정을 지은 채 입술을 뻐끔뻐끔 움직이고 있었다.

아무래도 입맞춤을 나누고 있는 사촌언니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한 듯했다.

“무슨 생각해? 하여간 응큼하기는. 얌전한 고양이가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더니… 딱 그 짝이네.”

“시, 시끄러!”

빤히 쳐다보면서 입을 연 조홍의 말에 조인이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소리쳤다.

속마음을 들킨 게 부끄러웠는지,

성난 표정을 지으면서 한껏 감정을 표출했다.

“이제 전희는 됐으니까, 빨리 쑤컹쑤컹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는데요….”

“닥치세요, 조카님.”

풋풋한 사랑을 나누는 모습을 동경에 찬 시선으로 바라보던 순욱은 산통을 깨트리는 발언을 한 조카를 노려보았다.

지금 달달한 연애가 한참이거늘,

어디서 감히 더러운 육욕을 입에 담는단 말인가.

갈등과 오해들을 풀어낸 끝에 서로 간의 마음을 확인한 뒤, 서로를 꼭 끌어안은 채 입맞춤을 나누는 모습은 순욱에게 하여금 깊은 낭만으로 다가왔다.

“더럽고 치졸한 성격에 아량과 배포는 일말도 찾아볼 수 없던 맹덕이 저렇게 성장하다니…!”

훌쩍훌쩍.

결국 바람을 핀 남편을 겸허히 용서하기로 한 사촌의 결정에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은 감동의 물결에 휩쓸린 상태였다.

연신 눈물을 훌쩍이더니,

동생 하후연이 건넨 손수건으로 코를 풀었다.

* * *

길었던 입맞춤은 뺨을 간질이던 밤공기와 함께 끝나게 되었다.

입술을 떼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입맞춤의 뜨거움 때문일까,

이성휘와 조조의 얼굴은 한없이 붉어진 상태였다.

오랜만의 입맞춤에 몸이 달아오른 조조는 가쁜 숨소리를 내쉬면서 입을 열었다.

“사랑하네, 귀관. 그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나는 귀관을 사랑할 걸세.”

“저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그는 두 처제들과 바람을 핀 천하의 난봉꾼이다.

또한,

자신이 진심으로 연모하는 사내이며 내 아들의 아버지였다.

결국 조조는 애증의 대상이었던 이성휘를 용서하기로 했다.

“이제 서로를 숨기는 일은 그만두도록 하세. 귀관이 어떤 비밀을 가지고 있든 간에… 겸허히 용서해주도록 하겠네.”

조조가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서로를 속이고,

서로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은 그만 끝내자.

다시 금슬 좋은 부부가 되고 싶었던 조조는 이성휘에게 면죄부를 주었다.

또한 조홍에 이어 조인을 남편의 새로운 측실로 들이는 것을 검토하기로 했다. 앞으로 그 뒤에 매우 엄격한 조건들이 붙게 되겠지만 말이다.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을 모두 취하는 것이니, 응당 이성휘가 감당해야 될 시련들이었다.

“…예, 알겠습니다.”

못난 남편의 허울들을 모두 받아준 아내의 관용에 눈시울이 붉어졌다.

더 이상 숨기지 말자.

더 이상 서로를 속이지 않도록 하자.

그 어떤 허울이라도 용서해주겠다는 조조의 관용에 크게 감화된 이성휘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억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사실… 사도 왕윤의 수양딸인 초선 소저와 내연관계를 맺어왔습니다.”

초선과의 관계에 대해 고백했다.

“그리고 휩쓸리듯 여포 장군과 장료 장군과도 관계를 맺었습니다.”

여포, 장료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고백했다.

실타래를 한꺼번에 풀어내듯,

그간 숨기고 있던 관계들을 모두 털어놓았다.

자애로운 성모처럼 모든 것을 용서하겠다는 조조의 모습에 안심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그러나,

자애로운 성모가 받아들일 수 있는 관용에는 엄연히 한계가 존재했다.

“이, 이… 씹새끼가…!!”

아내의 사랑스러운 얼굴이 흉신악살의 야차처럼 변하는 것은 실로 순식간이었다.

당혹. 분노.

남편의 지독한 바람기를 받아들이는 2단계가 찰나에 끝났다.

* * *

다음 날,

흑발의 소녀가 표기장군부에 일찍 등청했다.

“좋은 아침임!”

궁문을 지키던 위병들에게 인사를 한 사마의는 도도 뛰면서 집무실에 들어왔다.

그리고 목격했다.

상석에 앉아있는 괴인의 존재를.

일찍 표기장군부에 등청한 흑발의 소녀는 “일을 열심히 해서 벌꿀사탕을 잔뜩 받을 거임!”이라는 생각이 증발할 정도로 경악을 토해냈다.

“뭐, 뭐뭐뭐뭐뭐… 뭐임?!”

시퍼렇게 물든 눈두덩이.

얼굴에 새겨진 깊은 손톱자국들.

거기에 퉁퉁 부어오른 뺨에는 손바닥의 형태를 한 자국들이 매우 선명하게 새겨져 있었다.

성난 암호랑이에게 밤새도록 시달린 것 같은 이성휘의 흉측한 몰골에 사마의는 아연실색한 채 뒤로 슬금슬금 물러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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