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0화 〉 340. 부부 싸움은 칼로 하늘 베기(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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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하려 했다.
당장은 아니지만,
준비를 한 뒤에 용기를 내어 사과의 손짓을 내밀려고 했었다.
하지만 전할 수 없었다.
심리적 압박에 내몰린 그가 스스로 극형을 떠안으려는 모습을 보게 되자 머리가 멍해지고 말았다.
“…이 바보 같은 사람.”
아슬아슬하게 타오르는 등잔불.
흑발의 여인은 주황빛 등잔불을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다.
숙연함에 젖은 표정을 지으면서,
갈대처럼 흔들리는 애처로운 마음을 곱씹었다.
‘형장에 올라섰던 부관의 몸이 온통 흉터들로 가득했다고 했었지….’
그 뒤에 자세한 자초지종을 듣게 된 조조는 숙연함을 금치 못했다.
온몸이 가득한 끔찍한 흉터들.
지금까지 입은 상처들의 흔적이었다.
수많은 전투들을 승리로 이끌었던 천하제일검은 온몸이 흉터투성이였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해 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싸워왔기 때문이다.
‘지금껏 부관은 나를 위해 분골쇄신하며 싸웠다. 온몸이 흉터투성이가 될 때까지 베이고 찢기고, 날카로운 창날에 찢기면서… 일말의 불평 없이 오로지 나를 위해서 싸웠다.’
오로지 나를 위해 싸웠다.
오로지 나를 위해 헌신하고 희생했다.
그런데도 나는 그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물었다.
손바닥에 손톱이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단단히 움켜쥐었다.
그가 자신을 속이고 두 사촌동생들과 관계를 맺은 것은 사실이나… 한평생 고마워해도 모자랄 연모하는 사내에게 상처를 입힌 자신에게 깊은 혐오와 함께 자괴감이 밀물처럼 밀려들었다.
“주군.”
“…부군사.”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여인이 문을 열면서 다가왔다.
그에 조조가 고개를 슬쩍 돌렸다.
“부관은 어찌하고 있는가?”
“집무실로 돌아가 자중하고 있습니다.”
순욱의 대답에 조조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형틀이 내려졌다.
결국 부관은 고집을 꺾은 듯했다.
제 육신을 망가뜨림으로서 속죄를 하려 했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조조는 그때 느꼈던 두려움을 잊을 수 없었는지 두 어깨를 바들바들 떨었다.
“참으로 아둔한 사내일세.”
아둔하다.
어수룩하기 짝이 없다.
바보 같은 사람.
천치처럼 아둔한 사람.
모멸감이 느껴지는 배신을 당했음에도 여전히 연모하고 있는 제 마음을 알아채지 못하는 사내가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오늘 반드시… 사과하려 했는데.’
심한 말을 해버려서,
깊은 상처가 될 말을 해버려서 미안하다고.
마음속의 응어리들을 담아 고백하려 했다.
하지만 계속 살벌하게 이어진 갈등이 폭발하게 되면서 고백의 기회는 울음소리에 삼켜지고 말았다.
“주군, 제가 표기장군과의 화해를 주선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관심법이라도 익혔는지,
한숨을 푹푹 내쉬면서 울적한 마음을 발산하고 있던 조조의 내심을 꿰뚫어본 듯 순욱이 말했다.
그 말에 잔뜩 찌푸린 우거지상이었던 조조의 새하얀 얼굴이 단번에 활짝 펴졌다. 먹구름 속에서 한 줄기의 광명이라도 본 듯한 변화였다.
하지만 이내 샐쭉한 표정을 짓더니 멋쩍은 듯 헛기침을 늘어뜨렸다.
“크흠! 그게 무슨 말인가, 화해라니…! 귀관이 석고대죄하며 잘못을 사죄한다면 모를까, 이대로 슬쩍 넘어가줄 생각은 추호도 없네!”
사과하고 싶다.
이제 그만 화해하고 싶다.
절박한 상황까지 내몰린 국면이었음에도 조조는 평소처럼 솔직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다.
혼례를 올리고 아들까지 낳았으니 이제 그만 솔직해져도 될 것 같았으나… 자신을 기만하고 제 사촌동생들과 불륜을 벌인 남편을 이대로 쉽게 용서해줄 순 없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표기장군께서 진심을 담아 석고대죄를 한다면 용서해줄 의향이 있다는 말씀이시군요.”
“못 받아줄 것까진 없다는 뜻이었네….”
그 말은 즉,
진심어린 사과를 한다면 받아주겠다는 의미였다.
조조의 의중을 정확히 간파한 순욱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솔직하지 못한 대답이었지만 분명 주군의 목소리에서 미열처럼 달아오른 연정을 느낄 수 있었다. 여전히 남편을 사랑하고 있음을 확인한 순욱은 호의가 담긴 눈웃음을 지었다.
“저에게 맡겨주시겠습니까, 주군?”
순욱이 물었다.
그에 조조가 대답했다.
“일단 시도해보게…! 부관이 이 현모양처를 기만하는 발칙한 중죄를 저지른 것은 사실이지만, 내 특별히 아량을 베풀어 마지막 기회를 줄 것일세.”
철저히 속내를 숨긴 그 말을 번역하자면
‘사랑하는 남편과 빨리 화해하고 싶으니까 당장 어떻게든 방안을 마련해줘, 순욱에몽!’이었다.
* * *
조조와 상서령 순욱과 의논하고 있었을 때, 이성휘는 순유와 함께 움직이고 있었다.
그는 이미 결단을 내린 뒤였다.
우유부단하게 보일 정도로 연애에 소심한 조조와는 달리, 결단을 내린 이성휘는 매우 확고한 모습을 보이는 대조적인 면을 보였다.
“번거롭게 하여 미안하다.”
이성휘가 말했다.
그에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는 장난기 섞인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번거롭기는요! 엄청 재밌는걸요.”
순유의 얼굴에서 강한 생기가 느껴졌다.
전혀 번거롭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에게 역할을 맡겨준 이성휘에게 고마움을 느끼고 있을 정도였다.
집필에 사용될 소재들이 무럭무럭 떠올랐다.
두 처제들과 바람을 핀 남편이 현모양처와 다시 화해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은 많은 영감을 전해주었다.
혹시라도 나중에 까먹을까,
순유는 이성휘의 옆을 졸졸 따라다니면서 부지런히 그의 일거수일투족들을 기록했다.
“문화… 하명했던 것은?”
“심려 마시옵소서. 안배를 마련해두었사옵니다.”
이성휘의 물음에 고혹적인 매력을 갖춘 잿빛 머리카락의 미녀가 고개를 숙이면서 답했다.
과연 가후였다.
우수한 군사답게,
역할을 완수함에 있어 신속한 모습을 보였다.
명석한 두 참모들을 거느린 이성휘는 화해를 위한 준비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이번에는 절대로 실수하시면 안 돼요? 나참, 태형으로 속죄하려 하다니… 제가 주군이었어도 용서해주려는 마음이 싹 달아났을걸요?”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괜찮아요. 가능성이 충분해요.”
“그런가?”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면서 자신만만한 어조로 단언하는 순유의 말에 이성휘가 얼굴을 폈다.
머리가 맛이 갔어도…,
이쪽 분야(?)에 능숙한 전문가가 아닌가.
비록 연애경험은 없었지만 지금까지 집필활동을 통해 쌓아올린 지식들에 의존할 때였다.
달리 의존할 곳이 없었던 이성휘는 남녀 간의 문란한 정사들을 집필하는 순유에게 크게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불안하옵니다.”
괴짜 같은 치녀를 의존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가후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강한 불안감이 뇌리를 자극했다.
도리어 더 큰 환난을 불러일으킬까 두렵기만 하다.
하지만 확고한 결단을 내린 주군의 행보를 감히 막아설 수는 없었기에 그저 믿고 따르기로 했다.
* * *
밤하늘의 어둠은 고요하고 처연한 아름다움을 가지고 있었다.
칠흑의 장막이 깔린 풍경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초조해진 마음을 느끼면서 침묵을 지켰다.
언제쯤 그녀가 올까.
떠나간 사람을 기다리는 임처럼 눈꺼풀을 푹 내린 채 하염없이 짙게 깔린 어둠만을 두 눈에 담아냈다.
“귀, 귀관….”
흑빛의 진주처럼 아름답게 빛나는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다소 긴장한 표정을 지은 채로 모습을 드러냈다.
무언가를 기대하는 듯.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듯.
딱딱하게 굳은 목소리와 두 어깨를 통해 그녀가 매우 긴장한 상태임을 알 수 있었다.
“맹덕 님.”
그녀의 새하얀 얼굴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잠시 머뭇대는 모습을 보이더니,
이내 입을 열었다.
“아만.”
아명(?名)으로 그녀를 불렀다.
고백했던 날,
사랑에 물든 여성으로부터 허락받은 이름.
이성휘는 자신의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 그때 그녀가 부르도록 허락했던 아명을 입에 담았다.
설마 대뜸 아명으로 부를 줄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흑발의 여인이 어깨를 움찔 떨었다. 두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이성휘를 빤히 쳐다보았다.
“죄송…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변명도,
미사여구도 필요하지 않았다.
이성휘는 고개를 직각으로 반듯이 숙이면서 진심어린 사죄를 청했다.
상대방에게 용서를 구하는,
일말의 변명 없이 제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였다.
체면도, 자존심도 모두 내려둔 채 결연한 모습으로 잘못에 대한 사죄와 용서를 빌었다. 오늘 표기장군부에서 보였던 모습과는 사뭇 다른 행동이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습니다. 주군을 속이고 아내를 기만한 제 죄를 무슨 변명으로 덮을 수 있겠습니까.”
“으, 으음….”
몇 번이고 되뇌었을,
몇 번이고 곱씹었을 사과를 건넸다.
일말의 망설임 없이 용서를 구하는 이성휘의 모습을 통해 조조는 진심어린 행동임을 알게 되었다.
“서, 서한을… 보냈더군.”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두 손으로 쥐고 있던 그것을 꺼냈다.
붉은색 봉투에 담긴,
정갈하게 잘 꾸며진 편지였다.
고급스러운 붉은색 비단으로 만든 주머니에 아름다운 금실로 봉인하여 서한을 전달했다. 비서랑 순유를 통해 서한을 건네받은 조조는 떨리는 마음으로 편지를 읽었다.
“아만에게 의중을 직접 전달할 용기가 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부득이하게 서한을 선택했습니다. 죄송합니다.”
“괘, 괜찮네….”
연모하는 사내에게 서한을 전달받은 조조는 사춘기 소녀처럼 들뜬 마음으로 그것을 읽었다.
평범한 아낙이 된 것처럼,
그저 한 사내를 연모할 뿐인 여자가 된 것처럼.
지위와 직분을 모두 잊은 채 한 명의 여자로서 사랑하는 남성이 보낸 서한을 열었다.
중원을 제패한 여장부에게 편지를 통한 의사전달은 실로 소박하기 짝이 없었으나…, 조조는 사랑하는 남성이 보낸 서한을 그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생각했다.
“귀관, 한 가지만 물어도 되겠나?”
잠시 뜸을 들인 뒤,
조조는 들뜬 마음을 안으면서 입을 열었다.
“예.”
무슨 말을 하려는 걸까.
이성휘는 초조한 심정을 억누를 수 없었다.
혹여 용서를 뿌리치진 않을지,
마치 누이에게 혼나는 동생처럼 애가 타는 심정으로 말이 이어지기를 기다렸다.
“귀관은… 귀관은 나를 아직도 연모하는가? 질투와 시기가 일상다반사인 이 성가신 여자를 사랑하고 있느냐는 말일세…!”
초조한 심정인 것은 그녀 또한 마찬가지인 듯했다.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며,
도톰한 입술을 바들바들 떨며 물음을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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