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9화 〉 339. 부부 싸움은 칼로 하늘 베기(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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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휘가 스스로 극형의 심판대에 오르려 했던 것은 자괴감의 발현 때문이다.
죄를 받아 마땅하다.
응당 극형을 받아야 할 것이었다.
자책과 자괴의 굴레를 뒤집어쓴 이성휘는 결코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지른 스스로를 자해에 가까운 수준으로 몰아붙였다.
물론 이런다고 그녀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렇게 극단적인 방법이라도 선택하지 않는다면 영영 속죄할 기회가 없을 것만 같았다.
“맹덕 님….”
이성휘가 놀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뺨에서 느껴지는 쓰라린 아픔.
화끈거리는 아픔이 뺨을 타고 전해졌다.
하지만 그가 놀란 것은 결코 뺨에서 느껴지는 아픔 때문이 아니었다.
“대체 왜… 이따위 짓을 저질렀나!”
사랑하는 여인이,
진심으로 연모하는 여인이 눈물을 뚝뚝 흘렸다.
슬픔과 괴로움이 응어리가 된 채 눈물의 형태로 흘러내렸다. 새하얀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목격한 이성휘는 그대로 굳어버리고 말았다.
그녀가 울고 있다.
드센 자존심을 자랑하는 그녀가,
수많은 장수들이 지켜보는 현장에서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이성휘는 자신의 뇌리가 새하얗게 물든 채 사고가 정지되는 것을 느꼈다.
“말해보게, 귀관! 그대가 극형을 떠안으면 내가 기뻐할 것이라고 생각했는가!”
슬픔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사랑이 아픔이 되어 가슴을 찔렀다.
일그러진 자괴감 때문에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해버린 이성휘에게 진심으로 분노했다.
그리고,
그가 극단적인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도록 절박한 궁지에 내몰아버린 스스로가 미웠다.
흑발의 여인은 눈물이 그렁그렁한 두 눈을 부릅뜨면서 애증의 대상을 노려보았다.
“저는, 저는 그저….”
차마 말을 이을 수 없었다.
슬픔에 빠진 그녀의 모습에,
변명처럼 꺼내려 했던 말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그녀에게 감히 무슨 변명을 할 수 있을까.
결코 그 어떤 변명들로도 그녀의 찢어진 마음을 봉합할 수 없으리라.
죄를 짊어지려 했던 자신의 행동이 도리어 그녀에게 다시 상처를 주고 말았다는 사실에 이성휘는 벙어리처럼 입을 다물고 말았다.
“나를 속인 귀관이 밉지만… 지금도 귀관을 원망하고 있지만…! 그래도 나는… 단 한 번도 귀관이 불행해지기를 바란 적이 없네!”
여전히 사랑하기에.
여전히 그를 연모하기에.
그렇기에 결코 불행을 바라지 않았다.
조조는 여전히 미열처럼 흐르는 연모의 감정을 가슴속에 계속 담아두고 있었다.
천하의 어떤 여자가,
연모하는 사내가 불행해지기를 원하겠는가.
하마터면 결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이 벌어질 뻔했다는 사실에 두 눈을 바들바들 떨었다.
연모하는 사내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진 모습을 다시 보게 되었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가득했다.
“그렇… 습니까.”
조조의 외침에 이성휘가 숙연함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눈꺼풀을 반쯤 감았다.
또다.
또 그녀를 상처 입혔다.
스스로에게 응분의 대가를 내려 죄책감의 일부나마 걷어내려 한 이기적인 행동이 도리어 그녀에게 더 큰 아픔이 되어 가해지고 말았다.
연이은 실책과 우행.
이성휘가 두 눈을 바들바들 떨면서 애처롭게 눈물을 흘리고 있는 여성을 바라보았다.
시선을 마주하기를 잠시,
깊이 깨달은 바가 있었는지 고개를 푹 숙이면서 그녀에게 사죄했다.
“죄송… 합니다.”
“당장 현장을 정리하기나 하게!”
진심으로 반성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옷소매로 눈물을 거칠게 닦고는 고개를 홱 돌렸다.
바보. 멍청이.
실로 둔감한 사내 같으니.
스스로 극형을 떠안음으로서 속죄를 대신하려 했다는 것에 분통이 치밀었다.
자신이 저지른 죄를 아무렇지 않게 떠넘기는 몰염치보다는 그나마 나을지도 모르지만… 자책과 자괴를 이기지 못한 채 극단적인 결단을 내린 것 또한 절대로 저질러선 안 될 최악의 행동이었다.
“정말 성가신 사내로군!”
성가신 성격으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울 여자가 성가신 사내를 힐난하며 말했다.
* * *
표기장군부에서 벌어진 소란으로 인해 조조와 이성휘가 부부싸움을 치렀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졌다.
부부싸움의 원인은 불륜.
불륜을 저지른 쪽은 남편 이성휘였다.
그간 몰래 만났던 내연녀는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 조조의 두 사촌동생들이었다.
평동장군(????) 조홍을 결국 첩실로 둔 것으로 모자라, 정남장군(????) 조인과 그간 밀회를 나눠왔음이 알려졌다.
실로 충격적인 사실이었기에 표기장군 이성휘의 불륜행각은 사회적 파동이 되어 몰아쳤다.
“저는 이번 일에 대해서만큼은 표기장군에게 전적으로 잘못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평동장군은 물론,
정남장군과도 관계를 맺었다.
소식을 들은 상서령(書?) 순욱은 엄격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이번 사태의 원인은 불륜.
그것도 처제와 몰래 관계를 맺었다.
조강지처를 방치한 채 처제들과 불륜을 저지른 죄는 실로 무겁다. 만약 국법으로 처벌하게 된다면 필시 무거운 벌을 피하지 못할 터였다.
“에이, 고모님께선 비약이 너무 심하세요. 두 남녀끼리 서로 마음이 맞아서 만난 거잖아요.”
“아가리 닥쳐요.”
“네.”
유순하고 온화한 성정의 상서령 순욱이 한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의 폭언이다.
순유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였다.
정체를 발각당한 이후부터 순유는 고양이 앞에 놓인 쥐처럼 순종적으로 행동하고 있었다.
“물론 결국 주군에게 사실대로 이실직고한 것에 정상참작의 여지를 둘 수 있겠지만… 깊은 상처를 입으신 주군의 마음을 어떻게 달랠 수 있을지.”
사태의 원인은 전적으로 이성휘에게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잘못을 따지기에 앞서 대안을 논의해야 할 때였다.
일단 화해부터 주선해야 했다.
‘부부 싸움은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 않는가.
서로 화해할 수 있는 분위기만 조성한다면 다시 원만한 관계의 부부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합방으로 떡정을 다시 쌓으면 자연스럽게 그간 쌓인 앙금들이 해소되지 않을까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가당치도 않은 말을 지껄이는 조카의 행동에 고모는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죽간을 들어올렸다.
움찔.
순유가 어깨를 떨었다.
두 팔을 들어올리면서 제 머리를 방어했다.
“그럼 일단 제가 표기장군의 의중부터 슬쩍 떠볼게요. 고모님은 주군의 마음을 떠보세요.”
“네, 그게 좋겠군요.”
영천순씨 가문의 두 여식들이 모인 이유는 불륜으로 시작된 파국을 타개하기 위함이다.
이대로 좌시할 순 없다.
계속 골이 깊어진다면 세력의 분열로 치닫게 될 테니.
세력의 존립을 위태롭게 만들 정도의 영향력을 자랑하는 부부싸움. 순욱과 순유는 머리를 맞댄 채 타개할 수 있는 방안을 논의했다.
“화해를 주선하는 것은 좋지만…, 또 표기장군에게 쓸데없는 말을 하는 일은 없기를 바라요.”
순욱이 두 눈을 날카롭게 뜨면서 7촌 조카에게 경고를 보냈다.
괜히 쓸데없는 짓으로 작금의 사태를 더욱 악화시킬까 걱정이 들었다. 도색소설 집필로 사회적 문제들을 야기했던 조카라면 분명 그러고도 남을 테니까.
“만약 이번에도 문제를 일으킨다면 영천순씨 가문의 호적에서 조카님의 이름을 파버릴 겁니다.”
“서, 설마 제가 그러겠어요…?”
고모의 으름장에 새하얗게 질린 순유는 무언가 찔리는 구석이 있었는지 어깨를 떨었다.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건데,
분명 엉뚱한 꿍꿍이를 품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그것을 간파해낸 순욱은 영천순씨 가문의 호적에서 이름을 파버리겠다는 협박으로 순유를 압박했다.
* * *
어떻게든 속죄하려 했던 자책과 자괴의 말로가 결국 그녀를 다시 상처 입히고 말았다.
분명 염증을 느꼈겠지.
나를 미워하는 마음이 더욱 커졌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과 만류를 뿌리친 채 한없이 이기적인 결단을 내린 나에게 깊은 혐오를 느꼈으리라.
슬픔에 물든 눈물을 뚝뚝 흘리던 여인의 모습을 잠시 회상한 이성휘는 오랜 번민 끝에 깨달음을 얻었는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봉선.”
“뭔데, 이 나쁜 주인놈아.”
앞을 가로막은 자신을 매몰차게 밀쳤던 이성휘에게 여전히 앙금이 남아 있었는지, 금발을 늘어뜨린 여성이 심드렁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나쁜 놈.
감히 날 무정하게 밀쳐?
지금까지 내가 얼마나 주인을 위해 최선을 다했는데.
억울한 마음마저 들었는지 여포는 두 눈을 글썽이면서 이성휘에게 표독스러운 눈길을 보냈다.
“문원과 함께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다.”
“무슨 일인데?”
“처음부터 했어야 될 일. 그것을 위한 준비다.”
이성휘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했다.
그에 여포는 고개를 갸웃 흔들면서 영문을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아, 봉선.”
“왜?”
“미안했다… 밀쳐서.”
무뚝뚝하기 그지없는 사내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서 솔직하게 사과했다.
상냥함이 담긴 목소리를 들은 여포는 크게 놀랐는지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설마 이 망부석 같은 인간이,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할 줄은 몰랐기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
“괘, 괜찮아…! 뭐 어때, 그럴 수도 있지!”
화들짝 놀란 표정과 함께 새빨갛게 물든 얼굴을 드러내면서 대답했다. 고개를 숙인 이성휘의 모습에 손사래를 치면서 겸연쩍은 마음을 내비쳤다.
“그, 근데… 어떻게 할 거야? 분명 엄청나게 화났을 텐데.”
실연을 당한 여인처럼 눈물을 흘리면서 표기장군부를 떠나지 않았던가.
조조를 불편하게 여기는 여포였지만,
연모하는 사내를 등진 채 자리를 떠나던 그녀의 모습에서 동정과 연민을 느꼈다.
같은 사내를 연모하는 여인으로서… 그녀의 마음을 일말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눈 뜨고 봐줄 수 없을 정도로 꼴사나운 놈이다. 연모하는 여인에게 상처를 입힌 것으로도 모자라서… 속죄를 하겠답시고 벌인 짓거리로 더 큰 상처를 입히고 말았다.”
무언가가 결여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스스로의 죄를 참회하듯,
더욱 사태를 악화시킨 본인의 무능을 열거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을 순 없다. 나는 맹덕의 남편이니까, 한 아이의 아빠니까. 이대로 비관에 빠진 채 악화일로로 치닫고 있는 사태를 관망해선 안 되겠지.”
텅 빈 결여가 의욕으로 덧칠되었다.
확고한 결심을 내린 듯,
자리에서 일어선 이성휘는 발걸음을 움직였다.
내가 해야 될 일.
내가 해내야 될 일.
조조를 향한 마음을 결코 포기할 수 없었던 이성휘는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집어던진 채 그녀에게 사과하기로 다짐했다.
“무장으로서도, 부하로서도 아닌… 그저 한 사내로서 맹덕에게 사과할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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