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6화 〉 336. 부부 싸움은 칼로 하늘 베기(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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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릉.
차가운 금속음이 스산하게 울렸다.
바닥을 향하고 있는 날카로운 칼끝은 지금 당장이라도 여성의 가녀린 목을 찌를 듯했다.
목숨을 위협하는 사촌언니의 행동에 조인은 모골이 송연해짐을 느꼈지만 여전히 바닥에 엎드린 채였다.
바라신다면 목숨을 내놓겠다.
당연히 목숨으로 사죄해야 마땅했다.
생명이 경각에 달했음에도 조인은 끝까지 결연함을 지켰다. 두 눈을 슬며시 뜬 채 죽음을 각오했다.
“맹덕!”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쳤다.
그에 조조는 사촌동생을 향해 겨눈 날카로운 칼끝을 거뒀다.
당장이라도 내리치고 싶었으나,
분노와 증오에 완전히 이성이 잠식된 것은 아니었기에 인내심을 발휘하여 살의를 억눌렀다.
하지만 그럼에도 억장을 뒤집는 배신감만큼은 참을 수 없었는지 부릅뜬 눈으로 조인을 내려다보았다.
“고개를 들어라.”
조조가 명령했다.
이윽고 조인이 고개를 들었다.
“나와 부관이 혼례를 치르기 전이라고는 하나… 서로 연모하고 있음을 뻔히 알고 있었을 텐데. 헌데 어째서 부관에게 손을 댔지?”
“…죄송합니다.”
“내가 듣고 싶은 것은 네 사과가 아니라 네가 부관에게 손을 댄 이유다.”
살의에 물든 질문을 받게 된 조인은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로 입을 열었다.
“언니와 자렴이 표기장군과 혼례를 올린다는 소식을 듣고… 격정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참으려 했다.
끝까지 억누르려 했다.
내가 진심으로 연모하게 된 상대는 언니의 남편이며, 또한 사촌의 남편이 될 사람이었기에.
그래서 연모의 감정을 외면한 채 살아가려 했었다.
“평생 감정을 외면한 채로… 표기장군을 향한 마음을 평생 억누른 채로 살아갈 자신이 없었습니다. 생애 처음으로 품게 된 연심을 계속 부정하면서 살아가게 될 것이 너무도 두려웠습니다.”
고백을 전하지 못한 채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것은 끔찍한 저주였다.
이성을 갉아먹고,
감정을 부패시키는 최악의 저주.
날카로운 화살들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던 조인도 그 저주만큼은 버틸 수 없었다.
자신이 애절한 연심을 품고 있음을 끝까지 알지 못한 채 언니와 사촌과 함께 행복한 나날들 속에 살아갈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조인은 이성을 잃을 정도의 격정을 느꼈다.
격정의 소용돌이에 삼켜진 끝에,
절박함에 내몰리게 된 조인은 결국 극단적인 육탄공세로 이성휘와 관계를 맺는 방법을 선택했다.
“죄송합니다. 정말… 정말 죄송합니다, 언니.”
목숨을 바쳐 충성하기로 맹세했던 주제에 한순간의 격정을 참지 못하여 파국을 일으켰다.
주군에게 불충을 범했으며,
언니와 사촌에게 받은 믿음을 배신했다.
속내를 모두 털어놓은 조인은 고개를 몇 번이고 조아리면서 울음기에 찬 목소리로 사과했다. 이윽고 그녀의 새하얀 뺨을 타고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자결을 명하신다면 따르겠습니다.”
죽어 마땅한 죄를 범했다.
불충과 불의의 죄는 응당 목숨을 갚아야 마땅할 것이다.
문지방을 넘었을 때 이미 죽음을 각오한 조인은 기꺼이 목숨을 내놓겠다는 각오를 보였다.
본인이 범한 대죄에서 결코 도망치지 않겠다는 마음이 드러났다.
“…….”
구슬프게 눈물을 흘리면서 사죄를 간원하는 조인의 모습에 조조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처음이다.
냉철한 성품의 사촌이 감정에 치우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그 모습을 통해 조조는 조인이 진심으로 자신의 남편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언니!!”
타악!
흑발의 여인이 집무실 문을 세차게 열어젖혔다.
급히 집무실로 달려온 여성은 날카로운 칼끝을 늘어뜨리고 있는 언니와 무릎을 꿇은 채 눈물을 흘리고 있는 사촌을 보고는 대경실색한 채 현장에 개입했다.
“제, 제발… 제발 자효를 살려주세요!”
지금까지 앙숙처럼 서로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다퉜음에도 진심으로 싫어한 것은 아니었는지,
두 팔을 뻗으면서 조인을 꼭 껴안은 조홍은 자신을 먼저 벌해달라는 듯이 온몸을 다해 막아섰다.
“자효를 벌하시겠다면… 저도 함께 벌해주세요!”
언니께서 이성휘를 연모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유혹한 것은 자신도 마찬가지였다.
만약 조인을 벌하겠다면,
동죄를 범한 자신도 벌을 받아야 마땅하리라.
과감하게 나선 조홍의 모습에 조인은 놀란 듯 눈물을 흘리던 두 눈을 끔뻑였다.
평소의 푼수 같은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칼끝을 늘어뜨린 언니에게 필사적으로 항변했다.
“비켜라, 자렴.”
조조가 경고하듯 말했다.
그럼에도 조홍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모, 못 비켜요…! 비키지 않을 거예요.”
하늘과도 같은 언니의 명령을 거역했다. 생애 처음으로 있는 일이었다.
항의에 이어 명령 불복종.
언니의 명령이라면 죽는 시늉까지 하는 조홍은 생애 다시없을 만용을 부렸다.
죽기를 각오했기 때문일까.
날카로운 칼끝을 늘어뜨린 언니와 대치하고 있었음에도 완고한 모습을 보였다.
앙숙 같은 사촌에게 보호를 받게 된 조인은 입술을 꾹 깨물면서 그녀의 옷소매를 붙잡았다.
“빌어먹을 년들….”
조홍과 조인,
두 사촌들을 노려보던 조조가 이윽고 욕설을 내뱉었다.
불륜으로 뒤통수를 친 것으로도 모자라 주군의 명령마저 불복했다.
불충. 불의. 불경. 불손….
최악이라는 말 밖에는 달리 표현할 단어가 없었다.
애처롭게 간원하는 두 사촌들의 모습을 계속 노려보면서 진노를 삭이던 조조는 이윽고 옆에서 바라보고 있던 하후돈에게 칼자루를 넘겼다.
“흥, 패국조씨 가문이 한 남자 때문에 완전히 콩가루가 됐군.”
콧방귀를 끼며 일갈한 조조는 발걸음을 움직이면서 그대로 두 사촌들을 지나쳤다.
심정에 변화라도 생겼는지,
칼끝을 휘두르기 직전에 살의를 억눌렀다.
찰나의 상념이 살심을 멈춘 것이리라.
결코 돌이킬 수 없는 일선이 넘기 전에 칼끝을 거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두 손으로 칼자루를 건네받았음에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양, 뒤를 정리해라.”
“어, 어어…! 물론 그래야지.”
조조의 명령에 하후돈이 얼떨떨함에 물든 목소리로 대답했다.
대체 무슨 이유 때문인지,
도무지 그녀의 속내를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 덕분에 누구도 피를 흘리지 않고 무사할 수 있었기에 천만다행이었다.
불편한 심기를 보여주듯 쿵쿵 바닥을 내리찍으면서 집무실을 나서는 조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하후돈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었다.
“진짜 누구 한 명 초상나는 줄 알았네…!”
만약 한 남자를 사이에 둔 치정극 때문에 패국조씨 가문의 내부에 유혈이 발생했다면 천하의 수많은 명사들로부터 조롱의 대상이 되었으리라.
위기일발의 순간을 가까스로 비껴가게 된 상황이었기에 서늘해진 간담을 쓸어내렸다.
“지금은 운 좋게 유야무야 끝났지만 다음에는 어떻게 될지 몰라. 그러니까 당분간은 맹덕과 절대로 마주치지 마.”
날카로운 칼날을 다시 검집에 납검한 하후돈이 식은땀을 주륵 흘리면서 가쁜 호흡을 내쉬고 있던 조홍과 조인에게 말했다.
그 뒤,
무모하게 조조를 막아섰던 조홍의 머리를 검집으로 내리쳤다.
“아악! 왜 나한테 그래요?!”
“벌이야. 주군한테 대든 녀석한테 내리는 벌.”
“씨잉, 갑자기 어른인 척하긴…! 우리들 중에서 제일 나이가 많으면 단가?”
요즘 들어 신경 쓰기 시작한 부분을 정확히 꼬집는 말에 하후돈은 재차 검집을 휘둘렀다.
* * *
성난 발걸음으로 집무실을 나선 흑발의 여인은 마침 후원에 도착한 남성과 우연히 마주치게 되었다.
아니,
우연은 아닐 것이다.
남성은 먼발치에서나마 그녀의 모습을 보기 위해서 집무실 인근에 위치한 후원에 온 것이었으니.
“…….”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미워하는 사내의 얼굴을 보았다.
영원히 이별을 고할 것처럼 매정하게 몰아붙인 상대와 만나게 된 것이었음에도…, 조조는 자신의 가슴이 여전히 두근두근 뛰고 있는 것을 느꼈다.
그에게 여전히 미련이 있음을 강하게 부정하고 싶었던 것일까. 도톰한 입술을 꾹 깨문 조조는 짐짓 차갑게 내려앉은 목소리로 마주한 사내에게 입을 열었다.
“자효가 나를 알현했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되어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로군. 걱정 말게, 자효는 무사하니.”
조조의 매몰찬 목소리에 이성휘가 대답했다.
“저는 맹덕 님이 걱정되어 달려온 것입니다.”
걱정이 되어 달려왔다.
이성휘의 그 말에 조조가 두 눈을 바르르 떨었다.
서주를 침공하였을 때,
대학살을 벌이려던 찰나에 등장하여 자신을 막아섰던 이성휘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그때와 상황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조홍이 달려와서 앞을 막아서기 전까지는 진심으로 조인을 벨 작정이었으니까.
“나를 걱정한다라…. 아내를 두고 바람을 핀 당사자가 할 말은 아니지 않나?”
싸늘한 어조로 그의 대답을 비꼬았다.
밉고 야속하기에,
그럼에도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기에 일부러 쌀쌀맞은 면모를 보였다.
불편한 마음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듯 조조는 팔짱을 낀 채 이성휘를 대했다. 남편의 외도를 힐난하는 아내의 모습으로서 가히 완벽에 가까웠다.
“오늘 하루 종일… 계속 고민했습니다.”
“뭘 말인가?”
“주군을 기만하고 현모양처를 배신한 이 파락호에게 어울리는 벌에 대해서 말입니다.”
충성을 맹세한 주군으로부터,
사랑하는 아내로부터 벌이 내려지기만을 계속 기다리는 것은 실로 무책임한 짓이리라.
그렇기에 이성휘는 두 처제들과 불륜을 범한 자신에게 합당한 벌이 무엇일까 고민했다.
스스로 형벌대에 오르기 위해서였다.
“무슨 벌… 말인가?”
완고한 각오가 느껴지는 이성휘의 단언에 불안감을 느꼈는지 조조가 불안감에 찬 목소리로 되물었다.
그에 이성휘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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