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5화 〉 335. 부부 싸움은 칼로 하늘 베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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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의 충돌이 찰나의 말다툼이었다는 것처럼 진류군은 평화롭기만 했다.
제 시간에 조정회의가 열렸고,
허도 건설도 차질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표기장군부(?????)의 속관(??)인 엉뚱한 소녀도 평상시와 다를 바 없이 업무에 매진하면서 짊어진 본분을 계속 이어나갔다.
“바쁨, 바쁨!”
쉴 새 없이 바쁘다고 중얼거리면서 서류업무를 진행하고 있는 흑발의 소녀.
장인이 만든 섬세한 인형처럼 귀여운 용모를 갖춘 소녀는 능숙해진 솜씨를 자랑하면서 산더미처럼 쌓인 서류들을 숙숙 처리해나갔다.
과연 중서령을 스승으로 둔 제자답게 겨우 수개월 만에 어수룩한 모습을 보이던 초짜에서 능숙한 준전문가로 성장했다.
“헤헤헤, 지금 심적으로 많이 힘드실 테니까 이 업무들은 제가 맡아서 처리할게요.”
갈색 머리카락을 기른 여인이 턱을 괸 채 헤실헤실 웃으면서 자리를 지키고 있던 이성휘에게 말했다.
재밌는 장난감을 발견한 듯,
휘어진 초승달처럼 눈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순유의 그러한 모습을 본 가후는 ‘또 저 치녀가 왜 저러나.’라는 반응을 보였다. 항상 누군가의 꼬투리를 잡을 때마다 그녀가 보이는 버릇들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후는 치녀가 꾸미는 괴짜 같은 일에 관여하고 싶지 않았는지 조용히 제 업무에 집중했다.
“설마 표기장군 아픔?! 쓰러지면 안 됨! 그럼 이 본좌의 봉급은 누가 준다는 말임!”
순유의 말에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하게 된 사마의가 볼록 튀어나온 머리카락을 좌우로 빙글빙글 돌리면서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안 된다.
이 일자리를 잃을 순 없다.
후원에서 사나운 말들에게 물어뜯기면서 비명을 내지르던 비참한 과거를 떠올리면서 아연실색했다.
“보, 본좌…! 후원의 마구간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음! 이번에 돌아가면 진짜로 그 짐승들한테 물려죽을 거임!”
흐에에엑…!
사마의가 비명을 내질렀다.
개똥만도 못한 방구석지기인 자신을 중용해줄 사람은 천하에 이성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기에 사마의는 진심으로 안부를 걱정했다.
“그런 거 아니다.”
괜히 오해의 여지를 만든 순유를 힐끗 노려본 이성휘는 불안감에 오들오들 떠는 사마의를 진정시켰다.
겁에 질린 모습이 마치 추위에 떠는 다람쥐를 보는 듯했다.
“게다가 내가 없더라도… 뒤를 이을 후임자가 표기장군부를 잘 이끌어나갈 테니까 안심해라.”
이성휘의 말에 가후가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바라보았다.
마치 예고를 들은 듯,
그의 목소리에서 불안감을 느꼈다.
순유 또한 마찬가지였다.
사관(史?)처럼 계속 이성휘의 뒤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일거수일투족을 쭉 기록하던 그녀에게도 있어서도 매우 뜻밖의 말이었는지 놀라는 모습이 역력했다.
“본좌는 표기장군이 없으면 안 됨.”
항상 어수룩한 경향을 보이던 흑발의 소녀가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심이 담긴 것처럼,
인형처럼 귀여운 소녀가 진지한 반응을 보였다.
그에 이성휘는 잠시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표기장군은 본좌를 처음으로 인정해준 은인임. 그런 은인을 두고 어떻게 혼자서 영달을 꾀하겠음? 본좌는 표기장군이 어디를 가든 무조건 따라갈 거임.”
“내가 마구간으로 돌아가겠다면?”
“그, 그때는 조금 생각해보겠음!”
이성휘가 짓궂은 농담을 던지자 사마의는 금세 허둥지둥하며 당혹감을 발산했다.
다시 그 사나운 맹수들과 재회하는 것은 죽기보다도 싫었는지 배은망덕도 불사하겠다는 태도였다.
아무튼 사마의의 귀여운 반응 덕분에 계속 침체되었던 마음이 다소 풀리게 되었다.
이성휘는 가후와 순유, 그리고 사마의의 면면을 바라보면서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맙다. 하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아무런 말도 없이 사라지진 않을 테니 안심해라. 나는 무책임하게 책임을 회피하는 것을 이 세상에서 가장 싫어하니까.”
그 말에 사마의가 고개를 끄덕였다.
또한,
가후와 순유도 고개를 끄덕이면서 이성휘에게 신뢰를 보냈다.
제 기량과 자질을 마음껏 드러낼 수 있도록 지원해준 인물이 바로 이성휘였다. 만약 그가 자신들을 중용해주지 않았다면 먼 길을 돌아야 했겠지.
그렇기에 휘하 참모들은 주군으로 모시고 있는 이성휘를 진심으로 경애하고 있었다.
“뭐… 만약 좌천되면 별 수 없겠다만.”
무한한 신뢰와 충성을 보여주는 참모들을 향해 이성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만약 좌천을 당한다면,
먼 변방의 어느 한직으로 발령이 나게 된다면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다.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라는 진궁의 말을 떠올린 이성휘는 재차 조조를 만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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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언제 파국을 겪었냐는 듯 아침해가 뜨자마자 평상시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였다.
새벽에 업무들을 정돈한 뒤,
아들 조앙이 유모의 젖을 빨면서 허기를 채우는 것을 본 이후에 다시 집무실로 돌아와 업무를 이어나갔다.
밤하늘처럼 아름다운 흑발.
아름다운 홍옥처럼 빛나는 눈동자.
천연 석영처럼 새하얀 피부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정돈된 옷매무새.
과연 중원 전역을 제패한 여장부는 오늘도 완전무결한 모습을 심복들에게 보여주었다.
“맹덕, 정말 괜찮아?”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불안에 찬 눈길로 사촌에게 물었다.
사촌은 평소처럼 정연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으나, 하후돈의 눈에는 매우 위태롭게 보인 모양이었다.
“뭐가 말이냐.”
두 손으로 죽간을 펼친 조조가 답했다.
업무에 매진하느라 여념이 없음을 보여주려는 것인지 눈길을 계속 죽간에 두고 있었다.
그렇기에 불안했다.
혹시라도 무리하는 것은 아닐까,
언제 확산할지 알 수 없는 불길을 보는 것처럼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그녀와 함께 유년을 보낸 하후돈이었기에 더욱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노심초사하는 모습이 마치 연상의 언니를 보는 듯했다.
“네 남편 말이야! 빌어먹을 매부 녀석! 감히 맹덕을 두고 바람을 펴? 이 천하의 몹쓸 놈!”
아침마다 모여서 수다를 떠는 중년 여성처럼 이성휘를 씹어대는 패국의 여걸.
욕심 많은 호색한.
패국조씨 가문의 난봉꾼.
하후돈은 눈치를 슬쩍 살피면서 동생이나 마찬가지인 조조에게 큰 상처를 준 이성휘에게 적개심을 드러냈다.
거병 이전부터 절친한 사이였던 이성휘에게 여전히 호의를 느끼고 있었지만, 지금은 조조의 심기를 달래주는 것이 목적이었기에 본의를 숨긴 채 그를 힐난했다.
“원양, 나는 개의치 않는다. 그러니 애써 나를 위로할 필요 없다.”
“위로할 필요가 없다니…!”
“내게 여자로서의 매력이 전무했던 탓에 부관이 자렴과 자효에게 눈길을 준 것이다. 그러니… 나한테도 잘못이 있다.”
총명과 냉철함을 자랑하던 조조의 두 눈이 한순간이나마 바르르 흔들렸다.
애처로운 감정이 담긴,
깊은 슬픔이 느껴지는 흔들림이었다.
그 동요는 조조가 여전히 심적으로 크게 혼란을 겪고 있음을 반증해주고 있었다. 항상 감정들이 결여된 모습을 보이는 그녀였기에 작은 반응으로 속내를 유추해야 했다.
“주공.”
꾹꾹 눌러담듯 끝까지 속내를 숨기려는 사촌의 모습에 하후돈이 심려를 드러냈을 때,
문 너머에서 시녀의 목소리가 들렸다.
“정남장군께서 오셨습니다.”
그 말에 조조가 두 눈을 부릅떴다.
충격에 가면이 흔들리듯,
태연함을 유지하고 있던 얼굴에 변화가 생겼다.
하지만 이내 격정을 가라앉히면서 사촌에게 집무실 출입을 허락했다.
“죽여주십시오…!”
집무실로 들어온 흑발의 여성은 바닥에 납작 엎드림과 동시에 큰 소리가 날 정도로 이마를 찧었다.
쿠웅!
얼마나 세게 찧었는지,
바닥이 한순간 울렸을 정도였다.
이성휘가 어젯밤에 언니에게 사실을 고백했음을 알고 있는 조인은 아침해가 밝자마자 곧바로 달려와 죽어 마땅한 잘못을 사죄했다.
결연하며 완고하다.
어떤 형벌이든 달게 받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
이마가 찢어지진 않았을까 걱정이 들 정도로 이마를 세차게 박은 사촌의 행동에도 조조는 싸늘하게 내려앉은 시선을 보낼 뿐이다.
파국을 일으킨 원흉.
제 형부에게 흑심을 품은 년.
조조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혹한의 눈보라처럼 매서운 분위기가 그를 대신하여 말해주고 있었다.
“언니, 그 어떤 벌이든 달게 받겠습니다…! 부디 이 불충한 저를… 결코 용서하지 말아주세요.”
조인은 계속 바닥에 엎드린 채 잘못을 빌었다.
모든 책임은 나한테 있다.
그러니 내가 모두 짊어지는 것이 마땅했다.
언니와 형부가 이대로 갈라서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던 조인은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다시 한 번 바닥에 이마를 찧었다.
“용서하지 말아 달라…. 우습군.”
간청하듯 바닥에 엎드린 사촌을 바라보고 있던 조조가 이윽고 몸을 일으켰다.
살벌한 적의를 품고 있는 조조의 모습에 놀란 하후돈은 혹여 무슨 일이라도 벌어질까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내가 널 용서할 리 없지 않나.”
눈에 보이지 않는 손아귀가 느껴졌다.
목숨을 단번에 움켜잡는,
살의로 만들어진 죽음의 손아귀였다.
중원의 패자가 발산하는 기백과 위압감에 압도당한 조인은 공포에 몸을 떨어야 했다.
“매, 맹덕…!”
당장이라도 검을 뽑아들 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소스라치게 놀랄 수밖에 없었다.
맹덕이 제 손으로 사촌을 죽일 것이라고는 감히 생각지 않는다.
하지만,
저 지독한 살의가 너무도 두려웠다.
결국 친족상잔이 벌어질지도 모른다.
하후돈이 두려움에 떠는 것은 당연했다.
“네년이 감히 발정난 암캐마냥 내 남편을 꼬셨기에 이 사달이 난 것이다.”
연모하는 남편과 신뢰했던 사촌으로부터 배신당했다.
차앙!
검집을 쥔 그녀가 칼자루를 뽑아들었다.
차가운 금속음이 귓가에 울렸다.
재차 한 걸음 다가선 조조는 바닥에 엎드린 조인의 바로 옆에 날카로운 칼날을 늘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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