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34화 (334/616)

〈 334화 〉 334. 부부싸움은 칼로 하늘 베기(1)

* * *

=========================

참으려 했다.

이해하려고 노력했다.

사촌동생과 관계를 가졌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에도 그를 어떻게든 놓치지 않으려고 꾹 참았다.

­진심으로 그를 사랑하니까.

하지만 그 결과가 이것이다.

진심으로 연모하는 사내로부터 배신감을 느끼게 된 흑발의 여인은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그것도 자렴에 이어서 자효마저 건드린 건가? 과연 대단하군.”

한겨울의 눈보라가 이러할까.

일말의 온기조차 없는,

한 줌의 온화함도 담기지 않은 차디찬 목소리가 매몰차게 가해졌다.

매도와 힐난이 계속 이어질수록 이성휘는 더욱 무거운 죄책감을 느껴야만 했다.

“결국 자효를 첩실로 맞이하는 것을 허락했다고 하여… 나와 패국조씨 가문이 우습게 보였는가? 난봉꾼처럼 여식들을 모두 취하더라도 또 이해해 줄 것이라고 안일하게 생각했나?”

조조의 연이은 물음에 이성휘는 그 어떤 항변도 할 수 없었다.

모두 사실이었으니까.

어쩌면…,

은연중에 그렇게 생각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의 마음을 속이고 상처까지 입힌 배신자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과묵하던 입이 이제는 아예 닫혀버렸는가? 뭐라고 말 좀 해보게!”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험악한 표정을 지은 흑발의 여인이 손을 뻗었다.

이성휘의 멱살을 움켜잡으며,

자신의 부릅뜬 눈을 바라보게 했다.

지옥의 유황불처럼 지독하게 달아오른 그녀의 눈동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모멸감. 배신감. 질투. 증오.

수많은 악감정들이 담긴 살의가 붉은 눈동자에 담겨져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이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무슨 말을 한들,

무슨 이유를 지껄이던 간에.

구차하고 꼴사나운 변명에 지나지 않으리라.

침묵으로 인해 더욱 큰 벌을 받게 될지라도 그녀의 앞에서 변명을 지껄이는 기만을 벌이고 싶지 않았다.

“무슨 처분을 받겠습니다. 아내를 배신한 죄를, 주군을 속인 죄를… 부디 내려주십시오.”

시선을 마주한 그녀에게 말했다.

처분을 받겠노라고,

그 어떤 벌이든 받겠노라고 순응했다.

이성휘의 그 말에 흔들림 없이 맹렬하게 활활 타오르던 그녀의 눈동자가 한순간 흔들렸다.

“죄를 물어 귀관에게 자결을 명령한다면… 그럼 그대로 따를 텐가?”

조조가 두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진심으로 자신의 죄를 인정한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각오가 있냐는 물음이었다.

야속함과 배신감이 이윽고 이성을 완전히 집어삼켜버린 것일까. 절대로 해선 안 될 말을 입에 담아버리고 말았다.

“…읏.”

말은 뱉은 뒤에야 그것을 깨닫게 된 조조는 불안에 찬 반응을 보이면서 침음을 흘렸다.

분노에 삼켜졌다고는 하나,

연모하는 사내를 향해 ‘자결’을 입에 담았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는 듯했다.

그러나 사과하진 않았다.

애써 동요하는 기색을 숨겼다.

분명 잘못과 책임은 명백히 그에게 있었으니까.

“이 배신자 같으니.”

두 눈을 매섭게 뜨며 말했다.

배신자.

나를 속인 기만자.

내 마음을 희롱하고 짓밟은 난봉꾼.

그 어떤 말로도 지금의 감정들을 표현할 수 없으리라.

절대적으로 신뢰하며, 진심으로 연모하는 상대로부터 믿을 수 없는 배신을 당하게 된 조조는 도저히 제정신을 유지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그렇기에 방금과 같은 폭언을 한 것이리라.

“매일 나에게 사랑을 속삭였던 주제에… 귀관의 그 사랑한다는 말은 아무 여자에게나 속삭이는 거짓부렁에 불과했던 겐가.”

차곡차곡 쌓아온 사랑이,

지금까지의 말들이 모두 거짓처럼 느껴졌다.

나를 속이기 위한 기만책에 불과했던 것처럼 여겨지기 시작했다.

강한 충격에 커다란 유리가 작은 파편들이 된 채로 흩뿌려지듯… 연모해온 사내의 배신으로 인해 여인의 마음은 갈기갈기 찢겨지고 말았다.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게.”

배신감은 증오로,

증오는 날카로운 가시가 되어 폐부를 찌른다.

더 이상 이 배신자에게 할 말은 없다.

그저… 내 눈앞에서 사라지기를 바랄 뿐이다.

“안 들리는가! 당장 내 눈앞에서 사라지란 말일세!”

사내의 두 눈을 본 조조는 더러운 기만을 당했음에도 여전히 마음이 흔들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그를 미워해야 마땅한데도,

그를 원망해야 마땅했음에도.

애처롭게 무너진 마음은 여전히 그를 사랑하고 있었다.

결국 그를 용서하게 될까봐…, 그것이 두려웠던 조조는 높고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애증(??)의 마음을 토해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뒤로 물러나 처분을 기다리겠습니다.”

흑발의 여인으로부터 매몰찬 외침을 듣게 된 이성휘가 결국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지금의 자신은,

슬픔과 고통을 가중시킬 뿐인 원흉에 불과했다.

무거운 죄책감이 엄습했다.

그러나 내색하지 않았다.

자신은 죄책감을 느낄 자격도 없는 파렴치한 배신자였으니까.

무거운 죄를…, 그녀의 말대로 죄를 인정하고 자결을 택해도 모자랄 대죄를 지은 악한에 불과했다.

“…흐윽!”

등을 돌렸을 때,

그녀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슬픔을 꾹 억누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참을 수 없었는지 울음소리가 울컥 쏟아졌다.

훌쩍, 울음기를 삼키는 소리와 함께 뚝뚝 흘러내리는 눈물을 옷소매로 거칠게 닦아내는 소리가 들렸다.

“…….”

등을 돌린 채 물러서던 이성휘의 발걸음이 우뚝 멈췄다.

그녀의 눈물이,

그녀의 울음소리가 두 발을 붙잡았다.

손이 벌벌 떨렸다.

어깨가 바들바들 흔들렸다.

날카로운 창검과 화살들이 빗발치는 전장에서도 결코 물러섬이 적 없었던 이성휘가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드륵.

이성휘가 문을 열고 나섰다.

울음소리가 이어졌다.

구슬픈 흐느낌이 더욱 깊어졌다.

흐끅흐끅, 울음을 토해내면서 오열하는 통곡이 차갑게 내려앉은 밤공기를 타고 전해졌다.

“…….”

무거운 죄책감이,

자기혐오가 응어리진 자괴감이 마음을 옥죄어왔다.

나 때문이다.

내 행동들이,

결국 그녀를 상처 입히고 말았다.

언젠가 파국을 맞이하게 될 것임을 알면서도 안일하게 문제를 방치해온 자신에게 모멸감을 느꼈다.

* * *

어젯밤의 일은 결코 외부로 발설되지 않았다.

이성휘는 조조의 남편이기 이전에,

한나라의 표기장군이며 조조군의 2인자였기 때문이다.

일반 부부였다면 남편의 불륜으로 인한 부부싸움이라고만 여겨졌을 것이다. 그러나 이성휘와 조조는 한나라의 실권을 장악하고 있는 두 거두들이었기에 결코 일반적인 부부싸움이 될 수 없었다.

“대체 어쩌자고 그런 일을 벌였어?”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을 금발로 물들인 여인이 깊은 한숨을 내쉬면서 물었다.

정좌한 채 침묵하고 있는 그를 보며,

진궁은 친우로서 그의 고민을 들어주기 위해 발걸음을 했다.

아마 지금쯤 명부는 상서령 순욱과 건무장군 하후돈의 보필을 받고 있을 터. 진궁은 별거하듯 잠시 떨어지게 된 이성휘와 조조를 떠올리면서 쓴웃음을 흘렸다.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제게 있습니다.”

침묵을 이어나가던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그에 진궁이 어깨를 으쓱였다.

“조강지처를 둔 채 아랫도리를 제멋대로 휘둘렀으니까 당연하지. 상담을 들어주러 왔지만…, 사실 이번 일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히 명부 편이거든.”

불륜을 범한 쪽은 남편.

부부싸움이 시작된 원인이자,

현재 명확하게 밝혀진 파탄의 이유였다.

‘그럼 4주 뒤에 뵙겠습니다.’라고 선고해야 될 수도 있는 처지에 놓이게 된 진궁은 부부싸움의 결과에 한숨을 내쉬어야 했다.

“정남장군 쪽이 먼저 유혹하고 반강제적으로 동침을 했다는 것은 본인에게 들었어. 뭐, 내 눈으로 보기에도 엄청나게 미인인 정남장군이 유혹을 했다면 당연히 뿌리치기 어려웠겠지. 그런데 말이야… 하아, 근데 참모장인 내가 왜 파국 직전에 놓인 부부의 상담을 하고 있는 거야?”

이별 직전에 내몰린 부부.

형부를 야릇하게 유혹한 요망한 처제들.

졸지에 중재 역할을 맡게 된 진궁은 본인이 왜 남편과 아내를 번갈아 만나면서 상담을 해주고 있는지, 그것에 대해 의문을 느낀 듯 고개를 번쩍 들었다.

“맹덕 님에게 별도의… 명령이 내려온 것은 없습니까?”

본인이 맡게 된 역할에 대해 의문을 품고 있던 진궁에게 이성휘가 물었다.

진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없어, 이런 일에 감정적인 결정을 내리신 분은 아니시니까. 물론 지금까지 몇 번 있었기는 하지만.”

어젯밤 파국을 한 번 맞이했음에도 조조는 이성휘에게 그 어떤 처분도 내리지 않았다.

이것은 집안의 일이다.

사사로운 문제를 바깥으로 꺼낼 순 없다.

당장이라도 극형을 선고할 것처럼 흉흉한 모습으로 애증을 토해냈지만, 이내 판단력을 회복한 조조는 어젯밤에 있었던 일이 누설되지 않도록 철저히 은폐하는 모습을 보였다.

“군사.”

“왜, 불륜남?”

이성휘의 부름에 진궁이 입을 열었다.

“맹덕 님께서… 저 때문에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어, 들었어.”

이성휘가 곧 말을 이어나갔다.

“저는 방해가 될 뿐인 놈입니다.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겠노라고 맹세한 주제에, 오히려 계속 분란과 분열만 조장하고 있지 않습니까.”

“무슨 말을 그렇게까지 해? 네가 명부의 곁에 없었다면 이렇게 단기간에 세력을 쌓을 수 있었을 것 같아?!”

“차후에도 혼란을 불러들일 뿐인 저는…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도 모릅니다. 결국 맹덕 님께서는 원소군을 패망시키고 천하의 패권을 거머쥐실 분이니. 오히려 제 존재는 향후 방해만 될 겁니다.”

자신을 비난하고,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세웠다.

지금까지 계속 축적해온 전력이라면 분명 원소군을 이길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단언한 이성휘는 자신이 자리에서 물러나더라도 조조군은 끝내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해낼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호오.”

피폐해진 목소리로 자괴감에 찬 예측을 내뱉는 이성휘의 모습에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감탄음을 내뱉었다.

흥미 가득한 표정을 짓더니,

붓을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이성휘의 모든 발언들을 서적에 기록했다.

그 행동이 마치 왕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기록하는 사관(史?)을 연상시켰다.

“저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 말씀 나누세요.”

밤하늘에 뜬 샛별처럼 두 눈을 초롱초롱하게 빛내면서 발언과 행동들을 기록하는 순유의 모습에 이성휘와 진궁은 할 말을 잃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

“흥흥흥… 바람둥이 주제에 엄청 멋진 말들만 하신다니까? 결국 두 처제들하고 바람났으면서.”

순유가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