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3화 〉 333. 호색(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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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는 사촌동생에게 어울리는 배필을 찾아주기 위해 사대주 자제들의 이름이 적힌 명단을 올리도록 했다.
젊고 잘생겨야 하며,
또한 성품과 능력이 출중해야 한다.
시어머니라도 된 것처럼 매우 꼼꼼하게 사대부 자제들을 조사하면서 조인의 배필에 어울릴 사내를 물색했다.
“홍농양씨 가문에 분명 명사들을 크게 놀라게 만든 천재가 있다고 들었는데… 쳇, 여식이었군. 혹시 사내는 없는 건가?”
책상 위에는 죽간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사대부 자제들의 명단으로,
한나라에서 내로라하는 영향력을 자랑하는 명문가의 자제들을 선발한 것이었다.
신분과 배경을 중시하는 것은 아니지만 상대가 고귀한 혈통과 화려한 후광을 가진 사내이면 좋지 않겠는가.
사촌동생에게 우수한 배필을 소개해주고 싶은 배려가 담긴 행동이었다.
“우으, 우브으!”
부드럽고 푹신한 포단 위에 누운 갓난아기가 옹알대는 소리와 함께 손수건을 쭙쭙 빨았다.
축축하게 물든 손수건,
그럼에도 손수건과 힘겨루기를 하듯 사정없이 빨아대고 있었다.
커다란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꺄륵 웃음을 터트리는 아들의 모습에 조조는 행복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자효에게도… 이 행복을 알려주고 싶다.’
사촌동생 조인은 분명 천하가 인정하는 최고의 명장이다.
이기지 못한 전투가 없었으며,
불리한 상황 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런 사촌동생이 자랑스러우면서도 동시에 안쓰러웠다.
여성으로서의 행복을 누리지 못한 채, 거친 전장에서 창검을 휘두르며 피와 흙먼지를 뒤집어쓸 뿐인 사촌동생이 너무도 안타깝게만 느껴졌다.
그래서 조조는 조인의 배필을 찾는 작업에 계속 박차를 가했다.
“주공, 춘부 어르신께서 오셨습니다.”
죽간들을 열심히 살피면서 사대부 자제들을 물색하던 조조는 문 너머에서 들린 시녀의 목소리에 고개를 돌리게 되었다.
스윽.
이윽고 문이 열렸다.
“아만아.”
날카로운 눈매를 자랑하는 중년 남성이 집무실 안으로 들어왔다.
검은색 장포를 어깨에 걸친 남성은 과연 조조의 부친답게 무거운 위압감을 자랑했다. 오래 전에 조정에서 물러났음에도 여전히 기개를 뽐내고 있었다.
“아버지.”
몸을 일으킨 조조는 방금까지 앉아있던 자리를 아버지 조숭에게 양보했다.
상석에 앉게 된 조숭은 금실로 장식된 포단에 누운 채 옹알옹알 소리를 내는 손자와 눈을 마주쳤다.
이런 귀여운 아이가 있나!
날카롭고 근엄하던 눈매가 귀여운 손자를 보게 되자마자 금세 푼수처럼 축 늘어졌다.
“옳지, 할아버지란다!”
패국조씨 가문의 후계자.
천하통일의 대업을 계승할 2대째.
억만금을 준다고 할지라도 결코 바꾸지 않으리라.
금지옥엽처럼 키운 딸이 낳은 손자였다. 당연히 예뻐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첫 손자였기에 더욱 기뻤다.
“무슨 용무이십니까.”
“너를 볼 겸… 손자를 보러 왔다.”
강한 흥미가 느껴지는 갓난아기의 새카만 눈동자를 바라보고 있던 조숭은 이윽고 고개를 돌리면서 딸에게 물었다.
“자효의 배필을 구한다고 들었다.”
“예, 그렇습니다.”
“잘했다. 그 아이도 너처럼 견실한 배필을 만나 가정을 꾸려야 하지 않겠느냐.”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조숭 또한 딸과 마찬가지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외동딸을 끔찍이 아꼈듯이,
조카딸들 또한 애지중지하며 보살폈기에 조인에게 마음을 쓰고 있었다.
“그래서 알아보았느냐?”
“계속 수배하고 있는 중입니다. 백방으로 수소문하여 조건들에 충족하는 사대부 자제를 찾고 있습니다. 곧 후보들을 추려낼 수 있을 겁니다.”
“흐음.”
딸의 대답에 조숭이 침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카딸의 배필.
만약 구하게 된다면 한 번 얼굴을 보고 싶었다.
물론 딸의 안목을 믿고 있으나… 변변찮은 놈 따위에게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을 넘길 순 없는 일이었기에 자신 또한 손을 거들기로 했다.
“우우!”
“옳지, 이 할아버지에게 안겨보겠느냐.”
조숭이 포단 위에 누운 갓난아기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부모를 쏙 빼닮았는지,
훗날 장성하게 된다면 미남이 될 게 분명하다.
출중한 외모는 특히 패국조씨 가문의 혈육들이 가진 공통된 특징이다. 결코 추레한 외모가 나올 리 없었다.
“애를 낳느라 수고 많았다. 순산하여 정말 다행스럽구나.”
“예.”
아버지의 치하에 조조는 새하얀 뺨을 붉히면서 고개를 푹 끄덕였다.
“자효에게선 아직 소식이 없다더냐?”
“…그런 것 같습니다.”
뒤이은 아버지의 물음에 조조는 미간을 움찔 찌푸리면서 대답했다.
금방 임신에 성공한 자신과는 달리,
이성휘와 몇 차례 동침을 했던 조홍은 여전히 묵묵부답이었다.
혹시 궁합이 나쁜 걸까.
아니,
궁합 때문이라고 볼 순 없었다.
첫 동침을 한 뒤에 머지않아 임신을 한 자신이 너무 빨랐던 것일 테니까.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최상의 궁합이었을 뿐이다.
그렇게 생각을 하자 조조는 기분이 썩 괜찮아진 것을 느꼈다.
“너무 사위를 미워하진 말거라. 나 또한 불편한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은 사실이나… 결국 이리 된 마당에 어찌 하겠느냐.”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의 충고에 고개를 숙인 조조는 품에 안긴 아들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제 와서 노여워한들…,
그게 더 이상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사랑하는 남편에게 투기가 심한 여인으로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사랑하는 아들에게 질투가 심한 어머니라고 여겨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결국 충고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주공.”
아들을 꼭 껴안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고 있던 조조에게 시녀가 다가왔다.
“표기장군께서 오셨습니다.”
“귀관이…?”
아버지와 담소를 나누던 조조는 이성휘가 찾아왔다는 말에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올 사람이 아닌데….
사랑하는 아내와 아들이 너무 보고 싶어서 헐레벌떡 달려온 것이라면 납득하겠지만.
“잠시 자리를 비우겠습니다.”
“그래, 앙이는 내가 보고 있으마.”
아버지에게 허락을 받은 흑발의 여인은 이윽고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시녀를 따라나섰다.
* * *
이성휘는 조조가 관저로 사용하는 전각들 중 하나인 별채에 들어온 뒤였다.
이윽고 조조가 별채 안으로 들어왔다.
“귀관, 많이 기다렸는가?”
“아닙니다.”
초저녁을 맞이한 유시(??).
대체 무슨 일로 온 것일까.
상석에 앉은 조조는 잠자코 남편의 말을 기다렸다.
사랑하는 아내의 얼굴이 너무 보고 싶어서 달려왔다고 말해줬으면 좋겠다, 조조가 실실 웃으면서 속으로 중얼거렸다.
“자효 님의 혼담과 관련하여… 말씀드릴 것이 있습니다.”
“귀관이?”
어느 때보다도 한껏 긴장된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성휘가 꺼낸 말에 조조가 두 눈을 끔뻑였다.
영문을 알 수 없었다.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일까.
남편은 결코 허언을 담는 성격이 아니기에 분명 무슨 일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맹덕 님.”
잠시 침묵을 머금고 있던 이성휘가 이윽고 입을 열었다.
뒤이어 말을 이어나갔다.
“자효 님의 혼담을 멈춰주십시오.”
“그게 무슨 말인가? 혼담을 멈춰달라니.”
“저와 자효 님은… 서로를 연모하고 있습니다.”
무겁게 내려앉은 남편의 모습을 봤을 때부터 느꼈던 불안감이 폭발했다.
응축된 힘이 일거에 폭발하듯,
불안감과 두려움이 분노가 되어 소용돌이쳤다.
경악에 찬 표정을 지은 흑발의 여인은 노여움을 품은 채 눈앞의 사내를 노려보았다.
“설명을… 제대로 된 설명을 일목요연하게 해줄 수 있겠는가.”
조조의 말은 곧,
그에 대한 변명이나 지껄여보라는 뜻이었다.
물론 조조는 눈앞의 사내가 구차하게 변명이나 지껄이는 비겁한 위인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녀가 이성휘에게 변명의 기회를 준 것은 혹시라도 자신이 오해하거나 실수하여 잘못 알아들었는지를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맹덕 님과 혼인하기 전부터 자효 님과 관계를 가져왔습니다.”
“…….”
"자효 님을 첩실로 들이고 싶습니다."
이성휘의 고백에 조조는 침묵했다.
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랐기에,
입을 열면 당장이라도 분노와 증오가 쏟아질 것 같았기 때문이다.
손자를 소중하게 꼭 끌어안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행복을 단숨에 나락으로 처박아버린 사내를 핏발 선 눈으로 노려보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나한테는 오직 귀관뿐인데… 귀관에게 있어 이 조맹덕은 곁에 두기 편리한 계집에 불과한 모양이군.”
사실관계?
그딴 것은 대질할 필요도 없었다.
자렴과 한적한 장소에서 관계를 맺었던 것처럼 분명 자효와도 몰래 관계를 맺었겠지. 자신을 눈 뜬 봉사처럼 취급하면서.
“아무것도 모른 채 귀관에게 일편단심을 바쳤던 내가 우습게 보였겠군. 제 사촌들과 통정을 하고 있는 줄도 모르고 귀관에게 사랑을 속삭이지 않았나. 분명 귀관은 나를 머리에 꽃밭이 든 년이라 생각했겠지.”
“결코 아닙니다. 제가 어떻게 감히….”
적의에 물든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본 이성휘가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
그러나,
발언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입 닥쳐라.”
서주 정벌군에게 대학살을 명령했을 때를 떠올리게 할 정도로 흉흉한 기세를 발산했다.
만약 말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면,
온몸을 가차없이 난도질했을 정도로 그녀의 목소리는 살의에 가라앉아 있었다.
“귀관을 이해하려 했다. 귀관을 배려하려고 한없이 노력했다. 그래서 결국 자렴을 첩실로 들이게 해주었지. 그런데 귀관은 이에 만족하지 않고 자효마저 끌어들이려 하는군.”
믿음은 배신으로,
사랑은 증오로 이어진다.
그를 진심으로 믿고 사랑했기에….
그것이 산산조각이 난 채 부서졌을 때의 증오와 배신감은 실로 끔찍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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