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0화 〉 330. 생명과 죽음(2)
* * *
========================
백발을 초라하게 풀어헤친 노인이 병사들의 우악스러운 손길에 끌려나왔다.
서주자사(???史) 도겸.
위풍당당한 위엄과 기개를 떨친 무장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초췌했다.
총기를 잃은 두 눈.
바들바들 떨리는 어깨와 꼽추처럼 굽은 허리.
망연자실한 표정과 창백하게 물든 안색은 마치 산송장을 연상시키는 듯하다.
“아버님!”
“놔라! 놓으란 말이다!”
도겸이 끌려나온 뒤,
뒤이어 도겸의 두 아들이 끌려나오게 되었다.
천둥소리에 놀란 망아지처럼 벌벌 떨고 있던 세 부자들은 조조군 병력이 삼엄하게 포위하고 있는 후원(??)에 가차없이 내던져졌다.
“컥!”
“아악!”
장성한 두 아들은 몰라도,
도겸은 당장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처럼 매우 위독한 상태였다.
그럼에도 조조군 병사들은 불구대천의 원수를 상대하듯 초췌한 노인을 그대로 바닥에 내던졌다.
흙바닥을 나뒹구는 굴욕을 맞이하게 된 도겸은 이윽고 두 아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몸을 힘겹게 일으켰다.
“사, 살려주시오! 제발 살려주시오!”
아버지 도겸처럼 병사들에게 내던져진 채 흙먼지를 뒤집어쓰게 된 장남 도상이 바닥에 바짝 엎드렸다.
사시나무 떨듯 온몸을 떨며,
좌우에 수많은 장수들을 거느리고 있던 두 여걸들에게 자비를 구걸했다.
최대한 애처롭게 빌면 목숨을 건질 수 있으리라 생각했던 것일까. 눈물을 주륵주륵 흘리면서 자비를 구걸하는 모습이 실로 구차하기 짝이 없었다.
“태위(太?) 어르신을 살해하려 한 것은 간악한 장개의 단독행동이었습니다! 우리 아버님과는 전혀 무관한 일입니다!”
반면,
차남 도응은 팽성도위 장개의 단독소행이었음을 내세우면서 아버지의 무죄를 주장했다.
조조군이 오로지 장개와 그 일당들이 벌인 만행 때문에 서주를 침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죄인들은 입을 다물라!”
조인을 옆에서 호위하던 우금이 크게 일갈하며 도겸의 두 아들들을 위협했다.
우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에 도상과 도응은 소스라치게 놀란 반응을 보이면서 바짝 엎드렸다.
날카로운 병장기를 든 병사들이 사방을 포위한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자신들의 목을 벨 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내뿜고 있었다.
“도겸.”
흑발의 여인이 입을 열었다.
새하얀 뺨에 깊은 자상을 입은,
얼음장처럼 차가운 무표정을 얼굴이 걸친 여인이었다.
도겸을 호명하면서 입을 연 조인은 이윽고 지금까지 그가 범했던 죄들을 낱낱이 열거하기 시작했다.
“도겸, 네놈은 반란 진압에 여러 전공들을 세워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서주자사의 관인을 하사받는 국은을 누렸음에도 이를 등한시한 채 궐선 같은 무뢰배들과 어울리며 천하를 훔치려는 반란을 모의했다.”
서주를 정벌하기 위한 군세를 일으킨 것은 결코 사사로운 원한 때문이 아니다.
그는 불손한 무리들과 어울렸으며,
또한 정권을 장악했던 동탁에게 조공하여 안동장군(????)의 벼슬을 하사받았다.
조조군은 서주자사 도겸을 원술, 공손찬과 다를 바 없는 역신이라 규탄하며 침공을 정당화했다. 또한 서주에서 벌어진 전투들은 역신을 토벌하기 위한 과정이었음을 덧붙이면서 명분과 정당성까지 내세웠다.
“하하하… 하하하핫!”
조인이 말이 끝나자,
두 아들의 부축을 받고 있던 도겸이 광인처럼 껄껄 웃음을 터트렸다.
죽음의 눈앞으로 다가오자 드디어 실성해버린 것일까.
머리를 풀어헤친 노인이 입을 쩍 벌리면서 광소를 터트리는 모습은 실로 괴기스러웠다. 껄껄 웃을 때마다 입가를 타고 침이 뚝뚝 떨어졌다.
“황제 폐하를 꼭두각시로 삼고 조정대신들을 위협하면서 독단과 전횡을 일삼고 있는 조맹덕이… 왕망, 동탁과 다를 바 없는 역적 조맹덕이 나더러 역신이라고 했더냐! 하하하핫!!”
조롱에 물든 도겸의 외침에 조조군 장수들은 크게 발끈하는 반응을 보이면서 칼자루를 쥐었다.
조인이 명령을 내리는 순간,
곧바로 칼자루를 뽑아들어 저 늙은 닭의 목을 쳐버리려 했다.
자신의 사촌을 왕망, 동탁에 비견될 역적이라 부르짖는 도겸의 폭언에 하후돈 또한 당장 언월도를 휘두를 것처럼 매우 흉흉한 살의를 발산했다.
“말은 모두 끝났나.”
비분강개하는 다른 장졸들과는 달리 조인은 여전히 냉철한 모습을 보였다.
폭언을 쏟아낸 뒤 숨을 헐떡이고 있는 도겸을 바라보던 조인은 한숨을 잠시 내신 뒤에 입을 열었다.
패배한 개가 꼴사납게 짖는 것에 불과하다, 조인의 싸늘한 얼굴이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했다.
“오냐! 나를 황상과 조정대신들이 있는 곳까지 끌고 가라! 만인들이 모두 지켜보는 앞에서 정정당당하게 결연한 충심을 밝힐 것이다!”
나는 역적이 아니다.
황실과 조정을 위해 무수히 많은 반란들을 진압해온 내가 어찌 역적이란 말인가.
서주에서 수만 명이 넘는 목숨들을 앗아간 조맹덕이야말로 한나라에 다시없을 역적이리라.
도겸은 자신의 충심을 보여주려는 듯이 두 팔을 크게 뻗으면서 순순히 포박을 받겠다는 모습을 보였다.
“참군들은 형벌을 집행하라.”
그러나 충심을 입증할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진류군으로 압송하지 않고,
곧바로 사형이 집행될 것이기 때문이다.
조인의 명령이 떨어지자 우악스러운 거구의 참군들이 도겸과 두 아들에게 다가왔다. 그들의 손에는 가죽으로 만든 혁대가 들려 있었다.
“네, 네 이년! 조맹덕이 황실과 조정을 기만하며 전횡을 떨치고 있다고는 하나… 어찌 서주자사 겸 안동장군인 나를 국문(??)도 없이 죽인단 말이냐!”
아무리 대역죄인이라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곧바로 참살하는 경우는 없다.
황제와 고관대작들이 주도하는 국문을 통해 대역죄의 경중을 따진 뒤에 형벌을 간택하여 집행하는 것이 법도였다.
그러나 조조군은 법도를 생략한 채 도겸과 두 아들의 처형을 강행했다.
“커헉!"
"카아아악!!”
참군들이 도겸의 비쩍 마른 모가지에 가죽으로 만든 혁대를 휘감았다.
꽈악.
그 뒤 혁대를 사정없이 당겼다.
두 명의 참군들이 혁대를 당기면서 도겸의 목을 압박했다.
“꺼억!”
“크으… 커허억…!!”
도상과 도응 또한 마찬가지였다.
제 부친과 마찬가지로,
두 아들 또한 도살되는 개처럼 목을 압박하고 있는 혁대를 움켜쥔 채 괴로움을 토해냈다.
서주를 제패한 뒤 연주와 예주까지 영향력을 확장했던 단양도씨 가문은 세력의 멸망과 함께 몰락의 비참함을 온몸으로 경험하게 되었다.
빠득!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고통에 발버둥질하던 도겸의 몸이 축 늘어졌다.
결국 압박을 이겨내지 못한 채 목뼈가 부러져 죽어버린 것이다. 서주 전역을 제패했던 군웅은 결국 참혹한 죽음을 맞이했다.
뒤이어 도상, 도응 또한 부친을 뒤따랐다.
죄인들의 죽음을 끝까지 확인한 조인은 수급을 베어 진류군으로 보냈다.
* * *
팽성 전투에서 완패를 당한 원술군과 손견군은 수춘(??)으로 퇴각했다.
병력을 크게 잃지는 않았으나,
조조군에게 또 다시 완패를 당하게 된 원술은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게 되었다.
하후돈의 급습에 비명을 내지르면서 도망쳐야 했던 원술은 모멸감을 참을 수 없었는지, 폭거를 일삼으면서 휘하 장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해버렸다.
“네놈들이…! 네놈들이 나를 제대로 보필하지 못하여 생긴 일이다! 이 무능한 것들, 네놈이 그러고도 여남원씨 가문의 장수더냐!!”
흉신악살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원술이 목청을 높이면서 장수들을 힐난했다.
분명 아군에게 유리한 싸움이었다.
그런데도 어찌,
환관 년의 부하들에게 또 질 수 있단 말인가.
자신의 무능과 무력을 절대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에 원술은 휘하 장수들을 계속 밀어붙였다.
“손문대, 네놈은 대체 뭘 했기에 적진을 뚫지 못한 것이냐!”
휘하 장수들을 힐난하였음에도 분기가 풀리지 않았던 원술은 이윽고 난폭한 목소리로 손견을 꾸짖었다.
손견에게 힐난이 가해졌다.
그에 원술군 장수들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원술과 손견은 목적을 위한 관계일 뿐, 충성을 맹세한 군신관계가 아니다. 혹시라도 손견이 모욕을 참지 못하고 돌발행동을 벌일까 두려워했다.
“적의 저항이 격렬하여 결국 돌파에 실패하고 말았다. 공세를 성공시키지 못한 것은 분명 내 책임이다.”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손견은 겸허한 모습을 보이면서 자신의 잘못을 인정했다.
그 모습에 원술군 장수들은 손견을 존경에 찬 눈길로 바라보았다.
손견은 자발적으로 최후미를 맡으면서 패주하는 아군을 지원했다. 만약 그가 스스로 최후미를 맡지 않았다면 아군은 패주하는 과정에서 큰 피해를 입었으리라.
전장에서 손견의 도움을 받은 장졸들은 그를 진심으로 존경하게 되었다.
“강동의 호랑이라고 떠들더니… 결국 제 용맹을 과시할 뿐인 무부(??)에 불과했군!”
원술이 혀를 차며 말했다.
그 망발에 손견군 장수들이 크게 발끈하여 두 어깨를 떨었다.
‘원공로, 네 이놈!’
‘큭…! 목숨을 구해줬거늘 수많은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수치를 준단 말인가!’
울고 불며 쫓기던 놈을 구해줬더니,
은혜를 싹 잊은 채 책임을 운운하는 원술의 배은망덕한 모습에 치를 떨었다.
원술은 대명문가의 허울을 가진 무능력한 소인배에 불과했다.
이번 전투를 통해 원술의 무능을 절감하게 된 손견군 장수들은 계속 원술의 휘하에 머문다면 언젠가 큰 환난을 겪게 될 것임을 예견했다.
‘아버지가 나 때문에 저 빌어먹을 새끼한테…!’
백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피눈물을 흘릴 듯한 심정으로 고개를 숙이는 부친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나 때문이다.
내가 적의 총대장에게 패배했기 때문에.
부족하고 미력하여 적들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하고 말았다.
이 치욕과 부담들이 모두 자신 때문에 벌어지게 된 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손책은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면서 자괴감을 토해냈다.
비명소리가 뇌리에 울렸다.
실로 끔찍한 비명소리가,
조조군의 반격에 최후를 맞이한 강동 병사들의 비명소리가 계속 울리는 듯했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