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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22화 (322/616)

〈 322화 〉 322. 아쉬움을 담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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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이 철군을 준비했다.

아침 일찍 군영을 거뒀으며,

일부 병력은 원소군과 상의도 하지 않은 채 철군을 이미 시작한 뒤였다.

함께 어깨를 마주하고 병주의 흉적들에 맞서 싸우지 않았던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철퇴하는 조조군의 모습이 실로 매정하게 보일 정도로 단호했다.

“어찌 우리 주군에게 아무런 상의도 없이 철군하는 것이오! 큰 결례라는 것을 어찌 모르는가!”

군장을 짊어진 채 이동하는 조조군 병사들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상이 역정을 내듯 거센 목소리로 일갈했다.

그럼에도 조조군은 멈추지 않았다.

천하제일검의 명령에 따라 철군을 신속하게 준비할 뿐이다.

단호하기 짝이 없는 조조군의 반응에 여상은 물론, 그를 뒤따르던 원소군 장수들 또한 적잖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혹여 놈들이 눈치를 챈 것이 아닌가!’

원소군 장수들은 훗날 최악의 적으로 마주할 게 분명한 이성휘를 제거하려 했다.

국의와 곽도에게 서한을 보냈으며,

또한 업성에 전령을 파견하여 안량과 문추로 하여금 만승천자의 군대를 몰살시키기 위한 병력을 마련할 것을 지시했다.

그러나 그를 간파하기라도 한 것처럼 모든 준비들이 끝나기도 전에 철군을 시작한 조조군의 행동에 원소군 장수들은 낭패를 경험하게 되었다.

“놈들이 속셈을 간파한 게 분명하오…!”

“그 귀신같은 지모를 가진 두 계집들이 천하제일검의 옆에 착 달라붙어 있지 않았소? 분명 그 계집들이 알려준 게 틀림없소이다!”

놈들이 속셈을 간파했다.

대체 어떻게 알아냈는지는 모르나,

분명 놈들은 서서히 목을 조르는 위협을 직감한 것이리라.

속셈이 훤히 발각당한 원소군 장수들은 당연히 다급해질 수밖에 없었다. 주군에게 함구한 채 준비했던 계책이 완전히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표기장군!”

여상과 휘하 장수들이 당혹감에 두 발을 동동 구르고 있을 때, 여광이 본영을 정리하고 있던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대체 이게 무슨 짓이냐.

철군을 하려거든 아군과 미리 상의를 했어야 할 게 아닌가.

그를 따지고자 대뜸 본영이 발을 들인 것이었다.

“넌 뭔데 부산스럽게 떠들어? 안 그래도 철군을 준비하느라 바빠 죽겠구만!”

방천화극을 어깨에 멘 금발의 여인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여광을 경계했다.

또한 이성휘의 옆에는 장료와 고순 등, 수많은 장수들이 곁을 보필하고 있었다.

휘황찬란한 갑주와 날카로운 병장기로 무장하고 있는 장수들의 모습을 본 여광은 기가 질렸는지 언제나 당당하던 어깨를 푹 움츠렸다.

“토벌이 끝났으니 철군하는 게 아닌가!”

“어째서 그대들에게 일일이 허락을 구해야 하는 것인지 모르겠군.”

조성과 성렴이 다짜고짜 본영으로 쳐들어온 여광을 위협하듯 불만을 노골적으로 드러냈다.

원소군 놈들이 감히 천하제일검을 시해하려고 음흉한 술수를 꾸미고 있다.

그 소식을 순유와 가후로부터 듣게 된 장수들은 마치 적을 대하듯 여광을 노려보았다.

“토벌은 끝났다. 우리들은 곧 돌아갈 것이다.”

무거운 살의에 짓눌린 채 시름하던 여광에게 다가온 이성휘가 입을 열면서 입장을 밝혔다.

중원으로 귀환하겠다.

우리들은 허도로 돌아갈 것이다.

바위처럼 묵직한 천하제일검의 단언에 여광은 곤혹스러움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황급히 그를 만류했다.

“하지만 표기장군…! 이대로 작별하게 된다면 만천하가 주군과 사군(??)과의 동맹을 의심할 겁니다!”

“상관없다.”

“예…?”

“상관없다고 했다.”

동맹관계가 흔들리게 될지도 모른다.

여광은 슬쩍 조조와 원소를 거론하면서 그가 떠나지 못하도록 발목을 붙잡으려 했다.

그럼에도 이성휘는 완강했다.

여광의 만류를 뿌리친 채 철군을 강행해버렸다.

“경들의 주군에게 전해라. 갑작스럽게 떠나게 되어 송구스럽다고.”

입장을 전한 이성휘는 휘하 장수들과 함께 발걸음을 움직였다.

이제 곧 본영을 비울 것이다.

병주 태원군에서 예주 영천군까지는 제법 먼 여정이 될 것이기에.

그리고 미리 위험을 알려준 그녀의 호의를 무의미하게 흘려보낼 순 없었기에 최대한 빨리 원소군의 군영과 작별을 할 생각이었다.

“괜찮아? 이렇게 떠나버려도.”

“인사는 이미 했다.”

여광을 뒤로 물린 채 철군을 서두르는 이성휘의 모습을 바라보던 여포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원소와의 관계를 내심 짐작했는지,

매몰차게 느껴질 정도로 미련을 접어버리는 이성휘의 모습이 위태롭게 보인 모양이었다.

여포의 물음에 이성휘는 확고한 결심을 담아 대답했다.

“전군 철군하라!”

“지금부터 허도로 돌아갈 것이다!”

조조군과 원소군의 맹공에 결국 흑산적 세력이 멸망했다.

장연은 목 없는 귀신이 되었고,

그를 따르던 도적들은 시산혈해가 되어 양곡의 골짜기에 파묻혔다.

훗날 수많은 역사가들로부터 민첩한 기동력을 동원한 기동전의 대표적인 전투로 불리게 될 양곡 전투를 대승으로 이끈 조조군과 원소군은 목표를 완수하자마자 곧바로 냉랭한 관계를 보이면서 이별했다.

“…….”

순유와 가후를 좌우에 둔 채 본대를 지휘하던 이성휘는 아쉬운 마음을 완전히 접을 수 없었는지 원소가 있는 곳으로 고개를 잠시 돌렸다.

그러나 말을 세우는 일은 없었다.

잠시 고개를 돌렸을 뿐,

이성휘는 다시 행군을 이어나갔다.

슬픔과 아쉬움을 억누른 채 자신에게 미소를 지어주던 원소의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는 아플 정도로 가슴이 아려오는 것을 느꼈다.

* * *

결국 조조군은 여러 만류에도 불구하고 철군을 강행했다.

작별조차 고하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군영을 떠나버린 것이다.

그 무례한 행동에 원소군 장수들은 벌집을 습격당하게 된 벌떼처럼 크게 분개하는 모습을 보였다.

“결코 좌시할 수 없는 결례이오!”

“분명 주군을 우롱하는 처사가 아니겠소이까!”

여광과 여상 형제가 당장이라도 군세를 이끌고 만승천자의 군대를 습격할 것처럼 행동했다.

천하제일검을 도모하기 위한 흉계를 꾸몄음을 숨기기 위한 행동이었다. 여광과 여상은 그들이 급히 떠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철저히 함구했다.

“놈들이 황하를 넘기 전에 칩시다!”

“이성휘와 여포의 무맹을 잊으셨소? 섣불리 공격했다간 도리어 우리들이 당할 거요!”

업성의 증원 없이는 결코 이길 수 없다.

천하제일검.

인중여포 마중적토.

전장에서 맹위를 떨친 수많은 장수들.

지금의 전력만으로는 이길 수 없음을 직감한 원소군 장수들은 조조군을 좌시할 수밖에 없었다.

“분무장군.”

“…예, 주군.”

휘하 장수들이 군막에서 격한 목소리로 분개를 토해내고 있었을 때,

원소는 저수와 함께 밖으로 나와 군영 주변을 거닐었다.

산들바람이 불어왔다.

어깨까지 늘어뜨린 금발이 흩날리면서 찬연한 빛을 발산했다.

따스한 바람이 기분 좋았는지 원소의 입가에 미소가 서렸다.

“고마워요, 저를 도와줘서.”

“그저 주군의 명을 따를 뿐입니다.”

어두운 새벽에 원소가 이성휘의 군막에 무사히 출입할 수 있도록 도운 조력자가 바로 저수였다.

누구에게도 발각되지 않도록,

충직한 심복들로 하여금 움직임을 은폐했다.

덕분에 원소는 연모해온 남성에게 작별인사와 함께 입맞춤을 나눌 수 있었다. 오로지 자신을 위해 위험을 감수해준 저수에게 원소는 깊은 고마움을 느꼈다.

“인사는 무사히 하셨습니까?”

“네, 물론이죠.”

저수의 물음에 원소가 대답했다.

빙그레 웃으면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제 입술을 손가락으로 툭툭 짓눌렀다.

곧 원소의 새하얀 뺨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흥분에 찬 숨소리를 통해 입맞춤을 나눈 그 순간을 회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머지않아 적으로 만나게 되더라도 망설이지 않을 거예요. 그렇게 약속했거든요.”

망설임을 버렸다.

우유부단한 마음을 잘라냈다.

지금까지 간직해온 연모를 고백하며 마음을 정리한 원소는 굳은 결심에 찬 눈을 번뜩이면서 야심을 드러냈다.

천하를 제패하겠다.

그리고 이성휘를 손에 넣겠다.

야심(?心)과 연심(心)이 동시에 요동쳤다.

사랑하는 이에게 보낸 고백과 입맞춤을 통해 원소는 완전무결한 면모를 드러내게 되었다.

“혹시라도… 천하제일검이 주군을 그대로 납치하지는 않을까 걱정했습니다.”

“후후, 그럴 배짱은 없는 사람이에요.”

난색을 지은 저수의 말에 원소는 웃음을 터트리면서 대답했다.

그는 올곧은 칼날이다.

일말의 사술(??)도,

찰나의 속임수도 쓰지 않는 사람이다.

만약 그가 납치를 시도한다면 못 이기는 척 따라줬을지도 모르지만 결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터였다.

“원재에게 전령을 보내세요. 상당군과 태원군에 깃발을 꽂고 통치를 시작하라고.”

“예, 알겠습니다.”

“유주와 청주에 파견된 지방관들에게도 모두 연통하여 군대를 계속 양성할 것을 지시하세요.”

보인다.

이제야 보이기 시작했다.

짙은 물안개가 드리운 것처럼 흐릿하게 보이던 길이 마침내 선명히 드러났다.

내가 해야 될 일이.

나만이 할 수 있는 대업이.

이 원본초가 기필코 이뤄내야 할 숙명이.

맹렬하게 타오르는 야심의 불길을 온몸에 두른 하북의 군주는 마침내 결단을 내렸다.

“모든 제장들을 소집하세요.”

안일하게 안주할 생각은 없다. 언젠가 다가오게 될 전쟁을 대비해야 했기에.

천하의 향방을 가늠할 거대한 전투.

천하의 향후를 결정지을 위대한 전투.

천하에 난립한 수많은 세력들이 모두 참전하는 대전(大戰)이 벌어지게 되리라.

난세의 종지부를 찍을 전쟁을 예견한 원소는 모든 장수들을 동원하여 그를 준비하게 했다.

“지금 당장 처리해야 될 일들이 너무 많아요. 그리고 앞으로 해야 될 일들도 너무 많고요.”

가슴이 벅차올랐다.

조정에 처음 임관했을 때처럼,

온몸에 뜨거운 혈기가 넘쳐흐르는 듯했다.

담대한 포부와 웅장한 야심을 품은 하북의 패자는 기필코 숙명을 이뤄내겠다는 각오를 품었다.

“그리고….”

잠시 발걸음을 멈춘 원소는 어깨에 툭 닿을 정도로 짧게 자른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머리를 다시 길러야겠어요.”

분명 허리까지 늘어뜨린 긴 머리카락을 좋아할 테니까.

그 사람을 기쁘게 해주고 싶다.

그 사람이 나를 더욱 좋아하게 만들고 싶다.

사랑하는 이를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은 그녀를 더욱 강하게 만들었다.

평생의 숙적을,

한 사내를 사이에 둔 연적을 이겨야 했으니까.

­반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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