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21화 〉 321. 아쉬움을 담아(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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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스함이 입술을 감싸 안았다.
애절한 마음을 담아낸 듯,
그녀의 부드러운 입술은 너무도 뜨거웠다.
강제로 거리를 벌리려고 했던 이성휘는 자신의 목덜미를 꼭 붙든 처녀의 손길에 뒷걸음질을 잠시 멈춰 세우고 말았다.
“으응… 으읏…!”
어깨까지 금발을 늘어뜨린 여성이 과감하게 입술을 벌리면서 사내의 입술을 꾹 깨물었다.
메마른 감촉이 느껴졌다.
그리고 묘한 단맛이 혀를 자극했다.
이게 바로 첫 입맞춤에 담긴 맛인 걸까. 입술의 감촉을 느끼던 원소는 용기를 내어 그를 꼭 껴안았다.
“파하…!”
사내에게 필사적으로 달려든 채 입맞춤을 이어나가던 원소는 이윽고 숨이 막혔는지 농밀하게 꾹 맞대던 입술을 뗐다.
하지만 여전히 만족하지 못한 듯,
황홀경에 찬 처녀는 다시 뒤꿈치를 번쩍 들어올리면서 자신의 타액으로 물든 사내의 입술에 다시 탐했다.
“우응… 츄웁, 쮸웁…!”
꾸욱.
처녀의 두 팔이 사내의 목덜미를 당겼다.
좀 더 자신을 탐해달라는 듯.
좀 더 자신에게 집중해달라는 듯.
애정과 애욕에 물든 처녀는 엉성하고 미숙한 솜씨로나마 적극적으로 매달리면서 사내의 입술을 탐하고 또 탐했다.
‘이게 첫 입맞춤… 이란 거군요. 과연 시녀들이 말했던 대로… 달콤하면서 짜릿한, 가슴이 펑 터질 것처럼 흥분되는 맛이에요.’
허락된다면 평생 맛보고 싶은,
오로지 나만의 것으로 만들고 싶은 두근거림이 느껴졌다.
혀를 할짝이면서 사내의 맛을 탐닉하던 원소는 범람하듯 요동치는 연심과 함께 깊은 고양감을 경험했다.
“보, 본초 님…!”
“후후. 성휘는 당황하는 모습도 귀엽네요. 무명 높은 천하제일검께서 이토록 당황하실 줄이야.”
등불의 주황빛에 물든 처녀가 쿡쿡 웃음을 터트리면서 당황에 빠진 이성휘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귀엽다.
뺨을 쿡 찔러주고 싶을 정도로.
남동생을 놀리길 좋아하는 누나처럼 원소는 장난기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배시시 웃었다.
“제 고백이 진심이라는 증거예요.”
“…….”
“두 번째 입맞춤은… 성휘가 너무 좋아서 또 했어요.”
익살스러운 말괄량이 같은 그녀의 모습에 이성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뭐라고 말해야 할지,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난감한 듯하다.
연심이 범람하는 그녀의 붉은 눈동자를 본 이성휘는 입을 꾹 다문 채 시선을 응시했다. 이윽고 이성휘가 입을 열었다.
“하지만 저는… 본초 님의 마음을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알아요, 당신은 맹덕의 반려잖아요. 그리고 우리들은 결국 적이 될 테죠.”
연모해온 사내에게 첫 입맞춤을 한 처녀가 슬픈 미소를 지으면서 한 걸음 물러섰다.
결국 비극으로 끝날 관계.
원소는 그것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에게 연심을 고백했다.
이대로 연심을 묻어버린 채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돌아서긴 싫었으니까.
“분명 비극으로 끝나겠죠. 아프고 고통스러울 뿐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당신에게 마음을 전하고 싶었어요.”
파멸과 파국만이 남을지라도,
오랫동안 간직해온 마음을 고백하고 싶었다.
행복한 결과를 위한 고백이 아니었으니까. 오직 마음을 전하는 것 자체에 의미를 둔 고백이었기에.
그래서 그녀는 당장 눈물을 뚝뚝 떨어트릴 것 같은 슬픈 미소를 지으면서 진심어린 고백을 한 것이리라.
“성휘.”
한 걸음 물러섰던 원소가 두 팔을 뻗으면서 이성휘를 꼭 끌어안았다.
커다란 유방이 짓눌렸다.
처녀의 풍만한 몸은 옷 너머로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뜨겁게 달아오른 상태였다.
달콤한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사내를 유혹하는 여성 특유의 체취였다.
“오늘 밤에 저를… 안아줄래요?”
요염하게 물든 목소리가 귓가를 자극했다.
이성을 뒤흔드는 부탁이,
불륜과 배덕을 부추기는 속삭임이 들려왔다.
새하얀 뺨을 붉게 물들인 금발의 미녀는 커다란 가슴을 내밀면서 사내를 유혹했다.
부드러운 젖가슴이 흔들렸다.
어서 만져달라고 보채듯이,
무거운 중량감을 자랑하는 거유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안 됩니다.”
그에 이성휘는 초인적인 인내력을 발휘하여 처녀의 유혹을 뿌리쳤다.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가슴속을 옥죄는 육욕을 애써 억눌렀다.
평생 후회와 죄책감으로 남게 될 무책임한 짓을 벌이고 싶지 않았던 이성휘는 매정하게 보일 정도로 일언지하에 제안을 뿌리쳤다.
“감히 제가 어떻게… 그러겠습니까.”
지금까지 조조를 속인 채 수많은 여인들을 안아왔지만 이번만큼은 결코 받아들일 수 없었다.
마음이 흔들리게 될 테니까.
결심과 맹세가 빛바랜 금속처럼 퇴색될 테니.
머지않아 조조와 원소는 천하의 패권을 두고 자웅을 겨루게 될 터.
만약 육욕을 참지 못한 채 그녀를 안아버린다면 망설임이 생기고 말 것이다.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끝내 주저하게 될 것이었다.
무뎌진 칼날이 될 순 없다.
사랑하는 여인의 검이 되기로 맹세했기에 결국 연심에 빠진 처녀의 애절한 부탁을 뿌리쳤다.
“죄송합니다.”
“…….”
수치심과 부끄러움을 애써 참아내면서 몸을 허락했건만, 결국 거절당하고 말았다.
하지만 원소는 분노하지 않았다.
그저 슬픈 미소를 머금었을 뿐,
처녀의 애절한 부탁을 거절한 사내를 원망하는 일은 결코 없었다.
왜냐하면 그를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너무한 사람.”
“정말 죄송합니다.”
“독종. 철면피. 난봉꾼. 목석. 뻔뻔한 자식.”
“…….”
재차 사과하는 이성휘를 향해 원소는 울분과 야속함을 담아서 그를 힐난했다.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매서운 매도에 이성휘는 어쩔 줄 몰라 하는 반응을 보였다. 바르르 떨리는 그의 두 눈을 통해 크게 동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푸훗!”
비 맞은 강아지 같은 이성휘의 모습에 결국 원소는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아무리 미워하려 해도,
결코 미워할 수 없는 사람이다.
올곧게 뻗은 칼끝처럼 솔직한 이성휘의 모습에 원소는 친근한 미소를 입가에 담아냈다.
일생일대의 고백을 거절당했건만… 그럼에도 이 야속한 사내를 미워할 수 없었다.
이것이 바로 사랑일까.
그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쿵쾅쿵쾅 요동쳤다.
두 팔로 꼭 껴안은 채 뺨에 입맞춤 세례를 연신 해주고 싶을 정도로 그가 사랑스러웠다.
“걱정 말아요. 전혀 화나지 않았으니까. 성휘가 거절할 줄 미리 알고 있었어요.”
“그럼 방금 말씀은….”
이성휘가 의아하다는 반응을 보였다.
분명 매도할 때 진심이었던 것 같은데 말이다.
“사실 거짓말이에요. 조금 화났어요. 아니, 많이 화났어요!”
어깨까지 금발을 늘어뜨린 미녀가 뺨에 바람을 넣으면서 퉁명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에게 손을 뻗었다.
감히 처녀의 순결을 뿌리친 사내의 옆구리를 꾹 꼬집었다.
야속함을 담은 투정이다.
연모를 담은 애정표현이기도 했다.
처녀의 순결을 걷어찬 사내가 야속하면서도, 그럼에도 사랑스러웠기에 투정과 애정표현을 동시에 담아냈다.
“죄송합니다, 본초 님.”
“아니에요, 성휘는 맹덕을 택했잖아요. 그것을 알면서도 당신을 사랑한 것은 저예요.”
비극으로 끝나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사랑했다.
그렇기에 원소는,
결코 이성휘를 향한 연심을 후회하지 않았다.
“미안해하지 말아요. 나는 절대… 당신을 사랑했던 것을 후회하지 않으니까.”
“본초 님….”
“그러니까 당신도 후회하지 말아요.”
가느다란 손가락을 뻗었다.
이윽고 처녀의 손가락이 사내의 입술에 닿았다.
입술을 툭 짓누르면서,
금발의 미녀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저는 제 고백을 뿌리친 당신의 모습조차도 사랑하니까.”
원소의 얼굴은 어느 때보다도 붉게 물들어 있었다.
드디어 마음을 전달했다.
드디어 내 연심을 바칠 수 있었다.
비록 고백은 실패로 끝났지만… 그럼에도 마음만큼은 모든 근심들을 털어낸 것처럼 후련했다.
“성휘, 제 부하들이 당신을 죽이려고 들 거예요. 이제 흑산적 토벌이 끝났으니까요. 그러니까 어서 맹덕에게 돌아가세요.”
“…예.”
원소가 근심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위험을 경고했다.
분명 지금쯤 움직이고 있을 터.
광기에 가까운 충성심을 가진 장수들은 월권을 휘두르면서까지 군대를 동원하려 하겠지.
결국 군사적 충돌이 발생하게 될 것을 우려한 원소는 이성휘에게 경고의 말을 남겼다.
“머지않아 전쟁터에서 적으로 만나겠죠. 하지만 지금은 아니에요.”
적어도 오늘 밤만큼은,
오늘 밤이 끝나기 전까지는.
결국 불구대천의 원수가 될지라도 오늘만큼은 그를 적으로 여기고 싶지 않았다.
새하얀 뺨을 물들인 처녀는 다시 두 팔을 뻗으면서 연모해온 사내를 꼭 끌어안았다. 그리고 발꿈치를 들어 사내의 입에 애절한 입맞춤을 했다.
“새벽이 되기 전까지만… 제 곁에 있어주세요.”
속삭임에 애원이 담겨 있었다.
몸을 쓰다듬는 손길에서 애처로움이 느껴졌다.
새벽이 되면 이 관계가 끝날 것이기에.
사내를 꼭 껴안은 처녀는 새벽이 밝아오는 것을 두려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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