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3화 〉 313. 안팎의 위협(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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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당군(上??)을 점령한 원소군은 여세를 몰아 태원군(太??)을 공격했다.
산짐승을 점점 몰아세우듯,
태원군의 거점들을 연이어 공략하면서 흑산적 세력의 숨통을 조였다.
그러나 원소군은 곧 난관에 봉착하게 되었다.
“조독 장군이 패주했습니다.”
“험준한 산세에 숨은 흑산적 놈들이 아군의 병참기지를 공격했다고 합니다.”
포위와 압박이 점점 이어질수록 흑산적 세력은 발악하듯 더욱 거세게 저항했다.
태원군 전역에 흩어진 흑산적 병력은 험준한 산세에 의지한 채 원소군을 매우 집요하게 괴롭혀댔다.
시궁쥐들이 큰 짐승에게 달려들듯,
잘게 흩어진 흑산적 잔당들의 저항은 무패를 이어나가던 원소군에게 치명적으로 작용했다.
“이대로는 피해만 계속 확산될 뿐입니다. 잠시 압박을 푸는 게 어떻겠습니까?”
군사(??) 곽도가 입을 열었다.
오합지졸이나 다름없는 도적들이 죽기 살기로 저항하는 것은 한계 이상으로 압박했기 때문이다.
잠시 압박을 풀어야 한다.
계속해서 불리한 전황을 겪은 흑산적 병력들은 결국 병장기를 버리고 아군에게 투항해올 터였다.
“군사의 말이 맞습니다!”
“계속 피해가 가중된다면 애써 잡은 승세가 흔들리게 될 겁니다!”
곽도의 말에 여럿 장수들이 호응하듯 소리쳤다. 흑산적 세력의 저항에 패전하고 돌아온 장수들이었다.
적들에게 병참기지를 잃었으며,
심지어 군량을 수송하던 보급대들까지 기습을 당하기 시작했다.
전황이 수렁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거머리처럼 달려드는 흑산적들의 저항이 집요하게 이어질 때마다 원소군 장수들은 공포에 휩쓸렸다.
“흐음.”
자신의 주장에 가세하는 장수들의 모습을 본 곽도가 만족감에 찬 반응을 보였다.
거만하고 아집이 넘치는 성정이며,
또한 자기주장이 매우 완고했던 곽도는 자신의 의중대로 군사회의를 휘두르는 것을 좋아했다.
그것이 바로 자신의 우수함을 증명하는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분무장군의 생각은 어떤가요?”
곽도와 휘하 장수들의 주장을 경청한 원소가 분무장군 저수에게 의중을 물었다.
그에 착잡한 표정을 짓고 있던 저수는 깊은 한숨과 함께 무거운 입을 열었다.
“사면초가에 몰린 적들을 계속 압박하는 것은 결코 상책이 아닙니다. 군사와 장수들의 말처럼 결국 아군의 피해만 가중될 뿐입니다. 허나…, 포위를 풀게 된다면 애써 붙잡은 승기를 놓치게 될 겁니다.”
병력을 뒤로 물리면서 포위를 풀게 된다면 다 잡은 물고기를 놓치는 격이 될 터.
결국 흑산적 세력의 사기를 높여줄 뿐인 최악의 묘수가 될지도 모른다.
포위망을 거두는 것이 결코 상계가 아님을 지적하는 저수의 말에 제 잘난 듯 떠들던 곽도의 얼굴에 불쾌감이 감돌게 되었다.
“예, 그렇겠지요….”
저수의 답변에 원소는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책상을 툭툭 두드리면서 시름을 삼켰다.
점점 수렁으로 빠져들고 있다.
불리한 국면에 직면했음을 원소도 알고 있었다.
어떻게든 최대한 빨리 전쟁을 끝내겠다는 과감성이 자충을 불러일으켰다. 연전연승이 도리어 적들을 완강하게 만드는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주군, 곽도 군사의 고견이 실로 타당하다고 사료됩니다. 일단 포위를 푼 뒤에 잠시 물러나 전열을 재정비하면서 다음을 도모하시지요.”
정로장군 국의가 곽도의 주장에 힘을 보태면서 뒤로 물러날 것을 진언했다.
포위를 풀게 된다면 흑산적 세력은 금세 기고만장하여 교만을 품게 될 터.
잠시 한 걸음 물러선 아군이 위축되었다고 판단하고는 다시 결전을 걸어올 게 틀림없었다.
국의는 그때를 노려 흑산적 두령들을 일망타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표기장군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곽도와 함께 군사회의를 주도하던 국의가 짐짓 오만해진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물었다.
그는 계속 침묵하고 있었다.
무명 높은 천하제일검께서 입을 다물고 있는 그 모습이 실로 우스웠다.
수많은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망신을 줄 요량이었는지 국의는 질투와 시기에 찬 마음을 드러내듯 이성휘와 그 옆의 장수들을 바라보았다.
“포위를 풀게 되면 지금까지 거둔 승리들이 물거품처럼 흩어지게 될 겁니다. 비록 지금은 적들이 태원군에 의지한 채 웅거하고 있으나… 곧 전력을 회복하게 된다면 상당군을 탈환하려 들 테니 말입니다.”
흑산적 세력은 무려 수십만 명에 이른다.
몰아넣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흑산적 세력을 완전히 일소하기 위해선 그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려야 했다.
결국 고삐를 풀어주게 되면 다시금 천하를 어지럽히면서 해악을 떨칠 터. 저들에게 다시 기회를 주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행동이었다.
“흑산적의 군세는 수십만 명에 이릅니다. 만약 장연을 중심으로 뿔뿔이 흩어진 흑산적 세력이 다시 집결하게 된다면 도리어 화만 키운 격이 될 겁니다.”
원소군과 조조군이 지금까지 흑산적 세력을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연계와 결집을 계속 무너뜨렸기 때문이다.
상당군을 공격하여 적들을 양단했고,
또한 태원군에 웅거하고 있는 흑산적 세력을 쉬지 않고 압박하여 저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그런데 이대로 적들의 저항에 못 이겨 병력을 철수시킨다면 원소군과 조조군은 뿔뿔이 흩어졌던 흑산적 세력의 공격을 사방에서 받게 될 게 분명했다.
“그럼 방책은 있소? 저 도적들을 모조리 격멸할 수 있는 좋은 방책 말이오.”
곽도가 표독스럽게 변한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의 주장을 철저히 배격하듯,
군사회의에서 꺼낸 의견을 완전히 뒤집어버린 이성휘의 행동에 깊은 모멸감을 느꼈다.
그리고 자신의 주장에 가세하던 휘하 장수들이 이성휘의 발언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에 더욱 큰 분노를 느끼게 되었다.
“본초 님, 방책이… 있습니다.”
“정말인가요?!”
“하지만 결코 상책은 아닐 겁니다.”
방책이 있다는 말에 놀라는 원소.
그녀의 반응에 이성휘의 망설임은 더욱 깊어졌다.
반면 방책을 고안해낸 순유의 입가에는 은은한 미소가 떠올랐다.
“괜찮아요, 말씀하세요.”
당신을 신뢰하고 있다,
그 내심을 표현하듯 망설이는 모습을 보이는 이성휘에게 방긋 웃으면서 말했다.
결코 허언을 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밝게 빛나는 금발을 찰랑이는 여인은 연상의 누나처럼 주저하는 그를 다독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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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소를 추종하는 참모와 장수들이 있는 앞에서 차마 방책을 전할 수 없었던 이성휘는 망설임 끝에 독대를 요청했다.
그에 원소는 독대를 허락했다.
불리한 전황을 반전시킬 비책.
분명 이성휘라면 뒤집을 수 있을 것이라는 강한 확신에 찬 원소였기에 무엇이든 들어줄 것처럼 전폭적인 신뢰를 보였다.
“분명 장연은 양곡(?曲)에 있을 겁니다. 붙잡은 포로들을 심문하여 알아낸 정보입니다.”
“양곡…. 골짜기들 사이에 위치한 고을이군요.”
이성휘의 말에 원소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숙이면서 미간을 찌푸렸다.
양곡.
날랜 제비라는 별명이 붙은 장연에게 어울리는 곳이다.
사방이 골짜기들로 둘러싸여 있으며,
또한 골짜기 사이로 여러 길목들이 존재하여 다른 군현으로 도주하기 용이했다.
“성휘, 혹시 양곡을 기습하여 장연을 칠 생각인가요? 너무 무모해요. 양곡의 험준한 골짜기에 발을 들이자마자 사방에서 공격을 받게 될 거예요.”
험준한 골짜기에서 기습을 받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제아무리 용맹한 맹장이라도 골짜기 위에서 쏟아지는 화살비와 바윗덩이들을 이길 순 없다. 천혜의 요새에 몸을 의지하고 있는 장연을 치는 것은 결코 불가능하다.
“그렇습니다. 양곡의 험준한 골짜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분명 자살행위입니다. 그래서 장연, 그 교활한 수괴를 바깥으로 끄집어낼 겁니다.”
“…바깥으로 끄집어낸다고요?”
민물에 사는 남생이처럼 드센 등껍질에 숨은 장연을 어떻게 끄집어낸단 말인가.
장연은 결코 어리석은 자가 아니다.
무려 수십만 명에 달하는 흑산적 세력을 거느린 장연은 교활한 꾀와 속임수들을 이용하여 몇 번이고 조정군을 농락한 전과가 있었다.
“성휘.”
“예, 본초 님.”
“저는 괜찮아요. 맡겨주세요.”
적을 유인하여 끄집어낸다.
그를 들은 그녀는 이성휘가 계속 망설이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사냥감을 붙잡으려면 덫이 둬야 한다.
또한 덫에는 항상 사냥감을 현혹할 미끼가 있어야 했다.
“십상시 일파가 보낸 수많은 자객들로부터 저를 지켜줬을 때처럼 성휘가 저를 지켜줄 거잖아요.”
“예, 하지만….”
“성휘, 나는 당신을 믿어요.”
순금을 녹여낸 것처럼 아름다운 금발의 여인이 촉촉하게 젖은 두 눈을 빛내면서 애원하듯 부탁했다.
그녀의 시선은 과거를 훑고 있었다.
수많은 자객들이 난입했을 때,
날카로운 창검을 든 채 습격했던 자객들로부터 나를 지켜줬던 사람.
원소는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도록 자객들을 도륙했던 무관의 모습을 떠올리면서 눈앞에 있는 사내의 얼굴을 부드럽게 응시했다.
“하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이 다릅니다.”
“아뇨, 전혀 달라지지 않았어요. 성휘는 성휘고, 저는 저예요. 비록 언젠가는 적으로 마주하게 될지라도 그것만큼은 절대로 변치 않을 테니까.”
그녀의 목소리에는 강한 믿음과 함께, 결코 변하지 않을 사랑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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