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1화 〉 311. 조각을 맞추다(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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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미웠다.
두 번 다시 만나지 않겠노라,
결코 그에게 헤픈 미소를 짓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짐했다.
왜냐하면 그는
내가 아닌 맹덕을 선택했으니까.
간절하게 바랐음에도,
체면을 마다한 채 염원했음에도 결국 내가 아닌 다른 여자를 골랐으니까….
불야성처럼 환한 등불들로 물든 연주성의 시가지가 훤히 보이는 우왕각(?王?)에서 사랑을 속삭이며 입맞춤을 하던 이성휘와 조조의 모습을 본 이후부터,
원소는 결국 이성휘를 향한 마음을 단념했다.
그리고 그를 원망하려 했다.
감히 이 원본초를 거절한,
생애 처음으로 체면과 자존심을 모두 내던진 채 전했던 일생일대의 고백을 거절한 사내였으니까.
발칙하고 괘씸하다.
건방지고 오만하다.
씩씩, 소리가 날 정도로 그를 욕하고 또 욕했다.
그런데도 어째서일까.
어떻게든 마음을 잊으려고 하였음에도 그를 미워할 수 없었다.
“하아….”
급히 이성휘를 돌려보낸 원소는 자리에 앉은 채 거울을 바라보았다.
나는 지금,
어떤 얼굴을 하고 있을까?
새카만 먹구름들이 드리운 흐린 하늘처럼 천사만려(????)에 물든 얼굴이 수심을 품고 있었다.
“정말 꼴불견인 얼굴이네요.”
결정을 망설이고 두려워하며,
번민과 고뇌의 늪을 하염없이 떠돌 뿐인 계집의 얼굴이 보였다.
자신이 가장 싫어하는 얼굴이다.
자신이 가장 경멸하는 모습이었다.
나약하고 소심한…,
한없이 우유부단한 꼴불견.
받침대에 고정된 거울을 무심코 덮어버렸을 정도로 내 모습에 염증이 밀려왔다.
‘역시 이상하게 생각했겠죠? 그때 기주로 돌아가자마자 머리를 잘랐으니까.’
침울한 표정을 머금은 여인이 부드러운 손길로 짧게 자른 제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둔부까지 닿던 장발이,
어깨에 닿을 정도로 짧은 단발머리가 되었다.
아끼던 시녀에게 부탁하여 오랫동안 정성스럽게 길렀던 머리를 과감하게 잘랐다. 과감하게 사랑을 포기하겠다는 결심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아으으…!”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뺨을 폭 덮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분명 날 이상하게 생각하겠지.
화들짝 놀란 반응을 보이면서 내쫓았으니까.
이성휘의 얼굴을 다시 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어떤 모습으로 그를 마주해야 할지 망설여졌기 때문이다.
“주군.”
두 발을 애처롭게 동동 구르면서 고심을 계속 거듭하던 원소는 군막 너머에서 들린 목소리에 간신히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후우,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용암처럼 솟구칠 것만 같았던 마음을 간신히 억누른 원소는 이윽고 부하에게 출입을 허락했다.
“무슨 일인가요?”
“호관에 주둔하던 지원군이 동제현(???)에 당도했다고 합니다.”
원소는 유사지추에 전장으로 가세할 수 있도록 호관에 3만의 병력을 배치했다.
흑산적과 전면전을 치를 때가 왔다.
그를 직감한 원소는 호관에 전령을 보내어 지원군을 지휘하는 분무장군(????) 저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선봉에 나선 정로장군이 귀환하면 곧바로 총공세에 나설 거예요. 제장들을 모두 집결시키세요.”
“예, 주군!”
보고를 전한 무관에게 소집령을 하달한 원소는 심려에 물든 한숨을 내쉬면서 몸을 일으켰다.
궁상이나 떨 때가 아니다.
흑산적 세력을 궤멸시킬 결전을 눈앞에 두고 있지 않은가.
두 손으로 잠시 걱정에 물든 얼굴을 쓸어내린 원소는 마음을 옥죄던 감정들을 툴툴 털어냈다. 고결하고 용맹한 모습으로 군중들의 앞에 서야 했기 때문이다.
“본초 님.”
“부르셨습니까.”
무관이 나간 뒤,
원소는 곧바로 자신을 보필하는 시녀들을 불렀다.
“의복을 준비하세요. 곧 나서야 하니.”
결코 원소는 부하들에게 빈틈을 보이지 않는다.
아름다운 용모와 우아한 자태.
기품 넘치는 의복과 화려한 장신구들.
권위와 위엄을 한껏 드러내는 모습으로 군중들에게 절대적인 충성을 받아냈다. 마치 하늘에서 내려온 듯한 기품 넘치는 원소의 모습에 원소군 장졸들은 그녀를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병주마저 통일한다면 맹덕 또한 긴장할 수밖에 없겠죠. 물론 지금도 긴장하고 있겠지만.’
부드러운 비단처럼 한껏 여유를 드러낸 원소는 자신감에 찬 눈빛을 드러냈다.
장수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휘하 병사들이 결코 두려워하지 않도록.
하북 4개 주를 재패한 북방의 패자는 근엄한 표정을 지으면서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 * *
정로장군(????) 국의가 투입된 뒤,
이윽고 후방에서 대기하던 만승천자의 군대가 전면에 나섰다.
황제의 군기들이 펄럭였다.
휘황찬란한 갑주를 걸친 기마들이 일제히 질주하기 시작했다.
두두두두두두두!!!
대지를 걷어차는 말발굽소리.
용맹한 병사들이 쩌렁쩌렁한 함성을 내질렀다.
몰아치는 눈보라처럼 흙먼지를 가득 일으키면서 달려드는 육군의 모습은 실로 장관이었다.
“나라를 어지럽힌 역적들이다!”
“단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다 죽여라!!”
기병들이 날카로운 창을 내지르면서 도망치던 흑산적 병사를 사냥했다. 미처 도망치지 못한 채 벌벌 떨고 있던 흑산적 병사를 말발굽으로 짓밟아버렸다.
일말의 자비도,
일말의 용서조차 베풀지 않는다.
만승천자의 군대는 나라를 기만한 역적들을 망설임 없이 처단할 뿐.
황실과 조정의 총애를 등에 업은 병주 출신의 군대는 그에 보답하듯 언제나 최강의 전력을 발휘했다.
“으, 으아악!”
“놈들이 계속 몰려온다!”
기병부대를 선두에 세운 육군은 수만 명에 달하는 흑산적 병력을 상대로 압승을 이어나갔다.
승세를 계속 손아귀에 붙잡은 채,
압도적인 폭력을 동원한 유린을 되풀이했다.
좌익군과 우익군을 지휘하는 여포와 장료가 질주를 반복할 때마다 적들의 방어선은 종잇조각처럼 간단하게 찢어발겨졌다.
“내가 바로 병주의 여봉선이다! 천하무쌍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자는 내 앞에 서라!!”
방천화극을 치켜든 금발의 여인이 사납게 사자후를 내지르면서 적들을 위축시켰다.
누가 감히 저 여걸을 대적할 수 있겠는가.
이미 여포는 불나방처럼 달려들었던 흑산적 장수들을 모조리 불귀의 객으로 만들어버린 뒤였다.
수십의 대장기들을 부러뜨렸고,
감히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장수들의 수급을 빠짐없이 모두 취했다.
인중여포 마중적토(人中?? 馬中赤).
그 용맹을 지켜본 원소군 장수들은 사람 중에는 여포, 말 중에는 적토라고 부르면서 경이를 토해냈다.
“크하악!!”
여포가 방천화극을 힘껏 휘두르자 쩌저정! 소리와 함께 앞을 가로막은 적장이 갑옷과 함께 썰려나갔다.
파아앙!!
뒤이어 방천화극을 횡으로 휘두르면서 파쇄음과 함께 흑산적 병사들을 도륙했다.
과연 여포다.
동탁을 벌벌 떨게 만들었던 여장부다웠다.
핏물에 물든 머리카락을 나부끼면서 전장을 가로지르는 여포의 용맹이 크게 빛을 발했다.
“하하핫!”
여포가 광소를 터트렸다.
온몸이 뜨겁다.
수차례 교전을 벌였음에도 상태가 최고조를 달리고 있었다.
광풍이 날릴 정도로 괴력을 담아 방천화극을 휘둘렀다.
혈혈단신으로 강습해온 여걸의 맹공에 무수히 많은 적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는 광경은 전장 곳곳에서 속출되듯 벌어졌다.
“표, 표기장군의 대장기…!”
“이성휘다! 천하제일검 이성휘다!!”
여포와 장료의 맹공에 휩쓸고 지나간 뒤,
쑥대밭이 된 흑산적의 전열에 표기장군의 대장기가 바람에 나부끼면서 존재감을 과시했다.
천하제일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곧 가까스로 맹공에서 살아남은 흑산적들에게 결국 죽음이 도래했음을 의미했다.
표기장군 이성휘를 주축으로 한 병력이 거센 파도처럼 밀어닥치면서 힘겹게 시름하던 흑산적들의 숨통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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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관에 주둔하고 있던 3만의 원소군 병력이 움직였다.
계속 명령을 기다리고 있었는지,
호관의 병력은 본대로부터 명령이 하달되자마자 곧바로 출진하여 상당군에 도달했다.
과연 민첩한 결집과 기동력으로 공손찬군을 멸망시킨 원소군다운 기민함이었다.
“표기장군 이성휘가 황군(??)을 대동한 채 전선에 가세했다고 하는군.”
군사(??) 곽도가 병주 전선에서 도착한 소식들을 살피면서 말했다.
조조가 만승천자의 군대를 투입시켰다.
게다가 그를 지휘하는 인물은 천하제일검으로 무명이 높은 이성휘였다.
분무장군 저수를 보필하기 위해 투입된 곽도는 소식을 듣고는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의 군대를 병주 전선으로 보낸 조조의 속셈을 간파했기 때문이었다.
“흠, 아무리 하북 4개 주를 제패한 아군이라도 황제의 군대를 건드리긴 어렵지. 황제의 군대에게 암습이라도 가한다면 천하로부터 지탄을 받게 될 테니.”
과연 치밀한 성정의 조맹덕이군,
곽도가 클클 웃으면서 비릿한 미소를 흘렸다.
하북 전역을 제패한 아군에게 중원의 무력과 위엄을 보여줄 속셈이 분명했다. 최강의 전력을 보여주어 아군이 감히 경거망동하지 못하도록 막으려는 술책이 틀림없었다.
실로 건방지지 않은가.
감히 여남원씨 가문에게 독니처럼 날카로운 위세를 드러내다니.
아집과 횡포의 껍데기들로 만들어진 조맹덕의 오만을 쳐부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무슨 말을 하는 건가, 군사.”
옆에서 말을 몰던 저수가 물었다.
그에 곽도는 어깨를 으쓱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여남원씨 가문을 보필하는 군사로서 앞으로의 대의를 침식불안하듯 걱정하는 중이었네.”
“괜한 경동하지 말게!”
곽도와 평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던 저수는 혹시라도 그가 독단행동을 벌일까 우려하듯 소리쳤다.
여남원씨 가문을 위해서라면 극단적인 수단도 불사하는 곽도였기에 저수는 그를 매우 경계했다.
곽도는 군사로 참전했을 뿐,
병마를 움직일 수 있는 지휘권을 없었다.
그럼에도 저수는 걱정을 접을 수 없었는지 윤해와 곽원으로 하여금 본대와 합류할 때까지 곽도를 감시하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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