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0화 〉 310. 조각을 맞추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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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국의는 어느 누구에게도 열등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비록 변방 출신이었으나,
그는 한나라의 상서령(書?)인 국담의 후예였다.
또한 국의에게는 변방 출신이라는 결점을 뒤엎고도 남을 정도의 출중한 능력과 자질이 있었다.
고향인 양주에서 오랑캐들을 상대로 수많은 공훈들을 세웠음은 물론, 그 뒤 기주로 이주하여 기주목 한복의 휘하에서 여러 전공들을 쌓았다.
한복을 배신하고 원소에게 귀순한 이후,
국의는 계교 전투에서 공손찬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내고 역경루 공방전에서 결정적인 일격을 뻗은 끝에 북방의 귀신이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드는 최고의 공훈을 달성해내기까지 했다.
‘나한테 단 한 번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나, 원본초!’
열등감이 밀려들었다.
질투와 함께 살의가 솟구쳤다.
내가 아닌 다른 놈에게 따스한 미소를 지어주는 그녀의 모습에 오장육부가 모두 뒤틀리는 듯했다.
이것이 바로 ‘시기’란 말인가.
표기장군 이성휘,
아름다운 주군의 연심을 빼앗은 놈을 진심으로 증오하게 되었다.
“저 자가 바로 천하제일검인가!”
“혈혈단신으로 뛰어들어 간적들을 무찌르고 전(?) 태위(太?) 조숭을 구했다는 소문을 들은 적 있네!”
원소군 장수들이 놀란 목소리로 천하제일검의 무용을 칭송했다.
황실과 조정을 구해낸 한나라의 검.
300여 명에 달하는 적들을 물리친 일기당천.
또한 천하제일검은 과거에 십상시들의 습격을 받았던 주군 원소를 구해낸 전적이 있었기에 더욱 이성휘를 칭송하기 바빴다.
그 점을 국의는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일기당천의 괴물이라도 결국에는 사람이다! 날카로운 창검에 온몸이 베이고 찢겨나가면 결국 죽을 수밖에 없거늘!’
천하제일검 이성휘와 관련된 무용담들을 수도 없이 많이 들어보았다.
십상시의 난을 시작으로,
그는 낙양에서 본격적으로 수많은 활약을 세웠다.
또한 주군으로 섬기게 된 조조를 따라 중원 전역을 누비면서 이루 헤아릴 수 없는 위업들을 달성한 끝에 황실과 조정, 민중들로부터 천하제일검이라는 무명으로 불리게 되었다.
그러나 국의는 이성휘와 관련된 무용담들의 대부분이 조작한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겼다. 천하제일검의 존재를 결코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태원군(太??)은 완전히 적들의 소굴입니다. 척후들의 보고에 따르면 무려 10여 만 명이 넘는 병력들이 주둔하고 있다고 합니다.”
가녀린 목에 하얀 삵의 가죽을 두르고 있던 여성이 손가락으로 지도를 가리키면서 설명했다.
흑산적의 소굴은 태원군이다.
적들은 태원군을 중심으로 강대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상당군에서 교전을 벌였던 흑산적 전력들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비장(??) 장연과 함께 천하를 어지럽혔던 흑산적의 정예군단들은 아직 움직이지 않았다.
“음…. 꽤나 신중하네요.”
조운의 설명을 경청하던 순유가 작게 한숨을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놈들은 단순한 도적이 아니다.
군략의 기본을 알고 있는 놈들이 분명했다.
수많은 전장들을 누비면서 몸으로 터득해낸 본능에 가깝다. 흑산적의 우두머리인 장연과 그 휘하의 두령들은 교활하면서도 노련한 모습을 보였다.
“태원군은 병주 전역에 뿔뿔이 흩어진 병력들을 모으기 좋은 곳이에요. 만약 아군이 태원군을 공격하면 인근에 매복하고 있던 흑산적들이 사방에서 달려들겠죠.”
흑산적은 무려 10여 년 동안 병주 지역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해온 세력이다.
누구보다 지리를 잘 알고 있었으며,
또한 범의 아가리로 들어온 사냥감들을 어떻게 몰아세우는지도 훤히 꿰뚫고 있었다.
순유는 흑산적은 항상 아군보다 한 발 앞서서 공격해올 것이라며 경계를 요구했다.
“어떻게든 태원군을 떨어트려야 해요. 계속 태원군을 좌시한다면 흑산적은 몇 번이고 다시 세력을 불려나갈 테니까요.”
상석에 앉은 채 군사회의를 지켜보던 금발의 여인이 손가락으로 제 뺨을 툭툭 치면서 입을 열었다.
반드시 태원군을 무너뜨려야 한다.
태원군은 흑산적의 중심지,
또한 그 옆에 위치한 태행산맥(太行山?)은 흑산적 세력이 발호한 성역이었기 때문이다.
중심지와 성역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계속해서 흑산적 세력이 부활하여 아군을 위협할 터.
그를 정확하게 꿰뚫어본 원소는 태원군과 태행산맥을 점령하는 것이야말로 흑산적 세력을 완전히 소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여겼다.
“정로장군.”
“예, 주군.”
원소의 부름에 국의가 가슴에 손을 얹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선봉을 맡기겠어요. 태원군으로 이어지는 길을 여세요.”
“…알겠습니다.”
잠시 짧게 침묵하던 국의는 이내 수긍한 듯 명령에 순응했다.
매우 겸허한 모습이었으나,
그 속내는 질투로 거침없이 타오르고 있었다.
중앙 상석에 앉은 원소와 그 아래에 위치한 자리에 앉은 이성휘를 바라보던 국의는 절치부심하듯 속마음을 불태우는 불길을 애써 억눌렀다.
* * *
군사회의를 끝낸 뒤,
원소는 곧장 이성휘를 군막으로 불러들였다.
허심탄회하게 담소를 나누고 싶었는지 원소는 이성휘를 불러들임에 있어 거침없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오랜만이에요, 성휘.”
군막 안으로 들어온 이성휘를 향해 금발이 여인은 화사한 미소를 지으면서 기뻐했다.
이윽고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뼉을 짝 치면서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아! 이제는 표기장군이니 제가 오히려 존대를 해야겠죠.”
처음에 봤을 때 성문교위(?門??)였던 사내가 어느덧 표기장군(????)이 되어 있었다.
표기장군이 어떤 무관직인가.
대장군(大??)의 바로 아래에 해당되는 관위였다.
군부의 수장을 보필하는 일곱 장군들 중 우두머리에 해당되는 표기장군이 된 이성휘는 원소조차 머리를 조아려야 할 정도로 높은 위치에 서게 된 것이다.
“…괜찮습니다.”
황금처럼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남원씨 가문의 여식으로부터 낯간지러운 말을 듣게 된 이성휘는 금방 난색을 보였다.
그녀보다 높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니,
본인 스스로도 많이 부담스러운 듯 보였다.
귀여운 반응을 보이는 표기장군의 모습에 여남원씨 가문의 여식은 장난스러운 미소를 쿡쿡 터트렸다.
그 모습이 마치 동년배처럼 지내는 남동생을 놀려먹는 짓궂은 누나를 보는 듯했다.
“황실과 조정의 마음에 쏙 들었나 보네요. 본디 표기장군은 황실과 조정의 총애를 받는 무관만이 오를 수 있는 무관직이니까요.”
표기장군에 임명된 무관들 중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당연히 곽거병이다.
황제의 외친(外?)이며,
한나라 황실의 총애를 듬뿍 받았던 기린아(???).
군문에 몸을 담은 지 불과 3년 만에 표기장군에 임명된 곽거병은 그 총애에 화답하듯 강대한 세력을 구축했던 흉노를 상대로 연전연승을 거둠으로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전쟁에 종지부를 찍어버렸다.
“과분한 은혜를 입었습니다.”
“흐응…. 여전하네요, 성휘는. 조금쯤은 거만해져도 될 텐데요.”
항상 스스로를 과소평가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원소는 작게 불만을 품었다.
하지만 이내 받아들였다.
그것이 천하제일검이라 불리는 사내의 타고난 성품일 테니까.
많은 것들이 달라졌으리라 생각했건만…,
표기장군이 되었음에도 그는 여전했다.
“푸훗.”
그 모습에 원소는 두 손으로 입가를 폭 가린 채 웃음을 터트렸다.
황실과 조정,
수많은 백성들로부터 추앙을 받고 있었음에도….
자신의 눈에는 언제나 귀여운 동생처럼 보였다.
“성휘는 제가 보고 싶지 않았어요?”
군막으로 들어온 이성휘에게 한 걸음 다가선 원소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지으면서 물었다.
보조개가 보일 정도로 환하게 웃으며,
애써 수줍은 마음을 감추려는 듯 도톰한 입술을 달싹였다.
마치 사랑하는 연인에게 고백을 하는 것처럼 직접적인 물음을 건넨 원소는 두근대는 심정으로 대답을 기다렸다.
“예, 보고… 싶었습니다.”
또랑또랑하게 빛나는 원소의 애절한 시선을 무시할 수 없었던 이성휘는 결국 본심을 꺼냈다.
그 본심을 들은 원소가 함박웃음을 지으면서 기뻐한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천하를 손아귀에 넣은 것처럼,
환한 미소로 하여금 진심어린 환열을 내비쳤다.
“크흠…! 크흠흠!”
항상 우아하고 여유 넘치던 모습을 보이던 하북의 여걸이 부끄러움에 몸 둘 바를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였다.
본인이 먼저 물은 주제에,
설마 이성휘가 이렇게 과감하게 대답할 줄은 몰랐는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목덜미는 물론 귀까지 달아올랐다.
얼굴을 마주할 수 없을 정도로 부끄러웠는지, 이성휘를 빤히 응시하던 시선을 옆으로 돌린 채 당장 터질 것만 같은 가슴을 진정시켰다.
‘뭐, 뭐죠…?! 제가 아는 성휘는 이렇게 과감한 성격이 아니었는데!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어물쩍 대답을 피하던 게 성휘의 반응이잖아요! 설마 나를 유혹하려고 일부러…!’
대답을 은근슬쩍 회피하면서 곤란하다는 반응을 보이면 크게 놀려줄 생각이었는데.
머릿속이 새하얗게 물들었다.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를 정도였다.
“본초 님.”
“예, 예! 무슨 일이죠…?”
이성휘의 부름에 원소가 화들짝 놀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에 이성휘는 잠시 침묵한 뒤,
초조한 기색으로 자신을 바라보던 원소에게 조심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머리… 자르셨군요.”
“아.”
조심스러운 물음에 원소는 탄식을 흘리면서 어깨까지 짧게 자른 자신의 머리카락을 가렸다.
“네…. 짧게 잘랐어요.”
원래 허리까지 늘어뜨린 장발이었으나,
짝사랑하던 사내가 자신의 오랜 친우와 결국 맺어졌던 광경을 보고서 머리를 잘랐다.
그때 느꼈던 아픔을 다시 상기한 원소는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실연의 아픔을 입혔던 사내가 단발머리를 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시선이 몹시 부끄러웠던 원소는 그만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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