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9화 〉 309. 조각을 맞추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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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공. 두장. 손경. 왕당.
비장(??) 장연을 추종하는 휘하 두령들이 태원군(太??)과 상군(上?) 방면에서 몰려들었다.
원소 년은 고립된 상태다.
사면초가에 몰린 다름없는 원소는 결국 항복을 선언할 수밖에 없을 터.
험준한 산맥지대를 넘자마자 상당군을 강습한 것은 원소의 실수였다. 그 무리하고 과감한 공격이 도리어 흑산적 세력을 자극시키는 기폭제가 되고 말았다.
“흑산(?山)의 호걸들이여, 같은 피를 나눈 형제들을 죽인 잔악한 독부가 바로 저기에 있다!”
발해군(???)에서 시작하여 기주 전역을 통일했던 원소는 치안과 질서를 어지럽힌 흑산적 세력을 수차례 토벌한 바 있었다.
수천 명의 수급을 벤 것은 물론,
포로로 잡힌 흑산적 병사들을 산 채로 땅에 파묻어버리기까지 했다.
기주 조국(?國)과 거록군(巨??) 방면에서 위세를 떨치다가 결국 원소에게 대패하여 병주로 쫓겨난 흑산적 세력들은 언젠가 되갚아주겠노라는 복수심을 뼈에 새긴 채였다.
“원소, 그 빌어먹을 년을 범해라!”
“여남원씨 가문의 종년을 기필코 찢어발기겠다!”
수많은 형제들을 잃었다.
지독한 독부에게 모두 살해당하고 말았다.
눈앞에서 원소군에게 처형당한 동료들의 최후를 목격한 바 있었던 흑산적 병사들은 절치부심했던 증오를 한껏 발산하면서 하북의 패자에게 검을 겨눴다.
“그리 둘 것 같으냐!”
“주군의 존함을 감히 그 더러운 입에 담지 마라!”
원소군 장수였던 여광과 여상이 사방에서 달려드는 흑산적 세력을 상대로 분투했다.
하북을 제패한 세력의 힘을 보여주듯,
원소군은 사면을 포위한 십만 대군을 상대로 무려 한 달 동안 연전연승을 거두는 기염을 토해냈다.
“놈들은 오합지졸이다! 기주의 용사들이여, 우리들의 주군께서 이 싸움을 지켜보고 계신다!”
우리는 북방의 귀신을 물리쳤다.
하북 최강이라 불리던 공손찬군을,
유주를 석권했던 최강을 기어코 절벽 아래로 떨어트렸다.
발해군에서 거병했을 때부터 계획해온 오랜 숙원이었던 하북 통일을 이뤄낸 원소군은 하늘을 찌를 듯한 기세로 흑산적 세력을 격파해냈다.
“주군! 이 국의가 있는 한, 그 어떤 놈들도 감히 주군의 존체를 위협할 수 없을 겁니다!”
국의가 호기롭게 소리치면서 전장을 바라보고 있던 원소에게 경애를 보냈다.
황금처럼 고귀하게 빛나는 금발.
고결함에 물든 붉은 눈동자와 기품 넘치는 속눈썹.
순수하고 청순한 매력이 담긴 새하얀 살결과 황금으로 조형한 꽃봉오리처럼 정결한 용모까지.
흔들림 없는 시선으로 수만 명의 병력들이 각축장을 벌이고 있는 전장을 바라보는 원소의 모습은 국의의 가슴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었다.
‘주군, 당신을 품을 수 있는 사내는 드넓은 천하에 이 국의 밖에 없다는 것을 알게 되실 겁니다!’
품고 싶다.
저 여인을 품에 안고 싶다.
대명문가의 얼녀로 태어나 천하를 제패하겠다는 야욕을 품은 저 여걸을 내 여자로 만들고 싶다.
나에게 사랑을 속삭여주며,
침대 위에서는 한껏 음란한 교태를 부릴 터.
청순하고 고아한 여인이 오로지 자신의 색채로 천천히 물들어가는 것을 상상한 국의는 온몸이 바르르 떨릴 정도의 열락을 경험했다.
“정로장군.”
“예… 예! 주군!”
잠시 망상을 품던 국의는 자신을 부르는 원소의 목소리에 정신을 차렸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아름다운 주군의 하명을 기다렸다.
“군세를 이끌고 곡원현(???)을 공격하세요.”
“곡원현… 말씀입니까?”
원소의 명령에 국의는 의아함을 감출 수 없었다.
곡원현을 공격하라니.
남쪽에 위치한 작은 고을이 아니던가.
사방이 포위되어 있는 형국에 병력을 차출하여 주변 거점을 공격하라는 것은 좀처럼 납득되질 않는 명령이었다.
게다가 곡원현은 특공을 감행하면서까지 탈환할 정도의 군사적 이점을 가진 거점도 아니었다.
국의는 원소가 내린 명령을 좀처럼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할 수 없는 명령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어째서 주군은 상당군을 무리하게 급습했단 말인가. 흑산적 놈들의 화만 돋울 뿐인 것을.’
무리하게 상당군으로 진공한 탓에 병주 전역의 흑산적 세력을 분개하게 만들었다.
험준한 산맥에 의존하지 않고,
평야를 전장으로 택한 원소의 행동은 너무도 무모했다.
혹시 주군께서 실수하신 것인가…?
아니,
그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완벽과 완전을 겸비하신 주군께서 이런 실수를 범할 리 없다.
분명 어떤 ‘이유’가 있기 때문이리라.
이 국의가 보지 못한 것을,
분명 주군께서는 꿰뚫고 계신 것이 틀림없다.
원소를 절대적으로 신임하는 국의였기에 가슴속 의문을 잠시 접어둔 채 명령을 받아들였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국의는 겸허하게 예를 취하면서 주군의 명령에 복종했다.
주군의 속내를 알 순 없으나,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그저 순응할 뿐이다.
이번 전쟁에서 큰 공훈을 세워 주군의 부마로 인정받겠다. 크게 승전하여 병주 전역을 바친다면 그녀도 나를 부마로 인정할 수밖에 없을 테니.
‘나를 따르는 군부의 장수들이 수십 명이 넘고, 휘하에 둔 부곡들은 수천 명에 이른다. 이 국의가 전선을 이탈하게 된다면, 천하를 모두 통일하겠노라는 주군의 야망은 일장춘몽(一??夢)처럼 흩어질 터.’
원소,
너는 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수많은 전공과 공훈들을 거둔 이 국의가 세력을 배신하게 된다면 네 야망은 결국 조맹덕에게 짓밟힐 터이니.
만약 이번에도 내 구혼을 거절한다면 협박과 위압을 동원할 것이다.
군부에 행사하고 있는 영향력을 모두 동원하여 여론을 형성한다면 충성스러운 심복들로부터 보호를 받고 있는 그녀라도 결국 구혼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리라.
‘계교에서 공손찬군이 자랑하던 백마의종을 무너뜨렸다. 역경루에서 북방의 귀신을 불구덩이에 떨어트렸다. 이제 흑산적 세력을 멸망시키고 병주를 손아귀에 넣는다면…!’
아름다운 주군을 품을 수 있다.
주군의 처녀를,
남자를 모르는 순결한 몸을 마음껏 범할 수 있다.
변경 중에서도 변경인 양주 서평군에서 태어난 국의는 혈통과 출신에 큰 강박감을 느끼고 있었기에 원소의 부마가 되는 것을 광적으로 집착했다.
사세삼공의 대명문가로 불리는 여남원씨 가문의 혈통에 이 국의의 피가 더해질 터.
원술과 그 식솔들을 모두 몰살시킨다면 자신의 아이가 곧 적통이 되는 것이었기에 더욱 집착할 수밖에 없었다.
* * *
원소의 명을 받들게 된 국의는 휘하 병단들을 이끌고 곡원현을 공격했다.
급습은 매우 순조롭게 전개되었다.
설마 사방이 포위당한 원소군이 공세를 감행하리라고는 미처 예상하지 못했는지, 곡원현을 수비하던 흑산적 병력은 오합지졸에 불과했다.
흑산적의 잡병들은 결국 국의의 맹공을 일합조차도 버티지 못한 채 무너지고 말았다.
“놈들을 모두 쓸어버려라!”
정로장군 국의가 크게 일갈하며 줄행랑을 치는 흑산적의 배후를 공격했다.
맹대, 여위황 등의 장수들이 달려들자 황급히 도망치던 흑산적 병력은 전멸을 당하고 말았다. 구사일생으로 도망친 흑산적은 불과 소수에 불과했다.
“정로장군, 곡원현을 접수했네.”
“헌데 어찌하여 주군께서는 곡원현 공격을 명령하신 것이오? 곧 흑산적 놈들이 반격을 개시할 게 뻔하지 않소.”
국의와 함께 곡원현 공격에 투입되었던 원소군 장수들이 의아함을 드러냈다.
혹시 기주에서 지원군이 오는 것인가?
아니,
그런 연락은 들은 적 없다.
게다가 만약 기주에서 지원군이 오는 것이라면 동쪽에 위치한 고도현(高??)을 공격했을 것이니.
흑산적을 몰아내고 곡원현을 점거한 원소군 장수들의 의문은 나흘이 지난 뒤에 밝혀지게 되었다. 곡원현 인근을 수색하던 척후병들이 소식을 가져온 덕분이었다.
“조조군입니다! 조조군이 오고 있습니다!”
척후병이 다급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조조군이 오고 있다.
그들은 앞을 가로막는 흑산적 군세를 모조리 무찌르면서 상당군에 진입했다.
노도처럼 밀려드는 조조군의 기세에 흑산적 세력은 위로 쫓기듯이 점점 북상하고 있었다. 조조군의 맹공에 흑산적 두령들이 무조건 북쪽으로 도망쳤기 때문이다.
“표기장군 이성휘가…! 황군(??)을 이끌고 왔습니다!”
“화, 황군!”
척후병의 보고에 국의가 놀라 소리쳤다.
황군.
황제의 군대가 오고 있다는 뜻이 아닌가.
무명 높은 천하제일검이 황제의 군대를 이끌고 상당군에 도달하였음에 경악을 토해냈다.
“저기 조조군이 보입니다!”
“표기장군의 대장기… 천하제일검이 선두에서 군세를 이끌고 있는 것 같습니다!”
부우우우우우우!!!
지평선 너머에 출현한 수천의 기병부대.
원소군 장수들이 그를 목격함과 동시에 고각소리가 마치 우레처럼 쩌렁쩌렁 울렸다.
황군(??)의 깃발을 든 병력이 도착했다.
만승천자의 군대가 황실을 상징하는 군기들을 높게 치켜든 채 위풍당당한 기염을 뽐냈다.
* * *
표기장군(????) 이성휘가 당도했다.
이성휘가 선두를 이끌었으며,
여포와 장료가 좌익군과 우익군을 지휘했다.
휘황찬란한 웅장함과 사나운 용맹을 겸비한 모습으로 원소군 본대가 주둔하고 있던 장자현(?子?)으로 입성하게 되었다.
“성휘…!”
소식을 들은 원소는 반가움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맞이했다.
예상했던 대로,
수많은 전공들을 세운 끝에 표기장군에 임명된 그가 흑산적 토벌에 참전한 것이다.
너무도 길고 외로웠던 이별 끝에 이성휘와 다시 재회하게 되었음에 원소는 두근거리는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그간 무고하셨습니까.”
“네, 만수무강할 것처럼 잘 지냈답니다.”
이성휘의 물음에 원소가 장난기를 담아 대답했다.
헤어졌던 연인이 재회한 것처럼,
봉숭아물이 폭 물든 것 같은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물씬 풍겨왔다.
서로 연인관계가 아닐까.
무심코 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원소는 이성휘에게 매우 각별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수줍게 물든 뺨.
촉촉하게 젖은 눈동자.
도톰한 입술 사이로 보이는 새하얀 치아까지.
‘뭐냐, 그 얼굴은! 나한테는 단 한 번도 따스한 미소를 지어준 적 없는 주제에!’
항상 차갑고 냉정한 면모들만 보이던 아름다운 주군이… 내가 아닌 다른 사내에게 진심어린 미소를 보이고 있음에 국의는 오장육부가 뒤틀리는 듯한 불쾌감을 경험했다.
분명하다.
틀림없이 주군은 저 사내를 연모하고 있다.
사랑스럽게 물든 원소의 풋풋한 미소를 본 국의는 이성과 사고를 불태울 것 같은 분노를 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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