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8화 〉 308. 조각을 맞추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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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손찬을 죽인 원소가 상당군(上??)에 있다.
천재일우의 기회가 굴러들어왔다.
그 년을 죽이면 하북 4개 주는 다시 뿔뿔이 흩어지게 될 터.
하북의 패자가 탄생하는 것을 결코 원치 않았던 흑산적 세력은 전력을 다해 달려들었다.
만약 상당군으로 들어온 원소가 기주로 도망쳐버리면 결국 자신들은 공손찬군처럼 몰락과 멸망을 피하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죽여라! 원소 년을 죽여라!”
“그 빌어먹을 년을 죽인 호걸에게는 3대가 모두 쓰고도 남을 재물을 주겠다!”
구르르르르르르.
흙먼지가 자욱하게 일며 군세가 출현했다.
원소를 죽이기 위한 병력이었다.
도합 5만 명이 넘는 병력이 원소군이 주둔하던 상당군을 포위해버렸다.
절대로 놓치지 않겠다는 광기와 집착을 엿볼 수 있었다.
“적들이 온다! 물러서지 마라!”
과시욕을 드러내듯 휘황찬란한 갑옷을 걸친 남성이 검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온몸에 피칠갑을 한 채 선두를 지키고 있던 국의는 노도처럼 밀려드는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면서 가슴이 들끓는 것을 느꼈다.
무수히 많은 대군이 달려온다.
분명 저들은 출세를 위한 제물이 되어줄 터.
더러운 도적들을 모두 멸절시키고 병주의 군현들을 모두 장악한다면 아름다운 주군의 반려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으핫핫! 원소의 목은 이 곽대현이 벨 것이다!”
두터운 갑옷을 걸친 거한이 부하들과 함께 원소군의 선두에 뛰어들었다.
용맹과 무력을 힘껏 뽐내듯,
날카로운 창검들이 삼면에서 달려들었음에도 흑산적의 맹장은 거대한 대검을 휘두르며 저항했다.
부아아앙!!
대검의 파쇄에 놀란 원소군 병사들이 잠시 물러섰다.
그때 하얀 삵이 달려들었다.
백아(白?)의 아름다운 갑옷을 두른 채,
잿빛처럼 진한 회색빛 머리카락을 찰랑이며 거대한 맹장에게 맞섰다.
“웬 계집이…!”
곽대현이 놀라 중얼거렸다.
그 순간,
날카로운 창끝이 거한의 목덜미를 꿰뚫었다.
“카아… 카아악!!”
흑산적의 맹장이 핏물을 울컥 토했다. 이윽고 뒤로 쓰러졌다.
콰아앙!!
거한이 말에서 굴러떨어지고 말았다.
강한 굉음과 함께 밑으로 사라진 곽대현의 모습에, 뒤를 따르던 부하들은 아연실색한 채 비명을 토해냈다.
“두, 두령!”
“앞서가던 두령이… 저 계집에게 당했다!”
잔악무도하기로 악명이 높은 두령이 가슴팍에도 미치지 못할 작은 계집에게 쓰러졌다.
그것을 어찌 믿을 수 있겠는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침묵이 확산되었다.
단숨에 목이 꿰뚫려 절명하였음에도 여전히 핏물을 울컥울컥 토해내는 곽대현의 시체를 바라보던 부하들은 앞을 가로막고 있는 계집을 노려보았다.
“주군에게는… 결코 다가갈 수 없다. 이 상산의 조자룡이 있는 한…!”
날카롭게 벼린 장창을 늘어뜨린 채 앞을 막아선 조운의 모습은 사나운 삵을 보는 듯했다.
아름다운 여인의 탈을 쓴 맹수의 위압감에 곽대현의 부하들은 두령의 복수를 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는 벌벌 떠는 모습을 보였다.
“쳐라!”
“빌어먹을 계집년이!”
이윽고 전의를 회복한 흑산적 병사들이 고함을 내지르면서 달려들었다.
상대는 계집이다.
게다가 제 무력을 과신하듯 혼자서 앞을 막고 있지 않은가.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을 본 흑산적 병사들은 두령을 죽인 계집의 수급을 베고 공적을 차지할 생각으로 가득했다.
“더러운 악적들이…!”
조운이 이를 빠득 갈면서 중얼거렸다.
무고한 백성들을 살해하고,
그들의 재물을 강제로 갈취했던 악적들.
하북 백성들의 평화와 안위를 위해서라도 남의 생명을 망설임 없이 빼앗고 유린해온 악적들은 모두 사라져야 마땅할 것이다.
파아아앙──!!
거센 파공음이 울렸다.
뒤이어 날카로운 파쇄가 날아들며,
병장기를 쥔 채 달려들던 흑산적들을 모두 양단해버렸다.
“커헉!”
“크흐, 카하악!!”
위로 핏물이 솟구쳤다.
물보라가 크게 번져나가듯이,
사방이 온통 핏물로 점철되었다.
달려든 흑산적들을 한꺼번에 베어내며 신예에 가까운 창술을 과감하게 뽐냈다.
새하얀 갑옷을 걸친 채 목에 하얀 삵의 가죽을 둘둘 두르고 있는 조운의 모습은 흑산적에게 공포의 대상으로 등극하게 되었다.
“적들을 분멸하라!”
국의가 크게 소리쳤다.
적들이 술렁이고 있다.
승기가 아군에게 넘어왔음을 직감한 국의는 방어를 풀고 공세에 나설 것을 명령했다.
“도적들이 당황하고 있다!”
“조운 장군을 따르라! 놈들을 모두 섬멸하라!”
원소군 기병들이 질주를 시작했다.
드넓은 바다를 크게 가로지르듯,
새카맣게 밀려든 흑산적 대군을 가차없이 찢어발겼다.
아름다운 주군을 대신하여 지휘를 맡게 된 국의는 조운에게 공훈을 빼앗기기 싫었는지, 용전을 벌인 그녀를 잠시 뒤로 물린 채 스스로 전선으로 나섰다.
* * *
조조, 조홍과 작별인사를 간략하게 나눈 이성휘는 황실과 조정의 기대를 한껏 받으면서 출진했다.
쿵. 쿵. 쿵. 쿵.
병사들이 질서정연하게 움직였다.
잘 훈련된 정예병임을 증명하듯 황제의 군대는 엄격한 군율과 드높은 사기를 자랑했다.
표기장군(????) 이성휘가 이끄는 3만의 병력은 진류군에서 하내군을 통과하며 점점 북쪽으로 나아가게 되었다.
“괜찮아? 무리하는 것 같은데.”
방천화극을 든 금발의 여인이 이성휘와 나란히 말을 몰면서 물음을 보내왔다.
그 성격 나쁜 여자와,
태중에 품고 있는 아이가 많이 걱정될 터.
혹시 이성휘가 너무 무리를 하는 게 아닐까.
그것이 우려스러웠던 여포는 곁눈질로 이성휘의 눈치를 슬쩍 살폈다.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이었지만 분명 그 눈빛에서는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의미심장함이 점철되어 있었다.
“괜찮다.”
아니,
전혀 괜찮지 않은 것 같은데.
이성휘의 눈치를 살피던 여포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끔찍이도 사랑하는 아내가 만삭인 상태가 아닌가.
심려에 찬 이성휘의 모습을 하염없이 바라보던 여포는 조조에게 가슴이 아릴 정도의 부러움을 느꼈다.
‘나, 나도 언젠가 임신하면… 우리 주인님한테 걱정을 받을 수 있으려나. 그랬으면 좋겠다….’
주인님의,
이성휘의 아이를 가지고 싶다.
그 여자처럼 이 사내에게 걱정을 받고 싶었다.
분명 노심초사하며 걱정해주겠지.
자신을 걱정하는 이성휘의 모습을 잠시 상상한 여포는 얼굴이 폭 달아오르게 되었다. 잠시 망상을 떠올린 것만으로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였다.
“후후.”
얼굴을 붉히고 있던 여포를 목격한 흑발의 여인이 히죽 웃음을 터트렸다.
놀고 싶은 장난감을 발견한 듯이,
장난기 넘치는 미소를 지으면서 바라보았다.
그런 장료와 시선을 마주하게 된 여포는 아연실색한 채 고개를 푹 숙여야 했다.
분명 저 귀신같은 눈썰미를 자랑하는 장료라면 자신의 속마음을 훤히 간파했으리라 확신하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문화만 불렀을 텐데….”
고개를 돌린 이성휘가 가후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 있던 작은 다람쥐 같은 여인에게 물었다.
순유였다.
머리에 9층 석탑이 생긴.
결국 7촌 고모에게 중원 전역에서 유행하는 도색소설들의 작가임을 들킨 순유는 그 뒤로 매우 엄격하고 혹독한 삶을 강요받고 있었다.
“계속 허도에 있었다간… 분명 고모님의 감시에 말라죽었을 거예요!”
“과장이 심하군.”
“전혀 과장이 아니에요! 진짜 하루 종일…! 고모님께서는 저를 항상 곁에 두고서 감시한다고요!”
영천순씨 가문의 수치.
천하에 결코 밝혀져선 안 될 치녀.
순욱은 그동안 몇 번이고 자신을 엿 먹였던 원흉을 곁에 둔 채 감시하기 시작했다.
혹시라도 또 빌어먹을 글을 쓰진 않을까, 매우 철저하게 지척에서 두 눈을 부릅뜬 채 24시간을 경계하고 있었다.
“주군께서도 유능한 군사가 두 명인 게 좋으시잖아요. 제가 이번에 기가 막힌 전술과 군략으로 도와드릴게요!”
자신을 믿어달라는 듯,
순유가 제 가슴을 콩 치면서 외쳤다.
그녀의 호언에 이성휘가 고개를 끄덕였다.
머리가 조금 맛이 가긴 했지만….
그녀는 당대에 그 명성을 따라올 자가 드물 정도로 뛰어난 군략가였기에 믿기로 했다.
“대체 무슨 일이시래? 상서령의 눈에 띌 때마다 비서랑께서 머리를 얻어맞으시던데.”
“영천순씨 가문의 집안싸움이겠지. 어쩌면…, 표기장군을 사이에 둔 치정극일지도 모르고!”
“오오.”
매번 순욱에게 머리를 얻어맞는 광경을 목격한 무관들이 쑥덕거렸다.
순유의 숨겨진 정체를 모르므로,
무관들은 같은 사내를 연모하게 된 7촌 고모와 조카의 치정극으로나 생각하고 있었다.
“표기장군!”
하내군을 통과한 3만의 병력이 천정관(???)까지 도달했을 때,
먼저 투입되어 병주의 상황을 탐색하던 척후병들이 급히 돌아왔다.
급보를 입수하였는지,
척후병들이 매우 다급한 모습을 보였다.
“원소군이 상당군에서 한 달 동안 흑산적과 수차례 교전을 벌였다고 합니다! 지금도 흑산적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을 겁니다!”
척후병들은 운 좋게도 원소군과 교전을 벌이고 있는 상당군의 부대들에 합류하기 위해 북상하던 흑산적 전령을 붙잡는데 성공했다.
그를 심문하여 정보를 얻어낸 척후병들은 하북 4개 주를 제패한 원소가 직접 상당군에서 고군분투를 벌이고 있음을 알렸다.
“원소가… 직접 왔다고?”
이성휘가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원소가 상당군에 있다.
십만 대군에 육박하는 흑산적 병력과 수차례 교전을 벌였다고 한다.
침음을 삼키면서 그것을 되뇐 이성휘는 모든 장수들을 소집하여 행군을 서두를 것을 명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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