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5화 〉 305. 폭풍전야의 그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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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태에 변화가 없는 자갈처럼 항상 무뚝뚝한 가면을 쓰는 사촌동생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물들었다.
조홍은 그를 믿을 수 없다는 듯,
두 눈을 부릅뜬 채 수줍음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사촌동생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헤실헤실 웃는 얼굴이라니!
조인은 옅게 미소를 지었을 뿐이나,
매번 무표정을 고수하는 사촌동생의 모습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는 조홍의 눈에는 헤실헤실 웃는 낯짝으로 보였다.
‘뭐야, 설마…! 설마 아니지…?’
에이, 설마.
아니겠지….
사랑에 빠진 여인처럼 달콤함에 젖은 눈길로 이성휘를 응시하는 조인.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어도,
은은하게 묻은 분위기를 통해 그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왜냐하면 자신 또한 이성휘를 볼 때마다 저렇게 푹 빠진 눈빛을 지을 테니까.
용모가 닮은 사촌이기 때문일까.
한 사내에게 푹 빠진 모습이 동전을 푹 찍어낸 것처럼 매우 유사했다.
“보, 보고… 싶었습니다.”
조인이 어색하게나마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속마음을 표현하고 싶은데,
어떻게 속마음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몰라서.
크게 당혹감을 느끼고 있는 그녀의 모습이 매우 선명하게 보였다.
“이렇게 다시 뵙게 되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손가락을 지분거리면서 수줍어하던 조인이 애써 용기를 내어 고개를 들었다.
시선을 함께 마주한 채,
직설적으로 자신의 진심을 전달했다.
감정이 풍부한 여인이었다면 능수능란하게 제 마음을 표현하면서 귀엽게 애교를 부렸겠지.
하지만 조인은 감정표현이 지극히 서투른 여인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치장하고 포장하는 말을 일절 생략한 채로 본심만을 그대로 전달했다.
바로 그것이 무뚝뚝하고 냉철하기 짝이 없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표현방법이었기 때문이다.
“감사합니다, 자효 님.”
그녀의 서툰 고백에 이성휘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고마움을 표현했다.
조인의 얼굴이 더욱 붉어졌다.
목석같던 가면은 어디로 가버렸는지,
기쁜 표정을 지으면서 환희에 물든 감정을 드러냈다.
“아, 네….”
무사히 내 마음이 전해진 걸까,
이성휘의 대답을 들은 조인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슬며시 고개를 들어 사랑하는 남성과 마주했다.
행복감에 벅차올랐다.
대답 한마디를 들었을 뿐인데도 그간 느꼈던 쓸쓸함이 모두 메워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잠깐, 잠깐!”
조인이 톡 건들면 활짝 열릴 것 같은 꽃봉오리처럼 수줍은 미소를 짓고 있었을 때,
아연실색한 채 당혹감을 발산하고 있던 흑발의 여인이 훼방을 놓듯 끼어들었다.
두 팔을 크게 뻗으면서 달콤한 분위기를 흘리고 있던 이성휘와 조인을 떨어트렸다. 강제로 제지하기 위해 끼어든 것처럼 조홍은 강경한 모습을 보였다.
“둘이 무슨 사이예요?! 서, 설마…! 지금 제가 생각하고 있는 그렇고 그런 관계는 아니겠죠!”
이미 확신하고 있음에도,
조홍은 이성휘에게 확인을 구했다.
설마 나와 언니에 이어… 자효까지.
결국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을 모두 함락시킨 이성휘의 무분별한 매력에 조홍은 그만 혀를 내두르고 말았다.
“표기장군을 더 이상 곤란하게 만들지 마. 그리고 언니께서 연모하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먼저 표기장군한테 꼬리를 친 건 너잖아.”
“윽!”
조인이 짐짓 화난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힐난하던 조홍을 저지했다.
그리고 언니께서 연모하던 상대를 먼저 빼앗은 쪽은 네가 아니냐며 반박할 수 없는 힐문을 보냈다.
조홍이 잠시 입을 꾹 다물었다.
선제(??)를 따지는 조인의 힐문에 조홍은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먼저 언니의 연인과 밀회를 보낸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나, 난…! 혹시 독이 들어있지는 않은지, 과연 언니에게 어울리는 남자인지 확인하려고 본 거야!”
“그 말을 믿으라고?”
“큭! 너도 결국 표기장군을 꼬셨잖아!”
“흥, 나는 적어도 너처럼 무분별하게 들이대진 않았어.”
“무분별?! 너 말 다했어!”
왁왁 소리를 내지르는 조홍.
무뚝뚝한 표정으로 받아치는 조인.
마치 아까 전으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둘 다 피장파장인 주제에,
서로 시시비비를 가리면서 싸우는 모습이 실로 격렬했다.
만약 이 모습을 조조가 보았다면 두 사촌들을 동일동시(????)에 똑같은 곳(저승)으로 보내줬을 것이다.
“가가!”
조홍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달라붙으면서 이성휘와 팔짱을 꼈다.
친분을 과시하려는 듯,
풍만한 가슴을 슬쩍 들이밀면서 유혹했다.
부드러운 유방이 두터운 팔에 짓눌린 채 일그러졌다.
“불쌍해서 한 번 동정을 베풀어줬더니 저 무뚝뚝한 석녀가 제 주제도 모르고 매달리는 거죠? 그렇지 않고서야 저한테 푹 빠진 가가께서 얼음장 같은 여자한테 눈짓을 줬을 리 없잖아요!”
조홍의 외침에 이성휘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하지만 이내,
이성휘는 조인과의 관계를 털어놓았다.
“자렴 님을 진심으로 연모하듯, 저는 자효 님 또한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습니다.”
조홍을 기만하고 싶지 않다.
또한 거짓말로 둘러대어 조인에게 상처를 주고 싶지도 않았다.
그래서 이성휘는 조홍에게 미움을 받게 될 것을 각오하고서 순순히 제 마음을 털어놓았다.
“저, 저 석녀를요…? 왜요?”
조홍이 경악어린 표정을 지은 채 물었다.
분노와 배신감이 담긴 물음이 아닌,
당혹감과 얼떨떨함으로 물든 물음이었다.
설마 저 얼음장 같은 석녀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기에….
이성휘가 애교와 귀염성이라고는 1도 찾아보기 어려운 사촌동생에게 마음을 줬다는 사실이 믿을 수 없었기에 놀란 반응을 보였다.
“혹시 협박이라도 당했어요? 교제하는 척 행동하지 않으면 저와 가가의 관계를 언니한테 폭로해버린다든지….”
“그런 일은 없습니다.”
정말로 믿을 수 없었는지,
조홍은 협박의 여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며 조인을 의심했다.
과연 대단한 자매애가 아닐 수 없었다.
“우리 가가한테 무슨 짓 했어, 이 석녀야!”
“…….”
조홍의 날카로운 외침에도 조인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했다.
답할 가치도 없을 뿐더러,
경박한 성격의 사촌과 입씨름을 할 이유 또한 없었기 때문이다.
조인은 오직 이성휘에게 시선을 둘 뿐이었다.
‘자렴 님을 진심으로 연모하듯, 저는 자효 님 또한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습니다.’
가슴이 크게 요동쳤다.
심장소리가 생생하게 들릴 정도로 격하게 박동치고 있었다.
방금 전 이성휘가 했던 말을 떠올린 조인은 심장이 펑 터질 것처럼 격한 기쁨과 환희를 느꼈다.
진심으로 연모하는 남성이 마찬가지로 자신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게 된 조인은 제자리에서 펄쩍펄쩍 뛰면서 기뻐하고 싶을 정도로 환열에 찬 상태였다.
“자효 님.”
“네… 네엣!”
갑작스러운 이성휘의 부름에 조인은 당혹감이 역력한 반응을 보였다.
긴장감에 혀가 꼬였는지,
순진무구한 소녀처럼 백치미를 드러내며 대답했다.
푸핫!
조홍이 웃음을 터트렸다.
그 웃음소리에 조인의 얼굴은 당장 펑 폭발할 것처럼 붉어졌다.
“진짜 멍청해보였어.”
“시, 시끄러…!”
사촌의 이죽거림에 조인은 볼멘소리를 냈다.
스스로도 부끄러웠는지,
제발 쥐구멍이라도 있으면 좋겠다는 심정을 드러냈다.
“자효 님, 서주 정벌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네.”
조인은 부하로부터 ‘하늘이 내린 장수’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뛰어난 군략과 용병술을 갖춘 명장이다.
조조군 최고의 명장.
위나라 건국의 일등공신.
지용(??)을 모두 겸비한 굴지의 영웅.
이성휘는 도겸군 정벌의 지휘을 맡은 조인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하늘이 내린 장수라면 분명 서주 전역을 정복하는 성과를 거두리라.
“가가께서도 병주로 출정하시잖아요? 저는 저 석녀보다도 우리 가가가 걱정이에요.”
“…….”
남편을 걱정하는 것은 좋지만,
사촌동생도 걱정하는 게 좋지 않을까.
전쟁에 출전하는 조인을 눈곱만큼도 걱정하지 않는 조홍의 모습을 본 이성휘가 중얼거렸다.
“자렴 님, 제가 없는 동안 맹덕 님을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걱정 마세요! 이 평동장군이 있는데 어떤 놈이 감히 불온한 속셈을 품겠어요?”
이성휘의 말에 조홍은 자신감 넘치는 표정을 지으면서 제 가슴을 툭툭 두드렸다.
어느 누구도 감히 패국조씨 가문의 위세에 도전하지 못하리라.
사촌언니를 경애하는 믿음직한 충장(??)답게 조홍은 철통처럼 진류군을 수비하겠노라고 장담했다.
“우리 가가께서는 이 아내만 믿으세요!”
조홍이 생글생글 웃으면서 팔짱을 낀 채 매달렸다.
석녀는 결코 불가능한,
감정표현에 거침이 없는 조홍이기에 가능한 애정표현이었다.
물론 그로 인해 하마터면 일남군(???)으로 유배를 갈 뻔한 위기를 겪었음에도 이성휘를 향한 애정을 거둘 수 없었는지 진심어린 일편단심을 보냈다.
“아, 아내…!”
“측실도 아닌 내연녀께서는 잠시 빠져줬으면 좋겠는데.”
조홍이 여우처럼 익살스러운 눈웃음을 지으면서 뻣뻣하게 굳은 채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던 조인을 도발했다.
결국 관계를 인정받은 자신과 달리,
사촌동생은 아직 언니로부터 허락을 받아내지 못한 상태였다.
조인은 그 말을 뼈에 각인했다.
언니에게 허락을 받아내겠다.
저 경박한 여자도 해낸 일을,
진심으로 표기장군을 연모하는 내가 불가능할 리가 없었으니까.
“두고 보자….”
조인이 두 눈을 부릅뜨며 중얼거렸다.
“어디 한 번 해보든가. 물론 나는 그동안 우리 가가와 뜨겁게 사랑을 나누겠지만 말이야.언니 다음으로 내가 우리 가가의 아이를 가질 예정이거든.”
그 말에 조홍은 조소를 담아 응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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