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304화 (304/616)

〈 304화 〉 304. 폭풍전야의 그늘(2)

* * *

==========================

조조가 참화로 잿더미가 된 낙양을 버리고 영천군(?川?) 허현(??)으로 천도한 것은 제후들에게 자신의 영향력을 과시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협천자(??子)를 행함으로서,

천하의 모든 제후들을 발치에 두려는 생각이다.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은 채 영천군으로 수도를 옮긴 것을 통하여 조조의 한없는 오만함을 엿볼 수 있었다.

“이건 명백한 도발입니다!”

“어떻게 신하가 황상과 상의조차 없이 독단으로 천도를 결정할 수 있단 말입니까!”

낙양을 불태우고 장안으로 천도했던 동탁의 만행과 대체 뭐가 다르단 말인가!

원소군 관료들이 연이어 목소리를 높였다.

예주 영천군은 조조군의 영토이며,

또한 조조를 보필하는 참모들의 고향이기도 했다.

심복과 측근들을 모두 실권을 거머쥔 요직에 배치시키면서 점점 수위를 높여가고 있는 조조군의 행보에 원소군은 위태로움을 느낀 듯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허현의 궁궐이 점점 형태를 갖춰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 궁궐은 지독한 오만에 빠진 조맹덕이 쌓은 모래성에 불과하오! 사상누각 따위가 어찌 낙양을 대신하여 한나라의 새로운 수도가 될 수 있겠소이까!”

원소군의 참모들 중 어느 누구도 허현을 새로운 수도로 인정하지 않았다.

허도(??)라고 부르지도 않았고,

조조가 황실과 조정의 결정을 대변하는 자로 인정하는 일 또한 없었다.

어찌 그 가짜놀음을 인정할 수 있겠는가.

원소를 추종하는 자들은 조조와 관련된 모든 것들을 부정하고 힐난하기 바빴다.

“주군, 조맹덕이 허현으로 수도를 옮긴 것은 주군과의 일전을 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치중종사(?中??) 심배가 말했다.

조조가 거점을 진류군에서 영천군으로 옮겼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진류군을 방패 역할로 둔 뒤,

새로운 수도로 선포한 영천군에서 전선을 지휘하기 위해서일 터.

이미 조조는 천하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대전(大戰)을 준비하고 있음을 뜻했다.

분명 그 간악한 계집은 황실과 조정을 차지했을 때부터 대국(大?)을 꿰뚫어본 것이리라. 중원의 패권을 순식간에 장악한 난세의 간웅답게 실로 치밀하고 교활했다.

“네, 그렇겠죠. 맹덕이라면….”

상석에 앉은 여인이 팔짱을 낀 채 중얼거렸다.

과연 맹덕이다.

벌써부터 결전을 준비하고 있을 줄이야.

거병을 한 이후부터 거침없이 권력의 정점으로 달음박질치는 조조의 행보에 원소는 두려움을 느끼기에 이르렀다.

“우리들도 결전을 준비해야죠.”

원소가 말했다.

그에 심배의 맞은편에 있던 남성이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주군.”

별가종사(????) 전풍.

원소의 명을 받들어 외정(外?)을 전담하고 있었던 전풍은 하북 4개 주의 상황을 보고했다.

“공손찬의 폭정에 오랫동안 시달렸던 유주(??)의 사대부와 호족들이 모두 주군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또한 공손찬 휘하에 있던 장졸들도 속속히 군문에 투항해오고 있다는 보고가 들리고 있습니다.”

전풍의 보고에 말석에 앉은 여성 장수가 입술을 꾹 깨물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유격장군(????) 조운.

부하들과 함께 원소군에 투항한 조운은 곧바로 원소로부터 장군에 임명되었다.

공손찬군에 있을 적에는 장군으로 임명받지 못했으나, 조운이 일군을 맡기기에 충분한 장수임을 직감한 원소는 항장 출신인 그녀를 유격장군에 임명하는 파격적인 행보를 보였다.

“병주(??)는 고간에게 맡기도록 하고…. 그럼 청주(??)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죠?”

고사리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으로 입술을 툭툭 건들면서 고심에 찬 표정을 짓고 있던 원소가 물었다.

그에 대답한 참모는 계리(??) 곽도였다.

“고람 장군과 장합 장군이 이끄는 정예군단이 마침내 낙안(??)에 이르렀다고 합니다.”

수십만 명에 달하는 황건적 세력을 정면으로 돌파한 고람과 장합이 낙안에 도달했다.

머지않아 북해에 이르게 될 터.

곧 청주에 똬리를 튼 황건적 세력을 일소할 수 있으리라.

고람과 장합은 유비군이 연전연승을 거뒀을 때처럼 계속해서 승전을 반복했다. 과연 안량과 문추를 필두로 하는 하북사정주(?北四??)의 맹장들이었다.

“벌써 낙안에 이르렀단 말이오?”

“엿새 동안 1천 리를 진군하여 황건적 세력을 궤멸시켰다고 합니다. 과연 대단하지 않습니까!”

병주에 고간을 보냈으며,

청주에 고람과 장합을 투입하여 황건적 소탕에 박차를 가했다.

또한 원소는 기도위(???) 최염을 유주로 보내어 공손찬의 폭정에 시달렸을 군현들을 위무하도록 명령했다.

“주군!”

원소가 휘하 참모들이 주도하는 군사회의를 경청하고 있었을 때,

장수 맹대가 다가왔다.

“조조군에서 서한이 도착했습니다.”

“서한 말인가요?”

원소의 물음에 곧 맹대는 진류군에서 도착한 서한을 건넸다.

이윽고 원소가 서한을 펼쳐보았다.

“곧 맹덕이 병주의 흑산적을 토벌하기 위한 병력을 출격시킨다는군요.”

이제 약조를 이행하겠다.

조조에게서 온 서한의 내용은 매우 간결했다.

마침내 병주의 험준한 산맥들에 의지한 채 온갖 악행들을 일삼아온 흑산적 세력에게 응분의 대가를 내릴 때가 온 것이다.

서한을 읽은 원소는 전풍과 심배에게 흑산적 토벌을 위한 군세를 편성하도록 명령했다.

* * *

하마터면 꼼짝없이 일남군(???)까지 먼 길을 떠날 뻔한 조홍은 두 손을 싹싹 빌면서 사죄를 한 덕분에 겨우 풀려나게 되었다.

눈치가 없는 것도 정도껏이지,

대체 어쩌자고 질투와 시기의 화신인 조조의 심기를 건든단 말인가.

덕분에 조홍은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의 중 최초로 대리시(大理?)에 수감되는 굴욕을 경험했다.

“언니도 정말 꽉 막히셨다니까요? 조금 정도는 용인해줘도 되는 거잖아요!”

“…….”

조홍이 쀼루퉁한 표정을 지으면서 납작한 가슴만큼이나 융통성이 없는 언니를 씹어댔다.

에잉,

그렇게 속이 좁으니까 가슴도 좁지.

만약 장본인이 듣는다면 결코 유배로는 끝나지 않을 발언들을 쏟아내는 조홍.

그를 옆에서 듣고 있던 이성휘는 주변을 황급히 두리번거리면서 만일의 상황에 대비했다.

“네 경거망동 때문이잖아. 언니에게 책임을 떠넘기지 마.”

조홍의 투덜대는 말에 대답한 여성은 흑단처럼 고운 머리카락을 짧게 기른 미녀였다.

송골매처럼 날카로운 눈매.

얼음장처럼 차가운 붉은 눈동자.

갓 내려앉은 눈송이처럼 새하얀 살결과 풍만한 가슴이 돋보이는 육감적인 몸매.

조홍을 제지한 여성은 마찬가지로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인 조인이었다.

“흥, 네가 뭘 안다고 떠들어? 하긴 무뚝뚝한 석녀 따위가 복잡한 심정을 알 리도 없겠지만.”

“알고 싶지도 않아.”

“큭! 건방져, 동생 주제에!”

“동생 아니거든.”

얼굴을 마주할 때마다 티격태격 다투는 조홍과 조인의 말싸움을 직관하던 이성휘가 한숨을 내쉬었다.

용모는 조조와 쏙 빼닮았으나,

그럼에도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은 서로 많은 차이를 보였다.

매번 으르렁대면서 싸우기 바쁜 조홍과 조인의 모습을 볼 때마다 느끼는 바였다.

“자효 님.”

“네.”

자신을 부르는 이성휘의 목소리에 조인은 신경전을 멈춘 채 그를 바라보았다.

순식간에 눈빛이 변했다.

마치 한겨울처럼 차갑던 눈동자에 봄바람이라도 불기 시작했는지 금세 따스하게 물들었다.

결코 변화가 없을 것 같았던 투명한 얼굴에도 달콤한 감정이 감돌기 시작했다.

“이번에 서주 정벌을 이끄시게 되었다고 들었습니다.”

“예, 무명을 떨칠 기회를 받게 되었습니다.”

감읍하게도 서주 정벌을 총지휘하게 되었다.

반드시 서주를 점령하겠다.

조인의 두 눈에 사명감이 깃들었다.

서주는 경애하는 언니께서 패업을 완수할 수 있도록 조력하는 발판이 될 터. 결코 없어선 안 될 발판이 바로 서주였기에 조인은 더욱 사명감을 앞세웠다.

‘표기장군, 저는 절대로 도겸군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들에게 당신을 잃을 뻔했으니까요.’

서주를 정벌해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

조인은 그 이유를 곱씹으면서 이성휘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도겸군을 반드시 멸망시키겠다.

과묵한 성정의 여걸이 사랑하는 남성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굳게 맹세했다.

“자효 님, 절대로 서주 백성들에게 피해를 줘선 안 됩니다. 우리들의 표적은 어디까지나 도겸군입니다.”

“물론입니다.”

얼음장처럼 냉철한 이성과 판단력을 겸비한 조인이 감정에 휩쓸릴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일말의 두려움을 느꼈기에,

이성휘는 하지 않아도 될 충고를 조인에게 했다.

어떤 이유들로는 ‘서주 대학살’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될 끔찍한 학살극이기에, 이성휘는 확실히 언질을 받아내듯 조인으로부터 대답을 받아냈다.

“저, 표기장군….”

잘 익은 살구처럼 얼굴이 붉어진 흑발의 여성이 수줍음에 찬 몸짓을 보이면서 말을 더듬었다.

서로 잠시 이별했던 탓일까.

반응과 변화가 드문 조인의 얼굴에 다채로운 감정들이 실렸다.

그 모습을 바라보던 조홍은 입을 쩍 벌린 채 경악을 토해냈다.

방금까지 자신과 입씨름을 하던 그 석녀가 과연 맞는지 혼동이 온 듯하다.

“자, 잠시… 아주 잠시나마…! 제가 감히 표기장군의 시간을 빌릴 수 있겠습니까?”

사랑을 고백하듯,

고사리처럼 가느다란 손가락을 지분거리면서 수줍게 입술을 방긋거렸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성휘를 향한 마음이 더욱 깊어졌는지….

조조 앞에서 감히 주접을 떨었다가 일남군으로 유배를 떠날 뻔한 조홍처럼 조인 또한 사촌언니 무서운 줄 모르고 연심을 대놓고 드러내기 시작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