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96화 〉 296. 고모와 조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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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주(??) 양책현(???)에서 대규모 인쇄소를 운영하던 총책이 마침내 붙잡혔다.
나무를 조각하여 만든 활자들을 동원하여 도색소설들을 동전처럼 찍어냈다. 활자에 푹푹 찍히면서 인쇄된 권수가 무려 수만 부에 달한다고 한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다.
상서령(書?) 순욱은 대리시(大理?)로 질질 끌려온 총책을 직접 국문하며 배후를 밝혀내려 했다.
“으, 으아악!!”
밧줄에 두 다리가 묶인 남성이 두꺼운 막대기에 정강이를 짓눌리고 있었다.
주리틀기가 계속 이어질수록 비명은 더욱 끔찍하게 물들었다.
근육을 짓이기고 뼈를 부순다.
다른 고문들에 비하면 주리틀기는 매우 온화한 축에 속했지만 극심한 아픔을 준다는 것에는 변함이 없었다.
“공이와 달이가 누구입니까. 분명 정체를 은폐하기 위한 쓰는 필명일 텐데…. 사실대로 이실직고를 한다면 심문을 멈추도록 하겠습니다.”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매서운 표정을 지으면서 힐문했다.
몽둥이를 든 위병들이 좌우에 섰다.
순욱의 명령이 떨어지면 의자에 꽁꽁 묶인 범인을 곧장 곤죽으로 만들어버릴 것처럼 흉흉한 기세를 뿜어내고 있었다.
“모, 몰라…! 모릅니다! 원고본을 보낼 때마다 항상 얼굴을 가리고 있었으니까…!”
“남자인가요?”
“예! 나, 남자이긴 했는데…!”
입술을 바들바들 떨면서 횡설수설하듯 말하는 남성의 모습에 순욱이 미간을 찌푸렸다.
공이와 달이는 남자다.
아니,
그렇게 단정할 순 없었다.
분명 원고본을 꺼낸 남성 또한 끄나풀에 불과하겠지.
상대는 지금까지 정체를 꽁꽁 숨긴 채 활동해온 능숙한 전문가다. 본인이 직접 인쇄소를 운영하는 총책에게 원고본을 건넸을 리 없다.
‘예주 사대부 출신…. 그리고 명망 높은 학자들조차도 혀를 내두를 정도의 뛰어난 학문과 식견을 겸비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붙잡힌 남성은 ‘꼬리’에 불과하다.
여러 단서들을 얻을 수 있겠으나,
몸통을 끄집어낼 수 있는 결정타를 주진 못할 것이다.
공이와 달이….
그 파렴치한 작자들은 매우 용의주도했다.
언젠가 발각당할 때를 우려하여 여러 장치들을 해둔 것만 같았다. 어쩌면 그들은 벌써부터 꼬리 자르기에 들어갔을지도 모른다.
‘그럼 저는 당신들이 남긴 그 꼬리를 조사하겠습니다. 오랫동안 몸통과 함께 활동했던 꼬리들에… 당신들과 연관된 단서들이 남아있을 테니까.’
결국 사도(??)는 정도(??)를 이길 수 없다.
제아무리 깊게 숨을지라도,
언젠가 그 진흙 묻은 민낯을 끄집어 내리라.
순욱은 결조(??)의 주부(??)들에게 명령하여 지금까지 계속 도색소설들을 인쇄하고 배포했던 인쇄소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수색할 것을 명령했다.
“조정의 위신이 달린 일입니다. 시랑들은 모든 단서들을 철저히 발본색원하여 진실을 밝혀내세요.”
“예, 어르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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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조(?)의 시랑(?)들에게 대리시에 하옥된 죄인들을 철저히 심문할 것을 명령한 뒤,
순욱은 상서대 집무실로 돌아왔다.
잠시 차를 마시고자 다구를 꺼냈다.
옥빛을 내는 찻주전자를 들어올린 순욱은 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는지 새하얀 뺨을 발그스름하게 붉혔다.
‘너무 긴장해서… 무슨 대화를 나눴는지 기억이 잘 안 나네요.’
면포를 집어들었던 순욱이 얼굴을 새빨갛게 붉히면서 뽀득뽀득, 소리가 날 정도로 찻주전자를 닦기 시작했다.
마음을 들키잔 않았을까.
혹여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진 않았을까.
함께 차를 마시면서 담소를 나눴던 그의 모습을 떠올릴 때마다 마른 장작들을 끼얹은 모닥불처럼 거침없이 온몸이 타오르는 듯했다.
‘나중에 또 대접을 해드려야죠. 크흠, 표기장군께서는 저의 은인이시니까요. 차를 대접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죠.’
주군의 남편이 될 남자에게,
곧 아이를 보게 될 유부남에게 마음을 두기 시작했다.
그 죄책감을 애써 떨쳐내기 위함이었는지 잠시 헛기침을 한 순욱은 연심이 아닌 호의임을, 사랑이 아닌 동경임을 스스로에게 세뇌하듯 속삭였다.
“상서령 어르신.”
찻주전자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던 순욱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비서랑께서 오셨습니다.”
요즘 들어 부쩍 조카님의 출입이 늘었다.
예전에는 나흘에 한 번이었다면,
요즘은 하루에 꼭 한 번씩은 상서대에 들르는 듯했다.
조카님께서도 예주 사대부일지도 모르는 공이와 달이를 신경 쓰고 있는 것일까.
무리도 아니다.
그 간적들은 수많은 명사들을 배출한 예주 사대부들의 명성에 먹칠을 한 작자였으니.
“고모님.”
“어서 오세요, 조카님.”
고관대작의 관복을 입은 영천순씨 가문의 두 여식들이 마주한 채 앉았다.
두 손에 쥐고 있던 찻주전자를 다시 서랍 위에 내려놓은 순욱은 정좌한 채 입을 열었다.
“무슨 일이신가요, 조카님. 요즘 상서대에 자주 들르시네요. 예주 사대부로 추정되는 그 악적이 곧 위병들의 손에 붙잡히게 될 터이니 안심하세요.”
순욱의 말에 순유는 마음 놓고 불안에 떨 수 있었다.
눈앞에 진범이 있다.
조조군 제일의 참모는 아직 그것을 모르고 있었다.
물론 산천초목조차 벌벌 떨게 만드는 상서대의 관료들이 곧 진범의 정체를 밝혀내겠지만.
순욱이 후후 웃음을 지을 때마다 순유는 계속 식은땀을 흘려야 했다. 7촌 고모가 얼마나 철두철미한 인물인지를 알기에 더욱 두려움에 떨었다.
“네, 아하하…. 정말 안심이에요.”
안심은 개뿔,
소리를 왁왁 지르고 싶을 정도로 조바심에 떨고 있었다.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할까.
갈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두려움에 찬 밤색 눈동자를 데굴데굴 굴리면서 고심하기 시작했다.
“저, 저… 고모님!”
“네.”
“그러니까…!”
바들바들 떨리는 입술.
식은땀이 부드러운 살결을 타고 흘러내렸다.
가시방석에 앉은 듯 고심을 거듭하던 순유는 도박수를 두듯 고뇌 속에서 두 눈을 번뜩였다.
“표, 표기장군을… 어떻게 생각하세요?”
“예, 예…?”
이성휘에 대해 묻는 조카.
고모의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김을 내뿜는 찻주전자처럼,
순욱은 잠시 허둥대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노골적인 반응을 보였다.
설마 조카님께서 돌연 표기장군에 대해… 요즘 들어 부쩍 신경 쓰이기 시작한 남자에 대해 물을 줄 몰랐기에 더욱 허둥대는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
“가, 갑자기… 대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조카님!”
부드러운 지성과 이지적인 판단력을 겸비한 고모님이 당혹감을 내비치고 있다.
그 반응을 본 순유는 고모님이 표기장군을 몰래 짝사랑하고 있음을 넌지시 눈치 챘다.
아직은 미약한 불씨일 뿐이나,
계속 부채질을 하여 신선한 바람을 공급한다면 거센 불길이 되어 마음을 애절하게 녹여낼 게 틀림없었다.
“표기장군은 근사한 분이잖아요. 용모도 무척 잘생겼고 능력도 좋으시잖아요. 뛰어난 성품 덕분에 황실과 조정대신들도 모두 표기장군을 흠모하고 있을 정도니까요.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한 거죠.”
반하는 게 당연하다.
반하지 않는 게 이상하다.
순유가 짝사랑을 느끼고 있는 고모에게 떡밥을 던졌다.
평상시의 순욱이라면 결코 통하지 않을 잔꾀에 불과했지만, 안타깝게도 그녀는 현재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허둥대고 있는 상태였다.
그 떡밥은 고스란히 순욱에게 던져졌다.
“하, 하지만 표기장군께서는 연주성에 계신 주군과 곧 혼례를 올리실 몸입니다. 어떻게 감히 혼례를 올리실 분에게 흑심을 품을 수 있겠습니까.”
일언지하에 거절하듯 선을 그었다.
금욕주의이며,
또한 도덕주의를 중시하는 순욱다운 행동이다.
유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한 올바른 풍속과 기풍을 고수해온 순욱이었기에 곧 유부남이 될 남성에게 마음이 혹하는 것을 스스로가 용납하지 않았다.
‘흠…, 역시 고리타분할 정도로 정도와 올바름을 중시하시는 고모님이네요. 여기서 고모님을 더 깊게 채근했다간 오히려 의심을 받을 수 있으니 잠시 물러나야겠어요.’
정체를 발각당할 위기에 놓인 순유는 눈치를 십분 발휘하여 잠시 물러났다.
고모님이 표기장군에게 마음이 있다.
그것을 알아낸 것만으로도 충분히 큰 수확이었다.
문제는…,
과연 정체가 발각당하기 전까지 고모님을 푹 빠져들게 만들 수 있느냐였다.
“상서령 어르신!”
조카님이 꺼낸 당혹스러운 주제에 순욱이 겸연쩍은 마음을 느끼고 있었을 때,
영천군(?川?)의 도위(??)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문 너머로 다가왔다. 영천군의 도위는 상서령 순욱의 명령을 받들어 선두를 지휘하던 수사관이었다.
“원고본을 건넨 자를 붙잡았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영천군 도위의 말에 순욱이 기쁨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벌떡 일어났다.
총책에게 원고본을 건넨 범인.
분명 공이와 달이,
두 간적들과 내통하고 있는 심복이 틀림없다.
이제 드디어 실마리가 손아귀에 잡히기 시작했음에 순욱은 쾌재를 불렀다.
“흐꾹!”
눈앞에서 소식을 들은 순유가 어깨를 움찔 떨면서 딸꾹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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