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95화 (295/616)

〈 295화 〉 295. 고모와 조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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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이(??)와 달이(??).

중원에서 유명한 도색소설(?色小?) 작가들이다.

두 작가들은 섬세한 문체와 수위 높은 내용들의 작품으로 특히 유명했다.

활자를 이용한 활판인쇄를 통해 중원 전역에 복사본들을 판매하여 억만금을 벌어들였으며, 신분을 막론하고 수많은 독자층들을 보유하고 있다고 한다.

“…그게 너라고?”

“네.”

“…….”

단순한 변태는 아니라고 생각했었지만,

설마 중원 전역에서 절대적인 지지를 받는 어마어마한 변태였을 줄이야.

이성휘는 입을 꾹 다물었다.

당혹감으로 바들바들 떨리고 있는 그녀의 밤색 눈동자를 본 이성휘는 할 말을 잃었는지 매몰차게 등을 돌려버렸다.

“네 인과응보잖나. 달게 받아라.”

“자, 잠시… 잠시만요! 총애하는 부하가 곤경에 처했는데 매몰차게 외면하시다니… 대체 얼마나 냉정하신 거예요!”

그걸 네 입으로 말하냐.

물론 부하로서 총애한 것은 사실이다만.

팔을 단단히 붙잡은 채 필사적으로 애원하는 순유의 모습을 본 이성휘가 질렸다는 표정을 지었다.

당장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릴 것처럼 애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순유의 모습을 다른 남성들이 보았다면 심장이라도 내어줄 것처럼 나섰겠지.

하지만 이성휘는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할 줄 아는 성격의 소유자였다.

“내정은 상서령의 권한이다. 내가 감히 월권을 행사할 순 없어. 너도 잘 알 텐데.”

“월권을 행사해달라는 건 아니에요!”

불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한 묘수라도 가지고 있었는지, 옷소매를 거세게 붙잡고 있던 순유가 확신에 찬 목소리로 이성휘에게 말했다.

비서랑(?書) 순유.

순욱과 함께 명망 높은 영천순씨 가문을 대표하는 재상답게 그 찰나에 묘수를 마련한 듯하다.

뛰어난 군략과 전술을 겸비한 순유로부터 지금까지 많은 도움을 받아왔었기에, 이성휘는 그녀가 분명 뛰어난 묘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했다.

‘그래, 머리가 조금… 아니, 많이 맛이 가긴 했어도 당대 최고의 재상이 될 재목이다. 분명 돌파구를 마련할 혜안을 가지고 있을 터.’

아무리 글러먹은 여자라도,

신변이 위험해질 때를 대비하여 대비책을 마련해뒀을 게 분명하다.

순유.

조조를 도와 관도대전을 승리로 이끈 주역.

유능한 참모들이 압도적으로 많은 조조군에서도 우월한 군공을 자랑하는 재상인 순유라면 지금의 위기를 어떻게든 무마할 수 있을 터였다.

“고모님을 주군의 암컷으로 만들어주세요!”

“…….”

쿵­.

이성휘는 곧바로 대문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노복들에게 소금을 뿌리도록 했다.

미친년….

정말 미친년이 분명했다.

* * *

공이와 달이,

그들은 어릴 적부터 우수한 교육을 받은 명문가의 자제가 분명했다.

학자들조차 감탄할 섬세한 문체.

또한 지금까지 집필한 수많은 작품들 중 단 하나의 비문을 발견할 수 없었다.

제아무리 박식한 사람이라도 서한을 작성할 때 글자를 하나씩은 꼭 틀리는 법이다.

그런데 공이와 달이가 집필한 작품들 중에서는 비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방대한 분량을 자랑하는 소설을 작성하면서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는 뜻이다.

“예주 출신의 사대부…. 수많은 고관대작들을 배출한 예주의 명성을 땅에 떨어트리다니,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습니다.”

윤곽이 점점 잡히기 시작했다.

아직은 흐릿할 뿐이지만,

결국 거미줄처럼 촘촘하게 짜인 포위망에 붙잡히게 될 것이다.

비겁하게 익명에 의지하여 여린 대중들을 현혹시켜온 악한의 실체가 드러나게 되리라.

순욱은 일벌백계하여 처결하겠노라 다짐했다.

‘민중들을 교화하고 계명해야 할 의무가 있는 사대부가 감히 이런 작태를 벌이다니…! 백성들의 곤궁과 고통을 이용하여 안위와 영달을 꿈꾼 장각과 다를 바 없는 놈입니다.’

어느덧 상서령 순욱은 도색소설들을 배포하여 민중들을 현혹시킨 공이와 달이를 황건적의 수괴와 동일선상에 두기 시작했다.

순유도 만만치 않은 여인이었지만,

순욱 또한 결코 만만치 않은 여인이었다.

반드시 체포하여 처벌하겠다는 의욕이 넘쳐났다.

“후우…. 이런 저질스러운 무리들이 두 번 다시 등장하지 않도록 난세가 빨리 끝나야지.”

모두 난세 때문이다.

백성들이 곤궁에 빠졌기 때문이다.

중앙에서 벌어진 암투와 권력투쟁과 난세를 불러들이면서 작금의 사태가 벌어졌다.

유교적 이념이 땅에 떨어졌으며,

올바른 미풍양속은 빛바랜 자갈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순욱은 백성들이 한낱 도색소설 따위에 현혹될 수밖에 없었던 원인이 자신들 위정자에게 있음에 지울 수 없는 죄책감을 느꼈다.

“상서령 어르신.”

호롱불로 어둠을 밝힌 집무실에서 잠시 사색에 잠겨있던 순욱이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를 들었다.

문 너머에 있는 관료가 부른 목소리였다.

“무슨 일입니까?”

순욱의 물음에 관료가 대답했다.

“표기장군께서 오셨습니다.”

“표, 표기장군…! 잠시만 기다리세요!”

이성휘가 직접 상서대로 행차했다는 소식에 순욱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짓더니 급히 거울을 찾았다.

거울로 얼굴을 비춘 뒤,

진주를 갈아서 만든 하얀 분을 얼굴에 토닥토닥 칠했다.

천하를 희롱하고 대중들을 현혹시킨 범인을 색출하느라 몰골이 말이 아니다. 혹시라도 표기장군에게 추레한 꼴을 들키게 될까, 순욱은 노심초사하며 용모에 최대한 주의를 기울였다.

‘눈썹과 입술은… 아니, 너무 화장이 과하면 표기장군께서 부담스러워할 수도 있으니까요.’

요즘 들어 용모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관심이 없었는데…,

부쩍 잘 보이고 싶은 남자가 생기면서부터 점점 용모에 신경을 쓰게 되었다.

진주를 갈아서 만든 분.

눈썹 화장에 쓰는 미분(??)과 뺨과 입술을 붉게 칠하는 연지(??)까지.

급히 서랍을 열어 화장품들을 꺼낸 순욱은 그 찰나의 시간에 업무로 다소 수척해진 안색을 예쁘고 곱상하게 바꿔놓았다.

한두 번 해본 솜씨가 아닌 듯했다.

“어르신…?”

화장 솜씨가 능숙하다고 하더라도 그 찰나에 빠르게 끝내기만 불가능하다.

문 너머의 관료가 재촉하듯 순욱을 재차 불렀다.

“네, 다 됐습니다. 제가 표기장군을 모시겠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선 순욱이 다급한 발걸음과 함께 문을 열었다.

이윽고 상서대에 출입한 이성휘는 순욱의 집무실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달콤한 냄새…. 향수인가?’

집무실을 가득 메운 달콤한 향기.

마치 그윽한 향기를 품은 매화에 둘러싸인 것 같았다.

잠시 고개를 돌리면서 순욱의 집무실을 유심히 관찰하던 이성휘는 곧 고운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곱상한 용모의 미녀와 시선을 마주하게 되었다.

“늦은 시간에 죄송합니다.”

“아뇨, 괜찮습니다. 표기장군의 행차이신데요.”

이성휘의 인사에 순욱은 눈웃음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오늘 병가를 내셨던데… 몸은 괜찮으신가요?”

“예, 괜찮습니다.”

“다행이네요.”

순욱이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쾌차를 응원했다.

한 치의 의심 없는 아름다운 미소에 이성휘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다.

그리고 또한,

자신이 ‘공이와 달이’라는 필명을 사용하며 대중들을 현혹시킨 진범을 숨기고 있음에 죄책감을 품게 되었다.

“상서대에서 내조의 관원들과 연계하여 어느 사안을 조사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네, 간악한 악적의 뒤를 쫓고 있습니다.”

“…간악?”

분명 순유의 죄가 얕진 않으나…,

상서령이 간악(??)이라는 말을 쓸 정도였던가?

황실을 기만하고 조정을 유린했던 동탁에게나 어울릴 단어를 입에 담는 순욱의 모습에 이성휘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거의 대역죄 수준이다.

순유가 질겁하며 달려올 만하다.

7촌 고모가 불구대천의 원수를 만난 것처럼 이렇게 노발대발하고 있으니.

“유교의 가르침을 짓밟고 후대에게 온전히 보전해야 할 미풍양속을 크게 해쳤으니 응당 간악이란 말이 어울릴 것입니다.”

“…….”

“엉터리 소설들로 민중들을 속이고, 금전적 이득을 취했으니 당연히 조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합니다.”

확고함에 찬 순욱의 말에 이성휘는 침묵으로 일관할 수밖에 없었다.

모두 정론이다.

반박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과연 조정의 실권을 쥐고 있는 상서령다운 매서움이었다.

“난세가 평정되고 황실과 조정이 다시 위엄을 되찾는다면 땅에 떨어진 기강과 도덕을, 4백 년 동안 중원을 떠받쳐온 유교의 가르침을 바로세울 것입니다.”

뒤이은 말을 통해 이성휘는 순욱이 지향하는 목적을 알게 되었다.

공이와 달이를 잡는 것은 과정일 뿐,

그녀가 궁극적으로 고대하는 염원을 난세의 종결과 태평성대의 실현이다.

태평성대는 유교를 근본으로 하는 이상국가의 실현으로 직결되는 말이었기에, 전통와 풍속을 크게 배격하는 공이와 달이의 존재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것이리라.

“상서령의 말씀은 잘 알겠습니다.”

결코 타협점은 없다.

확고함에 찬 순욱의 모습을 통해 이성휘는 그것을 깊게 깨닫게 되었다.

타협한을 마련할 수 있지 않을까,

관원들이 대부분 퇴궐한 초저녁에 일부러 상서대로 온 이성휘는 순욱을 설득하기란 매우 쉽지 않은 일이 될 것임을 느꼈다.

“그런데 표기장군께서는 어떤 용무로 상서대에 오신 건가요?”

호롱불의 은은한 주황빛이 순욱의 상아색 머리카락을 따스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새하얀 이를 드러내며 웃는 순욱.

그녀의 웃음을 본 이성휘는 무거운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염치를 불구하고 상서령에게 차를 한 잔 얻어 마실까 합니다.”

“네, 천하제일검과 차를 마시는 영광을 받게 되어 기쁩니다.”

이성휘의 부탁에 순욱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면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찻잎이 든 통을 꺼낸 뒤,

서랍 위에 장식품처럼 있던 고풍스러운 다구(茶?)들을 이용하여 차를 우리기 시작했다.

마침 오늘은 예쁜 보름달이 뜬 날이다.

설마 그를 알고서 온 것일까.

순욱의 마음이 보름달처럼 들뜨기 시작했다.

은인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보름달을 볼 생각에 마음이 벅차올랐다.

달빛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처녀는 기대감에 찬 손길로 찻주전자에 담긴 찻물을 둥근 찻잔에 쪼르르 담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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