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94화 (294/616)

〈 294화 〉 294. 고모와 조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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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서령(書?) 순욱은 엄격함을 중심으로 한 원리원칙을 중시하는 여자였다.

한없이 부드럽고 자애로웠지만,

정치와 내정에 있어서는 무조건 원칙을 중시할 정도로 딱딱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한 강직한 품성을 알기에 상서대(書?)의 관료들은 빈틈없이 행동했으며, 또한 그 누구도 그녀의 원리원칙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표기장군께서 결근하셨다고요?”

맑고 연한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처녀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물었다.

사유는 병가(??).

표기장군의 가택에서 일하는 노복이 소식을 가져왔다고 한다.

혹시 어디라도 아픈 걸까….

오늘 아침 삼관(三?)들이 올린 보고서들을 살피던 순욱은 걱정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제 뺨을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다. 생각에 젖을 때마다 보이는 순욱의 버릇 중 하나였다.

‘표기장군께서 병가를 내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는데 만약 큰 병이라도 걸리신 거라면….’

이성휘가 병가를 냈다는 말에 순욱은 깊은 근심에 빠졌다.

당장 병문안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들이 산더미처럼 밀린 상태였기에 함부로 자리를 비울 수 없었다.

소식을 들은 순욱은 전전긍긍하면서도 끝내 자리에 남기로 했다. 병문안은 퇴궐한 뒤에 가더라도 괜찮을 테니까.

“가벼운 고뿔에 걸리셨다고 합니다.”

소식을 전한 관료가 뒤이어 말을 덧붙였다.

“후우, 그렇다면 다행이군요.”

그에 순욱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대답했다.

“상서령 어르신!”

순욱이 책상 위의 죽간들을 펼치면서 집무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려 했을 때,

결조(??)의 시랑(?)이 달려왔다.

급한 사건이라도 발생했는지,

머리에 쓴 관모가 흐트러졌을 정도로 허겁지겁하는 모습을 보였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습니다! 이제 곧 사문난적들을 배포하며 풍기문란을 조장했던 배후를 포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인가요?!”

드디어 덜미가 보이기 시작했다.

수많은 사문난적들을 배포하며,

사회적 질서와 도덕성을 훼손하고 짓밟았던 악도를 이제야 붙잡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악도는 예주 출신이 분명하다.

예주를 중심으로 사예주와 연주, 기주로 간행물들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음을 알아냈다.

명망 높은 사대부와 학자들의 지역이라 불리는 예주(??)에서 감히 그따위 망측한 짓을 벌이는 악도를 반드시 잡아내어 땅에 떨어진 도덕과 질서를 바로세울 것이다.

“무슨 일 있으신가요, 고모님?”

중서성(中書?)의 문서들을 상서대에 제출하기 위해 잠시 들렀던 비서랑(?書) 순유가 물었다.

상서대에 무슨 일이 있는지,

관료들이 회의를 생략한 채 바쁘게 돌아다니고 있었다.

밤색 눈동자를 반짝이면서 광경을 주시하던 순유가 7촌 고모에게 이유를 물었다. 상서대의 업무가 곧 중서성의 업무였기 때문이다.

“드디어 꼬리를 잡았습니다.”

“꼬리를요…?”

쾌재에 찬 순욱의 말에 순유가 두 눈을 끔뻑이면서 되물었다.

불순분자들을 체포하고 구금하는 일은 분명 대리시(大理?)의 역할일 텐데, 왜 상서대에서 관료들을 풀어 발본색원에 나선 것일까.

순유는 점점 불안감을 느끼기 시작했다.

“드디어 음란서적들을 배포하던 총판(??)을 잡았다고 합니다.”

“초, 총판….”

“활자(??)로 서적들을 찍어 배포하던 자를 색출하였으니 배후를 잡아내는 것은 시간문제일 겁니다.”

빠득.

순욱이 이를 갈면서 말했다.

수개월에 걸쳐 숨바꼭질을 하듯 중원 지역을 누비면서 음란서적들을 배포해온 자들의 정체를 명명백백하게 가릴 때가 머지않았음에 분기를 불태웠다.

음탕하기 짝이 없는 소설로 유교 사상을 짓밟은 공이(??)와 달이(??)라는 존재는 부드러운 성품으로 유명한 상서령을 강경론자로 만들었다.

“분명 유고를 근본으로 하는 한나라의 기율과 법도를 무너뜨릴 목적으로 공작을 벌인 역적의 소행이 틀림없습니다. 최대한 빨리 색출하여 더 이상 사문난적따위에 여린 대중들이 휘말리지 않도록 막겠습니다!”

지금까지의 활약들과 조조의 총애를 등에 업고 상서령에 오른 순욱은 이번 사안에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고 있었다.

백성들을 교화하여 올바른 길로 이끄는 것.

그것이 바로 정치이며,

순욱이 지향하는 목표였다.

그렇기에 자신의 목표와 정치이념에 반하는 음란물들을 결코 용인할 수 없었다. 민중들의 풍조와 문화를 어지럽히는 음란물은 반드시 없어져야 마땅했다.

“너무 비약이 지나치신 게 아닐까요, 고모님?! 설마 그럴 리는 없을 거예요. 게다가 서적을 접한 대중들도 다들 만족스러워하고 있고… 이, 인기도 많아요!”

영천순씨 가문의 여식이 두 손을 과장되게 뻗으면서 ‘공이와 달이’를 어째서인지 변호했다.

등골에 흘러내리는 식은땀,

새하얀 뺨이 긴장감에 바르르 떨리고 있었다.

갈색 머리카락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미녀는 음란서적들을 퍼트린 배후를 역적으로까지 규정하는 7촌 고모의 과격한 행동에 아연실색을 금치 못했다.

“그건 허영일 뿐입니다, 조카님. 여린 대중들은 음란서적에 현혹되어 있습니다.”

“네, 네…?”

“염정(??)과 상열(??)은 올바른 가르침과 훈육으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대중들이 계속 음란서적에 빠져들게 된다면 온갖 기괴한 괴인들이 판을 치게 될 겁니다!”

어릴 적 학당에서 풍기(風?)를 담당한 모범생답게 순욱은 정론을 꺼내들면서 사특한 문화를 배척했다.

드디어 지긋지긋하게 도망치던 범인의 꼬리가 잡히자 순욱은 색출에 더욱 박차를 가했다.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위험해!’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미녀가 각오에 찬 표정을 짓고 있었을 때,

고개를 푹 숙인 순유는 밤색 눈동자를 바들바들 떨면서 식은땀을 줄줄 흘렸다.

총책이 잡혔다고 한다.

분명 예주의 양책현(???)에 있는 총책이 덜미를 잡힌 것이리라.

항상 신분을 철저하게 숨긴 채 원고를 건넸기에 바로 발각당할 일은 없겠으나, 양책현의 총책과는 오랜 세월 동업한 관계였기에 결국 자신과 관련된 단서들이 속속히 나오게 될 터였다.

‘고, 고모님께서 설마 이 조카를 죽이진 않으시겠지…? 내가 촌수는 밀려도 나이는 더 많잖아. 지금이라도 이실직고하면 정상참작을 해줄 수도….’

순유는 “짜잔, 사실 제가 공이와 달이였답니다!” 라고 밝혀야 하는지를 진심으로 고민했다.

과연 고모님이 나를 살려줄까,

그래도 설마 같은 가문인데 죽이지는 않을 것 같았다.

‘아, 아냐…! 대대로 고관대작들을 배출한 영천순씨 가문의 명망에 먹칠을 했다며 변호할 여지도 없이 살인멸구(?人??)를 해버릴 게 분명해!’

멍석말이를 당한 채 영천순씨 가문의 어르신들에게 맞아죽는 모습을 상상한 순유는 벼랑 끝에 내몰린 처지가 어떤 심정인지를 뼈저리게 깨닫게 되었다.

7촌 고모는 뼛속까지 외골수다.

결코 타협을 두지 않으며,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바를 끝까지 관철하는 독불장군이기도 했다.

평소에 유순하고 부드러운 사람이 화를 내면 거침없이 무서워지듯, 대중들을 현혹하여 사특한 길로 빠트리려는 악적을 만나게 된 순욱은 검을 뽑아든 장수처럼 저돌적이기 그지없었다.

“고모님, 저 또한 손을 거들도록 하겠습니다.”

내부에 파고들어 색출을 훼방 놓을 속셈으로 순욱에게 권유했다.

그러나 7촌 고모는 순유의 상상을 아득하게 초월할 정도로 융통성이 없는 여자였다.

“이제 곧 배후가 밝혀질 것입니다, 조카님. 저희 상서대에서 계속 적조(??)와 결조(??), 법조(??)의 관원들과 협조하여 일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중서성은 계속 본무에 집중해주세요.”

상서령은 조정의 모든 실무들을 관장하고 있는 내조(??)의 실질적인 우두머리였다.

그렇기에,

순욱의 말이 곧 한나라 조정의 명령이나 다름없었다.

역전의 수단으로 동원하려 했던 방법이 너무도 허망하게 무너졌다. 교활한 꾀와 임기응변은 결코 정도(??)와 정의(??)로 똘똘 뭉친 외골수를 이겨낼 수 없었다.

‘도… 도와줘요, 주군!’

일생일대 최악의 위기를 겪게 된 순유는 울음에 찬 목소리로 이성휘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 * *

광란어린 시간은 해가 중천에 뜬 오후가 되어 어느덧 마무리되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백탁액을 뒤집어쓴 채 쌔근쌔근 숨소리를 내며 곯아떨어진 세 명의 미녀들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몸을 씻은 뒤에 겉옷을 어깨에 걸쳤다.

“으음.”

초저녁부터 쉬지 않고 계속 박아댔던 탓에 여포와 장료, 초선은 파김치가 된 채 누워 있었다.

곤히 자고 있는 그녀들의 새하얀 뺨을 부드러운 손길로 쓰다듬은 이성휘는 침음을 삼키면서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거든 목욕시중을 들도록 해라.”

“알겠습니다.”

침소를 나선 이성휘가 묘하게 뺨이 상기된 채 자신을 힐끗 쳐다보고 있는 시녀들에게 지시했다.

분명 온몸이 끈적끈적할 터.

여포와 장료, 초선이 일어나면 곧바로 씻을 수 있도록 배려했다.

“후우….”

침소를 나서 연무장에 도착한 이성휘가 근심이 섞인 한숨을 잠시 내쉬고 있었을 때,

시녀가 바쁜 걸음으로 다가왔다.

“장군, 비서랑께서 오셨습니다.”

“공달이?”

기별을 들은 이성휘는 잠시 미간을 찌푸리면서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침소 내부의 상황을 들킬 순 없다.

분명 그 촉새 같은 여자가 그것을 빌미로 어떤 협박을 해올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내가 바깥으로 나가겠다.”

이성휘가 발걸음을 서두르며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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