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84화 〉 284. 비장연담(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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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은 주변 세력들을 단기간에 모두 정리한 덕분에 허도 건설에 총력을 기울일 수 있었다.
원술군. 도겸군. 동탁군.
강력한 군벌들을 모두 쓰러트린 사공(??) 조조는 중원의 패자임을 자청하듯 황명을 내세우면서 제후들을 호령하기에 이르렀다.
“어르신, 진국(?國)과 노국(?國)의 제후들이 어르신의 요청을 받아들여 궁궐과 성벽 건설에 사용될 자재들을 부담하기로 했습니다.”
진국과 노국 일대는 아름답고 반듯한 석재들이 많기로 유명했다.
그래서 조조는 제후들에게 황실의 칙명을 내려 공사에 동원될 석재들을 공수하도록 명령했다.
일방적 통보를 내린 조조의 강압적인 명령에 진국과 노국 일대의 제후들은 불쾌감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감히 조조군의 심기를 건들고 싶지 않았기에 제후들은 불만을 곱씹으면서 명령을 받아들였다.
“봉효, 관서(??)의 전황은 어떠한가.”
“마침 관서의 간자들로부터 첩보가 올라왔습니다.”
군사좨주(????) 곽가는 조조의 명을 받들어 수많은 첩자들을 운용하고 있었다.
황실과 조정을 염탐하는 것은 물론,
적대관계에 있는 세력들의 영역에 첩자들을 파견하여 첩보활동을 벌이게 했다.
정보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조조는 첩자들을 운영하는 군사좨주를 설치한 뒤, 정보부를 이끄는 수장으로 곽가를 임명했다.
“위양군(???) 동백과 표기장군(????) 동황이 잠시 휴전을 맺었다고 합니다.”
대장군(大??) 동민이 직접 화해를 주선하며 동황과 동백에게 휴전을 종용했다.
가문 어르신이 내린 지엄한 명령을 거부할 수는 없었는지 동황과 동백은 전선에서 군세를 철수시켰다.
관서의 골육상쟁이 휴식기에 들어갔다.
첩자들로부터 그 소식을 들은 조조는 혀를 쯧 차면서 아쉬워했다.
“머저리 같은 동씨들치고는 제법이군.”
아름답고 청려한 흑발을 늘어뜨린 여인이 비웃음이 담긴 코웃음을 쳤다.
골육상쟁으로 멸망하기를 바랐건만,
그래도 완전히 머저리들은 아니었는지 농서동씨 가문의 웃어른인 동민의 중재로 내전이 중지되었다.
조금 아쉽긴 하지만… 걱정할 것은 없다.
동황과 동백은 철천지원수가 되었다.
작은 불씨만 툭 떨어지면 곧바로 내전을 재개할 것이 분명했으니까.
“저기 어르신….”
곽가가 조심스러운 어조로 입을 열었다.
“아기씨께서 들으실까 걱정됩니다.”
충성스러운 참모의 말에 조조는 아뿔싸, 하는 심정으로 고개를 푹 내렸다.
어느덧 임신 3개월 차에 접어들었다.
잘록하던 배가 볼록 나온 것은 물론,
미약하던 임신 증상 또한 점점 노골적으로 드러나게 되었다.
무심코 거친 말을 쓰고 말았다.
혹시라도 태중의 아이가 들었을까,
조조는 걱정에 찬 눈으로 자신의 배를 바라보았다.
“크흠, 앞으로는 말조심을 해야겠군.”
태교를 엉망으로 하여 자신을 쏙 빼닮은 아이가 태어나진 않을까, 조조는 진심으로 걱정했다.
반드시 부관을 닮아야 할 터인데….
타고난 재능과 강직한 인품을 겸비한,
이성휘의 모든 재능과 자질을 물려받은 아들이 태어나기를 진심으로 바랐다.
물론 딸도 좋겠지만… 사랑하는 사람과의 첫아이였기에 아들이 태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특한 무리들이 분명 어르신을 노리고 있을 것입니다. 좨주의 심복들을 모두 총동원하여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감시토록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곽가는 항상 조조에게 탕약을 올리는 의원들 또한 철저히 감시하겠다고 말을 덧붙였다.
교활한 역적들은 분명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거사를 도모하려 들 터. 회임한 조조가 매일마다 마시는 탕약에 독을 넣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모든 상황들에 대비해야 한다.
수많은 첩자들을 운용하고 있는 정보부의 우두머리답게 곽가는 매우 치밀한 구석이 있었다.
“제 주제를 알고 뒷방으로 물러난 황제는 전혀 걱정할 것 없네. 조정대신들의 동태에만 면밀히 주의를 기울이도록.”
“알겠습니다.”
황실과 조정의 권위와 권한을 내세우면서 계속 영향력을 강화하려는 조정대신들의 행동은 조조에게 있어 눈엣가시나 다름없었다.
겨우 목숨을 부지하게 해줬거늘,
청류파 늙은이들은 끊임없이 과거의 영광을 되찾으려 했다.
황실과 조정이 질서를 조율하면서 내정을 다스렸던 예전의 한나라로 돌아가고 싶은 것일 테지. 과연 구태의 망령들답게 시대에 뒤쳐진 생각을 하고 있었다.
“사도(??) 왕윤. 상서복야(書??) 사손서. 하필이면 이 두 늙은이들이 말썽이로군.”
왕윤과 사손서,
청류파의 두 영수들을 중심으로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는 무리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조조는 그 점을 매우 불쾌하게 여겼다.
계속 좌시한다면 환관 집단과 정쟁을 벌였던 과거의 청류파처럼 거대한 정치집단을 이루게 될 터.
만약 황태제(?太?) 유협이 이복오빠의 뒤를 이어 황위에 오르게 된다면 한나라 부흥을 천명하면서 날뛸 게 분명했다.
“조정의 영수들을 함부로 교살할… 아니, 꾀를 동원하여 숨지게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태교,
정말 괜찮은 것일까.
곽가는 진심으로 태아를 걱정했다.
패국조씨 가문을 물려받게 될 2대째.
중원 전역을 아우르고 있는 거대한 세력을 계승하게 될 후계자.
장차 자신의 주군이 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곽가로서도 심려가 클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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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침 아닌 동침을 한 이후부터,
여포는 갓 삶은 문어처럼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채 이성휘를 의도적으로 슬금슬금 피해 다녔다.
대체 어떻게 마주해야 할지,
그를 떠올릴 때마다 덜컥 겁부터 났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천하무쌍이 될 내가 겁을 집어먹고 도망치다니…. 틀림없이 다들 비웃을 거야.’
머리를 싸맨 채 고뇌하는 비장.
반드시 이기고 싶은 상대이며,
또한 자신을 여러 번 구해준 적 있었던 은인이기도 한 상대를 짝사랑하게 되었다.
생전 처음 겪어보는 감정에 여포는 끊임없이 고뇌와 번민을 거듭하면서 마음을 애태우고 있었다.
“어서 석재들을 옮겨라!”
“오늘 안에 맡은 작업을 모두 끝내야 한다!”
병주군 장수들이 말을 탄 채 작업현장을 누비면서 자재들을 운반하는 인부들을 더욱 재촉했다.
계속 작업속도를 올려가고 있었다.
한나라의 새로운 수도가 될 허도의 성벽들을 쌓아올리면서 기틀을 만들어냈다.
여전히 해야 될 일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지만, 계속 박차를 가하다보면 언젠가 새로운 수도가 장엄한 자태를 뽐내게 될 터였다.
“궁궐을 중심으로 뻗은 대로들을 중심으로 국무를 수행하는 관청과 부처들을 세울 계획입니다. 응당 하남윤(???)이 중심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상서대의 학자들과 함께 작업현장에 온 순욱이 공부(??)의 관료들과 의논하여 세부사항을 결정했다.
철저하게 설계안을 수립했음을 보여주듯,
상서령 순욱은 일말의 번복 없이 완벽하게 업무를 수행해냈다.
“문원.”
“예, 봉선 님.”
답답한 심정을 토로하고 싶었는지,
무관들을 동원하여 현장을 감독하던 여포가 장료를 불렀다.
간혹 짓궂은 모습들을 보여주지만,
여포에게 있어 장료는 의자매나 다름없었기에 가끔씩 진솔하게 본심을 털어놓고는 했다.
이번 또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 마주해야 될지,
어떤 모습으로 그를 대해야 할지,
애타는 심정을 떠안게 된 처녀는 장료에게 제 마음을 진솔하게 전달했다.
“그… 이제 그 녀석하고… 가, 같이 잤잖아? 무, 물론 진짜 잔 건 아니지만 말이야!”
입술을 우물우물 달싹이면서 수줍게 고민을 털어놓는 여포의 모습은 순박함 그 자체였다.
설마 “어젯밤에 같은 이불을 덮었으니까 이제 임신하는 게 아닐까?”라고 물어볼 것처럼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부끄러워하는 반응에 장료는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죄송하지만… 주인님과 같은 이불을 덮었다고 아이를 임신하진 않아요.”
“나, 나도 알아! 왜 갑자기 바보 취급해?!”
의자매나 다름없는 부관으로부터 순진한 여자 취급을 당한 여포가 얼굴을 붉히면서 소리쳤다.
“후우… 요컨대 어떻게 주인님의 얼굴을 봐야 할지가 난감하다는 말씀이시죠?”
“응, 맞아!”
짝사랑하는 남성과 문자 그대로 동침을 한 것만으로도 순진무구한 처녀에게는 마음 설레는 사건이겠지만…,
술에 취한 채 쓰러진 이성휘의 위에 올라타서 기정사실까지 만들려 했던 장료에게는 한숨이 푹 나올 정도로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이렇게 고민할 시간에,
그냥 덮쳐버리면 될 일이 아닌가.
남성의 마음을 단번에 녹여낼 정도로 음란한 몸매를 자랑하는 처녀가 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끙끙 앓는 모습이 실로 비참해보였다.
“오셨어요, 주인님!”
“히아아아악!!”
장료가 등 너머를 바라보며 말했다.
혹시 이성휘가 불쑥 나타났을까,
여포는 장료의 말을 듣자마자 귀여운 비명을 터트렸다.
“아하하! 농담이에요.”
“야!!”
익살스러운 웃음을 터트리는 장료.
허둥지둥하며 어디로 도망칠까 고민하던 여포는 장료에게 속았음을 깨닫고는 광분을 담아 소리쳤다.
“나, 나는 진지하다고!”
“죄송해요… 봉선 님의 반응이 너무 재밌어서요.”
쿡쿡 웃음소리가 이어질수록 새빨갛게 달아오른 여포의 얼굴이 더욱 짙어졌다.
“어, 주인님!”
“누굴 바보로 알고? 이제 안 속아.”
“이번에는 진짠데….”
팔짱을 낀 채 완고한 표정을 짓는 여포.
그에 장료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봉선.”
이성휘가 여러 무장들을 동원한 채 다가왔다.
잠시 용무가 있었는지,
흙먼지로 가득한 작업현장에 온 이성휘는 곧장 여포를 호출했다.
장료에게 여러 번 놀림을 당하면서 경계를 놓고 있던 여포는 바로 지척에서 이성휘와 마주하게 되었다.
“히야아아아아아악──!!”
무뚝뚝한 얼굴을 곧바로 면전에서 보게 된 여포가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은 채 소리쳤다.
소스라치게 놀랐는지,
찬연하게 빛나는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이 삐죽 움직였을 정도였다.
여포의 비명을 생생하게 들은 무장들은 “대체 누구야, 이 귀여운 비명소리는?” “비장의 입에서 저런 비명이 나올 수 있다니.” 라는 당혹과 놀라움이 오고갔다.
“중모현(中??)에 비축된 사예주의 물자들을 운송하는 수송대를 호위할 무장이 필요하다. 네가 다녀와줬으면 한다.”
“어…. 으응.”
“오전부터 계속 찾았는데 안 보이더군.”
여포의 귀여운 비명에 놀란 반응을 보인 다른 무장들과는 달리, 이성휘는 매우 침착한 모습으로 여포에게 용무를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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