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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83화 (283/616)

〈 283화 〉 283. 비장연담(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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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은 허도(??) 건설에 온 힘을 다했다.

총책임자에 부군사 순욱을 임명했고,

상서대(書?)를 총괄하는 상서령(書?)으로 임명하여 권한을 대폭 늘려주었다.

전권을 위임받게 된 상서령 순욱은 휘하 관료들과 상의하여 궁궐과 성벽들의 위치와 구조를 설계하였으며, 또한 토목공사에 동원될 인력들을 징발하는 일에도 총책임을 맡았다.

“내일 5천의 병력이 새로 충원될 예정이라고 합니다, 상서령 어르신.”

중원의 모든 병력과 물자들이 허도에 집중되기 시작했다.

사예주와 예주를 방위하는 이성휘의 군단들이 대부분 허도의 토목공사에 투입되었을 정도로 조조는 천도 준비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제 시작이니까요.”

잿더미가 된 한나라를 다시 세워야 한다.

허도는 제2의 낙양으로서,

역적들에 의해 무너진 4백 년 왕조를 떠받치는 새로운 기둥이 될 터였다.

그래서 순욱은 영천군(?川?)과 여남군(???) 일대의 백성들을 대대적으로 징발하는 강경책을 스스로 지휘하면서까지 허현(??)에 모든 것을 투자했다.

“상서령, 사흘 밤낮을 지새웠다고 들었습니다. 조금 쉬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시중종사(?中??) 모개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에 순욱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토목공사에 동원된 수많은 예주 백성들이 피와 땀을 흘리고 있습니다. 그들을 강제로 징발한 제가 어찌 안위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한나라의 새로운 수도를 건설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동원령이었다.

그러나 생업에 종사하고 있던 백성들을 강제로 징발하여 노역장에 투입시킨 것에 대해 순욱은 많은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다.

대규모 토목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분명 자재를 옮기는 중에 죽거나 다치는 인원이 부지기수로 발생하고 있을 터.

토목공사에 동원된 백성들의 원망과 한탄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이 아려오는 듯했다.

“너무 괘념치 마십시오, 상서령. 토목공사를 담당하고 있는 공부(??)의 관료들에게 단단히 일러두었으니 불미스러운 일은 발생하지 않을 겁니다.”

“후우…. 네, 알겠습니다.”

모개의 말에 근심어린 표정을 짓고 있던 순욱이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자괴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황실과 조정의 중흥을 위해 대업을 반드시 완수해야 하는 중임을 맡고 있었음에도 한없이 망설이는 자신이 미워졌다.

자신에 제아무리 한탄하든,

무거운 자재를 옮기고 있을 인부들의 귀에는 결코 닿지 않을 터였다.

지금의 근심과 한탄은 위선에 지나지 않는다.

매몰차게 희생과 헌신을 강요한 주제에 전전긍긍하며 두려워하는 꼴이라니. 분명 이 모습을 예주 백성들이 본다면 크게 비웃을 게 틀림없었다.

“저는 이만 가보도록 하겠습니다. 상서령, 제발 오늘만큼은 푹 쉬십시오.”

“…네, 알겠습니다. 걱정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곧 모개가 집무실을 나섰다.

그의 간언에서 많은 것을 느꼈는지,

모개가 군문을 나설 때까지 순욱은 쓴웃음을 지은 채 번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후우….”

밝은 상아색 머리카락을 허리까지 늘어뜨린 여인은 고뇌에 찬 한숨을 흘리면서 집무실을 나섰다.

바깥 공기를 잠시 쐬고 싶었다.

찬바람을 맞이하면서,

잠시 복잡해진 머리를 식히려 했다.

따라나서려는 위병들을 만류한 채 홀로 만월이 뜬 정원으로 나온 순욱은 주변을 계속 맴돌면서 오직 자신에게 부여된 본분과 책무를 떠올렸다.

“상서령, 이 늦은 시간에 무슨 일이십니까.”

달빛을 내리쬐듯 고개를 들고 있었을 때,

고독한 발걸음으로 정원을 맴돌고 있는 그녀를 우연히 발견한 이성휘가 다가왔다.

아무래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사람은 자신뿐이 아닌 듯하다. 한 걸음씩 다가오는 남성을 본 순욱은 반가움에 찬 얼굴로 인사했다.

“잠시 찬바람을 쐬러 나왔습니다. 혹시 표기장군께서도 야근인가요?”

“늦게까지 못 다한 업무들을 처리하던 중이었습니다.”

“후후…. 저와 같으시네요.”

이성휘의 대답에 상아색 머리카락의 여인은 두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후후 웃음을 터트렸다.

상서령과 표기장군.

문무(文?)를 대표하는 수장들이 둘 다 야근 때문에 밤을 지새우고 있다는 게 재밌었다.

“예주의 각 군현에서 상소들이 날아들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셨어요?”

“예, 들었습니다.”

과연 조조군의 일벌레들답게,

아름다운 달빛이 내리쬐면서 은은한 운치가 펼쳐졌음에도 이성휘와 순욱은 업무와 간접적인 관련이 있는 자질구레한 이야깃거리들을 꺼냈다.

상소들이 빗발친다더라.

어느 부처에서 사고가 터졌다더라.

갓 임관한 낭관(?)들이 업무 중에 몰래 패관문학을 보다가 재상에게 적발되었다더라, 등등.

특히 낭관들이 ‘패관문학’을 보다 적발되었다는 말에 순욱은 격하게 반응했다.

하필이면 그 낭관들이 순욱이 관장하고 있는 상서대 소속이었기 때문이다.

엄격한 품행과 올바른 미풍양속을 매번 강조해왔던 순욱은 일벌백계하듯 적발된 낭관들을 지방 관청으로 좌천시키는 특단의 조치를 내렸다.

“앞으로도 불철주야… 열심히 일해야죠.”

아름다운 얼굴에 달빛을 품고 있던 여인이 배시시 웃으면서 말했다.

“당시 정북장군 원소의 세객에 불과했던 저를 표기장군께서 주군에게 직접 추천해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라도 최선을 다할 생각입니다.”

순욱의 당찬 호언에 이성휘는 조금 머쓱했는지 고개를 옆으로 슬쩍 돌렸다.

그 반응이 귀여웠는지,

상아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은 새하얀 손으로 입가를 가린 채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무리를 하란 뜻은 결코 아닙니다. 상서령에게 무리를 권할 생각 또한 없습니다.”

“군부의 수많은 장수들 중에서 가장 무리하시는 분이 말씀하시니 설득력이 없는데요.”

“물론 그건 그렇습니다만….”

혈혈단신으로 3백 명에 달하는 도적들과 사투를 벌이다가 사경을 헤맸던 놈이 할 말이 아니긴 하다.

과연 수많은 참모들 중 으뜸답게,

순욱은 초시일관 이성휘를 현란한 말솜씨로 압도하는 모습을 보였다.

곤혹스러워하는 이성휘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달밤에 함께 이야기를 나누던 순욱은 진심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그간 끙끙 앓던 번뇌와 근심을 저 멀리 떨어트렸다.

“표기장군.”

“예, 말씀하십시오.”

샛별처럼 빛나는 밤색 눈동자를 뜬 여인이 맞은편에 있던 사내에게 물었다.

“혹시 저한테… 숨기고 계신 것이 있으신가요.”

“…….”

“아, 죄송해요. 너무 뜬금없는 말이었죠? 제가 이유가 있어서 이런 말을 드린 건 아니고… 표기장군께서 제게 뭔가를 숨기고 계신 것 같아서요.”

단순한 심증.

그저 넌지시 떠본 말에 불과했다.

하지만 순욱의 그 말에 이성휘는 내심이 들킨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문약과 맹덕은 서로 지향하는 바가 다르다. 맹덕은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문약은 한나라 황실의 중흥을 꿈꾸고 있다. 결국 정적이 될 수밖에 없겠지.’

순욱은 신념과 이념을 겸비한 이상가다.

황실을 향한 충성을 신념으로 삼았고,

4백 년 왕조를 다시 일으키겠다는 목적을 이념으로 삼았다.

그렇기에 훗날 부딪칠 수밖에 없을 터였다.

아직 충돌은 벌어지지 않았으나,

결국 조조가 중원에 이어 하북마저 통일하게 된다면 결국 일어나게 될 반목이다.

이성휘는 순욱을 경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 * *

청주(??)로 진입했던 유비군은 불과 수천의 병력으로 수십만 명에 이르는 황건적 대군을 격파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한 달 동안 싸워 전승을 거둬냈고,

황건적들에게 포위된 채 학수고대하며 외부의 지원을 기다리던 북해상(北??) 공융을 구출하는 활약까지 세웠다.

유비의 이름이 청주 전역을 진동시켰다.

또한 의용군을 지휘하는 세 자매들의 무명은 청주와 인접한 서주(??)와 기주(??) 일대까지 널리 퍼지게 되었다.

“고맙네! 정말 고맙네…! 만약 자네들이 구원을 오지 않았다면 비천한 황건적 무리들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고 말았을 걸세.”

유비군의 활약으로 북해상 공융은 식솔들과 이끌고 북해국(北?國)을 벗어날 수 있었다.

공융을 잡으려다가 세 자매들에게 모멸적인 대패를 당한 황건적 두령들은 이를 빠득 갈면서 동래군(???)으로 물러난 상태였다.

“황상께서 다시 중원으로 돌아오셨다는 소식을 들었네. 그것이 사실인가?”

“예, 그렇습니다.”

공융이 물었다.

그에 관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도적떼들에게 결국 북해국을 빼앗긴 내가 어찌 북해상의 인수(??)를 계속 고집할 수 있겠나. 응당 황실과 조정에 반납하는 것이 옳을 걸세.”

구사일생으로 가솔들과 북해국을 탈출한 공융은 북해상의 인수를 반납하겠다는 결연한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것은 표면적인 명분일 뿐,

북해상의 인수를 반납한 뒤에 조정대신들로부터 천거를 받아 중앙 조정의 일원이 되겠다는 야심으로 가득했다.

관우와 장비는 그런 공융의 모습을 보고 ‘한나라의 충신’이라며 칭송을 마지않았으나, 오직 유비만이 공융의 시커먼 내심을 간파했다.

하지만 일부러 모른 척 넘겼다.

“역시 북해상 어르신은 대단하십니다. 과연 뛰어난 학식과 명망을 겸비하신 성현(??)의 후손다우세요.”

공융은 공자(?子)의 20세손이며,

또한 학식과 명망이 높기로 유명한 건안칠자(??七子)의 일인이다.

수많은 격전들을 치른 끝에 사지에서 구출한 공융을 진류군으로 무사히 데려간다면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포상을 받는 것은 물론, 천하에 명성을 크게 떨칠 수 있을 터였다.

“그럼 저희들이 어르신을 진류군까지 안전하게 호위하겠습니다.”

“정말 고맙네. 자네들에게 입은 이 은혜를 내 절대로 잊지 않을 걸세.”

궁경에서 구해준 것은 물론,

연주 진류군까지 안전하게 호위하겠다는 유비의 제안에 공융은 울음을 터트릴 것처럼 감격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물론 속으로는 ‘이용해먹기 좋은 촌년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당대까지 큰 존경을 받는 성현의 후손이신 어르신에게 도움이 되었다니 영광입니다.”

그리고 유비는 공융을 ‘제 분수도 모르고 혓바닥이나 나불대는 놈’이라 생각했다.

능력도, 자질도 없는 주제에

그저 입에 바른 정의를 주장할 뿐인 무능한 이상론자.

결국 조조에게 죽임을 당하겠지.

뼛속까지 현실주의자인 조조에게 있어 오만하기 이를 때 없는 무능한 이상론자는 그 존재만으로도 역린이나 다름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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