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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82화 (282/616)

〈 282화 〉 282. 비장연담(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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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냄새가 난다.

뭐라고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순 없지만 포근한… 냄새였다.

주인님(장료가 멋대로 붙인 호칭일 뿐이지만)을 기다리다가 지쳐 그만 쿨쿨 잠에 빠진 금발의 아름다운 시녀는 은연중에 두 팔을 뻗어 이부자리에 나란히 누운 그것을 껴안았다.

“흐응… 흐음….”

본능에 따른 행동이었다.

껴안고 싶은 충동이,

잠결에 문득 떠오른 욕망이 몸을 움직였다.

제정신인 상태였다면 절대 저지를 염두조차 못 낼 행동이었겠지.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잠결에 헤매는 상태였다.

그렇기에 본능에 따랐다.

체면도 부끄러움도 모두 벗어던진 채…, 오직 본능에 의해 움직였다.

입가에 침을 줄줄 흘리면서 행복하게 자고 있는 여포의 모습을 본 이성휘가 결국 같은 이부자리에 누운 것처럼 말이다.

“우앗! 뭐, 뭐야…!”

두 팔로 사랑스러운 사람을 꼭 끌어안은 채 행복한 숙면을 이어나가던 아름다운 금발의 시녀가 몸을 일으킨 것은 묘시(??)에 이른 시각이었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인,

매우 이른 새벽에 눈을 뜬 여포는 두 눈을 감은 채 자신의 옆에서 곤히 자고 있는 남성을 목격했다.

어깨를 바르르 떨었다.

아니,

온몸을 바르르 떨 정도로 동요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오직 패국조씨 가문의 아가씨들에게만 눈길을 주는 이 둔감한 남성이 설마 스스럼없이 갑자기 동침을 해올 줄이야.

‘마, 말도 안 돼…! 이 녀석이 어째서…! 지금껏 나한테는 눈길 한 번 안 줬던 주제에…!!’

소스라치게 놀란 여포는 제 몸을 더듬더듬 살피면서 어젯밤에 있었을지도 모를 경우를 추측했다.

그러나 별다른 이상은 없었다.

앞섶과 매듭,

거친 잠버릇 때문에 다소 흐트러진 상태였지만 풀어헤친 흔적은 참아볼 수 없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얼굴을 새빨갛게 붉힌 여포는 제 하복부를 조심스럽게 조물조물 만지면서 지금까지 소중하게 간직해온 처녀를 확인했다.

“무사하네….”

별다른 흔적은 없었다.

불장난의 증거는 물론,

옷 너머를 강제로 만진 흔적조차 없다.

과연 무명 높은 천하제일검이라고 해야 할까. 제아무리 무방비한 상태로 잠이 든 아녀자라고 해도 절대로 건드리지 않는다는 신념마저 느껴졌다.

“짜증나.”

금발의 시녀가 뺨에 바람을 넣으면서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런 고자 새끼.

바로 눈앞에 나처럼 쭉쭉빵빵한 미녀가 자고 있는데 어떻게 안 건들 수가 있지?

아니,

고자 새끼는 아닌가….

밉살스럽게 생긴 그 꼬맹이를 임신시켰으니까.

“내가… 그 꼬맹이에 비해 어디가 부족하다고….”

가슴?

그 꼬맹이에 비하면 비교조차 불가능한 수준이다.

병주에서 무관을 지낼 때부터 수많은 남정네들로부터 구혼을 받았으니 미모와 아름다움은 당연히 말할 것도 없겠지.

만약 밉살스러운 꼬맹이보다 먼저 이 녀석을 만났더라면 보다 가까운 관계가 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이건 조금 속단이지만,

어쩌면 그 꼬맹이를 제치고 정실이 되었을지도….

“아아악!!”

내가 어째서 이런 민망하기 짝이 없는 고민을 해야 한단 말인가.

머리를 싸맨 채 비명을 토해냈다.

부끄러움에 찬 비명이었다.

그를 증명하듯 여포의 얼굴은 잘 익은 사과처럼 붉게 물든 상태였다.

거친 숨결을 쌕쌕 내뱉으며…, 바로 옆에서 소란이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도 곤히 자고 있는 남정네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그나저나 내가 이렇게 부스럭대고 있는데도 잘 자네….’

깊은 연심을 끙끙 앓으면서 격렬한 몸부림을 벌이던 여포는 고개를 쭉 내밀었다.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붉은 눈동자를 끔뻑이면서 그를 관찰했다.

짙은 속눈썹과 다부진 턱선.

부드러울 것 같은 새카만 머리카락과 잘생긴 용모까지.

특히 이불 사이로 툭 튀어나온 탄탄한 팔뚝과 견고한 어깨는 사납고 용맹한 남성미를 자극했다. 그것을 본 여포는 얼굴을 붉힌 채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자… 잘생겼네. 응, 잘생겼어…. 병주의 남정네들은 우악스럽게 생겼을 뿐인데…. 남자가 어떻게 하면 이렇게 잘생길 수 있는 거야?’

병주에서 선머슴처럼 살아온 촌년이라고 해도 천하에 손꼽히는 미남을 몰라볼 리 없었다.

수많은 처녀들의 마음에 불을 지폈겠지.

어쩌면 그를 사모하는 마음을 이기지 못해 상사병을 앓게 된 처녀가 있을지도 모른다.

당장 자신만 하더라도 이렇게 전전긍긍하며 마음을 애태우고 있으니…, 상사병에 걸린 처녀들이 있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흥… 이 난봉꾼.”

여포가 야속함을 중얼거리면서 이성휘의 뺨을 손가락으로 쿡 찔렀다.

못마땅함의 표현이다.

날 애태우게 만든 원흉을 향한 귀여운 앙갚음.

이 남자는 왜 이렇게 완벽한 걸까.

잘생긴 용모와 강인한 체격.

천하제일검의 무명이 아깝지 않은 무예와 용맹.

거기에 봄바람처럼 풋풋한 처녀들을 단번에 꾀어내는 치명적인 매력까지.

반하지 않을 수 없다.

그를 바라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기에 애타는 마음은 더욱 깊어지면서 상사병으로까지 이어졌다.

‘내가 널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아? 그때 네가 궁궐에서 나와 부하들을 구해줬을 때부터… 이 넓은 천하에 너 밖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반해버렸단 말이야.’

처음에는 호승심이었던 마음이,

그때부터 연모와 연심으로 바뀌게 되었다.

불바다가 된 궁궐에서 무수히 많은 적들에게 포위당한 절체절명의 위기. 최악의 상황에 직면했던 자신과 부하들을 구해준 것이 바로 이성휘였다.

단번에 번조를 참수하고 동탁군의 졸개들을 모조리 토벌한 끝에 황후를 구해낸 이성휘의 활약에 그만 시선과 함께 마음마저 홀연히 빼앗기고 말았다.

‘하, 하지만 나더러 어쩌라고…! 천하에 어떤 여자가 그 상황에서 어떻게 반하지 않을 수 있겠냐고!!’

답답한 마음을 애써 불평으로 토해냈다.

나를 봐주지 않는 그를 향한 야속함.

그저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는 애달픔.

내가 아닌 다른 여자들에게 사랑을 속삭이는 그의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무심코 눈물이 뚝뚝 흘러내릴 것처럼 마음이 아려왔다.

왜 이렇게 나약해졌단 말인가.

천하무쌍(?下無?)이 되겠노라고 호언하며 수많은 적수들을 무찔렀던 이 병주의 비장이 어째서 한 남자에게 이토록 매달리게 되었단 말인가.

“다 너 때문이야.”

뺨을 쿡쿡 찌르던 손가락으로 그의 이마를 쿡 짓눌렀다.

한없이 멋지고 완벽한,

내 마음을 훔쳐간 남자에게 야속함을 표현했다.

“그 꼬맹이만 보지 말고…, 너 때문에 매일 마음을 애태우고 있는 나도 봐달란 말이야. 이 바보야.”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술에 취한 채 잠에 빠진 천하제일검은 숨소리조차 내지 않은 채 곤히 자고 있을 뿐이었다.

* * *

조심스럽게 문을 닫고서 나왔을 때,

흑발의 여인이 흥미진진한 눈길을 보내면서 경박스러운 발걸음과 함께 다가왔다.

무슨 질문을 할지 뻔히 짐작된다.

여포는 계속 아래로 흘러내리는 의복을 추스르면서 부관의 짓궂은 질문에 대비했다.

“어떠셨어요, 봉선 님? 화끈한 밤을 보내셨나요?”

짐작했던 대로였다.

예상에 전혀 틀림이 없었다.

히죽히죽 웃으면서 대답을 기다리는 장료의 짓궂은 모습을 본 여포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일도 없었거든.”

“네? 설마요. 주인님과 함께 내실에서 하룻밤을 지새우셨는데… 아무 일도 없었다고요?”

“그 주인님이라는 호칭 좀 집어넣어. 나까지 민망해지잖아.”

설마 계속 주인님이라 부를 생각인가?

새하얀 엉덩잇살이 고스란히 보일 정도로 짧은 치마를 살랑살랑 흔들면서 요염함 몸짓을 보이는 장료의 모습에 여포는 불안감을 느꼈다.

음란한 시녀복이 엄청 잘 어울린다.

곧바로 사직서를 제출한 다음에 이성휘의 전속시녀가 되어도 썩 잘 어울릴 것 같았다.

애교와 교태를 떨면서 이성휘에게 온갖 아양을 부릴 장료의 모습을 떠올린 여포는 머리가 지끈거렸는지 미간을 찌푸렸다.

“하아, 계획이 수포로 돌아갔네요…. 이대로 합방하게 만들어서 기정사실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는데….”

안타까움에 찬 한숨을 내쉬는 장료.

그 모습에 여포는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주인님이 술에 취한 채로 돌아오시는 게 자주 있는 일은 아니잖아요? 절대로 놓쳐선 안 될 절호의 기회였는데….”

그렇게 중얼거린 흑발의 여인은 “저였으면 주인님께서 술에 곯아떨어졌을 때 강제로 덮쳐버렸을 텐데요.”라고 말을 덧붙이면서 여포를 민망하게 만들었다.

목소리에 거짓이 없다.

만약 장료가 내실에 들어왔더라면,

그녀는 문답무용으로 술에 취한 이성휘를 덮친 뒤에 기정사실을 만들었으리라.

“그런 비겁한 방법은 쓰고 싶지 않아. 설령 끝까지 날 봐주지 않더라도…, 나는 정정당당하게 녀석의 마음을 쟁취해낼 거야.”

새치름한 표정을 지은 여포가 고개를 옆으로 홱 돌리면서 결연한 마음을 입에 담았다.

정정당당하게 마음을 쟁취하겠다.

과연 그녀다운 대답이었다.

물론 지금까지 진척도가 형편없었지만.

“그럼 어떻게 하실 건가요? 봉선 님에게 고견을 듣고 싶어요.”

“지,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지….”

내심 아쉬움을 느끼고 있었는지,

여포의 목소리에 아쉬움에 찬 감정이 물씬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대로 덮쳐버렸으면 편했을 텐데.

장료의 말을 듣고서 은연중에 아쉬움을 느낀 것이리라.

담대한 용맹과 무자비한 무력을 겸비한 여걸치고는 참으로 귀여운 모습이었다.

* * *

이부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흐트러진 의복을 정돈한 뒤,

두 여성들의 목소리가 들리는 문 너머로 시선을 향했다.

“…….”

얼굴을 새빨갛게 물들이면서 사랑을 속삭였던 여포가 문을 나서자마자 두 눈을 떴다.

이미 잠에서 깬 상태였다.

여포가 살금살금 다가왔을 때,

이성휘는 그 기척을 간파하고 눈을 떴다.

술에 취한 채 고주망태가 된 상태였음에도 결코 무뎌지지 않은 날카로운 직감은 귀여운 새끼고양이처럼 다가온 여포의 기척을 단번에 낚아챘다.

‘그 꼬맹이만 보지 말고…, 너 때문에 매일 마음을 애태우고 있는 나도 봐달란 말이야. 이 바보야.’

자신의 이마를 쿡 찌르면서 속삭였던 여포의 고백을 떠올린 이성휘가 잠시 두 눈을 끔뻑였다.

계속 어렴풋이 느꼈던 그녀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게 된 순간이었다.

여포가 나를 연모하고 있다.

병주의 비장이…,

일기당천의 맹장이 자신을 그간 연모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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