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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81화 (281/616)

〈 281화 〉 281. 흐릿한 기억(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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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도(??)로 중심지를 옮기기 위한 작업들이 분주하게 이뤄지고 있었을 때,

패국조씨 가문의 명망 높은 원로들이 조숭과 함께 진류군에 도착하자마자 재물을 아낌없이 쏟으며 성대한 잔치를 열었다.

성급하게 혼례를 미리 축하하듯,

원로들은 패국조씨 가문을 추종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모두 초청하여 호화로운 사치와 화려한 향락을 즐겼다.

“이번에 담근 장과주(???)일세!”

“아니, 이렇게 귀한 술을…! 잘 마시겠습니다, 어르신!”

최상급 옥을 조각하여 만든 술잔과 화려한 비단으로 만든 의복들까지.

패국조씨 가문의 금력은 실로 어마어마했다.

중원의 패권을 거머쥔 패국조씨 가문의 금력을 목격한 사대부와 호족들은 두 눈을 휘둥그레 뜨며 크게 감탄하는 모습을 보였다.

“껄껄! 뭘 이 정도로 놀라는가?”

“우리 패국조씨 가문이 빈털터리나 다름없는 황실과 조정을 대신하여 관료들의 녹봉을 마련하고 있다네.”

황건적의 난과 동탁의 폭정으로 인해 황실과 조정은 철저히 몰락하고 말았다.

뒤이어 동탁의 주구들이 장안성마저 쑥대밭으로 만들어버리면서 황실과 조정은 당장 식비조차 마련하지 못하여 연주 사대부와 호족들에게 염치를 불고하고서 손을 벌려야 하는 피폐해진 상태였다.

누더기가 된 의복을 걸친 채 깨진 상투관을 써야할 정도로 궁핍한 처지에 내몰리게 되면서 황실과 조정의 격식과 위엄은 바닥을 치고 있었다.

“에잉, 왜 우리들이 그런 비렁뱅이들의 급료를 대신하여 줘야 하는 겐지….”

“아만과 합의한 일이 아닌가. 얌전히 따르도록 하세.”

패국조씨 가문의 원로들 중 일부는 관료들의 급료를 부담하는 것에 불만을 품고 있었다.

대체 어째서 우리들이,

지금껏 목에 핏대를 세우면서 군림해온 조정대신들에게 급료를 지불해야 한단 말인가.

환관 집안이라며 청류파 인사들로부터 모멸과 괄시를 당해왔던 패국조씨 가문은 비렁뱅이 주제에 같잖은 자존심이나 내세우고 있는 조정대신들을 크게 비난했다.

“앞으로 패국조씨 가문을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어르신, 맡겨만 주십시오!”

어마어마한 금력을 보게 된 사대부와 호족들은 황실과 조정을 등진 채 패국조씨 가문에 충성했다.

곳간에서 인심이 나오듯,

재물에서 충성이 나오는 법이다.

패국조씨 가문의 도움 없이는 곡기조차 먹을 수 없을 정도로 궁핍한 황실과 조정에 누가 충성하려 하겠는가.

“사위, 어서 들어오게!”

사치와 향락에 물든 패국조씨 가문의 잔치에 천하제일검이 모습을 드러냈다.

허리에 육군(?)의 보검과 패국조씨 가문의 보검을 찬 채 대문을 넘은 사내의 모습에 군중이 크게 웅성거렸다.

표기장군(????) 이성휘.

조조군의 2인자이며,

사예주와 예주 전선의 병력들을 총지휘하는 도독이었으므로 자연스럽게 패국조씨 가문의 잔치에 초대된 사대부와 호족들의 시선을 모으게 되었다.

“부르심을 받고 왔습니다, 장인어른. 잔치에 온 사람들이 많군요.”

“하하핫! 그만큼 가문의 위세가 대단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는가!”

조숭이 껄껄 웃으면서 이성휘의 등을 토닥였다.

가문의 위세가 어느 정도인지,

사대부와 호족들을 아우르고 있는 영향력을 사위에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삼공(三?)과 구경(九?)의 벼슬을 연임했던 노련한 고관답게 조숭은 매우 영리하고 치밀한 정치적 수완과 역량을 보였다.

“하지만 분명 황실과 조정이 패국조씨 가문의 위세를 크게 경계할 겁니다.”

“경계만 할 뿐일세.”

우려를 담은 이성휘의 말에 조숭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황실과 조정은 힘을 잃은 채 명맥만을 간신히 보존하고 있을 뿐이다.

그들은 패국조씨 가문의 도움 없이는 명맥을 유지할 수 없음을 알기에 결코 위협을 가해올 수 없을 것이라며 말을 덧붙였다.

“내 딸과 혼인해주어 고맙네.”

조숭이 쑥스러움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혼인을 받아주어 고맙다.

애지중지 키운 외동딸을 시집보내는 아버지가 꺼낸 말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겸허했다.

딸의 섬섬옥수 같은 손에 물 한 방울이라도 묻히면 가만두지 않겠다는 등, 딸을 도둑질한 놈에게 못마땅한 눈치를 보낼 법도 하건만 조숭은 오히려 이성휘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오히려 제가 장인어른에게 감사를 표해야 마땅합니다.”

이성휘의 대답에 조숭은 쓴웃음을 지으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아닐세, 자네가 혼인을 받아주지 않았다면 아만은 분명 평생 노처녀로 살았을 걸세. 마치 하늘이 점지해준 것처럼 자네가 불쑥 나타나주지 않았다면, 우리 패국조씨 가문은 방계의 혈육을 양자로 들여 후계자로 삼는 번거로운 방법을 동원해야 했을 것이네.”

그렇게 말한 조숭은 “나 또한 그 이유로 부친의 양자로 들어온 것일세.”라고 덧붙였다.

만약 천생연분을 만나지 못했다면,

딸아이는 평생 독신으로 살며 쓸쓸한 삶을 보냈을 것이라며 조숭은 숙연함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렇기에 조숭은 고독과 외로움 속에 갇힌 채 목표만을 추종하던 딸을 구원해준 이성휘를 매우 아꼈다.

“결코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물론 금지옥엽처럼 키운 외동딸에 이어… 장인어른의 조카딸까지 욕심을 낸 이 도둑놈이 할 말은 아니지만 말입니다.”

“하하핫! 제가 도둑놈인 줄은 아는구먼.”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린 조숭이 이성휘에게 값비싼 맑은술을 가득 담은 술잔을 내밀었다.

그에 이성휘는 망설임 없이 가득 넘치는 술잔을 비워냈다.

* * *

패국조씨 가문의 원로들로부터 열렬한 성원과 지지를 받게 된 이성휘는 결국 몸을 제대로 가눌 수 없을 정도로 술을 마시고 말았다.

어떻게 권유하는 술을 마다하겠는가.

도저히 사양할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결국 고주망태가 될 때까지 마시고 또 마셨다.

초인적인 정신력을 발휘하며 두 눈을 부릅뜬 이성휘는 비틀대는 발걸음으로 가택에 돌아왔다.

“물…. 물을 부탁한다.”

흐려지는 시야.

점점 둔감해지는 감각까지.

대청마루에 앉은 이성휘는 손을 뻗으면서 물을 부탁했다.

허리까지 흑발을 늘어뜨린 아름다운 시녀가 배시시 웃음을 터트리면서 이성휘에게 물을 가져왔다.

시녀가 건넨 물을 꿀꺽꿀꺽 마신 이성휘는 단전에서 올라오는 것 같은 취기가 점점 가라앉는 것을 느꼈다.

“술냄새가 엄청나네요…. 대체 얼마나 드신 거에요, 주인님?”

주인님.

가택에서 일하는 인원들 중에 자신을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노복은 없다.

청초하고 아름다운 시녀의 입에서 나온 ‘주인님’이라는 호칭에 이상함을 느꼈다. 그에 이성휘는 두 눈을 크게 부릅뜨면서 생글생글 웃고 있는 흑발의 시녀를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아직 시집도 안 간 처녀의 얼굴을 그리 빤히 쳐다보시다니… 혹시 오늘 밤 수청을 들라고 말하고 싶으신가요? 부끄러워라♡”

물을 건넨 흑발의 시녀는 바로 대체 어디서 주문했는지 모를 음란한 시녀복을 입고 있는 장료였다.

병주군의 지휘관 중 한 명이며,

혁혁한 활약들을 여럿 세워 장군에 임명된 병주 출신의 여걸.

흑단처럼 아름다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청초한 미녀가 두툼한 엉덩잇살이 그대로 드러날 정도로 짧은 치마를 흔들면서 교태를 부리고 있었다.

“지금 묻고 싶은 말들이 많지만…. 일단 딱 하나만 묻도록 하지.”

후우, 하고 한숨을 깊게 내쉰 이성휘가 피곤에 절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거지, 문원?”

그에 장료가 대답했다.

“오늘도 격무에 지치셨을 표기장군을 위해 약소하게나마 정성을 표현하고 싶어서요. 평생 다 갚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은혜들을 받은 병주군을 대표하여 보은의 마음을 전하려고요.”

‘약소한’ 정성이라니.

만약 무거운 정성이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상상하고 싶지도 않았다.

죄책감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방금까지 장인어른을 뵙고 왔건만… 사위라는 놈은 음란한 복장을 한 부하에게 시중을 받고 있다니.

“머리가 지끈거리는군. 네 말대로 격무 때문에 많이 지친 모양이다.”

“그럼 빨리 밤의 봉사를…!”

득달처럼 달려드는 장료의 행동에 위기감을 감지한 이성휘는 당장 자리에서 벗어나려 했다.

안 된다.

정말 더 이상은 안 된다.

위기감이 벼락처럼 내리꽂히면서 뇌와 척추를 관통하는 듯했다.

이런 식으로 어물쩍 행동하다가 조인과 관계를 맺지 않았는가. 더 이상 지조 없이 행동했다간 연모하는 주군과의 혼례가 파탄이 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에 이성휘는 흐릿하게 물든 정신에 계속 경각심을 가하면서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썩 돌아가라.”

불량 잡상인을 쫓아내듯 득달처럼 달려드는 장료를 배척한 이성휘는 서둘러 침소 안으로 들어왔다.

대체 무슨 꼴이란 말인가.

문을 황급히 닫은 이성휘가 한숨을 깊게 내쉬면서 중얼거렸다.

하지만 숨을 고르면서 안심하기도 잠시, 곱게 깔린 이부자리 위에 누운 채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며 자고 있는 금발의 여인을 본 이성휘는 탄식을 흘렸다.

“이번에는 봉선인가….”

여포는 장료와 마찬가지로 음란하기 짝이 없는 시녀복을 입고 있었다.

장료의 시녀복이 엉덩이를 강조했다면,

여포가 입은 시녀복은 노골적으로 가슴을 강조하고 있었다.

흉악스러울 정도로 커다란 폭유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의복. 가슴을 가리는 게 아니라 그냥 덮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유두를 툭 가리고 있을 뿐이었다.

“자고 있는 건가. 하긴 많이 늦은 시간이니.”

아슬아슬하게 타들어가고 있는 등불을 쳐다본 이성휘는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

정말 많이 늦은 시간이었다.

침소에서 몰래 기다리던 여포가 밀려드는 수면욕을 참지 못한 채 이부자리에 쓰러져 잠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사람을 참 황당하게 만드는군.”

실소를 머금은 이성휘가 자신의 이부자리를 빼앗은 당돌한 시녀에게 이불을 덮어주었다.

혹시 감기라도 걸릴까,

부드러운 눈길로 그녀를 응시했다.

어린아이처럼 이부자리를 뒤척이는 여포의 모습은 일기당천의 맹장이라고는 보이지 않을 정도로 귀여웠다. 특히 무방비하게 노출된 도톰한 입술이 매우 선명한 선홍빛을 머금고 있었다.

“뭔가 익숙한 기분이 들어… 뭐, 기분 탓이겠지만.”

그렇게 중얼거린 이성휘는 새근새근 숨소리를 내면서 자고 있는 여포의 옆자리에 누웠다.

침소에서 나가는 것도,

새 이불을 까는 것도 귀찮았기에 그대로 몸을 눕힌 채 두 눈을 감았다.

좋은 냄새가 났다. 마치 과육냄새처럼 상큼한 여포의 체취가 코를 자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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