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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80화 (280/616)

〈 280화 〉 280. 흐릿한 기억(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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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이 마침내 협천자(??子)에 성공했다.

낙양대전에서 완승을 거둔 조조군이 결국 동탁군의 잔당들에게 억류되었던 황제와 공경들을 구출하여 무결한 명분과 정통성마저 거머쥐게 되었다.

이제 중원의 패자를 넘어,

천하의 패자에 한 걸음 다가서게 된 것이다.

“사위!”

멋들어지게 수염을 기른 노년의 남성이 호의에 찬 미소를 지으면서 다가왔다.

딸의 소식을 들었는지,

조숭은 이성휘를 완전히 패국조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여기고 있었다.

천하제일검을 사위로 둔 장인은 마치 전국옥새라도 거머쥔 것처럼 떵떵거리며 콧대를 높였다.

“오셨습니까, 그… 장인어른.”

껄껄 웃음을 터트리면서 호의를 보내는 조숭의 모습에 이성휘는 매우 낯설고 어색한 ‘장인어른’이라는 호칭을 입에 담으면서 예를 취했다.

장인어른이라,

많이 낯간지러운 호칭이었다.

머지않아 조조와 혼례를 올리게 될 것이기에 앞으로 익숙해져야 할 터. 이성휘는 어색함을 애써 참아내면서 조숭을 장인어른이라 불렀다.

“하하핫!”

무명 높은 천하제일검으로부터 장인어른이라 불리게 된 조숭은 더욱 크게 웃음을 터트리면서 기고만장한 모습을 보였다.

어찌 웃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천하제일검 사위에 이어,

금지옥엽처럼 키운 외동딸이 손주를 가졌다는 소식까지 들었는데.

겹경사를 연이어 맞이하게 된 조숭과 패국조씨 가문은 날마다 축배를 들며 춤을 출 정도로 흥겨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매형, 황상의 군대인 육군(?)을 맡으셨다고 들었습니다. 경하드립니다!”

“과찬이십니다.”

“어찌 매형께서는 처남에게 말을 높이십니까. 부디 편하게 말을 놓아주십시오. 저는 매형과의 사이에 허울을 두고 싶지 않습니다.”

“어… 그래, 알겠다…. 앞으로 잘 부탁하지, 처남.”

“예, 매형!”

이성휘의 입에서 나온 ‘처남’이라는 호칭을 듣게 된 조덕이 두 눈을 빛내면서 당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얼마나,

얼마나 처남이라는 호칭을 기다렸던가.

검 한 자루로 천하를 벌벌 떨게 만든 천하제일검의 처남이 되었음이 감개무량했다.

“이제 슬슬 우리 딸아이와 혼례를 치러야 하지 않겠나? 우리 가문에서 곧 길일을 잡을 터이니, 딸아이와 함께 준비해두게.”

“예, 숙지하겠습니다.”

공손하게 예를 취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숭이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오랜 준비와 노력 끝에,

천하제일검과 딸아이의 혼례가 성립되었다.

이제 길일을 기다리며 혼례식을 준비하는 일만 남겨두고 있었다. 패국조씨 가문에 다시없을 경사나 다름없는 빙례(??)였기에 기둥을 휘청거릴 정도로 혼례식에 가산을 아낌없이 쏟을 생각이었다.

“아버지, 이는 패국조씨 가문의 위신과 명성이 달린 일이기도 합니다! 가례(??)에 버금갈 정도의 지위와 품격이 동원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 생각도 그와 같다.”

가례.

황실의 성혼을 의미한다.

황제와 황태자의 성혼에 필적하는 격식으로 혼례를 준비해야 한다는 조덕의 말에 조숭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동의했다.

열띤 성원과 축하를 보내는 조씨 부자의 모습에 이성휘는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러워했다.

“하지만 혼례는 조촐하게….”

“그게 무슨 소리인가, 사위! 하나뿐인 외동딸의 혼례인 것을! 천하제일검이 패국조씨 가문의 사위가 되는 경사가 아닌가!”

음.

조촐하게 치르는 것은 무리인 듯하다.

지금까지 축적한 재산의 대부분을 혼례에 쓸 것처럼 광분에 찬 반응을 보이는 조숭의 모습에 결국 이성휘는 백기를 들어야 했다.

대체 얼마나,

얼마나 어마어마하게 준비할 생각인 걸까.

벌써부터 두려운 마음이 앞섰다.

* * *

이성휘가 황제의 근위병단인 육군(?)을 맡게 되면서부터 휘하들 또한 많이 바빠지게 되었다.

병력 편성은 물론,

주둔군 배치와 인사개편에 큰 변동이 생기게 되면서 업무들이 산더미처럼 늘어났다.

이성휘의 추천을 받아 가후와 순유 다음으로 세 번째 군사에 임명된 사마의 또한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게 된 업무들에 시달리는 고충을 겪고 있는 실정이었다.

“히에에에엑!!”

우는 소리를 내는 흑발의 소녀.

인형처럼 아기자기한 용모가 무색하게,

소녀의 두 눈 밑에 시커먼 그림자가 가득했다.

만약 현대였다면 아동보호법에 의해 제지를 받았겠지만 2세기 한나라에 그런 편리한 법률이 있을 리 없었기에 사마의는 막중한 격무에 시달려야 했다.

“싫다! 싫음! 본좌는 일하기 싫음!”

“그럼 사공 어르신에게 전언을….”

“여, 열심히 하겠음!”

최종 결정권자인 조조에게 통보를 보내려는 이성휘의 모습에 사마의가 질색하는 모습을 보였다.

새 장난감을 사달라고 조르는 아이처럼 빽빽 소리를 내던 사마의는 다시 자리에 앉아 붓을 움직이면서 업무를 보기 시작했다.

말 안 듣는 아이에게는 곶감을.

말 안 듣는 사마의에게는 조조가 제격이었다.

“조금만 참아라. 곧 퇴청 시간이니.”

“히잉….”

이성휘의 말에 사마의가 볼멘소리를 내면서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일하기 싫지만 어쩌겠는가.

태업을 일삼으면 무시무시한 마왕이 나타나는데.

다시 마구간지기로 돌아가는 것은 죽기보다 싫었기에 사마의는 오늘도 열심히 일할 수밖에 없었다. 생존을 위해서라도 말이다.

“영예로우신 주군께서 천하를 향해 한 걸음 다가서신 그 모습에 소녀는 감개무량할 따름이옵니다.”

반역무새,

가후가 음흉한 미소를 지으면서 중얼거렸다.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은 음란한 몸매가 그대로 부각되는 색정적인 의복을 입은 채, 젖가슴을 살랑살랑 흔들면서 쿡쿡 웃음을 터트렸다.

그 모습을 본 이성휘는 입술을 꾹 다물면서 사마의의 두 눈을 한손으로 가렸다.

“문화, 의복 위에 시무복을 걸치라고 했을 텐데.”

“그치만 덥지 않사옵니까~”

이성휘의 지적에 잿빛 머리카락의 여인이 여우처럼 교태를 부리면서 손으로 부채질을 했다.

의자에 걸려있는 시무복(???).

가슴과 엉덩이의 음란한 윤곽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의복을 입은 가후에게 제발 좀 가리라고 건넨 표기장군의 시무복이었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가후는 날이 너무 덥다며 시무복을 벗은 채 자신의 음란한 몸을 과시하듯 풍만한 가슴을 훤히 내밀고 있었다.

“흐응….”

사마의의 두 눈을 가린 채 당혹감에 찬 반응을 보이는 이성휘의 모습에 가후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반응이 재밌기 때문일까.

영예로우신 주군을 계속 놀려주고 싶었다.

혼인을 앞둔 유부남에게 음란한 장난을 친다는 배덕감이 욕구를 자극하고 있었다. 강직하고 사려 깊은 성정의 이성휘가 자신을 결코 덮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벌인 장난이었다.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재밌게 하고 계신가요?”

돈을 받고 성을 제공하는 창녀처럼 음란한 몸매를 과시하는 가후, 그런 그녀를 보며 부담스러워하는 이성휘.

이성휘의 품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이건 대체 무슨 놀이임?”이라고 묻는 사마의.

서류들을 두 손에 가득 안아든 채 집무실로 돌아온 갈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흥미에 찬 눈으로 상황을 주시했다.

“골치 아픈 녀석이 또… 게다가 더 골치 아픈 녀석이….”

가후는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다면,

순유는 그 제어를 완전히 벗어난 치녀였다.

관자놀이를 지끈거리게 만드는 두 군사들의 활약에 이성휘의 시름은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었다.

“주군.”

순유가 입을 열었다.

한손을 옆으로 뻗으며,

누가 봐도 대딸을 연상하게 하는 움직임으로 한손을 숙숙 흔들어댔다.

“한 발 빼드릴까요?”

음란하기 짝이 없는 치녀들이 곧 유부남이 될 사내의 인내심을 계속해서 건드렸다.

순유의 거침없는 물음에 이성휘는 생각하기를 포기해야 했다.

* * *

여포와 장료는 매우 진지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며칠 동안 심사숙고하며,

계속해서 의논을 거친 끝에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이 의복을 입고 밤시중을 든다면 분명 표기장군이 홀딱 넘어올 거예요.”

장료가 두 손으로 꺼내든 의복은 매우 기장이 짧은 시녀복이었다.

옷이 맞는지 의심될 정도로,

기장이 매우 짧은데다가 여러 군데 파인 부분들이 많았다.

만약 이 시녀복을 초선이 보았다면 “이, 이게 어떻게 시녀복이란 말이옵니까!”라며 크게 분개했을 것이 분명했다.

“나, 난 한다고 안 했어!”

여포가 격앙된 표정을 지으면서 소리쳤다.

여전히 마음을 다잡지 못했는지,

새하얀 얼굴을 붉게 물들인 채 입술을 달싹였다.

무명 높은 무인이 되기로 한 자신이 어떻게 바깥에선 절대로 입고 돌아다니지 못할 음란한 시녀복을 입은 채 사내의 밤시중을 들 수 있단 말인가. 결코 어불성설인 일이었다.

“하지만… 봉선 님이 표기장군에게 받은 은혜를 일부나마 갚고 싶다고 매번 말씀하셨잖아요?”

“은혜를 갚을 방법은 얼마든지 있잖아! 구, 굳이 이렇게 파렴치한 방법이 아니어도….”

자신이 입게 될 시녀복을 꾹 움켜쥔 채 부끄러움에 떠는 여포의 모습에 장료가 장난스러운 미소를 흘리면서 말했다.

“그럼 봉선 님께서 생각하시는 보은 방법을 경청할 수 있을까요?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봉선 님을 구해주고… 조정대신들을 설득하여 우리 병주군을 조정군에 편입하면서 실추된 명예와 무명을 모두 회복시켜주었던 표기장군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금까지 받은 은혜들을 갚을 수 있을까요? 게다가 이번에 표기장군의 활약으로 황제군에 임명되었는데요.”

“으읏!”

지금까지 이성휘에게 받은 은공들을 차례대로 나열하면서 압박하는 장료의 물음에 여포는 침음을 삼키면서 입을 꾹 다물어야 했다.

모두 맞는 말이다.

다소 억지가 섞여 있었지만,

그에게 결코 다 갚을 수 없는 은혜들을 입어온 것은 분명했다.

장료의 말에 여포는 붉은 눈동자를 바르르 떨면서 결국 두 손에 쥐고 있던 의복을 받아들여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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