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77화 〉 277. 승계(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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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류왕 유협을 새 황제로 즉위시키기 위해 유변에게 양위를 요구했다.
장안성에서 극적으로 탈출한 황제 행렬을 진류군으로 데려온 조조는 연주성에 있던 참모들을 모두 호출하여 대책회의를 열었다.
회의의 목적은 양위,
새 황제의 즉위로 하여금 황실과 조정을 완전히 개편시키려 했다.
“너무 위험합니다.”
군사(??) 진궁이 말했다.
또한 부군사(???) 순유를 비롯한 다른 참모들까지도 모두 난색을 표하면서 고개를 내저었다.
너무 위험한 도박이다.
우여곡절 끝에 역적들의 손아귀에서 구출된 황제가 양위하며 태상황으로 물러난다면 분명 사대부와 호족들이 조조군의 강압을 의심하며 크게 반발할 터였다.
“진류왕의 춘추가 겨우 아홉입니다.”
“관례(??)를 치른 황제를 제쳐두고 아홉 살 진류왕을 추대한다면 필시 좋지 않은 구설수들만 나올 겁니다.”
정욱과 모개가 세간의 이목과 경계를 우려하며 걱정에 찬 목소리를 냈다.
진궁과 순욱,
그리고 다른 참모들까지.
모두 반대표를 던지면서 반려를 간언했다.
“아뇨, 어르신께서 훌륭한 판단을 내리신 거예요.”
오직 한 참모만이,
좨주(??) 곽가만이 조조의 결정에 찬동했다.
선명한 광채를 품은 주황빛 머리카락을 길게 늘어뜨린 미녀는 매우 적극적으로 조조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다른 참모들에게 밝혔다.
“천하에 감히 사공 어르신의 결단을 거스를 수 있는 자들이 누가 있겠어요? 설령 반발과 반대에 직면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선에서 그칠 것입니다.”
조조의 명을 받들어 참모부(???)에서 수많은 세작들을 운용하고 있었던 곽가는 중원의 사대부와 호족들 또한 감히 반발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대체 누가 감히,
감히 패국조씨 가문의 결정을 반대하겠는가.
황제가 결국 양위하기로 결정한 이상 조정대신들이 제아무리 반대해봤자 양위는 계획대로 진행될 터.
아홉 살 황제가 즉위한다면 황실과 조정은 모두 패국조씨 가문의 발치에 놓이게 되리라. 당연히 그렇게 되어야 마땅했다.
“원소는 공손찬과 사생결단을 치르고 있으며, 원술은 겨우 목숨을 부지한 채 구강군에서 세력을 추스르고 있는 형편이에요. 도겸은 심약한 촌부가 되고 말았고, 형주와 익주에서 숨만 쉬고 있을 뿐인 유표와 유언은 신경 쓸 게 못 됩니다!”
주변 세력들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한 곽가는 당장 황제를 갈아치우더라도 거뜬히 반발을 억누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을 덧붙였다.
조조군은 중원의 패자이며,
동탁의 뒤를 이어 천하의 패권마저 거머쥐었다.
반면 다른 세력들은 지리멸렬한 채 영토와 전력을 지키기에만 급급한 형편이었으므로 지금이 오히려 과감한 결단을 내릴 적기일 것이라고 말했다.
“좨주의 말이 옳다.”
상석에 앉은 흑발의 여인이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참모들을 응시했다.
이미 그녀는 결정을 내린 상태였다.
참모들이 반대를 하더라도,
자신의 결단을 강행할 생각이었다.
사실상 유변은 양위를 받아들이기로 결정한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보류할 이유가 없었다. 양위에 황제의 의중이 반영되어 있다는 조조의 말에 참모들은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천하에 누가 감히 이 조맹덕의 결단에 이견을 제기할 수 있겠는가.”
조조군은 낙양대전에서 완승을 거둔 뒤에 관중(?中)을 장악하기에 이르렀다.
연주. 예주. 사예주.
중원 3개 주의 패자가 된 조조군은 더 이상 두려울 게 없었다.
공손찬과 격전을 치르고 있는 원소가 겨우 청주에 발을 뻗고 있는 형편이었으므로 사실상 조조군의 발호를 막을 수 있는 세력은 전무하다고 볼 수 있었다.
‘모두 부관이 내 옆에 있어준 덕분이다. 부관이 없었다면 결코 대업을 앞당길 수 없었겠지. 황제를 갈아치우는 일도… 조정을 개편하는 작업도 크게 늦춰졌을 게 틀림없다.’
조조는 이성휘가 준 기회를 절대로 놓치지 않았다.
부관의 노고 덕분에,
부관의 활약 덕분에 일찍 야심을 꺼낼 수 있었다.
연주를 중심으로 난공불락의 아성(??)을 쌓은 조조는 손아귀에 거머쥔 패권을 동원하여 패국조씨 가문을 위한 황실과 조정을 수립하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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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지않아 양위를 할 예정이다.
함께 진류군으로 돌아온 뒤,
오라비와 함께 평온한 나날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유협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야, 양위… 말씀입니까…?”
“탈출을 돕는 조건으로 사공 조조가 짐에게 양위를 요구했단다.”
“한나라의 신하가 감히 오라비에게 퇴위를 요구했단 것입니까!”
찬연하게 빛나는 금발을 늘어뜨린 소녀가 날카로운 고함을 내질렀다.
교양과 품격을 갖춘 작은 숙녀가,
두 눈을 부릅뜨면서 격정을 쏟아내는 모습을 보였다.
항상 온화함과 점잖은 모습들만을 보여 왔던 유협이 이토록 감정에 치우쳐진 반응을 보이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조조! 감히…! 감히…!!”
이를 빠득 갈았다.
원통함을 토해내며 두 주먹을 바르르 쥐었다.
오라비로부터 옥좌를 찬탈하려는 목적으로 탈출을 도운 것임을 알게 된 유협은 마음을 깎는 듯한 지독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다.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을 파견하여 구출에 사력을 다하는 조조의 모습을 보며 일말의 믿음과 신뢰를 느꼈건만, 그것이 거짓과 허영에 지나지 않은 가면이었음을 깨닫게 된 유협은 치를 떨면서 분노했다.
“절대로 받아들이시면 안 됩니다, 오라비! 분명 조조는 황실과 조정의 권력을 독점하기 위해 독수를 둔 것입니다!”
지독히도 무도하며,
지독히도 오만한 독수(?手)였다.
조조는 잔인한 전횡과 폭정을 일삼았던 동탁보다도 교활했으며, 또한 맹독을 삼킨 뱀처럼 교활했다.
유협은 냉혹과 무자비함을 두른 흑발의 여인을 떠올리면서 울음을 삼켰다.
“하지만 짐이 이제 와서 불가하다며 조건을 물린다면… 필시 사공은 짐과 황후에게, 그리고 너에게 위해를 가할 게 분명하지 않느냐….”
“조정대신들이 있지 않습니까! 폐하를 따르는 충신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황실에 충성하는 조정대신들은 한 명의 사병도 두고 있지 않은 허수아비에 불과했다.
강경한 목소리를 낸다고 한들,
한 줌의 병력조차 없는 무력함이 과연 어디까지 버틸 수 있겠는가.
급히 지옥에서 탈출하여 연주에 도착한 조정대신들은 경비와 호위를 모두 조조군에게 일임하고 있는 실정이었으므로 동원할 수 있는 병력이 전무했다.
“사공이 약속했다…. 얌전히 옥좌를 포기하고 태상황으로 물러난다면 보호와 예우를 약속하겠노라고 말이다…! 그 약속을 믿어볼 수밖에 없다….”
동탁군의 영역에서 탈출하여 사예주에 왔을 때부터 이미 조조의 손아귀에 사로잡힌 것과 다름없었다.
교활한 독부의 손아귀에 붙잡힌 채,
동탁과 그의 주구들에게 시달렸던 것처럼 결국 꼭두각시 역할을 하게 될 것이었다.
자신과 마찬가지로 꼭두각시의 전철을 밟게 될 여동생의 운명에 유변은 울음을 토해내면서 두 팔을 뻗어 유협을 꼭 끌어안았다.
“절대로, 절대로 양위해선 안 됩니다, 오라비…! 만약 지금 물러나게 된다면…, 후일의 역사가들은 분명 오라비를 암군으로 기록할 겁니다…!!”
황실의 혈육으로 태어난 죄로 욕망의 연쇄에 사로잡혀야만 하는 처지가 너무도 원통했다.
누구보다 착하고 인정이 두터운 오라비가 매번 역적들에게 이용당하는 모습에 비통함에 찬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오라비의 품에 안긴 채,
금발의 소녀가 오열을 토해냈다.
“성군이 되기로 약속하지 않았습니까…! 난세를 끝내고 태평성대를 이룩하여… 도탄과 곤궁에 빠진 백성들을 위해 사력을 다하는, 그런 성군이 되기로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유협은 지혜롭고 총명한 천재의 자질을 타고난 황녀였지만 결국 무력한 어린아이에 지나지 않았다.
품에 안긴 채 눈물을 펑펑 쏟아내며,
매번 간신들에게 휘둘릴 수밖에 없는 황실의 운명을 진심으로 저주했다.
“협아, 살아야 한다…. 비참한 처지에 놓이게 되더라도, 어떻게든 우리 남매는 이 지독한 난세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스로 물러나거나.
강제로 끌어내려지거나.
지금의 조조에게는 옥좌의 주인을 마음대로 갈아치울 수 있을 만한 힘을 가지고 있었다.
그를 알고 있었기에 양위를 받아들인 것이었다.
만약 자신이 계속 버틴다면… 그 독부는 아내와 이복동생에게 위해를 가하려고 들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정말 미안하구나…!!”
“흐윽! 흐아아앙!!”
난세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채,
시련과 풍파를 겪어야 했던 남매가 구슬픈 오열을 터트렸다.
서로를 품에 안은 채 슬픔과 비통을 쏟아내며 미안한 마음을 전했다.
힘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비극적인 이별들을 겪어야 했던 황실 남매는 한나라의 부패와 무능이 만들어낸 난세의 희생양이었다.
“…….”
허리에 검을 찬 채 궁문으로 들어선 남성이 유변과 유협의 구슬픈 울음소리를 듣고는 발걸음을 멈췄다.
두 발을 잠시 멈춘 채,
황실 남매가 있는 전각을 응시했다.
그의 딱딱하게 굳은 표정은 평상시와 다를 바 없었지만 아래로 늘어뜨린 손끝이 미약하게 떨리고 있었다.
“표, 표기장군….”
궁문을 지키고 있던 궁녀가 떨리는 목소리로 사내를 불렀다.
그 부름에 사내는,
아무 말 없이 등을 돌렸다.
끝내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사내는 이윽고 잔인한 결단을 내린 군주가 있는 곳으로 발걸음을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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