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71화 (271/616)

〈 271화 〉 271. 공무도하(1)

* * *

==============================

타오르는 불길처럼 연상시키는 붉은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여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믿을 수 없는 소식을 들은 듯,

사실 동탁이 평화를 사랑하는 평화주의자였다는 어불성설을 들은 것처럼 경악어린 표정을 지었다.

사촌으로부터 ‘회임’ 소식을 들은 하후돈은 입을 쩍 벌린 채 소리 없는 비명을 외쳤다. 함께 동석하고 있던 하후연 또한 마찬가지인 반응이었다.

“대, 대관절 누구 아이입니까…!”

경황에 떨던 하후연이 물었다.

그에 조조는 김이 모락모락 흘러나오는 뜨거운 찻물을 하후연의 얼굴에 뿌렸다.

“축하해, 맹덕.”

찻물을 뒤집어쓴 채 괴로워하는 동생의 모습을 빤히 쳐다보던 하후돈이 고개를 돌려 사촌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지금까지 항상 바라온,

항상 꿈꿔온 행복이 아니었던가.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행복을 쟁취해낸 사촌의 노력과 성과를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물론 매일 밤 집무실로 불러내어 예비 남편을 번번이 자랑할 때마다 눈꼴사납긴 했지만.

“고맙다, 모두 네 덕분이다.”

회임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일까. 벌써부터 조조의 얼굴에서는 모성애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매몰차게 독기를 흩뿌리던 철혈의 군주가 정말 맞는지 의심이 들 정도로 부드러운 미소를 짓는 조조의 모습은 매우 낯설었다.

“이거 큰일이네, 이렇게 기쁜 소식을 지금 애아빠만 모르고 있다니.”

“도, 돌아오면 말할 생각이다.”

하후돈의 말에 조조가 당혹감에 찬 목소리로 대답했다.

“벌써 보름째인데… 소식은 없어?”

“전령은 오지 않았다. 소식을 못 보낼 수 없을 정도로 다급한 것일 테지. 역적의 손아귀에 잡힌 황제와 공경들을 구출하는 위험천만한 일을 맡았으니.”

황제와 공경들을 구출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고 있을 이성휘를 떠올린 조조는 회한을 느꼈다.

그를 보내지 않았다면,

함께 회임 소식을 축하했을 텐데.

오늘따라 부쩍 연모하는 사내의 따스한 온기가 그리웠다. 황실과 조정의 빌어먹을 떨거지들 때문에 남편과 잠시 이별하게 된 것에 분통이 치밀었다.

“너희들에게 부탁할 것이 있다.”

“부탁?”

그에 하후돈과 하후연의 시선이 조조를 향했다.

“내 목숨을 호시탐탐 노리는 수많은 정적들이 나와 내 아이를 공격할 것은 자명한 일이다. 머지않아 태어나게 될 아이를 지켜다오. 지금까지 나와 패국조씨 가문을 위해 흔들림 없는 충성을 관철해온 너희들에게 부디 내 아이를 부탁하고 싶다.”

마치 탁고(??)를 읊듯,

조조는 절실함에 찬 눈으로 하후돈과 하후연을 응시했다.

설마 이렇게까지 조조가 진심이 담아 부탁을 해올 줄은 몰랐는지, 사촌으로부터 간절한 부탁을 받게 된 하후씨 남매는 크게 당혹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물론이지, 맡겨만 둬! 패국조씨 가문의 대업을 이끌어나갈 후계의 안전은 후세를 위해서라도 꼭 지켜낼 테니까.”

이윽고 하후돈이 자신감어린 미소를 지으면서 대답했다.

반드시 후계를 지키겠노라고,

우리 하후씨 가문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패국조씨 가문을 끝까지 봉행하겠노라고 다짐했다.

“걱정 마십시오, 저희들이 있지 않습니까.”

하후연 또한 하후돈과 마찬가지로 충성을 맹세하면서 불안감에 빠진 조조를 위로했다.

어머니가 되었기 때문일까.

항상 빈틈없는 난공불락의 요새 같은 철저함을 보이던 군주께서 처음으로 연약한 모습을 보였다.

사랑을 듬뿍 받으며 태어나게 될 아이는 패국조씨 가문의 후계이기 이전에 자신들의 조카였으므로 반드시 목숨을 다해 지켜야 마땅할 테니.

“고맙다.”

사촌들에게 진심을 전했다.

변함없는 용맹과 충성으로 패국조씨 가문을 보필해온 하후씨 남매가 그저 고마울 따름이었다.

서서히 불안감이 걷혔다.

번민과 두려움이 서서히 가라앉았다.

자신이 저지른 과오와 업보 때문에 언젠가 태어나게 될 아이가 비참한 운명을 겪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근심을 떠안게 된 조조는 하후돈과 하후연의 충성스러운 모습을 통해 불안을 해소할 수 있었다.

“우리들도 전력을 다해 후계를 보필하겠지만…, 만약 소중한 후계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애아빠가 절대로 가만히 있지 않을걸.”

철혈의 군주와 중원제일검의 혈육.

과연 아이는 누구를 더 닮게 될까.

어느 쪽을 닮더라도 절세의 신동이 태어나게 될 것이 분명했다.

“원양, 따로 전할 말이 있다.”

긴밀히 전할 말이 있었는지,

먼저 하후연을 보내고 하후돈과 마주했다.

조조와 독대를 나누게 된 하후돈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용건을 기다렸다.

“부, 부관이 소식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모르겠다…. 네 생각은 어떻지, 원양?”

흑발의 여인이 입술을 달싹이면서 두려움에 찬 목소리를 냈다.

방금 전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조조는 여전히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처음 겪는 일이니 두려워하는 것도 당연하겠지. 미지로 인한 공포는 천하의 조맹덕도 어쩔 수 없는 무서움일 테니까.

두려움에 떠는 사촌의 모습에 하후돈은 실소를 품었다. 부관을 짝사랑했을 때부터 매번 결코 일어나지 않을 일을 망상하면서 두려움에 떨었으니까.

‘또 그 버릇이 도진 모양이네…. 저 혼자 괴로워하고 두려움에 떨고… 부관과 정식으로 사귀게 되면서부터 버릇이 없어졌나 싶더라니 결국 조맹덕은 조맹덕인 모양이야. 이런 푼수 같으니. 평소에는 그렇게나 냉혹하고 냉엄한 주제에 사랑하는 부관과 관계된 일이면 매번 안타까운 모습들만 보인단 말이야.’

­도와다오, 원양!

­부관이 나를 싫어하게 될지도 모른다!

­감히 내 부관에게 꼬리를 치는 년을 보았다! 괘씸한 년! 황하에 수장시켜주지!

절박함이 느껴지는 목소리로 자신에게 신세를 한탄하면서 종종 억지를 부리던 사촌의 모습들이 마치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갔다.

오늘은 또,

이번에는 또 무슨 망상을 할까.

하후돈은 말도 안 되는 망상으로 자신을 괴롭게 만들 조조의 신세한탄을 기다렸다.

“부관이 만약… 아이를 달갑지 않게 여긴다면 어쩌지?”

“…뭐?”

음울하고 칙칙한 기운을 발산하면서 근거 없는 불안을 내비치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크게 경악하고 말았다.

무겁다.

너무 무거운 망상이었다.

지금까지 번번이 오해와 불신으로 일으켰던 억지들이 한낱 장난에 불과했다고 여겨질 정도로 지금 조조가 가진 불안은 상상을 초월했다.

의심과 질투로 점철된 마음이 의부증(???)이 의심될 정도의 망상으로 발전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매번 감정에 휩쓸려 잘못을 반복할 뿐인 성가신 여자다. 항상 고집을 부리면서 주변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억지와 독단을 이어나가며 과거에 저지른 잘못과 똑같은 잘못들을 되풀이하지.”

스스로 참회를 하듯 본인의 단점들을 모두 열거하는 조조의 모습에 하후돈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본인의 단점들을,

본인이 성가신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니.

독단과 아집으로 똘똘 뭉친 여자였던 사촌이 자기 객관화를 할 줄 안다는 것에 경악했다.

“앞으로 더욱 부관에게 집착할 텐데… 부관이 이런 나를 싫어하게 되진 않을까 두렵다. 어, 어쩌면 나뿐만 아니라… 아이 또한 귀찮게 여길지도 모른다. 만에 하나 아이를 지우라고 한다면…!”

호흡을 내쉬기 어려울 정도의 무거운 분위기가 내부를 장악했다.

숨 막히는 번민과 고뇌를 마주하게 된 하후돈은 먼저 바깥으로 나간 동생을 진심으로 부러워했다.

* * *

결국 동탁군의 잔당들은 거의 다 잡을 뻔한 황제를 눈앞에서 놓치고 말았다.

아직 기회가 있었음에도 이각과 곽사가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는 것을 단념했기 때문이다.

상선에 오른 황제와 공경들이 조조군의 호위를 받으면서 강을 도하하는 광경을 바라보던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는 피눈물을 뚝뚝 흘릴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결국 우리들은… 조조에게 멸망하겠군요.”

동백은 조부께서 반평생 동안 변방을 누비면서 이룩한 세력이 결국 3년을 넘기지 못한 채 멸망하게 될 것이라 예견했다.

황제와 공경들을 놓치고 말았다.

거병의 명분과 정치적 정통성이 소실되고 말았으니 겨우 잔존세력을 수습하고 있는 아군은 곧 멸망의 전철을 밟게 될 터였다.

모든 것들이 그저 허망하게 느껴졌다.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서량의 군세와 서융들의 병력을 아우르면서 세력을 다시 규합한다면 언젠가 다시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

도독(??) 서영에 자괴감에 빠진 동백을 위로하듯 말했다.

그에 동백이 고개를 내저었다.

“절대로 그 환관 년은 우리들이 다시 힘을 키울 때까지 기다려주지 않을 거예요.”

조조는 결단과 행동력이 뛰어난 철혈의 군주다.

시기와 기회를 결코 놓치지 않으며,

또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한 바를 이뤄내는 과감함과 잔인함을 겸비한 여자였다.

동백은 황제와 공경들의 신병을 손에 넣게 될 조조가 서량의 군벌들을 모조리 쓸어버리기 위한 십만 대군을 일으킬 것이라고 여겼다.

“위양군!”

서영과 앞으로의 일을 의논하고 있던 동백을 향해 고석이 다가왔다.

드디어 놈들이 움직였다.

그림자 속에 은신한 채 더러운 음모를 암약하던 놈들이 이윽고 속내를 드러내기 시작한 것이리라.

“후방으로 물러나 병력을 재정비하던 이각과 곽사가 움직였습니다!”

“본능에 충실한 이리답네요.”

이각과 곽사가 이끄는 중앙군이 재차 움직이기 시작했음을 듣게 된 동백은 은밀히 매복하고 있던 병력에게 신호를 보낼 것을 지시했다.

정서장군 마등. 진서장군 한수.

황제와 공경들을 호위하기로 했던 풍익태수 송익과 부풍태수 왕굉의 연합군을 전멸시킨 서량의 두 군벌들과 은밀히 동맹을 맺었다.

이각과 곽사가 결국 뒤통수를 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었기에 동백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곧바로 반격을 준비했다.

* * *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