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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70화 (270/616)

〈 270화 〉 270. 양자택일(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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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투성이가 될 때까지 격전을 이어나갔던 이성휘와 조인은 곧 조홍과 마주하게 되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빠진 아군을 절묘한 찰나에 구해낸 조홍은 걱정에 찬 눈길을 보내면서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몸에 또 상처들이… 괘, 괜찮아요?”

“저는 괜찮습니다.”

“이번에도 또 무리를 하셨네요. 걱정하고 있는 사람은 신경도 안 써주고.”

“죄송합니다.”

숙부와 패국조씨 가문을 구하기 위해 혈전을 벌이다가 산송장이 된 채 쓰러졌던 이성휘의 모습을 떠올린 것일까.

혹시라도 또 그렇게 될까봐.

이번에는 영영 볼 수 없게 될까봐.

위풍당당한 기염을 발산하며 모습을 드러냈던 흑발의 여인은 당장이라도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숙연한 표정을 지으면서 남의 마음도 모르고 매번 무리하는 얄미운 사람을 노려보았다.

“저 화났어요.”

“죄송합니다.”

“항상 죄송하다, 미안하다… 매번 대답만 줄줄 늘어놓는 거 엄청 열 받거든요?”

“…….”

날카로운 눈길로 노려보며 힐난하는 조홍의 지적에 이성휘는 일말의 가책을 느꼈는지 입을 꾹 다물었다.

그 모습이 마치 주인의 눈치를 살피는 번견을 보는 듯했다.

“승선 준비를 서둘러라. 한시라도 빨리 황제와 공경들을 데리고 포수를 건너야 한다. 또한 경계에 투입된 장졸들은 더욱 수비에 집중하도록 하라. 적들이 급습해올 위험이 크다.”

엄중한 목소리로 휘하 장수들에게 명령을 하달하던 조인이 고개를 돌려 살가운 모습을 보이고 있던 이성휘와 조홍을 바라보았다.

오랫동안 함께 해온 남녀답게,

조홍은 걱정과 경고를 보내면서 이성휘를 크게 타이르는 모습을 보였다.

그 광경이 마치 남편을 타박하는 아내를 보는 것처럼 보였기에 조인의 질투심을 유발했다. 조인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을 지은 채 질투심을 곱씹었다.

‘저 역할을 내가 맡았어야 하는 건데…. 자렴, 약삭빠른 여우답게 기회를 놓치지 않고 표기장군의 옆을 차지했군. 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표기장군을 지척에서 보필한 사람은 바로 나야.’

이윽고 무언의 시선을 보내던 조인은 이성휘를 크게 타박하던 조홍과 눈이 마주치게 되었다.

그에,

조홍이 히죽 웃었다.

곧이어 장수들이 보는 앞에서 이성휘와 팔짱을 끼는 대범한 모습을 보이기까지 했다.

‘무뚝뚝한 석녀, 넌 이런 거 못하지?’

­라고 말하는 것처럼 노골적인 의미가 포함된 행동이었다.

“큭!”

얄미운 사촌에게 골탕을 먹은 조인은 격분에 찬 침음을 삼키면서 고개를 홱 돌렸다.

이 얄미운 여우 같으니,

이를 빠득 갈면서 분통을 터트렸다.

당장이라도 얄미운 사촌을 밀어낸 다음에 표기장군의 옆을 차지하고 싶었지만, 조홍처럼 대범하지 못했던 그녀는 그 생각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한 채 심중의 분노를 삭여야 했다.

“우선 폐하를 뵙어야 할 것 같습니다.”

“흥, 누구 때문에 이 고생을 했는데….”

유변의 안위를 걱정하는 이성휘의 말에 조홍은 팔짱을 낀 채 분기를 터트렸다.

또.

그 잘난 황실 때문에 또.

이성휘가 매번 황실과 연관된 풍파에 휩쓸려 곤혹을 겪게 되는 것이 깊은 불만이었던 조홍은 고운 미간을 찌푸리면서 앙심을 내뱉었다.

“괜찮으십니까, 폐하.”

온몸으로 독기를 발산하는 조홍을 지나친 이성휘는 등을 돌리면서 신하와 궁인들의 보필을 받고 있던 유변에게 다가왔다.

이성휘가 다가오자 궁인들이 모두 자리를 비켜주었다.

“지, 짐은 괜찮다네… 지켜주어 고맙네….”

유변의 몰골이 꽤나 심각했다.

온몸이 식은땀으로 푹 젖어 있었고,

얼굴의 혈색이 새하얗게 질린 상태였다.

당장이라도 뒤집어질 것처럼 요동쳤던 마차 안에서 온갖 곤혹과 난관들을 치러야 했을 테니 몰골이 크게 상한 것은 당연했다.

“으음!”

아연실색한 몰골로 이성휘를 바라보던 유변이 돌연 손에 들고 있는 죽간을 가렸다.

사공(??) 조조가 건넨 서한,

중원의 패자가 만승천자에게 보호를 조건으로 내건 요구사항들이 적힌 죽간이었다.

심하게 흔들리던 마차 내부에서 죽간에 적힌 내용들을 모두 확인했는지 유변은 쓴웃음을 흘리면서 부자연스러운 반응을 보였다.

“폐하께서 승선하실 어선은 아직인가?”

유변과 이성휘가 그 뒤로 침묵을 이어나가고 있었을 때, 대홍려(大??) 주환이 다가와 물었다.

수많은 관료와 궁인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상황 속에서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진 청류파의 영수는 한시라도 빨리 적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크게 서두르는 모습을 보였다.

매우 당연한 반응이었다.

눈앞에서 동료들이 죄다 죽어나간 현장에 어느 누가 있고 싶어 하겠는가.

“이제 곧 사예주에서 급히 수배했던 상선이 도착할 겁니다. 어선에 비하면 당연히 좁고 불편하겠지만 부디 참아주십시오, 폐하.”

“지, 짐은 괜찮네. 어찌 짐이 불평하겠는가.”

대규모 인원들을 탑승시킬 상선이 도착할 것이라는 이성휘의 말에 조정대신들은 크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곧 현장을 벗어날 수 있다.

살육과 비명…

비릿한 피비린내로 가득한 곳을 떠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동안 전횡과 폭정에 시달려야 했던 조정대신들은 암흑을 밝히는 광명을 맞이한 것처럼 희망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상선이 도착하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

“…….”

곧 떠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을 품고 흙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신하와 궁인들을 바라보던 유변은 무언가를 각오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말했다.

“어림총사… 아니, 표기장군.”

“결정하셨습니까.”

뒤로 숨겼던 죽간을 다시 꺼내든 황제의 모습을 본 이성휘가 물었다.

이윽고 결심을 내린 듯한 유변의 표정을 본 이성휘는 착잡한 마음을 떠안은 채 물음을 건넸다.

그에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 끝에 용단을 내렸네….”

새하얗게 질린 혈색을 하고 있던 유변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운 입술을 열며 말을 꺼냈다.

자신의 용단을,

사공 조조가 건넨 요구사항들에 대한 답을 이성휘에게 주었다.

“따르겠네… 따르도록, 하겠네….”

당장이라도 오열할 것처럼 얼굴을 일그러뜨린 유변의 모습에 이성휘는 불안을 감추지 못했다.

대체 조조는 무엇을 요구한 것일까.

붓을 움직이며 서한을 작성하던 조조의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는 미지로 인한 공포를 느껴야 했다.

“현명한 결정이십니다.”

그러나 자신이 알 필요는 없었다.

그녀가 내린 명령은,

황제에게 확답을 받아낸 다음에 연주성으로 데려가는 것이었으므로.

유변의 반응에 불안을 느꼈지만 이성휘는 애써 마음을 억누르면서 명령의 완수에 집중했다.

“알겠습니다. 평동장군에게 폐하의 용단을 전하겠습니다.”

유변에게 예를 갖춘 이성휘는 심중의 불안을 숨기면서 등을 돌렸다.

그러나 유변의 목소리가 조홍에게 향하려는 이성휘의 발목을 붙잡았다.

“표기장군….”

“예, 폐하.”

“부디… 우리 협아를 잘 부탁하겠네.”

울음에 찬 목소리를 내는 황제의 모습은 당장 쓰러질 것처럼 매우 위태로웠다.

* * *

이성휘와 조홍이 출병한지 보름이 흘렀다.

보름이라는 시간 동안,

조조는 낭보가 도착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지금까지 황제와 친분을 쌓아온 이성휘가 과연 요구조건들을 매몰차게 강압할 수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지만 조조는 그를 굳게 믿기로 했다.

“지난번에 사공 어르신을 검맥했을 때부터 의아하게 여겼사옵니다만, 분명 회임하신 것이옵니다…!”

각종 도구와 약재들이 든 무거운 찬합을 바닥에 내려놓은 의원이 넙죽 엎드리며 말했다.

심히 황공스러웠는지,

바닥에 넙죽 엎드린 의원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혹시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며 자신을 죽이진 않을까, 의원은 살얼음판에 선 기분으로 침묵을 이어나가고 있던 조조로부터 대답을 기다렸다.

“…그런가.”

흑발의 여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붉은 눈동자를 반짝이며,

뇌리에 만감이 교차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의원으로부터 확답을 받게 된 조조는 옅은 미소를 지으면서 기뻐하기를 잠시, 넙죽 엎드린 채로 별도의 명령을 기다리던 의원을 향해 말했다.

“절대로 발설하지 마라.”

“여, 여부가 있겠습니까…!”

“만약 가벼이 혓바닥을 놀린다면 네 식솔들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다.”

경고에 담긴 무거운 위압감을 느낀 의원은 엎드린 채 벌벌 떨어야 했다.

아이를 가지게 되었음에도,

그녀가 조조라는 것은 변치 않았다.

중원 3개 주를 제패하면서 제후들을 호령하는 위치에 오르게 된 조조는 혹시라도 어둠 속에 숨어 암약하는 정적들에게 약점으로 잡힐까, 그것을 크게 우려하고 있었다.

“아이를… 가지게 된 건가….”

의원을 집무실에서 내보낸 조조는 눈꺼풀을 내리면서 창밖을 응시했다.

아이를,

태중에 아이를 가지게 되었다.

연모하는 부관과 금슬 좋은 부부가 되고 싶다는 염원이 작용한 듯했다.

당장이라도 소리를 지르면서 회임을 기뻐하고 싶었지만 부관과 종친들이 장안성 방면으로 출격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최대한 감정을 억눌렀다.

“건무장군과 독군교위를 불러라.”

“알겠사옵니다.”

조조는 바깥에 있는 시녀를 통해 하후돈과 하후연 남매에게 호출을 보냈다.

조인과 조홍이 부재였기에,

하후씨 남매를 대신 호출한 것이었다.

경과가 흘러갈수록 몸이 무거워질 터. 조조는 만약 정적들의 귀에 들어가게 된다면 필시 반역을 꾀할 것이라고 판단하고는 먼저 하후돈과 하후연을 불러 경계를 강화하려 했다.

“…패국조씨 가문의 후계인가.”

그렇게 중얼거린 흑발의 여인은 잘록한 배를 상냥하게 쓰다듬으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분명 이 뱃속에,

작디작은 생명이 싹트고 있을 터.

모성애에 젖은 붉은 눈동자는 어느 때보다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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