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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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래 숨어든 시궁창의 쥐 새끼들이 황제와 공경들을 데리고 도망치기 시작했다.
위양군(渭陽君) 동백이 보낸 사절로부터 그 소식을 듣게 된 이각과 곽사는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과연 믿어도 되는 걸까.
농서동씨 가문의 계집이 꾸민 함정일지도 모른다.
난데없이 조조의 끄나풀들이 좌풍익의 치소를 급습하여 황제와 공경들을 가로챘다는 말을 쉽사리 믿을 수 없었기에 이각과 곽사는 결정을 내리지 못한 채로 계속 망설이는 모습을 보였다.
“만일 황제와 공경들이 이대로 중원으로 달아난다면 조조 년을 선동할 게 분명하네!”
“분명 조정의 교활한 여우들은 우리를 모두 국적(國賊)으로 선포할걸세. 그럼 우리는 평생 도망쳐야 하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될 터.”
한나라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국적의 낙인이 찍힌다는 것은 곧 멸살을 의미했다.
동탁을 공격했던 수많은 정적들이 대역죄의 오명을 덮어쓴 채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황실과 조정으로부터 국적의 낙인이 찍히게 된다면 평생 비참한 말로를 보내다가 끔찍한 최후를 맞이하게 될 게 틀림없었다.
절대로 황제를 보내선 안 된다.
어떻게든 황제의 신병을 확보해야 한다.
잠시 싸움을 멈추고 연합하여 황제와 공경들을 추격할 것을 제시한 동백군의 제안을 이각과 곽사는 결국 받아들이기로 했다.
“황제와 공경들을 쫓아라!”
“절대로 강을 넘게 둬선 안 된다! 끝까지 추격하여 황제와 공경들을 사로잡아라!!”
동백군과 수차례 치열한 교전을 벌였던 서량 기병대가 전장을 크게 우회하며 포수(蒲水)로 나아갔다.
놈들은 분명 강을 건널 터.
수로를 통해 삼보 지역을 빠져나갈 게 틀림없다.
그래서 이각과 곽사는 날렵하고 강인하기로 유명한 서량 기병대를 파견하여 황제와 공경들을, 그리고 쥐 새끼처럼 숨어든 조조 군의 잔적들을 추격하도록 명령했다.
“이성휘! 그 빌어먹을 놈이 모습을 드러낸 게 사실이라면… 내 어떻게든 놈의 수급을 베어버릴 걸세!”
이각이 이를 빠득 갈면서 증오를 토해냈다.
두 조카들을 죽인 원수,
반드시 놈을 죽여 비명 속에 죽어 갔던 두 조카들의 원혼을 달랠 것이다.
지금 놈은 불과 수백 명에 불과한 병력만을 대동하고 있을 뿐이었기에 수적 우위를 동원하여 뒤를 추격한다면 능히 그 수급을 취할 수 있으리라.
“내가 어찌 자네의 마음을 모르겠는가? 나 또한 숭산과 낙양에서 놈에게 아끼던 부하들을 모두 잃었네. 내 기필코 놈을 죽여 치욕과 원한을 씻을 것일세!”
치열하게 격전을 벌였던 동백과 일시적으로 휴전을 맺은 이각과 곽사는 주력부대를 추격에 동원했다.
먼저 서량 기병대를 보낸 뒤,
이성휘와 그의 부하들을 확실하게 죽일 수 있게끔 후속부대들을 연이어 투입시켰다.
여전히 동백이 수천 명의 군세를 이끌면서 강세를 떨치고 있었음에도 이각과 곽사는 주력부대를 출격시켰다.
그를 통해 두 무장들이 중원제일 검에게 얼마나 깊은 원한과 증오를 가졌는지는 짐작할 수가 있었다.
* * *
이성휘와 조인이 통솔하는 유격대 병력은 불과 5백 명에 불과했다.
많은 숫자를 동원하면 분명 적들의 경계망에 발각당할 위험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성휘는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좌풍익 치소를 공격하는 위험천만한 방법을 동원했다.
“놈들이 도망친다!”
“쫓아라! 절대로 놓치지 마라!!”
황제와 공경들이 구금되어 있던 치소가 습격당했다는 급보를 들었는지,
다른 현들에 주둔하고 있던 동백군의 병력들이 일제히 치소가 있는 고릉현(高陵縣)으로 몰려들었다.
그 숫자가 상당히 많았다.
겨우 5백 명에 불과한 유격대가 모두 막아 낼 수 없을 정도였다.
“자효 님, 몸은 괜찮으십니까?”
“문제없습니다.”
이성휘의 물음에 거친 호흡을 토해내던 흑발의 여인이 대답했다.
크게 지친 상태였음에도,
애써 조인은 강인한 모습을 보이려 했다.
급보를 듣고 달려온 동백군의 병사들로 삼면이 포위되어 있었다. 유일하게 포위되지 않은 쪽은 유격대를 동원하여 뚫어낸 활로가 위치한 방향이었다.
“다 덤벼라, 모조리 죽여주마.”
이성휘가 칼끝을 겨누면서 밀물처럼 몰려들던 동백군 병사들을 위협했다.
그에 성난 황소처럼 들이닥치던 병사들은 기가 질린 표정을 지으면서 뒷걸음질 쳤다.
중원제일 검 이성휘,
수십 명에 달하는 병사들을 베며 위협했던 무관의 정체를 알게 된 동백군 병력은 감히 이성휘에게 맞서려 들지 않았다.
“이, 이성휘!”
“중원제일 검… 상국 어르신의 원수!”
날카로운 창검을 치켜든 채 이성휘와 대치하고 있던 병사들이 중얼거렸다.
눈앞에 원수가 있다.
낙양에서 상국 어르신을 시해한 놈!
그러나 병사들은 살심과 증오를 토해내면서도 발걸음을 움직이지 않았다. 온몸에 피칠갑한 채 검을 겨누고 있는 이성휘의 모습이 너무도 흉흉했기 때문이다.
위압감에 질려 버린 병사들은 맹독을 가진 지네에게 압도당한 개구리들처럼 벌벌 떨 뿐이었다.
“어서 말에 오르십시오!”
“병사들은 어서 공경 어르신들을 지켜라!”
유격대 병사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구출된 관료들을 말에 태운 뒤,
좌우에 선 병사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동백군이 주둔하고 있던 고릉현을 탈출했다.
이성휘와 조인이 후미를 막고 있는 덕분에 탈출을 감행할 수 있었다. 공경들은 이번에야말로 무사히 탈출할 수 있기를 간절히 염원하면서 말을 재촉했다.
“자효 님, 잠시 후미를 맡아주십시오. 저는 일단 폐하를 모시겠습니다.”
“알겠습니다.”
조인에게 후미를 잠시 일임한 이성휘는 다급한 발걸음으로 방황하던 유변과 궁인들을 불러세웠다.
고릉현을 탈출하기 전,
황제에게 반드시 전해야 될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몇 번이고 자신에게 당부했던 조조의 전언이었다.
하지만 가족들과 다시 재회할 생각에 들뜬 반응을 보이던 유변의 모습을 떠올린 이성휘는 차마 그 말을 곧바로 전할 수 없었는지… 일단 황후 당씨가 무사하다는 소식부터 전해주었다.
“저, 정말 황후가 무사하단 말인가?!”
“그렇습니다.”
이성휘를 통해 낙양에서 이별했던 황후 당씨의 생사를 알게 된 유변은 두 눈을 크게 뜨며 놀란 반응을 보였다.
낙양에 홀로 남겨졌던 황후가,
궁궐에 갇힌 채 참화에 휩쓸렸을 황후가 무사히 살아 있다.
모든 소식들을 차단당한 채 장안성의 궁궐에 구금되어야 했던 유변은 구사일생으로 구출된 뒤에야 비로소 황후의 생사를 알게 되었다.
진류군에서 이복동생과 함께 재회하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에 유변은 읍소하며 고개를 푹 숙였다.
“무사하여 다행이네… 황후도, 협아도… 모두 무사하다고 하니 진심으로 다행일세…. 계속 심중에 쌓아두었던 근심과 미련들이 이제야 내려가는 것 같네.”
“폐하.”
환희에 찬 표정으로 기쁨의 눈물을 쏟아 내던 유변에게 이성휘가 품속에 있던 물건을 꺼냈다.
조조가 이성휘에게 주었던,
황실과 조정을 향한 요구조건들이 기입된 서한이었다.
황제를 사예주로 데려오기 전에 반드시 서한에 작성된 요구조건들에 대한 승낙을 받아 낼 것을 엄중하게 경고했던 조조의 말을 떠올린 이성휘는 함께 좌풍익의 치소를 벗어나자마자 유변에게 그것을 건넸다.
“이게 무엇인가, 총사?”
“사공 조조가 폐하에게 보내는 서한입니다.”
정성스럽게 돌돌 말린 죽간은 붉은 끈으로 밀봉되어 있었다.
대체 무슨 내용들이 적혀 있을까.
조조가 황제에게 보낸 요구조건들이 무엇인지는 죽간을 건넨 이성휘 또한 알지 못했다.
식견과 학식이 부족한 유변이라도 조조가 보낸 죽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모르진 않을 터.
동탁 군의 잔당들로부터 수치와 모욕을 당하면서 차디찬 현실을 뼈저리게 경험하게 된 유변은 본능적으로 조조의 의도를 짐작할 수 있었다.
“마, 만약… 사공의 제안을 거절한다면… 짐과 공경들은 어찌 되는 것인가?”
죽간을 건네받은 유변이 우려에 찬 목소리로 이성휘에게 물었다.
그에 이성휘는,
무거운 목소리로 자기 의중을 전했다.
“부디 현명한결정을 내리시길 바랍니다, 폐하. 저는 폐하께서… 무사히 진류군에 도착하여 재회의 기쁨을 나누길 바랄 뿐입니다.”
유변과 공경들이 조조와 공생할 수 있는 방법은 철저히 밑에 엎드리는 것뿐이다.
서한의 내용은 알 수 없었으나,
분명 조조는 중원으로 오게 될 황제와 공경들의 힘을 최대한 억누르려 할 터였다.
한 손으로 죽간을 받아 든 유변의 모습을 본 이성휘는 우려에 찬 시선으로 황제가 타게 될 마차를 훑어보았다.
“어서 마차에 오르십시오. 전속력으로 선박이 정박한 나루터까지 향할 것입니다.”
“…알겠네.”
급히 수배한 마차는 휘황찬란하게 장식된 어가(御駕)에 비하면 좁고 불편하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무수히 많은 적들로부터 쫓기는 상황이었기에 유변은 일말의 불평 없이 이성휘의 지시에 순응하면서 마차에 올랐다.
“…폐하.”
황제가 마차에 올랐다.
뒤이어 이성휘가 재차 입을 열었다.
“나루터에 도착하기 전까지는… 반드시 답을 주셔야 합니다. 부디 영민한 판단을 내려주십시오.”
그 말에 유변은 굳은 표정을 한 채 고개를 끄덕였다.
“출발하라!”
이성휘가 소리쳤다.
외침이 떨어지기 무섭게,
두 마리의 말들이 이끄는 마차가 출발했다.
맹렬하게 바퀴를 움직이면서 내달리는 마차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부디 나루터에 도착하기 전까지 유약한 황제가 결단을 내리기를 간절히 바랐다.
‘대체 아만은… 유변에게 무엇을 요구했을지.’
부디,
일선을 넘은 요구들만은 아니기를.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이룩하겠다는 야심을 품은 흑발의 여인을 잠시 떠올린 이성휘는 쓴웃음을 흘리면서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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