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6화
==========================
이각과 곽사가 2만에 달하는 중앙군을 이끌고 풍익군을 공격했다고는 하나,
수천 명의 동백군 병력이 엄중하게 수비하는 군현에 잠입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경계병들이 사방에서 달려들었다.
위양군 동백으로부터 목숨을 바쳐 황제와 공경들을 지켜낼 것을 명령받은 경계병들이 창검을 내지르면서 침입자를 저지했다.
“적들이다! 괴한들이 쳐들어왔다!!”
“분명 놈들은 황제와 공경들을 노리고 있을 터! 어떻게든 막아라!!”
날카로운 금속음,
살의에 찬 고함 소리를 토해냈다.
이윽고 혈투가 벌어지게 되었다.
아무런 낌새 없이 쳐들어온 괴한들에 의해 침묵을 이어 나가던 좌풍익 치소에서 칼부림이 벌어졌다.
“치소를 확보해라.”
“예!”
조인의 명령에 칼끝을 늘어뜨린 무관들이 뛰어들면서 앞을 가로막고 있던 경계병을 상대했다.
경계병들은 치열하게 저항했으나,
결국 침입자들에 의해 수비가 뚫리고 말았다.
난데없이 쳐들어온 괴한들은 마치 정규군처럼 날렵하고 무예에 능했기 때문이다. 숙련된 움직임으로 수비를 뚫어낸 침입자들의 무위에 당혹감을 금치 못했다.
“이각과 곽사의 별동대다!”
“틀림없다! 이 빌어먹을 놈들…! 분명 황제와 공경들을 빼돌릴 속셈이다!”
황제와 공경들을 구금한 좌풍익 치소를 지키던 동백군의 무관들은 분명히 이각과 곽사가 보낸 별동대가 분명하다며 이를 빠득 갈았다.
무예에 능한 정예병들,
변복하여 정체를 숨기고 있었지만 날카롭고 용맹한 무위를 통해 숙련된 정예임을 알 수 있었다.
동백군의 무관들은 좌풍익의 치소를 강습한 조조 군의 유격대를 이각과 곽사가 은밀하게 보낸 별동대로 예상했다. 설마 조조군이 적진이나 다름없는 풍익군으로 병력을 급파할 줄은 꿈에도 몰랐기 때문이다.
“괴물 같은 놈…!”
“놈이 담장을 넘었다! 병사들은 저놈부터 막아라!”
이성휘가 수십 명에 달하는 경계병들을 참살한 뒤에 치소로 이어지는 담장을 넘었다.
가공할 무위와 날렵한 움직임에 놀란 동백군의 무관들은 비명에 가까운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었다.
“막아라! 황제와 공경들을 빼앗겨선 안 된다!!”
그러나
다급한 외침에도 결국,
수십 명에 달하는 경계병들을 모두 도륙한 이성휘는 피칠갑한 채 치소에 도달하게 되었다.
이윽고 굳게 닫힌 문을 열었다.
문을 박살 내듯 강제로 열어젖힌 이성휘는 결국 마침내 낙양에서 헤어졌던 인연과 다시 재회할 수 있었다.
여러 번의 시도와 실패들을 겪으면서 어렵게 헤매었던 재회를 마침내 이뤄낸 것이다.
“폐하… 무사하십니까.”
피칠갑한 무관이 거친 호흡을 토해내면서 치소에 구금되어 있던 인원들을 바라보았다.
두 눈을 크게 뜬 관료들의 모습이,
대경실색한 체 경악을 토해내는 궁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그리고 그 너머에…
남루할 정도로 닳은 의관을 걸치고 있는 황제가 있었다.
새하얀 얼굴과 장대한 체격,
소심하고 유약하지만 누구보다 착하고 순박한 성정을 가진 청년이 어깨를 바르르 떨면서 우려에 찬 시선을 들어 불쑥 쳐들어온 무관과 얼굴을 마주했다.
“호, 혹여… 어… 어림총사인가?”
충성스러운 궁인들로부터 둘러싸여 있던 유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용기를 내어 물었다.
치소에 구금되어 있던 공경들에게 경계와 두려움을 받고 있던 무관이 황제의 물음에 대답했다.
“진류왕의 부름을 받들어 황제 폐하를 모시러 왔습니다.”
얼마나 기다렸던가.
지금까지 얼마나 학수고대하며 인내하였던가.
피칠갑한 채 문을 뜯어낸 무관이 이성휘임을 알게 된 유변은 감격에 찬 표정을 지었다.
지독하게 끔찍했던 악몽이 끝나면서 오래전에 이별했던 이복동생과 다시 만나게 되리라는 희망과 기대감에 뜨거운 눈물을 쏟아 냈다.
“어, 어림총사…?”
“설마 중원제일 검인가!”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이면서 치소 내부로 들어오려는 이성휘를 가로막았던 조정대신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면서 좌우로 물러났다.
중원제일 검,
황실과 조정을 수호해온 최강의 무인이 마침내 황제에게 도달했다.
낙양에서 만고의 역신을 참살했던 중원제일 검이 구원의 손길을 뻗어왔다. 지금까지 농서동씨 가문과 주구들로부터 온갖 수치와 모욕을 당해야 했던 조정대신들은 환열을 금치 못했다.
“과연 그대는 한나라의 충신일세!”
“정말 고맙네… 여기까지 와주어 정말 고맙네….”
동탁이 낙양 조정을 장악한 이후부터 계속해서 수난을 겪어야 했던 조정대신들은 두 손을 뻗으면서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설령 하늘이 무너져도,
살아날 구멍은 있다고 하였던가.
사력을 다해 탈출을 시도하였으나 결국 동탁의 주구들에게 붙잡히게 된 그들은 죽기만을 기다리고 있던 중에 기사회생하듯 조조가 보낸 유격대로부터 구조를 받게 되었다.
“폐하, 어서 움직이셔야 합니다!”
“분명 중용무쌍한 병사들이 폐하께서 말에 오르기를 기다리고 있을 겁니다!”
궁인들의 재촉에 몸을 일으킨 유변은 벌벌 떨리는 발걸음을 힘겹게 내디디면서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드디어 다시 재회했다.
이복동생을 맡긴 사내와
수많은 역경과 고난들을 거친 끝에 드디어 마주하게 되었다.
“백화는… 협아는 잘 지내는가…?”
유변이 떨리는 목소리로 이복동생의 안부를 이성휘에게 물었다.
그 물음에 이성휘는 고개를 숙이면서 입을 열었다.
“물론입니다. 폐하와 다시 재회하기만을 학수고대하며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 그런가…. 그 아이가 잘 지낸다니… 정말 다행이네. 모두 그대의 공일세. 정말… 정말 고맙네.”
등을 떠밀듯 연주로 보냈던 이복동생이 무사하다는 이성휘의 대답에 유변은 격정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동생이 무사하다.
연주로 보낸 덕분에 무사할 수 있었다.
반가운 소식을 들은 유변은 궁인들과 함께 이성휘의 호위를 받으면서 치소 밖으로 나섰다. 또한 조정대신들도 발걸음을 움직이면서 유변을 뒤따랐다.
“놈들이 황제를 가로채려 한다!”
“화살은 쏘면 안 된다! 황제가 맞을 수 있다!”
황제와 공경들이 치소를 나서자,
담장을 넘어 내부로 난입해온 유격대와 치열한 격전을 벌이고 있던 경계병들이 크게 고함쳤다.
절대로 황제를 놓쳐선 안 된다.
공경들을 놓치는 한이 있더라도,
꼭두각시 만승천자만큼은 절대로 놓칠 수 없다.
“활로를 지켜라. 어서 황상과 공경들을 모셔라.”
흑발의 여인이 붉은 눈동자를 번뜩이면서 날카로운 칼끝을 적들에게 겨눴다.
이성휘가 치소 내부로 난입했던 동안에 바깥을 지키고 있었던 조인은 그동안 치열하게 칼부림을 벌이고 있었는지 적잖은 부상을 입은 상태였다.
붉게 물든 상처들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도 흑발의 여인은 침음 한 번 흘리는 일 없이 완강하게 버티면서 적들을 상대했다.
“자효 님, 제가 후미를 맡겠습니다.”
“아닙니다, 제가 후미를 맡겠습니다. 표기장군이 먼저 황상과 공경들을 데리고 고릉현을 떠나십시오.”
“…….”
이런 완강한 아가씨 같으니,
사방에서 적들이 달려드는 아비규환 속에서도 스스로 희생을 자처하는 조인의 모습에 이성휘는 짧게 탄식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조금은 이기적이어도 좋으련만,
투철한 용맹과 충성심을 겸비한 흑발의 여인은 부상을 입은 몸이었음에도 태산처럼 버텼다.
* * *
좌풍익의 치소에 괴한들이 난입했다.
수천 명의 군세를 동원하여 2만에 이르는 중앙군을 힘겹게 막아 내고 있던 동백에게 최악의 소식이 전해졌다.
이각과 곽사가 보낸 별동대인가?
아니,
저 빌어먹을 간신들이 별동대를 동원할 수 있을 정도의 두뇌를 가지고 있을 리 없었다.
“…조조군, 분명 조조군일 거예요!”
뱃속 깊은 곳에 있던 분기를 토해내듯 회색 머리카락의 여인이 이를 빠득 갈면서 소리쳤다.
빌어먹을 놈들,
어떻게 여기까지 기어들어왔단 말인가.
조조 군의 척후들이 활발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동관 전선에서 들었을 뿐, 조조군 병력이 강을 넘어 삼보 지역으로 침입했다는 첩보는 듣지 못했다.
그 말은 분명 경계망에 걸리지 않도록 소수의 결사대를 동원하여 몰래 침입해 왔다는 것이리라.
“당장 군세를 동원하여 치소를 습격한 놈들을 모조리 격멸해 버리고 황제의 신병을 확보하세요. 공경 놈들은 모두 죽여도 괜찮아요.”
“그리고 말입니다, 위양군…. 좌풍익 치소를 지키던 무관들이 잘못 봤을지도 모르지만….”
말끝을 흐리면서 주저하던 무관은 동백의 날카로운 눈초리에 어깨를 움찔 떨더니 말을 이어 나갔다.
“이성휘가 있었다고 합니다.”
“…예?”
“치소를 습격한 괴한들 중에 괴물 같은 무예를 자랑하는 자가 있었는데… 조조 군의 이성휘와 그 용모가 똑같다고 합니다.”
무관의 말에 동백은 잠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두 눈을 부릅뜬 채,
침묵을 담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리고 찰나의 시간이 흘렀다.
괴한들을 이끌고 치소를 습격한 장본인이 이성휘라는 것을 확신하게 된 동백은 증오와 살심에 온몸을 바르르 떨면서 시커먼 살의에 물든 외침을 토해냈다.
“당장, 당장 기병들을 급파하여 이성휘를 참살하세요! 놈은 조부님을 살해한 불구대천의 원수입니다! 온몸을 잘게 찢어발긴 다음에 들개들의 먹이로 던져 주겠어요!!”
이성휘,
이성휘!!
그 빌어먹을 원수가 지금 좌풍익의 치소에 있다.
이각과 곽사의 공세를 수차례 막아 내면서 승전보를 계속해서 이어 나가고 있었던 동백은 기병들에게 추격을 명령한 뒤, 이각과 곽사의 본진에 사자를 파견하여 이 소식을 알리게 했다.
자신처럼 이각과 곽사 또한 이성휘를 깊이 증오하고 있을 터.
게다가 이각은 낙양을 탈출하던 이성휘에게 두 조카들을 잃은 아픔이 있었다. 곽사도 이성휘에게 아끼던 부하들을 여럿 잃었으니 그 증오가 분명 어마어마할 터였다.
일단 싸움을 중단한 뒤,
황제와 공경들을 인솔하면서 도망치고 있는 이성휘를 죽일 것을 이각과 곽사에게 제안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