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4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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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공경들의 탈출.
장안성 백성들의 대규모 봉기.
낙양대전의 완패로 사기와 전의가 바닥을 치고 있던 동탁 군은 연이어 악재들을 맞이해야 했다.
거기에 더해 중앙군을 장악하고 있던 표기장군(驃騎將軍) 동황과 위양군(渭陽君) 동백이 반목과 분열을 거듭하는 양상을 보였고, 이를 어떻게든 수습해야 할 대장군(大將軍) 동민이 수수방관하는 듯한 안일한 대처를 보이면서 휘하 장수들의 신망을 점차 잃게 되었다.
“대체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건가?”
“상부 어르신이 없는 마당에… 대체 어떻게 이 난관을 극복하겠다는 건지.”
“소식들 들었나! 조조 군의 척후들이 지금 동관 전선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더군.”
휘하 병력을 동원하여 장안성의 대규모 민란을 진압했던 장수들이 술렁이는 모습을 보였다.
부화뇌동(附和雷同)하듯,
연이은 악재들에 군중이 술렁였다.
구심점을 잃게 된 세력은 제아무리 강대한 힘을 가지고 있더라도 멸망의 전철을 밟게 될 뿐. 제대로 된 대처를 하지 못 하는 상층부의 무능한 모습에 장수들은 점점 농서동씨 가문의 영향력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어서 군세를 소집해라!”
“당장 출정할 것이다! 움직여라!”
장수들이 악화 일로를 걷고 있는 사태를 한탄하면서 깊은 시름을 토해내고 있었을 때, 이각과 곽사가 격앙된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군부의 장수들에게 소집령을 내렸다.
이각과 곽사는 호가호위(狐假虎威)를 벌이는 것처럼 표기장군 동황의 권세를 빌려 군부의 장수들을 호령했다.
당혹스럽기 짝이 없었으나,
표기장군의 명령을 들먹이며 출정을 강행하는 이각과 곽사의 지시에 결국 동참할 수밖에 없었다.
“출정이라니, 대체 누구를 공격한다는 말이오?”
“삼보 지역에 창궐한 도적 떼를 소탕할 것이다.”
장수들의 물음에 이각은 삼보 지역에서 치안을 어지럽히고 있는 도적 떼를 척결하기 위한 출정임을 언급했다.
겨우 도적 떼를 소탕하는 일 따위에 중앙군을 동원하는 것이 의아했으나, 표기장군 동황으로부터 명령이 떨어진 것은 분명했기에 장수들은 별다른 반대 없이 이각과 곽사를 따랐다.
“출정하라!”
“창검을 들고 고각을 울려라!”
2만 명의 중앙군이 출격했다.
그 모습을 목격한 백성들은 공포에 질린 모습을 보였다.
수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한 동탁 군은 공포의 대상이었다. 창검을 치켜든 채 위세를 부리는 장졸들을 본 장안 백성들은 혹시라도 화를 당하게 될까 두려워 도처에 숨어 버렸다.
“과연 중앙군의 위엄이 날카롭군!”
“무려 2만에 달하는 병력이 아닌가. 이 군세만 있다면 그 무엇도 두렵지 않을 것일세.”
동황의 위세를 빌린 덕분에 2만의 중앙군을 통솔하게 된 이각과 곽사의 마음에 탐욕이 일기 시작했다.
숙조부의 뒤를 이어 상국(相國)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품고 있는 동황처럼 탐욕스러운 이각과 곽사는 군권을 거머쥐자마자 변심을 품었다.
동탁이 그러하였듯,
황제와 공경들의 신병을 확보하여 만인지상의 자리에 오르겠다는 야심을 품기에 이르렀다.
“이제 됐다! 말머리를 돌려라!”
“지금부터 우리는 위양군의 손아귀에 붙잡힌 황상과 공경들을 구출할 것이다!”
중앙군이 위남(渭南)에 입성했을 때,
이각과 곽사는 돌연 칼끝을 치켜들더니 위양군 동백의 토벌을 천 명했다.
농서동씨 가문을 변절하고 황제와 공경들을 억류하는 위양군 동백을 토벌한다. 이각과 곽사는 위남에 입성한 뒤에야 중앙군 장졸들에게 출정의 진의를 밝혔다.
“위, 위양군을… 친단 말이오?!”
“물론 위양군이 황제와 공경들을 무단으로 억류하는 것은 분명 사실이지만, 위양군은 상부 어르신의 총애를 받은 분이 아닙니까!”
위양군 동백을 처단할 것이라는 이각과 곽사의 명령에 군중이 크게 자중지란을 겪게 되었다.
농서동씨 가문의 혈육을 친다니,
이것은 결코 변명할 수 없는 내란이 아닌가!
분열과 반목을 경계하는 대장군이 이를 묵과할 리 없다. 표기장군의 독단이 분명하다. 그렇게 여긴 장수들은 이각과 곽사를 불신하는 모습을 보였다.
“닥쳐라! 감히 표기장군의 명을 거부할 셈이냐! 황상과 공경들을 구출하기 위한 토벌전이라고 하지 않았느냐!”
괄괄한 성정의 이각이 명령에 불응하는 모습을 보이는 장수들을 향해 날카로운 칼끝을 겨눴다.
당장 명령을 이행하지 않으면 군법에 따라 참형으로 다스리겠다며 목청을 높였다. 그에 동조하듯 곽사 또한 장수들을 압박하면서 토벌을 재촉했다.
“풍익으로 출진하라!”
“기병들은 대체 뭘 하는가, 어서 출진하지 않고!”
“조조 년이 군세를 움직이기 전에 먼저 황제와 공경들을 확보해야 한다!”
이각과 곽사를 추종하는 무관들이 목청을 높였다.
당장 풍익으로 출진하라.
황제와 공경들을 납치한 위양군 동백을 토벌하라.
동황의 총애를 받은 덕분에 장군에 임명된 이각과 곽사와 마찬가지로 그를 추종하는 무관들 또한 중앙군의 요직을 꿰차고 있었다. 그 덕분에 이각과 곽사는 반발과 불만을 단번에 억눌러버렸다.
“위양군 동백을 공격하라!”
“풍익에 주둔하는 병력은 고작 수천에 불과하다!”
불어든 바람에 낙엽들이 일제히 휩쓸리듯 소요들이 연쇄적으로 들이닥쳤다.
황제와 공경들의 신병을 확보한 동백은 야심을 품기에 이르렀고, 동황은 자기 자리를 빼앗으려는 동백에게 위기감을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이각과 곽사는 위기감에 빠진 동황을 이용하여 권좌에 오르려는 욕망을 품기 시작했다.
권력을 향한 욕망이 이어지며,
동탁 사후 혼란과 분열을 거듭하던 농서동씨 가문을 모래알처럼 잘게 무너뜨렸다.
천하의 패권을 장악하면서 황실과 조정을 석권했던 서량의 대군벌 세력이 천 길 낭떠러지에 아슬아슬하게 매달린 형국이 되고 말았다.
* * *
수백 명에 불과한 병력이 강을 건넜다.
조용히 먹이를 사냥하는 올빼미처럼,
잘 훈련된 유격대가 매우 은밀하게 이동했다.
조홍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을 건넌 이성휘는 좌풍익(左馮翊)에 속한 군현에 몸을 숨긴 채 적들의 동태를 주시했다.
“고릉현(高陵縣)이 특히 경계가 삼엄했습니다.”
“분명 폐하와 공경들을 고릉현에 억류하는 게 틀림없습니다.”
척후들이 전한 소식을 들은 이성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고릉현을 주목했다.
고릉현,
좌풍익의 치소가 위치한 지역이다.
감히 황제와 공경들을 길바닥에 방치시키진 않았을 테니 분명 치소에 구금했을 터. 수천 명에 달하는 병사들이 치소를 삼엄하게 지키고 있는 것으로 보아 분명했다.
“요새처럼 경계가 너무 삼엄했습니다. 몰래 잠입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척후들을 이끌었던 무관이 평민으로 변복한 채 허리에 검을 차고 있던 이성휘에게 말했다.
“…그런가. 물론 그렇겠지.”
머저리 가 아니고서야 어렵사리 사로잡은 황제와 공경들을 방치했을 리가 없다.
정치적 식견이 밑바닥이나 다름없는 동황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성이 있었을지도 모르나, 위양군 동백은 제 조부만큼이나 음흉하고 교활한 꾀와 모략을 자랑했기에 황제와 공경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만약 동백과 동황이 극적으로 화해하여 황제와 공경들을 장안성으로 데려간다면 모든 노력들이 허사로 돌아가고 말 겁니다.”
“그렇다고 무작정 적진을 향해 쳐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 아닌가.”
섣불리 손을 쓸 수 없는 상황에 평민으로 변복하고 있던 무관들이 답답함을 토로 했다.
“계속해서 척후들을 파견하여 적진의 동태를 살피도록 하라. 현재로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선을 다 할 뿐이다.”
면포를 늘어뜨린 삿갓을 쓴 흑발의 여인이 조급함을 토로하던 무관들을 향해 말했다.
여인의 무겁고 냉철한 목소리에 무관들이 입을 다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표기장군, 제가 직접 척후들을 이끌고 적진의 동태를 살피겠습니다.”
“부탁하겠습니다.”
이성휘와 함께 유격대를 이끌고 좌풍익 지역에 잠입한 조인이 자발적으로 척후 역할을 담당했다.
위험천만한 일이었음에도,
조인은 망설임 없이 이성휘를 위해 목숨을 걸었다.
반드시 오라비를 구하겠노라고 진류왕과 약조를 맺었다는 말을 이성휘에게서 듣게 된 조인은 중원제일 검의 명성을 위해서라도 기필코 임무를 완수하겠다며 사명감을 불태웠다.
황제. 진류왕.
결코 그들을 위한 사명감이 아니다.
오직… 연모하는 사내의 무명을 지키고자 내린 결정이었다.
“표기장군, 괜찮을 겁니다.”
인적이 뚝 끊어진 폐허를 은신처로 사용하던 이성휘와 조인이 바깥으로 나왔다.
심려에 찬 표정을 짓고 있는 이성휘의 모습을 보게 된 조인은 평상시와 다름없는 냉철한목소리로 위로해주었다.
그녀의 위로에 이성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제 옆을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리하고 위험한 일에 자효 님을 휘말리게 하여 죄송할 뿐입니다.”
불과 수백 명의 유격대를 이끌고 동탁 군의 영역에 잠입했다. 목숨이 열 개라도 부족한 최악의 작전이었음에도 조인은 단 한 번도 불평하는 일이 없었다.
그저 옆을 따를 뿐,
조인에게 있어 사랑과 연모라는 감정은 주군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것과 같았기 때문이다.
연모하는 사내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목숨을 내걸 수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작전에 나선 것이었다.
“제가 있을 곳은… 오직 표기장군의 옆입니다. 설령 목숨을 잃게 되더라도, 끝까지 충성을 다해 봉행하겠습니다.”
새하얀 얼굴에 홍조를 그린 흑발의 여인은 수줍음을 가득 담은 목소리로 마음을 고백했다.
한가롭게 고백을 전할 상황은 분명 아니었지만,
조인은 이성휘를 향해 자기 속마음을 조금의 꾸밈없이 전달했다.
“저는 괜찮습니다. 표기장군을 위해서라면 그 무슨 위험도 마다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저를 그저 표기장군의 옆에만 있게 해주십시오.”
그렇게 마음을 고백한 흑발의 여인은 애써 익숙하지 않은 미소를 지으면서 진심을 알렸다.
조인으로부터 진심을 듣게 된 이성휘는 머쓱한 반응을 보였다.
“급보입니다!”
땡볕에 달군 자갈처럼 후끈 달아오른 분위기를 깨트리듯 척후에 투입되었던 무관이 달려왔다.
급히 전해야 할 소식이 있었는지,
이성휘와 조인이 단둘이서 마음을 나누고 있던 현장에 거침없이 개입했다.
“새카맣게 밀려든 군세가 풍익으로 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크게 일어선 흙먼지를 보아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으로 보였습니다!”
수만 명의 군세가 움직였다.
장안성에서 출병하여 위남에 도달한 대규모 병력이 급히 말머리를 돌려 풍익으로 향하기 시작했다.
조인이 두 눈을 부릅떴다.
수만 명에 달하는 대군이 움직였다는 것은 결코 흘려들을 수 없는 일이었다. 분명 삼보 지역에 큰 파장을 몰고 올 게 틀림없었다.
“그 소식이 틀림없는가?”
“예, 그렇습니다…! 놈들이 지양현(池陽縣)과 운양현(雲陽縣)을 넘었다고 합니다.”
“수만 명의 군세가 지양현을 넘었다고…?”
무관의 뒤이은 말에 이성휘는 의문에 찬 표정을 지었다.
황제와 공경들을 다시 장안성으로 복귀시킬 목적이었다면 은밀하게 일을 처리했을 것이다.
표기장군 동황과 위양군 동백이 후계자 자리를 두고 암투를 벌였다는 사실이 바깥으로 새어 나가게 된다면 그만한 망신도 없을 테니.
그런데 동탁 군은 수만 명의 군세를 동원하는 매우 노골적인 행동을 보였다.
바깥의 시선들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는 듯이.
“…내란입니다.”
“예?”
이성휘가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그에 조인이 되물었다.
“수만 명의 군세들이 움직였다면… 분명 농서동씨 가문의 이리들이 서로 물어뜯기 시작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