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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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양군(渭陽君) 동백과 표기장군(驃騎將軍) 동황이 둘로 나뉘어 대립을 이어 나가고 있었을 때,
먼저 기병부대를 이끌고 진류군에서 출진했던 평동장군(平東將軍) 조홍이 낙양에 도착했다.
장안성 방면에 투입된 척후들로부터 동탁 군이 후계 구도를 두고 반목하고 있음을 알게 된 조홍은 이것을 기회로 여기고서 준비에 박차를 가했다.
“일단 포판진(蒲坂津)에 모든 선박들을 집결시키세요. 고깃배든 뭐든 간에, 도하에 필요한 배들을 모조리 긁어모아요!”
조홍은 휘하 장졸들에게 포수(蒲水)와 인접한 어촌에 있는 선박들을 징발할 것을 명령했다.
동탁 군이 주둔하는 동관(潼關)을 돌파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으므로 수로를 통해 황제와 공경들을 구출하려는 것이었다.
선박들을 모으기란 쉽지 않았지만,
한나라에서 손꼽히는 부자였던 조홍에게는 요술을 부릴 수 있을 정도의 막대한 금력이 있었다.
“모든 선박들은 포판진으로 이동하라!”
“상선에 황제와 공경들을, 고깃배에 병사들을 태울 것이다!”
조홍은 불과 나흘 만에 100여 척에 달하는 선박들을 포판진에 집결시키는 기염을 토해냈다.
상선과 어선들이 대부분이었으나,
강을 건너기만 하면 될 뿐이었기에 도하에 큰 문제는 없을 터였다.
포판진과 가까운 포판현(蒲坂縣)에 주둔한 조홍은 선박들을 수배하는 한편, 척후들을 강 건너까지 파견하여 삼보(三輔) 지역의 상황을 수집했다.
“위양군 동백이 황제와 공경들을 납치하여 풍익에 주둔하고 있다고 합니다!”
“동백…? 동백이 누군가요?”
“동탁의 손녀딸이라고 합니다. 어릴 적부터 동탁의 총애를 많이 받았는지, 동탁 군이 정권을 잡자마자 열후(列侯)에 봉해졌습니다.”
“역적 가문의 역적 년이군요.”
농서동씨 가문이 반목하기 시작했다.
위양군 동백과 표기장군 동황.
먹다 남은 고깃덩이를 차지하기 위해 서량의 두 살쾡이들이 서로를 향해 발톱을 겨눴다.
공경들과 함께 장안성을 탈출했던 황제는 얼마 도망치지 못하고 억류된 채, 농서동씨 가문의 후계 구도 싸움에 휘둘리고 있는 상황이었다.
“도망칠 거면 잽싸게 좀 도망치지, 왜 붙잡히고 난리야? 곱절로 더 귀찮아졌네.”
흑발의 여인이 뒷머리를 벅벅 긁으면서 인상을 찌푸렸다.
장안을 탈출한 황제와 공경들이 위양군 동백의 군세에 억류되어 있다는 소식을 들은 조홍은 착잡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유약한 황제를 향한 연민?
그따위 마음은 눈곱만큼도 없었다.
경애하는 언니께서 내린 임무를 훌륭하게 완수하기 위해서 준비에 박차를 가했을 뿐, 떨거지 황제가 어떻게 되든 그것은 논외의 일에 지나지 않았다.
‘황제의 춘추가 올해로 열일곱이었나, 아니면 열여덟이었나. 많기도 하네. 제법 머리가 굵어졌을 테니까 더 이상 꼭두각시 역할은 안 하려 할 테고… 그냥 죽어 버리는 쪽이 언니한테 유리할 텐데.’
일부러 상선의 갑판 아래에 구멍을 내버려서 황제와 구경들을 모두 물귀신으로 만들까,
잠시 그런 생각했다.
경애하는 언니를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손을 더럽힐 수 있었기에 거침없이 흉계를 떠올렸다.
그러나 언니로부터 별도의 지시가 내려지지 않았으므로 갑판 아래에 구멍을 내는 흉계는 망상으로 남겨두기로 했다. 자기 독단으로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렴 님.”
“표기장군!”
먼저 사예주에 도착한 조홍이 포판현에 주둔한 채 박차를 가하고 있었을 때,
표기장군 이성휘와 정남장군 조인이 도착했다.
후발주자로 사예주에 당도한 이성휘와 조인은 조홍으로부터 자세한 소식들을 듣게 되었다.
“폐하는 어찌 되었습니까.”
“공경들과 함께 위양군 동백에게 억류된 상태라고 해요. 지금 풍익군에 있을 거예요.”
“풍익군….”
조홍에 대답에 이성휘는 굳은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숙였다.
풍익군,
넘어지면 코 닿을 거리에 있는 군현이 아닌가.
물론 풍익군으로 향하려면 넓은 폭을 자랑하는 포수를 건너야만 했지만 거리상으로는 매우 가까웠다.
“적잖은 군세들을 끌고 왔던데, 대체 어디서 온 장졸들인가요? 일반 정규군은 아닌 것 같던데요.”
“낙양에서 차출한 유격대입니다.”
조홍을 먼저 보낸 뒤,
뒤이어 출발하게 된 이성휘와 조인은 낙양에서 차출한 2천 명의 유격대를 이끌고 왔다.
적의 배후와 측면을 공격하는 기습과 교란 역할을 담당하는 부대였기에 곧바로 투입되었다.
“언니께서는 주인을 잃은 동탁 군이 분명 혼란과 분열에 빠질 것을 미리 예견하시고서 전쟁이 종결되자마자 낙양에 유격대를 편성하셨다. 모두 언니께서 안배를 적절히 두신 덕분이다.”
조인은 낙양에 유격대가 편성된 이유에 대해 조홍에게 설명했다.
과연 언니께서는 대단하시다.
팔짱을 낀 조인은 안배를 미리 배치해 둔 경애하는 언니에게 무한한 존경심을 보냇다.
“풍익 방면은 어떻습니까, 자렴 님?”
“방금 척후들을 보냈어요. 수상한 징후가 포착된다면 곧바로 척후들이 알려올 거예요.”
“…….”
날랜 척후들을 풍익으로 파견했다는 조홍의 말에도 안심할 수 없었는지 이성휘는 입을 꾹 다문 채 책상 위에 펼쳐진 지도를 뚫어져라 응시했다.
이윽고 고개를 든 뒤,
동석하고 있던 두 여인들을 향해 입을 열었다.
“소수의 유격대를 이끌고 포수를 넘겠습니다. 자렴 님과 자효 님은 포판현에 남아 군세의 지휘를 맡아주십시오. 만약 운이 좋아 폐하와 공경들을 모두 구출해낸다면… 신호를 보내겠습니다.”
불과 수백에 불과한 유격대를 이끌고 수만 명에 달하는 병력들이 우글대고 있는 적진으로 가겠다.
그 말에 조홍은 물론, 조인 또한결사반대를 외치면서 이성휘를 만류했다.
* * *
대장군(大將軍) 동민과 표기장군(驃騎將軍) 동황이 장안성의 민란을 단번에 진압해 버렸다.
봉기에 참전했던 수만 명에 달하는 장안 백성들을 도륙해 버린 농서동씨 가문은 민란을 꾀한 주모자들의 수급을 성루 위에 내건 뒤에야 무자비한 살육을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동백, 그년이 나더러 표기장군의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했단 말이냐?!”
동황이 이를 빠득 갈면서 소리쳤다.
그 빌어먹을 년이 감히,
이 표기장군 동황을 후계 구도에서 떨어트릴 셈이란 말인가.
풍익에서 온 동백의 전령이 대장군부의 궁문을 넘었다는 소식을 들은 동황은 이윽고 대장군부에 심어둔 심복으로부터 자세한 상황을 알게 되었다.
“황제와 공경들을 놓친 죄를 물어 표기장군에서 파해야 한다는 해임안을 대장군부에 보냈다고 합니다.”
“분명 위양군은 인질로 잡은 황제와 공경들을 동원하여 표기장군을 밀어낼 속셈이 틀림없습니다! 절대로 가만히 있으시면 안 됩니다!”
분통을 터트리던 동황에게 이각과 곽사는 불난 집에 기름을 뿌리듯 분노와 증오를 부추겼다.
만약 동백이 권력을 잡게 된다면 자신들은 분명 그녀에게 죽임을 당할 것이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동황이 말리지 않았다면 그 교활한 계집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겠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높은 자리에 오르기 위해서라도.
어떻게든 동황이 후계자에 내정되어야 했기 때문에 이각과 곽사는 당장 군세를 동원하여 풍익에 주둔하는 위양군 동백을 제거할 것을 건의했다.
“지금 그대들은 나더러 조카를 살해하는 상잔의 패륜을 범하란 말인가! 우리들끼리 서로 싸운다면 필시 조맹덕이 군사를 일으킬 터!”
동백을 미워하고 증오하되,
조카딸의 목숨을 빼앗을 생각 마저는 없었던 동황은 상잔을 부추기는 이각과 곽사의 속삭임에 크게 당황하는 모습을 보였다.
동관 너머에 있는 조조군이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엿보고 있는 상황에 내분과 반목을 일으키는 것은 아무래도 꺼림칙한 일이었기에 동황은 이각과 곽사의 제안을 뿌리쳤다.
“하지만 표기장군, 계속 좌시한다면 결국 후계자에서 밀려나게 될 겁니다.”
“먼저 싸움을 건 쪽은 위양군이 아닙니까!”
비겁하게 황제와 공경들을 동원하여 정쟁을 시작한쪽은 위양군 동백이다.
결국 동백에게 모든 권력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이각과 곽사의 말에 동황은 크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농서동씨 가문의 권력은 내 것이거늘,
숙조부로부터 총애를 받았다고 하여 어린 조카딸에게 이대로 권력을 빼앗겨야 한단 말인가?
서열을 따지고 보더라도 이 동황이 후계자에 임명되는 것이 순리일 것이다.
제 분수를 아득하게 넘어설 정도로 권력을 향한 욕망에 대단했던 동황은 결국 동백에게 모든 것들을 빼앗기게 될 것이라는 부하들의 말에 오장육부를 뒤틀리게 만들 정도의 끔찍한 질투와 시기를 느끼게 되었다.
“그럼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
“소장들에게 맡겨 주십시오! 분골쇄신하여 명을 수행하겠습니다.”
동황의 물음에 이각과 곽사는 자신들에게 일임해 줄 것을 부탁했다.
동백은 동황의 정적이었으며,
또한 이각과 곽사에게는 목숨을 노리는 위협이기도 했다.
‘그 계집을 이번 기회에 죽여야겠다. 후환이 더 커지기 전에 짓밟아야지.’
‘패잔병들을 간신히 수습하여 홍농군에 온 우리를 죽이려 했겠다! 우리가 얼마나 농서동씨 가문을 위해 충성을 바쳤는데!’
그렇기에 어떻게든 위협을 제거하고 싶었던 이각과 곽사는 이번 기회를 통해 동백을 제거하려 했다. 계속 살려 둔다면 필시 두고두고 화근으로 작용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표기장군 동황이라는 든든한 뒷배가 있었던 이각과 곽사는 감히 농서동씨 가문의 여식을 암살하기 위한 흉계를 꾸밀 정도로 안하무인처럼 행동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