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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60화 (260/616)

260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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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제와 조정대신들이 탈출을 감행했다.

조조는 매우 냉소적인 입장을 보였다.

설령 황제가 살해당하더라도,

명망 높은 공경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되더라도 무덤덤하게 반응할 것처럼 아무런 감정도 보이지 않았다.

‘패업의 달성을 위해서라도… 유약하고 무능한 황제와 조정대신들은 이제 그만 퇴장해줬으면 좋겠군.’

사실 그녀는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동탁 군에게 붙잡혀 참살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들은 훌륭한 희생양이 되어 줄 터였다.

소심하고 유약하지만 백성들에게 많은 동정표를 받는 황제. 수많은 사대부와 학자들로부터 막강한 지지를 받는 공경들.

만약 황제와 공경들이 동탁 군의 잔당들에게 끔찍하게 살해당한다면 천하의 대의와 민심은 당연히 아군에게 집중될 것이기 때문이다.

‘낙양대전에서 만고의 역적을 참살하고 12만 대군을 모두 무찌른 부관은 서량의 잔당들이 얻게 될 악명만큼의 명성과 신망을 얻게 되겠지.’

조조가 원하는 것은 오직 이성휘와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뿐이다.

다른 것들은 아무래도 좋다.

황제와 공경들이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건…

그들의 죽음이 부관과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면 몇 번이고 황제와 공경들의 죽음을 방치할 것이다.

‘황제가 결국 역적들의 손에 살해당한다면 그 애물단지 같은 계집을 옥좌에 옹립하여 전권을 거머쥐겠다. 나이가 어린 계집이니 괴뢰로 삼기 좋겠지. 게다가 외가가 몰락한 서녀 출신이기도하고.’

생모인 왕미인은 하태후의 손에 독살 당했으며, 외가인 동래왕씨 가문은 이미 오래전에 몰락하였으므로 유협은 오라비 유변과 마찬가지로 매우 훌륭한 꼭두각시가 되어 줄 것이었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일이나,

망운(亡運)을 맞이한 왕조들이 모두 밟았던 전철이었기에 한나라 또한 피할 순 없을 터였다.

“명부, 평동장군을 보내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군사 진궁의 말에 조조가 고개를 끄덕였다.

평동장군 조홍을 파견했다.

외곽에 평동장군 휘하의 기병부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것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이다.

조홍을 보낸 것은 적임자인 이성휘를 잠시 배제하기 위함이며, 그가 황실과 조정에 관여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다.

“연주의 군무를 지휘하는 종친과 휘하의 정예부대를 파견했으니 장안성을 탈출한 황제와 조정대신들에게 충분한 조치를 취한 셈이다. 내 조치를 두고 불만과 이견을 제기한 놈은 없겠지.”

황제와 공경들이 역적들의 손에 죽기를 바라고 있다. 그러나 그 내심을 감히 밝힐 순 없었다.

그렇기에 조조는 종친을 투입하여 절체절명의 위기에 봉착한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급히 구하려는 위장을 벌였다.

내심을 숨기기 위한 위장.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절묘한 수였다.

과연 냉혹한 권모술수를 두른 조맹덕다운 행동이었다.

“하지만 결국 중원제일 검이 나서려 할 겁니다.”

그에 진궁이 말했다.

군사의 말에 조조가 침음을 삼켰다.

“…물론 그렇겠지.”

이성휘가 성문교위 시절부터 황제와 친분이 있었다는 것은 조조 또한 알고 있었다.

그래서 어림총사에 임명했고,

자기 이복동생인 유협의 신변을 맡겼다.

발해왕이었던 유협을 진류왕으로 전봉하여 연주로 보낸 것 또한 그 이유가 아니던가. 그래서 조조는 사랑하는 부관을 호시탐탐 빼앗으려는 황실 일가를 증오하고 있었다.

“부관에게는 내가 말해 보도록 하겠다. 일단 군사는 장수들을 모두 군부로 소집시켜라. 그리고 부군사에게 일러 황후와 조정대신들이 동요하지 않도록 단속하도록 하라.”

“알겠습니다, 명부.”

이윽고 명령받은 진궁이 물러났다.

홀로 남게 된 조조는 걱정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침음을 삼켰다.

이성휘를 향한 불안 때문이었다.

아홉 살 계집의 사특한 속삭임에 빠져 장안으로 달려나갈까, 그것이 계속 불안하기만 했다.

“만약 부관이 결단코 황제를 구하려 든다면….”

흑발의 여인이 눈꺼풀을 내리면서 걱정에 찬 눈길로 바닥을 훑었다.

지금쯤 이성휘도 소식을 들었을 터.

분명 출정 허가를 받기 위해서 자신에게 오고 있을 터였다.

곧 이성휘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오겠지. 흑발의 여인인 불안에 젖은 붉은 눈동자로 집무실의 문을 응시했다.

“맹덕 님.”

아니나 다를까,

이윽고 연모하는 부관의 목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 * *

문을 응시하면서 잠시 고민하던 조조는 이윽고 이성휘에게 출입을 허락했다.

뒤이어 허락이 떨어지자,

무뚝뚝한 인상의 남성이 예를 취하면서 집무실 안으로 들어섰다.

이성휘와 마주하게 된 조조는 일말의 불안감을 느껴지면서 손끝을 바르르 떨었다. 눈덩이처럼 점점 불어나는 불안감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아만, 저를 보내주십시오. 동탁의 주구들을 모조리 격멸하고 황제와 구경들을 모두 구해 오겠습니다.”

이성휘가 말했다.

그에 조조가 입을 열었다.

“먼저 자렴을 출정시켰네. 귀관은 영천군(穎川郡)에 주둔하는 병주군을 집결시킨 뒤에 형양에서 대기하게.”

“…….”

사예주 전선의 병력만으로 충분합니다, 라고 말하려 했다.

그러나 석연찮음을 느끼고는 입을 다물었다.

황제 일행은 필시 쫓기고 있을 터.

사나운 독사들이 우글대는 독사지옥에 빠진 것이나 다름없는 그들을 한시라도 빨리 구해 내야 했다.

하지만 조조는 영천군에 주둔하는 여포와 장료, 병주군을 불러 모은 뒤에 형양에서 조홍의 소식을 기다릴 것을 명령했다. 장안성의 상황이 매우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음에도 말이다.

조조는 완전무결한 자질과 군재를 갖추고 있는 인물이다. 그녀가 그를 모를 리 없었다.

그렇기에 이성휘는 그녀의 하명을 통해 심중을 간파할 수 있었다.

“…명을 받들겠습니다.”

예를 취하면서 명령을 받들었다.

황제를 구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녀의 의중을 알게 된 이성휘는 반색하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구슬프게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이복오빠를 구해 줄 것을 호소했던 작은 황녀의 모습이 뇌리에 잠깐 떠올랐지만 이를 꽉 깨물면서 조조의 명령을 수용했다.

“귀관.”

“저는 아만의 명을 받들 뿐입니다.”

설령,

황녀의 간절한 호소를 외면하는 한이 있더라도.

가장 우선적으로 여겨야 할 대상은 연모하는 주군의 명령이며, 또한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일 것이다.

그렇기에 과감히 포기했다.

무정하게 보일 정도로 마음을 다그쳤다.

이것이 바로 그녀가 천하통일로 나아갈 수 있는지름길이라면 몇 번이고 마음을 잘라낼 것이었다. 그녀를 진심으로 연모하고 있었으니까.

“그 이외의 것들은 모두 포기할 수 있습니다.”

“…귀관.”

겸허히 마음을 접는 이성휘의 모습에 조조는 씁쓸함에 젖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황실과 조정의 편에 설지도 모른다고,

그가 약속을 저버린 채 작은 계집에게 복종할지도 모른다고 한순간이나마 의심했던 자신이 너무도 한심스럽게 느껴졌다.

그의 결연한 모습에 눈물이 차올랐다.

“하지만 귀관은… 진류왕과 약속하지 않았는가.”

“예, 그러나 그것이 아만의 대업보다 중요하진 않습니다. 물론 황실과 조정을 위해 싸워온 것은 사실입니다만 아만과 함께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이룩하겠다는 목표를 결코 잊어본 적이 없습니다.”

자기 진심을 전한 이성휘는 조조에게 예를 취한 뒤에 곧바로 등을 돌렸다.

주군의 하명에 따라,

영천군에 주둔하는 여포와 장료에게 소집령을 내리려 했다.

비록 작은 황녀와 나눈 약속을 지키지 못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조조에게 감히 야속함을 품는 일은 없었다. 그녀는 자기 대업과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위해 최선의 판단을 내렸을 뿐이니까.

“귀관!”

이성휘가 집무실을 나서려던 순간,

다급한 목소리가 발목을 붙잡았다.

“잠시만 기다리게…. 내 서한을 쓸 터이니.”

“예?”

이성휘의 뒷모습을 안타까움에 찬 눈길로 바라보던 조조가 급히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붓을 들더니 죽간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 찰나의 순간에,

갑작스럽게 변심하게 된 걸까.

조조의 부름에 발걸음을 멈춘 이성휘는 붓을 유려하게 움직이면서 죽간에 글을 적기 시작한 그녀를 내려다보며 의문을 보냈다.

“…….”

서한을 모두 작성하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물론 그렇게 긴 시각은 아니었지만,

무겁게 내려앉은 분위기가 체감상 시간이 길게 이어진 것만 같았다.

본인이 내린 변심에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주듯 붓을 움직이던 손이 몇 번이고 멈추고 다시 적기를 반복했다.

“이 서한을 황제에게 전하게.”

“…예?”

이윽고 서한이 모두 작성되었다. 작성한 죽간을 둘둘 말아서 붉은색 끈으로 봉합한 조조는 그것을 이성휘에게 내밀면서 당부의 말을 보냈다.

황제에게 전하라는 말에,

이성휘는 두 눈을 크게 뜨면서 조조를 바라보았다.

대체 그녀가 무슨 말을 하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린 것인지.

어째서 그렇게 변심하게 된 것인지.

서로의 마음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일심동체나 다름없는 사이였음에도 그 변심을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고 황제에게 내 말을 전하게. 내 요구조건들을 모두 수용한다면 이 조맹덕이 정성을 다해 예우하겠노라고. 우둔하기 짝이 없는 작자라도 기본적인 사리 분별은 할 줄 알 테지.”

그렇게 말한 뒤,

조조가 재차 입을 열었다.

“만일의 사태를 대비하여 낙양에 유격대를 주둔시키지 않았는가. 그들을 대동하고서 경계를 넘게.”

“…예.”

불안에 물든 표정을 짓고 있으면서도 애써 미소를 짓는 그녀의 모습에 이성휘는 격정을 느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나를 위해서 한 발 물러선 그녀에게,

한 발 물러서면서 황제 유변과 교섭하는 것을 택한 그녀에게 그저 미안 할 뿐이었다.

떨리는 손으로 그녀에게서 죽간을 받아들게 된 이성휘는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조조를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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