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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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예주로 향하는 길목들을 봉쇄한 동백.
장안성에서 정예부대를 이끌고 급히 뒤를 추격해온 동황.
필사의 탈출을 감행했던 황제 유변과 조정대신들은 수많은 피해와 희생을 감수하였음에도 결국 농서동씨 가문의 마수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절체절명의 위기 속에서,
유약한 황제는 죽음을 각오해야 했다.
“지금까지 우리 농서동씨 가문이 얼마나 많이 은혜를 베풀었는데… 어찌 만승천자라는 분께서 우리 가문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원수로 갚을 수 있습니까!”
동황이 우렁찬 목소리를 내지르면서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위협했다.
날카로운 칼끝을 늘어뜨린 채 다가오는 모습이 매우 흉흉하게 보였다.
동탁의 명을 받들어 번번이 군세를 동원하여 황실과 조정을 겁박해온 동황은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향해 칼끝을 들이미는 일을 망설임 없이 저질렀다.
“숙부님, 제가 황상을 직접 모시도록 하겠습니다.”
백은색의 갑주를 걸친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가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위협하던 동황을 향해 말했다.
그에 이각과 곽사가 소리쳤다.
“황상을 호위하는 역할은 표기장군이 맡는 것이 순리일 것이옵니다.”
“이제 곧 위양군께서는 한나라의 황후가 되실 분이온데 어찌 병권을 동원하셨습니까.”
힘과 권력을 맹목적으로 거머쥐려는 동백의 야욕을 동황이 모를 리 없었다.
나를 밀어낸 뒤에,
세력을 거머쥘 생각이 틀림없다.
어린 계집이 농서동씨 가문의 모든 세력을 독차지하겠다니, 실로 오만하기 짝이 없지 않은가.
절대로 동백에게 후계를 양보하고 싶은 마음이 없었던 동황은 자신이야말로 농서동씨 가문의 뒤를 이끌 재목이라며 동백의 야욕을 꺾어 버리려 했다.
“여색과 주지육림에 빠져 군무를 게을리 한 숙부님께서 무슨 염치로 황상을 모시겠단 말입니까? 그래서 역심을 품은 역도들이 황상을 납치하는 것조차 막지 못하신 게 아닌지요.”
“뭐… 뭐라!!”
나태와 태만을 지적하는 동백의 말에 동황의 얼굴이 붉게 달아올랐다.
감히 어린 계집이,
대체 뭘 안다고 지껄인단 말이냐.
숙조부로부터 총애를 받아 곧바로 열후에 봉해지더니 그 오만함이 하늘을 찌를 뜻했다.
부하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모욕을 당하게 된 동황은 늘어뜨린 칼끝을 당장에라도 휘두를 것처럼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다.
“실로 오만방자하기 짝이 없구나! 당장 황상을 내놓아라!!”
동황이 재차 소리쳤다.
흉흉한 기세를 알아차렸는지,
이각과 곽사를 포함한 표기장군부의 장수들이 일제히 칼자루에 손을 올리면서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에 동백을 호위하던 서영과 고석, 중앙군 출신의 무관들이 칼자루를 반쯤 뽑아 들면서 동황의 무리들을 향해 날카로운 적개심을 드러냈다.
“물러서라!”
“감히 네놈들이!”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사이에 두고 농서동씨 가문이 서로 대립하게 되었다.
그에 동황은 공격을 감행하려 했으나,
동백을 따르는 병력들이 제법 많았기 때문에 잠시 물러설 수밖에 없었다.
황제를 추격하기 위해 소수의 정예부대만을 이끌고 온 동황은 병력이 부족했고, 또한 대장군부를 불태우며 반란을 일으킨 반란군을 모두 일소하지 못한 상황이었기에 조급한 상황이었다.
“서영! 고석! 농서동씨 가문에 충성을 바친 네놈들이 감히 한나라의 표기장군인 나에게 창검을 겨눌 셈이냐!”
난폭한 위협을 드러내는 동황을 향해 서영이 입을 열었다.
“표기장군, 위양군께서는 곧 황후가 되실 분이십니다. 감히 무례를 범하실 셈입니까.”
“이것들이…!!”
위압과 협박을 동원했음에도 동백을 따르는 장졸들은 완강한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결국 방도가 없었던 동황은 분개를 터트리면서 말머리를 돌려야 했다.
이윽고 이각과 곽사가 말머리를 돌리자 동황을 따르는 정예부대들 또한 방향을 돌리면서 장안으로 다시 돌아갔다.
“역신들을 모두 죽여라!”
“감히 만승천자를 데리고 철천지원수들에게 빌붙으려 한 게 틀림없다!”
동황이 군세를 이끌고 물러나자, 동백을 따르는 장수들은 당장 조정대신들을 척살하려 했다.
필요한 것은 황제뿐이다.
황제를 부추겼던 공경(公卿)들을 살려둘이유가 없었다.
동백의 무관들이 창검을 늘어뜨리면서 천천히 다가왔다. 그에 마차에 몸을 숨기고 있던 유변이 벌떡 일어나 두려운 마음을 애써 억누르면서 무관들을 향해 노여움에 찬 목소리로 일갈했다.
“다가오지 마라! 그대들은 감히 어전에서 공경들에게 위해를 가하려는 것인가!”
정쟁과 암투를 위한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았던 유약한 황제가 목에 핏대를 세우며 크게 일갈하자 무관들이 당혹감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발걸음을 멈췄다.
벌벌 떨기에 바빴던 황제가,
창검으로 무장한 수백 명의 장졸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 놀라운 변화에 장졸들은 물론, 뒤에서 지켜보고 있던 회색 머리카락의 소녀 또한 적잖게 놀란 눈빛으로 유약한 인상의 황제를 바라보았다.
“만약 그대들이 짐을 따르는 공경과 장졸들에게 위해를 가하려 든다면… 짐은 이 자리에서 당장 목숨을 끊을 것이다!!”
날카롭게 벼린 패도(佩刀)를 든 유변이 제 목에 칼끝을 겨누면서 소리쳤다.
“짐이 여기서 자결하면 그대들은 만고의 역적으로 그 이름이 남게 될 터! 정녕 그것을 원하는가!!”
그 모습에 동백의 장수들은 유약한 황제가 설마 제 목숨을 스스로 끊을 정도의 담력이 있겠냐며 중얼거렸으나, 날카로운 칼끝에 찔린 유변의 목덜미에서 핏물이 뚝뚝 흘러내리는 것을 보고는 입을 다물었다.
“…진심인 것 같습니다.”
서영이 말했다.
그에 동백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이를 빠득 갈았다.
황제가 만약 죽기라도 한다면,
자기 야심은 물론 농서동씨 가문의 대업 또한 모조리 물거품이 되고 만다.
제 목숨을 교섭의 재료로 삼아버린 유변의 돌발적인 행동은 동백을 당황에 빠트렸다. 설마 그 유약하기 짝이 없던 황제가 제 목숨마저 동원할 줄은 미처 놀랐기 때문이었다.
“당장 창검을 거둬라!”
“뭣들 하느냐! 어서 물러서지 않고!”
당장에라도 공경들을 무자비하게 살육할 것 같았던 병사들이 뒤로 황급히 물러났다.
사태의 급박함을 깨달았는지,
당혹감에 빠진 동백의 모습을 본 무관들은 다급함에 찬 목소리로 병사들을 제지했다.
“…일단 풍익(馮翊)으로 모시겠습니다.”
동백은 탈출을 감행했던 모든 인원들의 목숨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유변에게 동행을 요구했다.
황제는 결코 죽어선 안 된다.
혹시라도 유변이 자결할까 두려웠던 동백은 한 수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반란이 확산되고 있는 장안성으로 황제를 다시 데려갈 수 없었기에 동관(潼關)과 인접한 풍익으로 말머리를 향했다.
* * *
양민으로 변복한 중랑장(中郞將) 양밀이 농서동씨 가문의 폭정을 피하여 도망치는 피난민들 속에 숨어 도망쳤다.
험준한 산세로 유명한 화산(華山)을 넘은 끝에 무사히 홍농군(洪農郡)에 입성한 양밀은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장안성을 탈출할 계획임을 알리고 조조 군에게 협력을 구했다.
그 소식을 듣게 된 조조 군은 홍농군과 하동군에 주둔하는 병력을 모두 동원하여 장안성 방면에 집중했다.
“중랑장 양밀이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양밀? 처음 듣는 이름이군.”
“여남원씨 가문과 함께 대명문가로 명성을 떨친 홍농양씨 가문의 무장이라고 합니다.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따르는 측근으로 알고 있습니다.”
장안성에서 시작된 변란이 마침내 연주로 전해지게 되었다.
장안성에서 탈출을 감행하기 전,
중랑장 양밀이 먼저 장안성을 탈출하여 급보를 알린 덕분에 소식을 접할 수 있었다.
급보를 듣게 된 조조는 부군사 순욱과 긴밀히 상의하면서 대책을 논의했다.
“소식이 이곳 진류군에 도착하는 데만 일주일이 걸렸다.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장안을 탈출하기 전에 중랑장 양밀이 소식을 전해 왔다고는 하나… 분명 지금쯤이면 탈출여부가 결정되었을 터.”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과연 탈출에 성공하였을까.
지금으로선 알 방도가 없었다.
장안성에서 까마득히 떨어진 진류군에서 어떻게 소식을 접할 수 있겠는가.
자세한 상황을 알 수 없었으므로 대책을 내놓는 것이 쉽지 않았다.
“자렴을 불러라.”
심사숙고 끝에 결론을 내리게 된 조조는 일단 평동장군(平東將軍) 조홍을 불러들였다.
황제가 장안을 탈출했다.
당장 기병부대를 이끌고 사예주 전선을 지휘하라.
진류군 외곽에 평동장군 휘하의 기병부대가 주둔하고 있음을 단번에 떠올린 조조는 당장 가용할 수 있는 조홍과 휘하 병력들을 투입시켰다.
“신명을 다해 명령을 받들겠습니다!”
갑작스럽게 부름을 받고 달려왔음에도 황금 투구를 걸친 흑발의 여인은 주저하는 모습 없이 명령을 받들었다.
황제를 구출하는 역할이 주어졌다.
흑발의 여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역할의 중요성을 상기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한 황제와 조정대신들을 구원한다면 조조 군의 위세와 권위는 더욱 견고하게 다져질 것이었기에 조홍은 의욕에 찬 모습을 보였다.
“하온데 언니, 표기장군은….”
어째서 언니께서는,
표기장군이 아니라 나를 부르실 걸까.
잠시 의구심이 들었는지 조홍은 사촌언니에게 중얼거리는 듯한 작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에 조조가 대답했다.
“후속부대를 이끌게 할 예정이다.”
“예, 알겠습니다.”
사촌언니의 대답을 통해 의구심을 해소하게 된 조홍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등을 돌렸다.
한시가 급한 상황이다.
휘하 기병부대를 이끌고 곧바로 출정했다.
진류군에서 출병한 조홍의 병력은 단번에 형양(滎陽)을 돌파하면서 나아갔다.
비록 많이 늦었겠으나,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만약 탈출에 성공했다면 어려움 없이 호위할 수 있을 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