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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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락과 주지육림에 빠진 것은 대장군(大將軍) 동민도 마찬가지였다.
황제 유변을 겁박하여 대장군 벼슬을 받게 된 동민은 한나라 군부의 수장이 된 이후부터 주색에 집착하는 꼴사나운 추태를 드러냈다.
궁녀들은 겁탈한 것은 물론,
그들 중 미색이 뛰어난 미녀를 처첩으로 삼아버리는 패악마저 저질렀다.
궁중의 미녀들을 취하는 일에만 혈안이 된 동민은 군무를 게을리 한 것은 물론, 낙양대전의 패전에 불만을 품은 하급무관들이 불온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것조차 간과하고 말았다.
“대장군!”
“반란군이 대장군부에 불을 질렀습니다!”
흙먼지를 뒤집어쓴 무관들이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동민이 기거하고 있던 내실을 열어젖혔다.
동민은 술에 취한 채 자고 있었다.
애첩의 치마폭에 머리를 올린 채 코를 골아 댔다.
벌떼처럼 거병한 반란군이 군부를 불태우면서 난전을 일으켰건만, 누구보다 앞장서서 반란을 진압해야 할 대장군이라는 자가 실로 한심스러운 작태를 보이었다.
“무, 무슨 일이냐!!”
갑옷차림을 한 부하들의 모습을 본 동민이 비명을 토해내면서 몸을 벌떡 일으켰다.
문을 열어젖히며 안방으로 들어온 부하들의 모습을 본 동민은 입가를 타고 흘러내린 침을 황급히 닦으면서 두 눈을 크게 떴다.
“송과를 주축으로 한 하급무관들이 불만을 품고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대장군, 한시라도 빨리 반란을 진압해야 합니다!”
“바… 반란이 벌어졌단 말이냐?!”
패전의 여파를 수습한 뒤에 불온한 세력들을 제압한지 얼마나 되었다고 반란이 벌어졌단 말인가.
하급무관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감히 농서동씨 가문을 향해 반기를 치켜든 반란군들은 거병하자마자 궁중을 습격하여 대장군부를 불태우기까지 했다.
부하들로부터 참담한 소식을 듣게 된 동민은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격노를 내비쳤다.
“당장 표기장군을 불러라! 지금부터 표기장군을 주축으로 하여 진압 작전을 내릴 것이다…!”
대장군부를 불태운 반란군의 규모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는 상태였기에 동민은 조카 동황에게 반란 진압을 떠넘기려 했다.
놈들의 규모를 알 수 없다.
두려운 마음이 들었던 동민은 우선 장안성을 탈출하여 함양(咸阳)으로 도망치려 했다.
동민은 형 동탁을 도와 장졸들을 기민하게 지휘했던 숙장들 중 한 명이었다. 그러나 동탁이 사망한 이후부터는 뛰어났던 역량과 자질이 크게 결여된 모습들만을 보였다.
든든한 버팀목이자 견고한 구심점이었던 동탁이 사망하면서 동민은 무딘 칼날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
“표기장군으로는 안 됩니다!”
“대장군께서 직접 혼란에 빠진 장졸들을 수습하셔야 합니다!”
직접 진압에 참전하여 병력을 지휘할 것을 주문하는 부하들의 급박한 목소리에 동민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더러 직접 반란을 진압하라니,
기세가 오른 적들을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날카로운 창검들이 날아들어 자신을 벌집으로 만들 게 분명했다. 경의와 동경의 대상이었던 동탁을 잃은 이후부터 필부가 되어 버린 동민은 두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우물쭈물하는 모습만을 보일 뿐이었다.
“대장군! 급보이옵니다!!”
급박하게 돌아가는 정세는 절대로 얼간이를 기다려주지 않는다.
그를 입증하듯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무관이 안방으로 뛰어들었다.
“화, 황제…!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소란을 틈타 달아나고 있습니다!”
“그건 또 무슨 말이냐!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달아나다니! 대체 무엇으로부터 달아난단 말이냐?!”
횡설수설하듯 말을 버벅대는 무관의 모습에 동민이 얼굴을 일그러뜨리면서 소리쳤다.
이윽고 침을 꿀꺽 삼키면서 숨을 고른 무관이 동민에게 재차 보고했다.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호위를 이끌고 장안성을 탈출하고 있습니다! 분명 달아나려는 게 틀림없습니다!”
농서동씨 가문의 꼭두각시였던 황제가 조정대신들과 함께 달아나고 있다.
그를 알게 된 동민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소심하고 유약한 황제가,
궁중에서 벌벌 떨기 바빴던 황제가 무리들과 함께 탈출을 감행하다니.
설마 유약한 황제에게 그 정도의 배짱이 있었을 줄은 몰랐는지, 동민은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은 채 굳어 버리고 말았다.
“황제가 도망쳐선 안 된다! 만에 하나라도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조조 년에게 넘어가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모두 죽은 목숨이다!!”
형 동탁이 어림총사 이성휘에게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던 것을 떠올린 동민은 혹시 자신도 형님과 같은 전철을 밟게 될까, 그것을 몹시 두려워했다.
그제야 정신이 들었는지,
이윽고 두 눈을 부릅뜬 동민은 부하들의 호위를 받으면서 안방을 나섰다.
* * *
필사의 탈출을 감행한 황제의 도주행렬은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장안을 벗어나게 되었다.
성문을 견고하게 지키던 동탁 군과 교전을 벌인 끝에 자유를 손에 놓게 된 유변과 조정대신들은 환희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크게 기뻐했다.
드디어 장안성을 벗어났다.
잔인무도한 역도들로부터 벗어나게 된 유변은 기쁨을 금치 못했다.
“폐하! 조금만 더 가면 풍익태수 송익과 부풍태수 왕굉이 군세를 이끌고 폐하를 맞이할 것이옵니다! 그리고 마등과 한수가 정예기병들을 이끌고 폐하를 호위할 것이오니 안심하소서!”
대홍려(大鴻臚) 주환이 감격에 찬 목소리로 유변에게 말했다.
그에 유변 또한 환희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연신 끄덕였다.
천신만고 끝에 성공했다.
하늘이 내려주신 기회 덕분에 역도들로부터 탈출할 수 있었다.
위남(衛南)을 거쳐 동관(潼關)을 통과하면 조조 군의 영토에 도달하게 된다. 머지 않아 아내와 이복동생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감에 휩싸였다.
“멈춰라!”
“조정의 역신들이 황제를 납치했다!”
“절대로 도망치게 둬선 안 된다! 반드시 저 역신들을 막아야 한다!!”
황제의 행렬이 장안성을 탈출하여 벌판을 가로지르고 있었을 때,
서량 기병부대가 뒤를 쫓아왔다.
부와 권력의 단맛에 취한 사냥개들이 마침내 추격에 나선 것이었다.
황제를 엄호하면서 행렬을 지휘하고 있던 조정대신들을 모두 역신으로 선포한 동탁 군은 일말의 망설임 없이 맹렬하게 달아나던 행렬의 후미를 급습했다.
“빌어먹을 대신 놈들!”
“그렇게 달아나면 우리들의 손아귀에서 벗어날 수 있을 줄 알았더냐!”
날카로운 창검을 든 동탁 군 무관들이 황제를 호위하던 병사들은 물론, 무리한 강행군으로 인해 후미로 뒤처졌던 조정대신과 궁인들을 참살하기 시작했다.
피에 굶주린 늑대처럼,
동탁 군은 앞을 가로막는 인원들을 닥치는 대로 베어 버렸다.
당장에라도 옆으로 넘어질 것처럼 거세게 흔들리는 마차에서 몸을 의지하고 있던 유변은 겁에 질린 눈으로 뒤를 쫓아오는 동탁 군을 바라보았다.
“폐하, 소장들이 막겠사옵니다!”
“부디 무사하십시오! 소장들이 목숨을 걸고 적들을 막아 내겠나이다!”
성문교위 최열과 월기교위 왕기가 창검을 치켜들면서 말고삐를 당겼다.
뒤이어 최열과 왕기,
그리고 수백 명에 이르는 병력이 말머리를 돌리면서 행렬 후미를 공격하고 있던 동탁 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설마 일방적으로 도망치던 병력이 반전하여 달려들 줄은 몰랐는지, 살육에 열중하던 동탁 군은 허를 찔렸다는 듯 잠시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큭! 놈들이 기어코 쫓아올 줄이야…!”
“황상 폐하께서 곤경에 빠지셨거늘, 풍익태수 송익과 부풍태수 왕굉의 군세는 어디에 있단 말인가!”
좌풍익(左馮翊)과 우부풍(右扶風)의 군세를 모두 합친다면 족히 수천 명은 될 터.
그러나 송익과 왕굉은 물론,
장안성을 탈출한 황제를 호위하기로 했던 병력들이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혹시 무슨 변고라도 생긴 게 아닐까.
황제를 엄호하던 조정대신들은 예상치 못한 변수에 두려움을 느끼기 시작했다.
“역신들이 당도했다!”
“흐하하하! 기다리느라 목 빠지는 줄 알았군!”
장안성에서 필사적인 탈출을 감행했던 황제의 행렬이 위남에 이르렀을 때,
수천 명에 달하는 동탁 군이 출현했다.
미리 간파하고 있었음을 보여주듯 매복한 채 기다리고 있었던 병력들이 일제히 병장기를 치켜들었다.
사예주로 향하는 길목들을 모두 봉쇄하는 동탁 군의 모습에 유협과 조정대신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을 보이면서 탄식을 토해냈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부황(夫皇).”
회색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소녀가 좌우에 장수들을 거느린 채 모습을 드러냈다.
더 이상 도망칠 방법은 없다.
군세를 이끌고 등장한 위양군(渭陽君) 동백은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희망을 잔악하게 짓밟아버렸다.
창검을 늘어뜨린 채 앞을 가로막고 있는 수천 명의 병력을 본 황제와 조정대신들은 독사를 만난 쥐처럼 그대로 굳어 버리고 말았다.
“머지 않아 혼례를 올리게 될 터인데… 어찌 황후가 될 저를 두고 어디를 가십니까? 지아비가 될 부황에게 이런 식으로 소박을 맞게 될 줄은 몰랐습니다.”
입가를 비틀면서 비웃음을 지은 동백은 한 손을 들어 올리면서 전군에 명령을 내렸다.
우선 황제의 신병을 확보한 뒤,
나머지 인원들을 한 명도 남김없이 모조리 도륙해 버릴 계획이었다.
저 배은망덕한 놈들은 지금까지 살려 준 은혜도 모르고 도망치려 했다. 도망친 노비들을 때려죽이듯 동백은 황제와 함께 불구대천의 원수였던 조조군을 의지하려 했던 조정대신들을 모조리 때려죽이려 했다.
“멈춰라! 지금부터 황상은 이 표기장군 동황이 호위할 것이다!!”
동백이 추살을 명령하려 했을 때,
장안성에서 급히 정예부대를 이끌고 달려온 표기장군 동황이 공적을 모두 독차지하려는 동백을 저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