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6화
=============================
부부는 일심동체라고 하였던가.
남편의 행복이 곧,
아내의 행복일 것이다.
낙양대전에서 완승을 거둔 이성휘가 표기장군(驃騎將軍)에 임명된 것을 우려하는 참모들과는 달리, 조조는 콧노래를 흥얼거릴 정도로 크게 기뻐했다.
‘부관이 한나라의 표기장군이라니…. 후후, 그렇다면 대장군이 될 날이 머지 않았다는 것인가.’
조조는 “이 조맹덕의 부군이 되려거든 응당 표기장군쯤은 되어야지!”라며 혼잣말을 중얼거렸다.
큰 목소리로 혼잣말했다.
어지간히도 남편의 출세가 기쁜 듯했다.
마치 본인이 표기장군에 임명된 것처럼… 아니, 그보다도 훨씬 기뻤다.
삼공(三公)의 하나인 사공(司空)에 임명되었을 때도 기뻐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던 그녀가 이성휘가 표기장군에 임명되었다는 사실에 몹시 기뻐하는 모습을 보였다.
“명부,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문 너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군사 진궁이었다.
그녀의 물음에 조조는 출입을 허락했다.
이윽고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짙은 금발로 머리카락을 물들인 여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중원제일 검이 황후와 진류왕, 조정대신들의 환대받으면서 표기장군에 임명되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다.”
우려와 걱정이 담긴 표정을 짓고 있는 진궁의 모습을 보며 조조가 결연한목소리로 대답했다.
흔들림 없는 신뢰.
이성휘를 향한 굳센 신뢰가 느껴졌다.
그녀의 목소리에 진궁은 곤혹스럽다는 한숨을 흘리면서 재차 입을 열었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제가 감히 중원제일 검을 의심하는 것은 아니나, 분명 조정대신들은 이번 논공행상을 빌미로 중원제일 검을 제 휘하로 포섭하려 들 것입니다.”
이성휘의 도움으로 불바다가 된 낙양에서 구사일생으로 탈출한 조정대신들은 그를 황실과 조정을 호위하는 충장으로 여기고 있었다.
그렇기에 분명,
이성휘에게 황실과 조정의 중흥을 맡길 게 틀림없었다.
언젠가 한나라를 끝장내고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이룩하겠다는 조조의 야망과 정면으로 충돌하는 일이 벌어지게 될 것이다.
진궁은 이성휘가 혹시 조정대신들에게 너무 마음을 주는 것은 아닌지, 그것을 우려하고 있었다.
“부관은 끝까지 나를 섬기기로 맹세했다. 거병하기 이전부터 나를 충심으로 보필했던 부관을 절대로 의심하지 않는다.”
고질병처럼 깊은 의심을 자랑하는 조조였지만 이성휘에게만큼은 무한한 신뢰를 보냈다.
그와 함께 약속했다.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이룩하기로.
그때의 맹세를 어젯밤의 일처럼 생생하게 기억하는 조조는 당시를 회상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명부… 조정대신들은 분명히 중원제일 검을 내세워 황실과 조정의 중흥을 꾀하려 들 겁니다. 명부에게 있는 명분과 정통성을 빼앗은 뒤, 중원제일 검에게 그 자리를 대신하게 만들지도 모릅니다.”
지금은 황실과 조정의 권문(權門)에 기대어 세력을 규합하고 있었지만 언젠가는 그들을 모두 먹어치워야 할 터.
황실과 조정은 좋은 명분일 뿐,
한나라의 중흥을 진심으로 보필할 생각은 없다.
난세를 끝장내고 천하를 평정할 패왕(覇王)의 업을 이끌 주인으로 조조를 선택한 진궁은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에 맹목적인 모습을 보였다.
“그래서 부관을 도독으로 임명하여 전선에 보낸 것이 아닌가. 진류왕… 그 영악하고 사특한 계집이 부관에게 매달리지 못하도록.”
유협은 어리지만 영악했다.
영악한 모습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욕망에 찌든 권모술수와 암약이 판을 치던 황궁에서 나고 자란 황녀답게 심계가 만만치 않았다.
자신에게 향하는 만인들의 동정과 연민을 영악하게 이용할 줄 알았으며, 황실과 조정에 충성하는 사대부와 호족들을 자기 지지세력으로 삼았다.
그리도 또한,
한나라 황실의 그 빌어먹을 계집은 감히 내 부관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기까지 했다.
“나와 부관은 머지 않아 혼례를 올릴 관계다. 군사가 우려하는 일은 결단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니 안심하도록 하라.”
“예, 알겠습니다.”
불안을 기우(杞憂)일 뿐이라 말했지만,
조조 또한 진궁처럼 혹시라도 이성휘가 언젠가 황실과 조정의 편을 들지 않을까 의구심을 느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불안을 덮기로 했다.
부관이 나를 떠난다니,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이었으니까.
곧 부관은 패국조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될 것이었다.
방해꾼 한 명이 측실로 들어오게 되었지만,
조조는 부관이 우리 패국조씨 가문과 더 확고한결속을 다질 수 있지 않겠냐며 애써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하온데 명부, 안색이 좋지 않으십니까. 혹여 무슨 일이라도 있으십니까?”
다소 수척한 듯한 조조의 안색에 진궁이 놀라 물었다.
그 물음에 조조가 답했다.
“그리 경계할 일은 아니다. 잠시 미열이 있을 뿐이니. 아마 고뿔에 걸릴 것일 테지.”
체온이 올라간 것처럼 며칠 동안 계속 미열이 이어지고 있었다.
동탁 군의 침공 소식에 급히 군세를 이끌고 사예주로 출정한 탓이었을까. 아마 그 후유증인 듯했다.
딱히 대수롭게 여긴 일은 아니었다.
고뿔로 인한 미열은 빈번하게 겪었으니까.
식사와 수면을 제외한 거의 모든 시간을 집무에 투자해온 조조는 관직에 나섰을 때부터 과로로 인한 고뿔을 달고 살았기에 이번 또한 그럴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이번 달은 달거리가 좀 늦는군. 과로 때문인가. 오늘은 일찍 쉬어야겠어.’
미열로 인한 어지럼증을 잠시 느낀 조조는 자신에게 우려를 보내는 진궁에게 쓴웃음을 지었다.
겨우 미열 따위로,
군사에게 걱정을 끼칠 줄이야.
자신을 진심으로 걱정하는 진궁의 모습에 고마움을 느꼈다.
“부관의 일은 걱정 말게. 내가 최선을 다해 부관을 보살필 터이니.”
“알겠습니다, 명부.”
“지금도 여전히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리고 부관에게는 자렴이 있지 않은가.”
조홍.
그 빌어먹을 도둑고양이.
흔들린 없는 충성을 갸륵하게 여겼거늘, 이런 식으로 사람의 뒤통수를 칠 줄이야.
종친들 중에서 가장 총애했건만.
가장 믿었던 사촌에게 이런 식을 뒤통수를 맞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던 조조였기에 사촌을 향한 원망은 실로 대단했다.
만약 이성휘가 온몸으로 만류하지 않았다면 조홍은 옛적에 물귀신이 되었으리라.
만약 발목에 줄을 묶지 않았다면 조홍은 진짜 물귀신이 되었겠지.
연모하는 사내에게 원망과 노여움을 받고 싶지 않았기에 황하에 빠트렸을 뿐, 목숨을 거두진 않았다.
‘부관은 은혜를 받으면 수백 배로 더하여 갚는 진중한 성격이다. 내가 부관과 자렴의 관계를 위해 한 발 물러나 양보했으니, 부관은 분명 패국조씨 가문을 위해 충성을 다해 봉행하겠지.’
감히 쥐 새끼처럼 불륜을 범한 사촌 동생을 겸허하게 용서한 것은 물론, 측실로 들이도록 허락하는 관용까지 베풀었다.
이 얼마나 자애로운 아내인가.
13주 전역에 열녀문(烈女門)들을 세워도 모자랄 정도의 관용과 자애였다.
자기 행동을 매우 높게 평가한 조조는 작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부관과의 혼례를 기다렸다.
* * *
불안감을 애써 떨쳐 낸 흑발의 여인이 집무실을 나섰을 때,
마침 이성휘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그 모습에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무런 기별도 없이 집무실 밖에 서 있을 줄은 미처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귀관? 왔으면 시녀에게 연통을 넣지 그랬나.”
“진궁 군사와 집무실에서 의논하고 계시다고 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가…. 나는 괜찮으니 다음부터는 기다리지 말고 집무실로 들어오게.”
“예, 알겠습니다.”
변함없이 강직한 성품과 자상한 성격을 겸비한 이성휘의 모습에 흑발의 여인은 후후 웃음을 터트렸다.
이런 귀관이,
절대로 나를 배신할 리 없다.
조조는 연모하는 사내의 얼굴을 본 것만으로도 심중을 어지럽히던 의심암귀가 모두 걷히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중원제일 검.”
“군사.”
뒤이어 집무실을 나온 진궁과 조조를 기다리고 있었던 이성휘가 시선을 마주하며 인사했다.
그를 향한 의구심 때문일까.
평소 이성휘와 막역한 이성친구처럼 지낸 진궁이 잠깐 무정한 모습을 보였다.
날카로운 직감을 자랑하는 이성휘가 그 변화를 눈치채지 못했을 리 없었다.
그녀의 변화를 통해 이성휘는 황후와 진류왕, 조정대신들로부터 환대받으면서 표기장군에 임명된 건을 두고 의구심의 눈초리가 생겼음을 알게 되었다.
“명부, 저는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다음에 연통을 보내도록 하지.”
“예.”
진궁이 예를 취하면서 물러났다.
그녀가 궁문을 나서자,
흑발의 여인이 살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이성휘에게 한 걸음 다가왔다.
“무슨 용무인가, 귀관?”
사랑스러운 여인의 물음에 이성휘가 답했다.
“아, 아만을 만나는데… 용무가 필요하겠습니까.”
“크흠! 큼큼…! 물론 그러하네만.”
갑작스러운 이성휘의 고백에 놀란 조조는 당혹감에 몸 둘 바를 몰라 했다.
당혹감을 감추기 위한 헛기침.
조조는 자기 얼굴이 화끈 달아오른 것을 느꼈다.
이제 곧 지아비가 될 사내가 워낙 무뚝뚝한 남자이다 보니 갑작스러운 애정표시에 익숙지 않은 탓이다.
“몸은 괜찮으십니까? 고된 원정에 몸이 많이 지치셨을 것 같습니다. 안색이 수척하십니다.”
“낙양에서 적들과 싸운 귀관의 노고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닐세.”
부관의 눈에도 그렇게 보인 걸까.
군사에 이어 부관까지,
미열로 인해 주변 사람들을 크게 걱정시킨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앞섰다.
걱정과 심려에 물든 눈길로 자신을 바라보는 이성휘를 향해 조조는 부디 걱정을 거둬달라는 뜻으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일단 의원을 부르는 게 좋겠습니다.”
“괜찮대도….”
“높은 권좌에 오른 만큼 건강에 신경을 쓰는 게 좋습니다.”
이성휘의 확고한 주장을 꺾을 수 없었던 조조는 이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했다.
웃음을 배시시 터트렸다.
벌써 현모양처를 챙기려는 것일까.
분명 부관은 아내자랑을 입에 달고 다니는 팔불출이 될 게 틀림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