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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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니의 결정이다.
가문의 결정이기도 하다.
그래서 받아들이려 했다.
언니의 행복을,
사촌의 길운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며 마음을 접기로 했다.
“…….”
하지만 그것은 불가능했다.
연모하는 사내의 얼굴을 떠올릴 때마다 가슴은 더욱 찢어질 것처럼 아팠으며,
결국 자신은 애절한 마음을 전달하지 못한 채 부하로만 남게 될 것이라는 생각에 눈물이 차올랐다.
겸허히 결정을 받아들이려 했건만,
이 간교하고 비겁하기 짝이 없는 마음은 계속해서 미련을 만들어내면서 질투와 시기를 토해냈다.
“후우….”
그녀에게 있어 이성휘는 생전 처음으로 깊이 연모하게 된 사내였다.
이 남자를 위해서라면,
기꺼이 목숨을 바칠 수 있노라고 생각했다.
헌신과 희생을 마다하지 않을 정도로 사랑했던 마음을 깨끗이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에 한숨은 더욱 깊어졌다.
“정남장군께서 음주를 즐기시는 분인 줄은 미처 몰랐네요.”
독하기로 유명한 범제(泛齊)를 연거푸 들이켰을 때,
갈색 머리카락의 여성이 다가왔다.
누구에게도 추태를 들키지 않도록 집무실에서 홀로 술잔을 기울였건만, 어떻게 그 낌새를 눈치챈 것인지 한숨을 폭 내쉬면서 다가왔다.
“뭐, 이유가 짐작되지 않는 건 아니지만… 홀로 집무실에서 술을 마시면서 현실을 도피하다니, 이건 정남장군답지 않은데요?”
“저는 강하지 않습니다. 강한 척, 무덤덤한 척… 가증스럽게 연기를 할 뿐입니다.”
계속해서 독주를 들이켠 탓일까,
얼음장처럼 차갑던 얼굴에 자괴감이 서렸다.
눈살을 찌푸리면서 입가를 비틀었다.
자신을 향해 혐오를 드러내면서 집착을 접지 못 하는 자기 마음을 원망했다.
“아무런 감정도 못 느끼는 철인이 천하에 어디 있겠어요? 다들 마찬가지예요. 하물며 이성을 진심으로 연모하는 마음은 말할 것도 없고요.”
순유가 웃으며 말했다.
그 말에 조인이 입을 열면서 물었다.
“혹시 군사께서는… 누군가를 진심으로 연모한 적이 있으십니까?”
“음, 글쎄요. 지금까지 혼자만의 세상에서만 살아온 터라 누군가를 진심으로 연모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아요. 이성 간의 관계를 연구했다면 모를까.”
연구.
대체 무슨 말이지?
취기에 달아오른 상태였던 조인은 눈살을 찌푸리면서 관자놀이를 짓눌렀다.
이렇게 독한 술을 마신 건 처음이다.
애초부터 조인은 음주를 딱히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에 술에 약할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술을 마신다고 해서 현실이 바뀌는 건 아니잖아요?”
순유가 옥을 깎아서 만든 술병을 멀리 치우면서 말했다.
그 말에 조인이 중얼거렸다.
“하지만 술을 마시는 것 말고는…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지 않습니까.”
“그건 아니죠.”
조인의 맞은편에 앉은 순유가 빙그레 웃으면서 조언을 건넸다.
“표기장군에게 당당하게 마음을 고백하세요. 절대로 후회가 없게끔.”
“…가능할 리 없지 않습니까.”
순유의 말에 조인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괜한 기대한 걸까.
어쩌면 묘책을 건네줄지도 모른다고 잠시나마 기대했던 조인은 순유의 말을 듣고서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마음을 고백해라.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는 말이었다.
문제는… 그럴 용기가 없다는 것이다.
“이대로 표기장군을 포기할 건가요? 평생 속앓이하면서….”
“언니와 가문의 결정입니다. 이의를 제기할 순 없습니다.”
“하아, 진짜 완고한 사람이네.”
난공불락의 철옹성을 자랑하는 완고함을 두른 조인의 모습에 순유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
참으로 곤란한 사람이다.
조금은 자신에게 관대해져도 좋을 텐데.
남몰래 연모해온 사내에게 마음을 전하지 못한 채 전전긍긍하는 상황 속에서도 스스로가 다짐했던 규칙을 중요시하는 그 모습에 질린 표정을 지었다.
‘뭐, 그런 완고한 사람일수록 애욕에 쉽게 빠져드는 법이죠.’
얼음장처럼 차가운 미녀가 육욕에 헐떡이는 모습이 보고 싶다.
그것이 바로 순유가 조인을 돕는 이유였다.
과연 이 철혈의 처녀는,
남성에게 안길 때 어떤 반응을 보여 줄까.
음란한 몸매를 자랑하는 만큼 음탕한 욕구를 마음속에 숨기고 있을 터. 순유는 간계와 술수를 동원하여 조인이 꽁꽁 숨기고 있는 그 욕구를 끄집어내기로 했다.
“어떻게 자렴 님께서 표기장군과 맺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하지 않으세요?”
“……!”
도톰한 입술을 달싹이면서 망설임이 스며든 한숨을 내쉬던 조인이 순유의 말에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마치 허를 찔린 듯한 표정을 지었다.
자렴이 표기장군과 맺어지게 된 이유.
어째서 지금까지 그것에 신경 쓰지 않았던 것일까.
경박과 경솔함의 대명사인 사촌이 어떤 못된 술수와 교활한 수작을 부렸기에, 표기장군처럼 근사한 남자와 맺어지게 되었는지… 조인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다음 말을 기다렸다.
“사공 어르신의 휘하에서 첩보와 공작을 담당하고 계신 군사좨주에게 들은 이야기예요.”
군사좨주 곽가.
임관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언니로부터 신임을 듬뿍 받는 총신이다.
대체 어떻게 순유가 곽가와 교분을 맺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조인은 떨리는 심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진류군에서 연주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잠시 머물게 된 방앗간에서 배를 맞췄다고 하더라고요.”
“예?”
조인의 되물음에 순유는 엄지와 검지로 만든 동그라미에 반대편 검지를 슉슉 넣으면서 외설스러운 손동작을 보여 주었다.
“요컨대 떡을 만드는 방앗간에서 신나게 떡을 치셨다는 이야기예요. 으슥한 밤에 물레방앗간에서 남녀가 단둘이 떡을 칠 줄이야, 과연 표기장군도 제법인 사람이예요. 어쩌면 그 무뚝뚝한 얼굴에 변태성을 숨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르죠.”
순유는 진심으로 감탄했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이성휘를 칭찬했다.
그 말에 조인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말도 안 됩니다. 표기장군과 자렴이… 연주성으로 돌아오는 길에 들른 방앗간에서 그런 외설스러운 행위를 했을 리가….”
“그때부터 두 사람이 부쩍 친해졌다고 하던데요.”
“…….”
순유의 뒤이은 말에 조인은 무언가 짚이는 바가 있었는지 두 눈을 가늘게 떴다.
그래,
그때부터였다.
표기장군과 자렴이 연인처럼 살가운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을 때가. 당시에는 이성휘에게 마음을 둔 상태가 아니었으므로 무관심하게 지나쳤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두 사람의 관계가 매우 수상했다.
“자렴 님도 대단하시네요. 책임감이 강한 표기장군의 성격을 이용해서 기정사실을 만들어 버리다니. 물론 그게 정석이긴 하죠. 음, 조금 서툴긴 하지만 100점 만점 중에 90점 정도는 줄 만한 방법입니다.”
팔짱을 낀 순유는 사촌언니가 오랫동안 연모해왔던 사내와 불장난을 친 조홍의 행위를 매우 높게 평가했다.
방앗간에서 형부와 처제가 불륜을….
생각만 해도 아랫도리가 축축하게 젖을 정도였다.
순유는 오늘 밤이 가기 전에 형부와 처제가 방앗간에서 불장난을 저지르는 이야기를 책으로 쓰겠노라고 다짐했다.
“자렴! 감히 표기장군에게!”
두 눈을 부릅뜬 조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감히 표기장군에게,
수많은 이들로부터 경외와 존경을 한 몸에 받는 사람에게 그런 더러운 수작을 부리다니.
음란한 미인계로 표기장군의 마음을 가지고 논 사촌의 교활한 행동에 분노했다. 대체 어떻게 표기장군의 측실이 될 수 있었는지 의문을 가졌었는데… 설마 그런 내막이 있었을 줄이야.
“이렇게 어영부영 시간을 보내실 거예요? 분명 내일이면 자렴 님에게 선수를 빼앗기실 텐데….”
“절대로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조인이 붉게 물든 얼굴을 한 채 소리쳤다.
취기에 몸을 휘청대면서도,
당장에라도 이성휘가 있는 곳으로 쳐들어갈 것 같은 매서운 모습을 보였다.
절대로 빼앗기지 않겠다.
간교한 수작을 쓰는 사촌에게,
생애 처음으로 연모하게 된 사내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독한 술을 연거푸 들이켜면서 인사불성이 된 조인은 냉철하던 이성이 무뎌진 상태였다. 그렇기에 냉철하게 판단하지 못한 채, 똑같은 방식으로 비겁한 사촌에게 되갚아주겠다며 씩씩대는 모습을 보였다.
“지금 표기장군께선 집무실에 계실 텐데~?”
순유가 능글맞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질투와 시기를 불태우던 흑발의 여인이 두 눈을 부릅뜨면서 발걸음을 내디뎠다.
향하는 곳은 표기장군부.
이성휘가 있는 집무실이었다.
* * *
생애 처음으로 연모하게 된 사내를 간교한 사촌에게 빼앗길 수 없다는 질투와 시기,
그리고 순유의 부채질이 더해지면서 지금의 상황이 펼쳐지게 되었다.
“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표기장군…!”
두 손으로 밀어 사내를 책상 위에 눕힌 흑발의 여인이 뜨거운 호흡을 헐떡이면서 중얼거렸다.
이게 무슨 상황이지,
대뜸 자신을 밀친 조인의 행동도 이해되지 않을 뿐더러 아슬아슬한 형태의 속옷만을 걸치고 있는 조인의 모습 또한 이해되지 않았다.
책상에 몸을 눕히게 된 이성휘는 그저 동요할 뿐이었다.
‘저 영천순씨 가문의 대탕녀가 무슨 짓을…!’
이성휘가 고개를 옆으로 돌리면서 문 너머를 노려보았다.
문틈으로 보이는 밤색 눈동자.
몰래 내부를 염탐하던 순유와 눈이 마주쳤다.
곧이어 후다닥 소리가 들리더니 순유가 멀리 달아났다. 책상 위에 누운 이성휘와 눈이 마주친 것을 보고는 급히 달아난 것이리라.
“많이 취하셨습니다.”
다시 고개를 돌려 조인과 시선을 마주한 이성휘가 입을 열면서 말했다.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
고주망태처럼 취기에 흔들리는 몸.
술에 취한 그녀는 지금 제정신이 아니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한 걸음 다가온 흑발의 여인이 늘씬한 몸매를 뽐내면서 책상 위에 몸을 눕힌 채였던 이성휘의 위에 올라탔다.
마치 준마 위에 올라타듯,
꽃사슴처럼 늘씬하게 뻗은 다리를 움직이면서 이성휘를 압박했다.
뇌쇄적인 둔부가 아랫도리를 짓눌렀다.
요염한 엉덩잇살이 이성휘를 부드럽게 깔아뭉개면서 압박을 통한 쾌감을 가하기까지 했다.
“표기장군, 저는 안 되는 겁니까.”
사내의 위에 올라탄 여성이 발정기 상태의 암컷처럼 엉덩이를 좌우로 살랑살랑 흔들어댔다.
이윽고 고개를 천천히 숙이면서,
당장에라도 입을 맞출 것처럼 요염한목소리로 속삭였다.
“자렴과는… 이미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어째서 저는 안 되는 겁니까.”
쭉쭉 빵빵한 몸매를 자랑하는 흑발의 여인이 요염한 눈웃음을 지으면서 선홍빛 혀를 내밀었다.
뒤이어 그의 목덜미를 핥았다.
잔뜩 긴장한 상태였던 이성휘는 목덜미를 색정적으로 핥는 조인의 모습을 보고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저 또한 표기장군을… 아니, 누구보다도 표기장군을 진심으로 연모하는데.”
목덜미를 핥던 조인은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는지 이성휘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강아지가 애교를 부리듯,
새하얀 이로 살갗을 깨물면서 애정을 과시했다.
“성휘 님.”
이성휘를 향한 호칭을 갑자기 바꾼 조인은 취기에 물든 얼굴을 한 채 상체를 일으켰다.
갑자기 몸을 든 탓에,
풍만한 엉덩이가 아랫도리를 강하게 짓눌렀다.
엉덩잇살 사이로 점점 커져가는 물건. 그것을 알아차린 조인은 쿡쿡 웃음을 터트리면서 허벅지를 꽉 조였다. 물건을 압박하는 폭력에 이성휘가 얼굴을 움찔 떨면서 침음을 흘렸다.
“성휘 님.”
생에 처음으로 연모하게 된 남성의 이름을 연이어 속삭인 조인은 만족감에 찬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잠시 뒤,
속옷 하단 부분을 양손으로 잡은 다음에 위로 들어 올리기 시작했다.
새하얀 복부가 드러났다.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건강미 넘치는 미녀의 나신이 요염한 색기를 흘리면서 아름다움을 뽐냈다.
“제 모든 것을 당신께 바치고 싶습니다.”
속옷이 점점 위로 향했을 때,
마침내 답답한 압박에서 벗어난 새하얀 유방이 출렁출렁 흔들리면서 위용을 뽐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