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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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여곡절 끝에 측실의 자리를 얻어낸 조홍은 마음껏 이성휘와 애정행각을 벌였다.
알콩달콩하게 팔짱을 낀 것은 물론,
은근슬쩍 커다란 가슴을 내밀면서 이성휘의 반응을 즐겼다.
“왜요? 팔짱이 불편해요?”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부드러운 젖가슴이 팔에 닿을 때마다 이성휘는 멋쩍은 표정을 지으면서 시선을 피했다.
마치 숫총각처럼 어수룩한 반응을 보이는 이성휘가 귀여웠는지, 흑발의 여인은 여우처럼 실그러진 웃음을 쿡쿡 터트리면서 그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그동안 많이 보고 싶었어요. 저는 매번 연주를 지킬 때가 많으니까… 전쟁터로 따라갈 수 없잖아요.”
“자렴 님께서는 큰일을 해주고 계십니다.”
이성휘의 대답에 조홍이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피이, 큰일이라고 할 것까지 있나요? 그냥 집이나 지키는 일인데.”
“아군의 영토를 지켜내는 일은 적군의 영토를 빼앗는 일보다 수십 배는 더 훨씬 중요합니다. 자렴 님이야말로 훌륭한 수훈자일 겁니다.”
“크흠!”
진지한 표정을 지은 채 자상한 말을 건네는 이성휘의 위로에 조홍의 얼굴은 삽시간에 달아올랐다.
익살스러운 모습은 어디로 갔는지,
잘 익은 사과처럼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을 한 소녀만이 있을 뿐이었다.
부끄러움에 찬 반응을 보이는 조홍의 모습에 이성휘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하여간 말을 잘한다니까…!”
먼저 유혹하려 했는데,
오히려 유혹을 당해 버리고 말았다.
그만 허를 찔리게 된 조홍은 남들에게 바보처럼 보일 정도로 이성휘를 좋아하는 자기 마음을 깨닫게 되었다.
‘저는 항상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을 텐데…, 이렇게까지 이 사람에게 빠질 수 있다니….’
이성휘를 만나기 전의 조홍은 오로지 받기만 하는 입장이었다.
설령 누군가에게 줄 때도,
항상 권리와 권한을 내세우면서 조건을 붙였다.
하지만 이성휘는 달랐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이 사람에게는 그 어떤 권리와 권한도 내세우지 않은 채, 내가 가진 모든 것들을 주고 싶었다.
바라는 것이 있기 때문이 아니다.
이 사람에게…,
그저 도움이 되고 싶기 때문이다.
감사의 말을 한마디만 들을 수 있다면… 아니, 설령 듣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내 모든 것들을 주고 싶을 뿐이었다.
“자렴 님, 많은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
“보면 어때요? 표기장군과 저는 머지 않아 백 년가약을 맺게 될 부부지간인데.”
조홍은 이성휘와 팔짱을 낀 채 대담하게 궁궐을 돌아다녔다.
이성휘는 부담스럽다는 반응을,
조홍은 팔짱을 낀 채로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최대한 많은 인원들에게 연모하는 사내와 알콜달콩한 애정행각을 나누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조홍은 수많은 시선들이 자신을 볼 때마다 오히려 더욱 대담한 모습을 보였다.
“근데 이 아이는 누구인가요? 설마 표기장군의 숨겨둔 자식은 아니겠죠? 저는 마음씨가 넓은 편이 아니라서 어느 가문인지 모를 양녀는 절대로 허용 못해요.”
자신을 두려워하듯 쭈뼛쭈뼛하는 모습을 보이는 사마의를 보며 조홍이 물었다.
“보, 본좌는 하내군의 사마씨 가문임! 무려 은왕(殷王) 사마앙의 12대손임!”
“하내군의 사마씨 가문… 그럼 설마 사마씨 가문의 여식과 몰래 통정해서…. 그나저나 은왕 사마앙의 후손이라니, 과연 명문가 여식들만 골라서 사냥하는 표기장군다운 성벽이네요.”
오해와 과장으로 가득 점철된 사마의와 조홍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성휘는 짧게 탄식하면서 한숨을 흘렸다.
내가 왜 불륜남으로 오해를 받으며,
어째서 사마의를 몰래 숨겨둔 딸로 오해를 하는지를 알 수 없었다.
사마의와 조홍을 이대로 내버려 뒀다간 오해의 소지가 더욱 커질 것 같았기에 이성휘는 인상을 찌푸리면서 대화에 개입했다.
“새로 신설될 표기장군부의 속관으로 배치될 예정입니다.”
“이 아이가요?”
이성휘의 말에 조홍은 두 눈을 끔뻑이면서 사마의를 응시했다.
딱히 머리가 좋아 보이진 않는데….
설마 숨겨둔 사생녀을 위장시키려는 고도의 기만책이 아닐까.
여전히 의심을 거둘 수 없었는지 묘하게 닮은 구석이 있는 것만 같은 이성휘와 사마의의 관계를 경계했다.
“보, 본좌가 어째서 표기장군의 사생녀임?! 이 본좌는 경조윤(京兆尹)을 역임했던 사마방의 딸임! 표기장군의 양녀가 되면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것 같아 구미가 당기긴 하지만…!”
사마의의 말에 조홍은 이성휘에게 보낸 의심을 거두게 되었다.
혹시 낙양에서 성문교위를 지내던 시절에 둔 사생녀가 아닐까, 그렇게 생각했던 조홍은 멋쩍은 헛기침하면서 고개를 돌렸다.
“표기장군.”
조홍과 떠들썩한 대화를 나누고 있을 때,
단발머리의 여성이 다가왔다.
매서운 눈가와 얼음장 같은 얼굴,
이번 논공행상에서 정남장군(征南將軍)으로 임명된 조인이었다.
조인과 조홍이 서로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 얼굴을 마주치만 하면 티격태격하는 모습부터 보이는 사촌지간답게 시선을 마주하자마자 노골적으로 미간을 찡그렸다.
“큰 공을 세워 정남장군에 임명됐다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흥, 무뚝뚝한 목석치고는 제법이네.”
“누가 할 소리를.”
낙양대전의 활약으로 정남장군이 된 조인은 조홍보다 높은 반열에 오르게 되었다. 또한 조인은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지면서 패국조씨 가문의 종친들 중에서 가장 먼저 제후에 등위했다.
파격적인 승진에 경계심을 느낀 걸까.
무뚝뚝한 표정을 한 조인을 향해 질투를 보냈다.
“그런데 이 아이는….”
조홍이 그러했던 것처럼,
조인 또한 이성휘와 나란히 걷고 있던 사마의를 보고는 두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누가 사촌 아니랄까 봐. 조인은 사마의를 보고는 ‘표기장군의 숨겨진 사생녀인가?’라고 의문을 품었다.
‘검은 머리와 멍청한 얼굴…. 설마 표기장군과 자렴의 딸인가…?’
아니,
조홍보다 심했다.
사마의를 뚫어져라 응시한 조인은 조홍이 낳은 이성휘의 사생녀라고 여겼다.
“흐응.”
의문과 의심이 섞인 조인의 시선을 눈치챈 조홍이 장난기에 물든 표정을 지으면서 입을 열었다.
“표기장군이 낙양에서 성문교위를 역임하던 시절에 사마씨 가문의 여식과 통정하여 낳은 딸이라고 하더라.”
“지, 진짜…? 표기장군…!”
짓궂기 그지없는 조홍의 농담에 조인은 짙은 당혹감에 물든 표정으로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어지럽게 뒤엉킨 덩굴처럼 점점 복잡해지는 상황에 이성휘는 관자놀이를 짓눌러야 했다.
“생각해 봐. 표기장군처럼 용모가 뛰어난 사람이 지금까지 혼인하지 않았다는 건 아무래도 이상하잖아. 건장한 애가 있는 건 당연하지.”
“그, 그런가….”
조홍의 말에 일리가 있다고 여겼는지, 조홍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수긍하는 모습을 보였다.
“표, 표기장군에게 아이가… 설마 표기장군에게 혼외자 사이에서 태어난 딸이 있을 줄이야…. 물론 그렇다고 하더라도… 나는….”
번민과 혼란에 사로잡힌 흑발의 여인은 고뇌에 잠긴 목소리로 쉴 새 없이 중얼거렸다.
전쟁과 사무를 제외한 사적인 일들에 자주 맹한 모습을 보이는 조인다운 행동이었다. 지나칠 정도로 진지한 성격인 탓에 조홍의 농담을 심각하게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다.
“자렴 님께서 농담을 하신 겁니다.”
“본좌는 사마씨 가문임!”
이성휘와 사마의의 이어진 말에 조인은 얼굴에 수치심이 가득한 표정을 지으면서 조홍을 노려보았다.
새하얀 뺨이 붉게 달아올랐다.
남몰래 연모하는 남성의 앞에서,
감히 자신에게 망신을 준 사촌을 분노에 찬 눈길로 노려보았다.
“그, 그따위 거짓말을…!”
“누가 속으래.”
서로 정반대인 성격 때문일까.
조홍과 조인은 견원지간처럼 사이가 나빴다. 만약 조조가 구심점 역할하지 않았다면 절대로 함께 뭉치지 못했으리라.
이성휘는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날카로운 신경전을 통해 그것을 알 수 있었다.
“왜 본좌가 자꾸 표기장군의 사생녀로 오해받는 거임?”
“글쎄.”
패국조씨 가문의 여식들이 서로를 맹렬하게 노려보고 있는 광경을 바라보던 사마의와 이성휘가 중얼거렸다.
“근데 누구임?”
“이번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여 정남장군으로 임명된 분이다. 맹덕 님의 사촌이시지.”
“사촌이 왜 이렇게 많음….”
조조와 용모가 매우 흡사한 조홍과 조인을 번갈아 바라보던 사마의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오라비와 함께 알현했을 때부터 지독하게 시달렸던 탓일까. 사마의는 조조를 크게 두려워했다. 날카로운 붉은 눈동자를 응시하기만 해도 어깨를 움찔 떨 정도였다.
“저 목석은 더 이상 신경 쓸 것 없으니까 빨리 궁궐 밖으로 나가요. 그동안 나누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많잖아요?”
조인과 기 싸움을 하던 조홍이 이성휘의 손을 꾹 잡아당기면서 말했다.
“감히 표기장군의 손을….”
“내가 서방님과 손을 잡겠다는데 불만 있어? 머지 않아 나는 표기장군의 측실이 될 몸이거든.”
“읏!”
그 말에 조인이 짧게 침음을 흘렸다.
물음을 받아칠 수 없었다.
저 밉살스러운 사촌이 남몰래 짝사랑하는 남성의 측실이 될 것을 알고 있었기에.
경애하는 언니께서 먼저 이성휘와 혼인을 올린 뒤, 그다음에 조홍은 측실의 신분으로 이성휘와 혼인을 올리게 될 것이었다.
“말이 심하십니다.”
“제가 뭘 어쨌다고요.”
이성휘가 짐짓 주의를 주었다.
그에 조홍은 어깨를 으쓱이면서 새침스러운 웃음을 흘렸다.
“…….”
아무런 반박을 할 수 없었던 조인은 질투와 시기에 찬 눈길로 조홍을 노려볼 뿐이었다.
피를 토할 것처럼 원통했지만,
우여곡절 끝에 언니와 패국조씨 가문의 허락받은 조홍은 머지 않아 측실이 될 터였다.
자신은 무조건 그 결정을 따라야 했다.
경애하는 언니와 패국조씨 가문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한 무장이었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