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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조군으로 천하통일까지-239화 (239/616)

239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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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원소군이 이성휘가 보낸 요청에 호응하여 군세를 파견하지 않았다면 하내군은 동탁 군에게 침공을 받게 되었을 것이다.

계교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계속해서 공손찬군을 밀어붙이고 있는 원소의 명령을 받들어 사예주 전선에 개입하게 된 순우경은 무관을 보내어 조조에게 알현을 요청했다.

분명 앞으로의 전후 처리와 관련하여 의견을 전달하기 위함이리라.

“승전을 축하드리오. 중원제일 검이 실로 대단한 전공을 거뒀더구려. 그래서 하내군 백성들이 그를 항우재림이라 부르는 것이 아니겠소.”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멋들어진 용모를 한 남성이 하하 웃으면서 말했다.

순우경은 오랜 지기였으며,

또한 함께 중상시 건석의 휘하에서 서원팔교위(西園八校尉)를 지낸 한나라의 숙장이기도 했다.

하지만 조조는 중원의 제후들을 호령할 수 있을 정도의 대군벌에 등극한 몸이 되었기에 순우경은 공손한 어조로 존대했다.

“중간, 나는 이번 전투에서 크게 한 일이 없다. 모두 부관이 쌓은 전공이지.”

“부하의 전공이 곧 주군의 전공이지 않소.”

“그렇게 말해 주니 고맙군.”

상석에 앉은 흑발의 여인이 날카로운 시선으로 순우경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역할은 사절,

분명 원소의 의중을 전달하러 왔을 것이다.

조조가 신경 쓰는 것이 바로 원소의 의중이었다.

‘물병 아래에 낀 물때처럼 음흉한 신산귀모를 자랑하는 불여우가 또 무슨 흉계를 꾸미는 거지.’

원소는 오랜 죽마고우였지만 머지 않아 천하의 패권을 두고 경쟁하게 될 적수가 될 것이 분명했기에 조조는 그녀를 크게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또한,

낙양에 있을 때부터 번번이 자기 부관을 가로채려고 수작질을 부린 여인이었기에 더욱 경계했다.

‘본초, 너에게는 무엇 하나 양보하지 않겠다.’

천하도.

그리고 이성휘도.

무엇 하나 넘겨줄 생각이 없다.

조조는 찬연하게 빛나는 태양처럼 고귀한 아름다움을 품은 금발의 여인에게 질투와 시기를 보내면서 분기를 품었다.

“공께서는 이제 명실상부한 중원의 패자가 되셨으니 지금까지 아군이 맡아온 동평국(東平國)의 행정권을 위임하겠소.”

“…동평국 말인가.”

순우경의 말에 조조는 의아함을 감추지 못했다.

황하 이남으로 진출한 흑산적을 토벌하기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원소군은 연주에 속한 동평국을 계속 점령해 오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넘기겠다니,

분명 동평국을 넘기는 조건으로 원소군은 무언가를 요구해 올 게 틀림없었다.

‘동평국은 중원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한 교두보 역할을 수행하기에 더없이 적합한 군현이다. 대체 무슨 속셈으로 동평국을 넘기겠다는 거지?’

조조는 의구심을 드러내면서 순우경이 이윽고 꺼내 들 본론을 기다렸다.

“병주의 흑산적을 공격해주시오.”

“흑산적…. 장연을 말하는 것이군.”

“그렇소.”

흑산적 세력은 원소군의 가장 큰 골칫거리였다.

그 군세가 무려 100만에 육박했으며,

또한 흑산적은 공손찬과 동맹하여 원소를 배후에서 괴롭혔다.

게다가 기주를 침공할 때마다 매번 10만에 육박하는 대군을 동원했다. 그래서 원소군은 흑산적의 집요한 공세 때문에 공손찬에 전력을 집중할 수 없었다.

“흑산적은 하북은 물론, 하남에도 큰 피해를 주는 해악이다. 거절할 이유가 없지. 받아들이겠다.”

“알겠소.”

동평국을 얻는 대가로 흑산적의 장연을 공격한다.

흑산적은 상대하기 껄끄러운 난적이다.

그들과 전쟁을 치르게 된다면 큰 부담을 떠안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연주의 마지막 남은 군현인 동평국을 어떻게든 차지해야 했던 조조군으로선 다소의 부담을 떠안게 되더라도 반드시 거래를 받아들여야 했다.

‘본초의 의도대로 움직이는 것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지만… 사예주 3군을 온전히 지배권에 두기 위해서라도 흑산적을 몰아내야 한다.’

흑산적은 병주 전역을 세력권으로 두고 있으며, 기주 북동부와 사예주 북부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놈들은 절멸해야 할 해악이다.

난세를 틈타 끊임없이 세력을 확장시킨 흑산적 세력은 매우 성가신 골칫거리였다.

그래서 조조는 의심암귀를 애써 억누르면서 원소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 * *

이성휘의 설득 덕분에 대리시에 수감되었던 사마의는 바깥세상으로 나올 수 있었다.

전과 1범,

마구간지기 사마의.

감히 주군을 ‘노처녀’라고 지칭했던 흑발의 소녀는 온갖 무시무시한 고문도구가 장식된 대리시에서 혹독한 경험을 치러야 했다.

“감옥에 갇힌 본좌를 어떻게 구해 준 거임? 진짜 대단한 마구간지기임!”

흉폭하고 잔인무도하기 짝이 없는 군주를 설득하여 자신을 석방해준 이성휘를 향해 사마의는 동경에 찬 시선을 보냈다.

그에 이성휘는 “마구간지기 아니라니까….”라고 중얼거렸지만 사마의는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

“사공 어르신께서는 충심을 시험해볼 의중으로 마구간지기를 맡기신 거다. 그러니 앞으로 게으름 부릴 생각 말고 열심히 해.”

“응!”

이성휘의 충고에 사마의는 당찬 목소리와 함께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 같이 열심히 해 보셈.”

흑발의 소녀가 섬섬옥수처럼 새하얗고 부드러운 손을 뻗으면서 히죽 웃었다.

그 귀여운 미소에 이성휘가 답했다.

“전에도 말했지만… 나는 마구간지기가 아니다. 후원의 마구간에 용무가 있어 청소를 잠깐 손을 거들어 준 것일 뿐이지.”

“아, 아니었음?! 본좌를 속였음! 거짓말쟁이!”

남주인공에게 실연을 당한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슬픔에 찬 반응을 보이는 사마의.

다람쥐 같은 소녀의 노골적인 반응에 이성휘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자효 님.”

사마의의 응석받아주고 있었을 때,

흑발의 여인이 다가왔다.

검은 머리카락과 홍패처럼 찬연하게 반짝이는 붉은 눈동자. 조조를 쏙 빼닮은 용모를 한 조인이 모습을 드러내자 사마의는 새파랗게 질린 안색을 한 채 이성휘의 뒤에 숨어 버렸다.

바짓가랑이를 단단히 붙잡은 두 손이 바르르 떨리는 것으로 볼 때 조조에게 크게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듯했다.

‘저 유녀는 대체 누구지? 어림총사를 상당히 잘 따르는 것처럼 보이는데…. 설마 언니와 어림총사 사이에서 태어난 딸인가…?!’

조인은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무표정을 고수한 채로 터무니없는 망상했다.

만약 이성휘가 조인의 심중에 담긴 망상을 알아차렸다면 화들짝 놀라며 경악했으리라.

“이번에 임관한 종사입니다.”

“종사…. 종자입니까?”

“예, 그렇다고 할 수 있습니다.”

후원의 마구간에 있는 조조의 준마들을 돌보는 마구간지기 역할을 맡게 된 종사.

종자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말을 돌보는 마구간지기는 상전을 모시는 종자들이 맡는 역할들 중에서도 매우 중요했으니까.

물론 사마의는 봉행하게 된 주군으로부터 크게 불신을 받고 있었지만 말이다.

“흠, 그렇군요.”

이성휘의 뒤에 모습을 숨긴 채 조심스럽게 고개를 빼꼼 내밀고 있는 흑발의 소녀와 잠시 눈이 마주치게 된 조인은 ‘다행히도 언니와 어림총사의 숨겨진 딸은 아니었구나.’라고 속으로 중얼거렸다.

“그런데 후원에는 어쩐 일이십니까?”

이성휘가 물었다.

그에 조인이 대답했다.

“언니의 부름을 받고 집무실로 향하는 도중이었습니다.”

사실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였다.

함께 얼굴을 마주 보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다.

차마 그 속내를 밝힐 수 없었던 조인은 딱딱한 무표정을 고수한 채로 대답했다.

일말의 동요도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현재 조인의 심중은 어느 때보다도 격렬한 동요와 혼란이 빗발치고 있었다.

‘죄송합니다, 언니…. 언니의 명을 위조하여 변명을 둘러대는데 쓰고 말았습니다.’

언니가 부름을 내렸다는 말은 급히 둘러댄 거짓말에 지나지 않았다.

강직하고 성실한 성격이었던 조인은 언니에게 사과했다.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괜찮습니다.”

새하얀 뺨에 새겨진 붉은 흉터.

그 깊은 흉터를 본 이성휘는 깊은 죄책감을 느끼게 되었다.

나를 구하려다 입은 부상이다.

아직 시집을 가지 않은 아름다운 처녀의 얼굴에 흉터가 생기고 말았다.

“어림총사께서 제 흉터 때문에 깊은 죄책감을 느끼실 필요는 없습니다. 언니의 대의와 패국조씨 가문의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치겠노라고 맹세한 무장입니다.”

나는 무도(武道)를 택한 무장이다.

그렇기에,

일반 여인들처럼 평온하게 사는 것을 포기했다.

자신에게 있어 흉터는 전쟁에서 쌓은 수훈의 증거일 뿐이다. 또한 조인은 이성휘가 자신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는 것을 원치 않았기에 더욱 무덤덤한 말투로 심중에 담긴말을 전달했다.

“나중에 반드시 은혜를 갚겠습니다.”

“지금까지 어림총사께서는 언니를 위해 수많은 수훈들을 세우셨습니다. 어떻게 제가 감히 은혜를 운운하겠습니까.”

언젠가 보은하겠다는 이성휘의 말에 조인은 겸허하게 고개를 저으면서 거절했다.

사랑하는 이를 위해 끊임없이 헌신하는 것.

그것이 바로 조인이 남몰래 연모하는 남자에게 마음을 전달하는 방법이었다.

설령 마음이 전해지지 않더라도,

자기 헌신으로 사랑하는 이가 행복해질 수 있다면 그것으로 족하다고 여겼다.

“저는 그저… 어림총사께서 무사하시다면 그것만으로 충분합니다.”

자신을 걱정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이성휘를 향해 조인이 헌신적인 사랑이 물든 미소를 지었다.

"얼레리꼴레리임."

이성휘와 조인,

그 둘의 모습을 뒤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던 사마의가 중얼거렸다.

자신을 희롱하는 듯한 사마의의 말에 조인의 날카로운 시선이 가해지게 되었다. 오라비가 동석한 자리에서 주군에게 받은 강압적인 눈빛이 떠올랐는지, 사마의는 아연실색한 표정을 지으면서 다시 이성휘의 뒤에 불쑥 숨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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