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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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의,
전(前) 경조윤(京兆尹) 사마방의 혈육으로,
재능과 혜안을 두루 겸비한 사마팔달(司馬八達) 중에서도 손꼽히는 최고의 천재였다.
참모의 자질과 지휘관으로서의 역량을 모두 겸비하여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떠받쳤으며, 훗날 패국조씨 가문의 천하를 멸망시키는 단초를 제공한 인물이기도 했다.
‘중달, 또 너야?’
-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사마의는 배신, 변절의 대명사로 여겨진다.
진심으로 사마의가 위나라에 충성을 바쳤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사마의는 생전에 황위를 찬탈하려는 욕심을 명백하게 드러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진심으로 패국조씨 가문에 충의를 바쳤는지에 대해서는 영원히 풀리지 않을 논란 거리로 남았다.
“…근데 왜 말똥을 치우고 있지?”
“흐에에에엑!!”
여전히 준마에게 뒷덜미가 물린 채 허공을 홱홱 돌고 있던 흑발의 소녀를 보며 이성휘가 중얼거렸다.
하내군의 사마씨 가문은 항우를 따랐다가 유방에게 투항했던 은왕(殷王) 사마앙의 후손이다. 사마의가 바로 사마앙의 12대손이었다.
공신 사대부의 영애가,
어째서 말똥이나 치우고 있는 걸까.
“놔라.”
다람쥐처럼 생긴 흑발의 소녀를 구출하기 위해 마구간으로 다가선 이성휘는 뒷덜미를 문 채 머리를 쉴 새 없이 움직이던 준마를 향해 손을 뻗었다.
푸르릉!! 푸르르릉──!!
밤색 털을 가진 준마는 새로 생긴 장난감이 마음에 쏙 들었는지, 이성휘의 제지에도 뜨거운 콧김을 뿜어내면서 머리를 세차게 움직였다.
“놓으라고 했다.”
이성휘가 길길이 날뛰던 준마의 머리에 손을 얹으면서 다시 한번 경고했다.
두 눈을 날카롭게 떴다.
이번에도 경고를 무시한다면 온몸이 고깃덩이가 될 때까지 채찍을 갈기겠다는 살의를 담았다.
푸르르…! 푸, 푸르르르…!!
말은 진심이 담긴 살의임을 깨달았는지,
이성휘에게 고개를 푹 숙였다.
꼬랑지를 축 내리더니 입에 물고 있던 장난감을 툭 내뱉었다.
“아앗!”
장난감 처지에서 탈출하게 된 흑발의 소녀는 지푸라기가 깔린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었다.
이윽고 정신을 차리고는,
빠르게 뛰는 소금쟁이처럼 부리나케 마구간에서 떨어졌다.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채 마구간에 가득 쌓인 말똥들을 치우던 소녀는 이성휘를 보더니 두 눈을 글썽이면서 처량한 모습을 보였다.
“고, 고마움! 저 무지막지한 짐승에게서 본좌를 살려 줘서 고마움!”
“무지막지한 짐승?”
“완전 흉악한 짐승임! 본좌를 막막 물더니 막막 내동댕이치려 했음!”
인형처럼 예쁜 용모를 자랑하는 흑발의 소녀가 두 주먹을 붕붕 휘두르면서 자신을 한낱 장난감으로 취급했던 말을 노려보았다.
그 외침에 말이 온몸을 들썩였다.
당장에라도 마구간을 뛰쳐나와 공격할 것 같은 그 위협적인 모습에 소녀는 금세 꼬리를 말고 말았다.
“히이익!!”
온몸을 웅크리면서 비명을 지르는 소녀를 힐끗 쳐다본 이성휘는 다시 고개를 돌려 마구간을 보았다.
터줏대감처럼 오만한 자존심을 발산하는 준마들은 모두 조조가 아끼는 애마였다.
이성휘와 함께 전장을 누빈 절영(絶影),
흑발의 소녀를 장난감처럼 취급했던 조황비전(爪黃飛電)이 우수한 혈통을 자랑하는 명마들 사이에서 우두머리 노릇을 하고 있었다.
“옳지.”
이성휘를 알아보았는지 절영이 벌떡 일어나더니 머리를 들이밀었다.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쓰다듬는 손길이 마음에 들었는지 절영은 꽁무니를 좌우로 흔들면서 기뻐했다.
용맹을 뽐내면서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성휘가 마음에 들었는지 검은 갈기를 가진 흑마는 순종적인 강아지처럼 행동하며 애교를 떨었다.
“대, 대단함! 어떻게 했음?!”
절영은 물론,
다른 말들까지 쉽게 길들이는 이성휘의 모습에 흑발의 소녀가 두 눈을 빛내면서 물었다.
당근들이 가득 든 바구니를 들고 마구간에 온 이성휘를 마구간지기라고 생각했는지, 사마의는 동경심을 담은 시선으로 그를 응시했다.
“말은 수많은 축생들 중에서 가장 머리가 좋은 동물이다. 그래서 말귀를 쉽게 알아듣지.”
“말이라서 말귀임?”
“…….”
소녀의 얼토당토않은 농담에 이성휘는 입을 꾹 다물면서 바구니에 담긴 당근을 들었다.
그러자 마구간의 준마들은 일렬로 선 채 머리를 내밀었다. 머리가 좋은 준마들은 이성휘에게 매우 고분고분한 모습을 보였다. 준마들은 본능적으로 이성휘를 강자라고 인식한 듯했다.
“새로 온 마구간지기임? 그럼 본좌의 선배?”
“아니다.”
이성휘의 대답에 흑발의 소녀는 왜소한 어깨를 으쓱이면서 으름장을 부렸다.
말에서 뒷덜미가 물린 채 엉엉 울음을 터트리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괜찮음. 마구간지기는 전혀 부끄러운 직업이 아님! 사대부 출신인 본좌도 마구간지기잖음!”
지금까지는 흘려들었지만,
눈앞의 소녀는 매우 특이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많은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 썼다간 곧바로 외톨이가 될 것 같은 말투였다.
이성휘는 ‘사마의’와 매우 인상적인 첫 만남을 나누게 되었다.
“하내군의 사마씨 가문은 은왕 사마앙의 후손일 텐데… 왜 마구간지기나 하는 거지. 내 기억이 맞는다면 사마씨 가문의 가주는 경조윤을 역임했던 고관대작 아닌가?”
명망 높은 명문가의 자제에게 허드렛일이나 도맡는 마구간지기를 명령한 것은 실로 가혹한 처사였다.
낭고상을 경계했기 때문일까.
어쩌면 일부러 가혹한 처사를 내림으로서 그 내심을 확인하려는 생각일지도 모른다.
분명 마땅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겠지. 조조의 결정을 신뢰하는 이성휘는 분명 무언가 의도가 있어 그런 판단을 내린 것으로 생각했다.
“맞음! 마구간지기의 말대로임!”
이성휘를 ‘마구간지기’로 칭한 사마의는 두 팔을 홱홱 휘두르면서 성난 강아지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인형처럼 생긴 귀여운 소녀는 주머니에 쏙 넣고 싶을 정도로 귀여운 매력을 발산했다.
“국사무쌍(國士無雙)의 소질과 재주를 갖춘 본좌를 한낱 마구간지기로 명령한 것은 얼토당토않은 처사가 분명함! 불합리하고 불공평한, 부조리한 횡포가 틀림없음!”
마구간지기는 전혀 부끄러운 직업이 아니라고 말한 주제에 ‘한낱 마구간지기’라고 언급하는 소녀의 모습을 이성휘는 그저 조용히 바라볼 뿐이었다.
소녀가 불만을 토로하는 모습이 복슬복슬한 강아지가 왕왕 짖어대는 것처럼 귀여웠기 때문이다.
여동생이 있었다면 아마 이러했을 것 같았다.
“본좌는 이 부조리를 묵과할 수 없음!”
“그렇다면?”
“말똥이 산더미처럼 쌓이건 말건 간에 본좌는 마구간지기의 역할을 등한시하겠음!”
요컨대,
파업을 하겠다는 이야기다.
감히 조맹덕을 상대로 파업을 선언하겠다니… 죽고 싶어 환장한 모양이다.
“목이 날아갈 텐데. 사공 어르신께서 가장 싫어하는 게 태업이거든. 보관을 게을리 해서 창고 안에 저장된 군량들을 썩힌 보급관이 지난달에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렸으니까.”
“히에에엑…!!”
이성휘의 말에 사마의는 곧바로 파업을 단념했다.
말똥이 아무리 더러워도,
저잣거리에서 목이 잘려 죽는 것은 싫은 모양이다.
“그럼 어떡함, 명문가 여식인 이 본좌가 계속 말똥이나 치워야 함?”
“별도의 명령이 내리지기 전까지는.”
작디작은 두 손으로 말똥을 치울 때 사용하는 갈퀴를 꼭 쥐고 있는 사마의의 모습이 딱하게 보였다.
금지옥엽처럼 곱게 자란 여식이,
축생을 위해 여물을 나르고 분뇨를 치우는 마구간지기가 될 줄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딸아이가 두건과 앞치마를 두른 채 말똥을 치우고 있는 모습을 만약 사마방이 본다면 억장이 와르르 무너지는 심정을 느끼리라.
“도와주마.”
이성휘가 마구간 안에 배치된 갈퀴를 들면서 말했다.
그에 사마의가 입을 열었다.
“…원래 마구간에서 일하는 마구간지기 아니었음?”
“아니다.”
“저 무지막지한 맹수들을 잘 다루길래 마구간지기인 줄 알았음!”
“말은 익숙해.”
군마 조련에 능숙하지 않을 무관이 천하에 어디 있을까.
괄괄하고 난폭한 성질을 자랑하는 준마들을 능숙하게 조련하는 이성휘의 모습에 사마의는 두 눈을 빛내면서 동경어린 시선을 보냈다.
“냄새가 심할 테니 얼굴을 가려.”
“알겠음!”
이성휘의 지시에 사마의는 면포로 코와 입을 가렸다.
“군마에 조금이라도 상처가 생기면 목이 달아날지도 모르니까 주의해.”
“보, 본좌가 이 축생보다 못하다는 거임?!”
“사공 어르신의 처지에서 보면 그렇지 않을까.”
“…….”
새파랗게 질린 사마의의 얼굴을 바라보던 이성휘는 갈퀴를 이용하여 수북하게 쌓인 말똥들을 긁어냈다.
하루 동안 계속 방치했었는지,
제법 많은 양들이 바닥이 눌어붙어 있었다.
이성휘가 부지런히 일을 시작했다. 그에 사마의 또한 푸르릉 소리를 내는 준마들의 눈치를 쭈뼛쭈뼛 보면서도 미숙하게나마 이성휘를 도왔다.
“으앗! 이 축생이 본좌의 얼굴에 똥 쌌음!”
물론 그 과정은 순탄하지 않았다.
* * *
마구간 청소가 어느 정도 끝났을 때,
잠시 얼굴을 가리던 면포를 벗고 휴식을 취하던 흑발의 소녀는 자기 일이 아님에도 자발적으로 도와 준 이성휘에게 호의를 드러냈다.
어느 정도 친해지게 되었는지,
사마의는 잠깐 짓궂은 장난을 칠 정도로 가까워진 모습을 보였다.
“완전 무서웠음! 본좌를 냉큼 잡아먹을 것처럼 무서운 눈으로 째려보면서 말을 하던데… 입이 떨어지질 않았음!”
두 팔을 크게 뻗은 흑발의 소녀가 과장된 몸짓으로 오라비와 함께 사공 조조를 처음으로 알현했던 그 당시를 설명했다.
조조의 눈매가 특히 무서웠는지,
사마의는 두 팔로 제 몸을 안으면서 오들오들 떨었다.
“…본성은 착하신 분이다.”
자기 꺼낸 말이었음에도 신빙성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아는 건지, 이성휘가 옆으로 고개를 돌린 채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착한 사람 다 얼어 죽었음?”
“큼.”
하긴 착한 사람이 수십만 명에 달하는 백성들을 모조리 쓸어 버리려고 하지는 않지.
“분명 평생 노처녀로 살 게 틀림없음! 그 성격머리에 누가 데려가겠음? 본좌처럼 귀염성이 있어야 사랑을 받는 거임.”
온몸으로 불만을 토로하는 사마의의 모습을 바라보면서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여동생을 대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물론 여동생은 없지만,
만약 여동생이 있었다면 아마 이러했을 것 같았다.
뺨에 바람을 넣으면서 불만을 툴툴대는 소녀의 모습을 바라보던 이성휘가 문득 고개를 돌렸다.
고개를 돌린 그 순간,
조용히 현장을 지켜보고 있는 여성을 보고는 그대로 굳어 버렸다.
“…….”
호위병들을 대동한 채 후원에 발을 들인 조조가 입을 꾹 닫은 채 현장을 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