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6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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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양대전에서 패주한 동탁 군 장수들은 지리멸렬한 채 사방으로 흩어지고 말았다.
12만 대군은 모두 궤멸,
거대한 구심점이었던 대군벌을 잃게 된 동탁 군 장졸들은 사분오열하여 분열되었다.
달아난 병력들 중 일부는 우여곡절 끝에 조조 군의 추격을 뿌리치고 홍농군(洪農郡)의 병참기지를 방비하던 좌장군(左將軍) 동민에게 합류하여 실로 끔찍했던 전투의 결말을 전했다.
“뭐… 뭣! 형님이 돌아가셨단 말이냐! 얼토당토않은 소리렷다! 어떻게 그 위풍당당하던 12만 대군이 고작해야 3만 밖에 안 되는 놈들에게 대패를 당한단 말이냐!!”
온몸이 넝마가 된 채 홍농군으로 돌아오게 된 무관들이 전한 소식에 동민은 길길이 날뛰었다.
말도 안 된다!
있을 수 없는 일이지 않은가!
천하의 패권을 다시 도모하기 위해 출정했던 십만 대군이 모두 전멸하다니, 병사들이 열사의 아지랑이처럼 흩어지지 않고서야 결코 불가능한 일이었다.
“사, 사실이옵니다…! 상국 어르신과 낭중령이 어림총사 이성휘의 손에 시해되었고…, 다른 장수들 또한 생사를 알 겨를이 없습니다…!”
현재 당장 가용할 수 있는 병력은 병참기지를 지키기 위해 홍농군에 주둔하고 있던 수천의 장졸들이 전부였다.
실로 처참한 몰락이었다.
십만 대군을 일으킬 정도의 전력을 보유했던 최강의 세력이 단번에 패망하고 말았다.
천하를 호령하던 대군벌이 전쟁에서 사망하게 되었으니 분명 양주(凉州)와 옹주(雍州), 장안을 중심으로 하는 삼보(三輔) 지역의 무리가 동시다발적으로 반란을 일으킬 게 틀림없었다.
“어서 장안으로 돌아가셔야 합니다!”
“아군이 대패를 당했다는 소식을 황제와 조정대신들이 듣게 된다면 필시 달아나려 할 것이옵니다!”
홍농군에서 병력을 지휘하던 무관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동민에게 장안으로 회군할 것을 요청했다.
본능적으로 깨달은 것이리라.
황제와 조정대신들의 신병을 적에게 빼앗기게 된다면 꼼짝없이 국적(國賊)으로 낙인찍히게 될 것을.
대패와 전멸을 당했다는 소식에 크게 동요하던 동민은 무관들의 성화에 혼란을 금치 못했다.
“혀, 형님의… 형님의 시신은 어찌 되었느냐!”
“모르겠습니다, 비명이 난무하는 난리통 속에서 겨우 도망친 터라… 미처 추스를 겨를이 없었습니다.”
시신의 행방을 묻는 동민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무관들은 우물쭈물하며 대답했다.
적들의 손아귀에 넘어갔음이 분명하다.
전쟁에서 쌓은 공훈을 증명하는 수급을 그대로 방치하는 머저리 가 세상에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동민에게 그것을 차마 이실직고할 수 없었던 무관들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면서 서로의 눈치를 볼 뿐이었다.
“숙조부님!”
십만 대군이 모두 전멸했다는 소식을 들은 동민이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망설이고 있었을 때,
온몸에 흙먼지를 뒤집어쓴 소녀가 다급한 목소리와 함께 모습을 드러냈다.
위양군(渭陽君) 동백이었다.
그녀의 배후에는 십만 대군을 이끌었던 총사령관인 서영과, 그를 보필했던 고석이 자리하고 있었다.
동백과 마찬가지로 온몸이 먼지투성이가 된 서영을 본 동민은 두 눈을 부릅뜨면서 증오심에 섞인 울분을 토해냈다.
“네, 네 이놈! 총사령관이라는 놈이 구차하게 살아서 돌아왔단 말이냐!!”
이윽고 동민이 허리에 찬 검을 뽑아 들면서 날카로운 칼끝을 서영에게 겨눴다.
일말의 양심도 없는 놈이다.
십만 대군을 모두 잃은 주제에 무슨 낯짝으로 얼굴을 비춘단 말인가.
당장 이 자리에서 저 무능하고 비겁한 놈을 참살하여 비명 속에 돌아가신 형님의 넋을 달랠 것이다.
“안 됩니다, 숙조부님! 지금은 서영 도독의 죄를 물을 때가 아닙니다!”
“비켜라! 내 당장 저 패장을 죽이겠다! 무슨 낯짝으로 살아 돌아왔느냐, 이놈!!”
“우리 농서동씨 가문의 철천지원수는 조부를 살해한 조조와 이성휘입니다! 다시 장안으로 돌아가 와신상담하며 기회를 노리기 위해서라도 서영 도독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간곡함에 물든 동백의 만류에 동민은 침음을 삼키면서 날카로운 칼끝을 내려놓았다.
그러나 분개는 여전했는지,
살의가 담긴 두 눈으로 서영을 맹렬히 노려보았다.
“숙조부님, 일단 한시라도 빨리 장안으로 회군하여 혼란을 잠재워야 합니다. 분명 교활한 무리가 작금의 위기를 노려 반란을 일으킬 거예요.”
“…알겠다. 그리하도록 하마.”
형님께서 반평생에 걸쳐 쌓아 올린 세력이 모두 뿔뿔이 흩어질지도 모른다.
그것을 크게 경계한 동민은 동백의 진언에 따라 회군하기로 결정했다.
아직 장안성은 승패를 모르고 있을 터.
촉새 같은 놈들이 완패 소식을 황제와 조정대신들에게 일러바치기 전에 반드시 장안으로 돌아가야 했다.
“숙조부님, 저는 남아서 잔병들을 모으겠습니다.”
함께 장안으로 돌아가자는 동민의 말에 동백은 스스로 남기를 자청했다.
홍농군에 남아 잔병들을 추스르겠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병력을 데리고 장안성으로 돌아가겠노라고 대답했다.
아직 어린 나이였음에도 농서동씨 가문을 위해 충성을 다하는 손녀딸의 모습에 동민은 고개를 끄덕이면서 그 노고를 치하해주었다.
“너에게 절반의 병력을 맡기마. 잔병들을 모두 수습한 다음에 곧바로 장안으로 돌아와야 한다. 농서동씨 가문을 맡길 인재는 너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동백에게 신신당부를 남긴 동민은 병력을 이끌고서 장안으로 향했다.
그 뒤,
홍농군에 남게 된 동백은 나머지 병력과 함께 잔병들의 수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위양군.”
동백이 서영과 함께 남은 군사들의 구조를 의논하고 있었을 때,
고석이 다가와서 소식을 전했다.
“중군교위가 잔병들을 이끌고 이곳 홍농군으로 오고 있다고 합니다.”
“다행히도 숙부님은 참화를 피한 모양이군요.”
“그런데… 중군교위가 이각, 곽사와 함께 오고 있는 중이라고 합니다.”
“숙부님께서 빌어먹을 필부들을 대동한 채로 오고 있단 말인가요!”
중랑장 장제가 지휘하던 선봉군이 무너졌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이각과 곽사는 심복들을 데리고 전선에서 달아났다.
휘하 병력을 그대로 버려 둔 채,
숭산 전투에서 화웅을 버리고 달아났던 것처럼 낙양 전투에서도 줄행랑을 쳤다.
이각과 곽사의 비겁하기 짝이 없는 행동을 떠올린 동백은 그 비겁자들의 목을 치겠노라며 두 눈을 부릅떴다.
* * *
낙양대전에서 완승을 거둔 조조 군은 하내군에 주둔하면서 사예주를 수습했다.
조조는 회현(懷縣)에 입성하여 하내군 사대부와 호족들을 크게 치하하였다.
가산을 털어 이성휘에게 물자를 지원해 준 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그들에게 벼슬을 내린 것은 물론, 뛰어난 능력과 자질을 겸비한 사대부 자제들을 선발하여 조정의 동량으로 삼았다.
“낭고(狼顧)의 상(相)이라고 들었다.”
“흐끅!”
오빠 사마랑과 함께 조조를 알현하게 된 사마의는 고개를 넙죽 숙이면서 예를 취하자마자 날카로운 질문을 받게 되었다.
무심코 딸꾹질을 하고 말았다.
다짜고짜 낭고상을 물어본다니.
괴롭히기를 좋아하는 학당의 양아치들에게도 당한 적 없는 무례였다.
“제 여동생이 앉은 채로 뒤를 돌아볼 수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만 낭고의 상은 결코 아닙니다. 사마씨 가문을 음해하는 자들의 농간일 것입니다.”
“흠.”
사마랑의 현명한 답변에 상석에 앉은 흑발의 여인은 붉은 눈동자로 사마의를 바라보았다.
힘겹게 운반하던 도토리를 낙엽더미에 떨어트린 다람쥐처럼 넙죽 엎드린 채 오들오들 떨고 있는 소녀의 모습에 조조는 잠시 의심을 거두게 되었다.
물론 완전히 거둔 것은 아니었다.
계속 경계를 하되,
측근에 두어 감시할 생각이었다.
“사마랑.”
“예, 사공 어르신.”
사마랑의 대답에 조조가 말을 이었다.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하여 아군에 물자를 지원했다지? 과연 학식이 뛰어나기로 유명한 사마씨 가문다운 혜안이다.”
“감읍한 말씀입니다.”
“만약 너희 하내군 사대부들이 대세를 따라 동탁의 무리를 도왔다면 멸문지화를 피하지 못했을 테니 말이다.”
멸문지화를 언급한 조조의 말에 사마랑은 애써 태연한 모습을 보인 반면, 사마의는 넙죽 엎드린 채로 몸을 더욱 떨어댔다.
농담이 아니다.
분명 진심으로 한 말이다.
만약 하내군 사대부와 호족들이 위기를 모면하고자 동탁 군을 지원했다면 조조는 분명 동탁이 낙양을 불바다로 만들었던 것처럼 하내군 전역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어 버렸으리라.
“사마랑, 너를 사공연속(司空掾屬)으로 삼겠다. 나를 곁에서 보필하도록.”
“명을 받들겠습니다.”
대범하게 기지를 발휘했던 혜안을 눈여겨보았는지 조조는 사마랑을 중용했다.
그리고 사마의에게는,
“후원에서 준마들을 돌봐라.”
“……?”
오라비에게 사공연속을 맡긴 반면,
여물을 주고 말똥이나 치우는 후원의 마구간지기로 임명해 버린 조조의 명령에 다람쥐처럼 왜소한 흑발의 소녀는 ‘무엇?’이라는 표정과 함께 고개를 빼꼼 들었다.
“감읍하신 용단이십니다.”
사마랑이 고개를 넙죽 숙이면서 의아함에 찬 반응을 보이는 여동생의 옆구리를 툭 쳤다.
그러자 사마의 또한 오라비와 마찬가지로 넙죽 숙이면서 명령을 따랐다.
* * *
이성휘는 전투의 가장 큰 조력자였던 용마(龍馬)에게 당근을 선물하기 위해 후원에 있는 마구간으로 향했다.
당근들을 가득 담은 바구니를 들고 마구간에 도착한순간,
괴상한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다.
“히에에에에에엑───!!”
인형처럼 귀여운 용모의 소녀가,
말에게 뒷덜미가 물린 채 홱홱 농락당하고 있었다.
두 발이 공중에 뜬 상태로 말에게 사정 없이 장난감 취급을 당하는 모습이었다.
머리에 둘러쓴 두건.
허리에 두른 허름한 앞치마.
바닥에 툭 내던져진 갈퀴까지.
보아하니 마구간의 말똥을 치우다가 생긴 참사처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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