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5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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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인은 사촌언니 조조처럼 아름다운 용모를 자랑하는 미인이었지만 매서운 눈보라처럼 냉철한 인상 때문에 누구도 다가오려 하지 않았다.
게다가 투철한 책임감과 군인정신을 자랑했기 때문에 휘하 장졸들에게 혹독한 훈련을 명령했으므로, 군중에서 ‘혹부’라는 별명을 얻게 되었다.
혹부(酷婦),
잔인하고 혹독한 여자라는 뜻이다.
“으음!”
“오셨습니까!”
홀로 둔영을 순찰하는 조인의 모습을 본 병사들이 화들짝 놀라는 반응을 보이면서 경례를 취했다.
그녀의 매서운 인상 때문일까.
딱히 죄를 지은 것도 없었음에도 병사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키면서 긴장된 표정을 지었다.
당혹감에 젖은 병사들의 모습을 본 조인은 입을 꾹 다문 채 조용히 응시했다. 날카로운 삼백안이 응시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병사들은 더욱 긴장 어린 모습을 보였다.
“군모의 끈이 헐렁하군.”
“시, 시정하겠습니다!”
“적들이 언제 기습할지 모른다. 경계를 기울여라.”
“옙!”
흐트러진 복장을 지적한 조인은 쩔쩔매는 모습을 보이는 병사들을 곧바로 지나쳤다.
혹시 체벌을 가하진 않을까,
노심초사하던 병사들은 조인이 조용히 지나치자 안도의 한숨을 깊게 내쉬었다.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군율을 어긴 장졸들을 혹독하게 다스려온 그녀였기에 병사들의 공포와 긴장은 날이 갈수록 더해지고 있었다.
“후우, 간 떨어지는 줄 알았군…!”
“하마터면 곤경에 처할 뻔했네! 끈을 왜 대충 묶었나?”
“누가 꼬투리가 잡힐 줄 알았겠는가.”
복장을 지적당한 병사는 안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경고만으로 넘어간 조인의 행동을 의아하게 여겼다.
분명 둔영 외곽을 뛰게 할 줄 알았는데….
혹시 좋은 일이라도 있는 걸까.
병사들이 조인의 속내를 조심스럽게 추측했다.
하지만 그 추측이 사실인지는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한겨울에 꽁꽁 언 얼음장처럼 차가운 인상의 미녀가 심중에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는 누구도 헤아릴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좋아합니다, 어림총사.’
혹부라는 별명이 붙은 여인은 지금,
짝사랑하는 사내를 향한 마음을 맹렬하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타오르는 장작불처럼,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 수록 애타는 마음은 사그라지기는커녕 주황빛을 내며 타올랐다.
만약 사촌언니에게 심중에 품은 마음을 들키게 된다면 자신을 변호할 기회도 없이 위병들에게 두 팔이 붙잡힌 채 황하로 향하게 되리라.
‘언니와 어림총사는 예전부터 서로를 진심으로 연모해온 관계다…. 격정에 휩쓸려 두 사람을 방해하는 우행을 범해선 안 돼. 그런 멍청한 여자는 자렴만으로도 충분하니까.’
조인은 사촌 조홍을 알맹이만 쏙 훔쳐 가는 골라 도망치는 원숭이와 같은 선상에 두고 있었다.
경애하는 언니께서 어림총사를 가슴 깊이 연모하고 있음을 뻔히 알면서도 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불경을 행해 버린 조홍의 섣부른 행동을 크게 규탄했다.
끝까지 보필하겠노라고 맹세한 주제에,
어떻게 제 마음을 추스르지 못해 경솔한 행동을 범할 수 있는지.
정말 이해되지 않았다.
‘나였다면 언니에게 어림총사와의 관계를 허락받을 수 있도록 견마지로의 심정으로 최선을 다 했을 것을.’
근면하고 성실한 성격답게 조인은 당당하게 인정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이번 전투에서 거둔 승전보처럼 열심히 활약을 쌓아간다면 언젠가 언니가 넓은 아량으로 자신을 어림총사의 첩으로 받아들여 줄지도 모른다는 매우 막연한 기대감을 품고 있었다.
물론 질투가 심한 조조가 그것을 허락해 줄 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조인은 오직 정공법만을 생각했다.
* * *
낙양대전에서 큰 활약을 거둔 조인은 정남장군(征南將軍)에 임명되었다.
또한 도정후(都亭侯)에 봉해졌다.
이성휘를 보필하며 전투를 지휘했던 조인의 활약을 크게 평가한 조조는 조홍보다 높은 관직을 내렸으며, 그리고 가장 먼저 제후의 반열에 오르는 영예를 내렸다.
“앞으로도 신명을 다해 보필하도록 하겠습니다.”
조인이 예를 취하며 말했다.
과분할 정도의 상을 받게 되었다.
제후의 반열에 이름을 올리는 영광을 하사한 사촌언니에게 깊은 감사를 표했다.
앞으로도 천하통일의 대업을 위해 분골쇄신하여 봉행하리라.
“…….”
전투에 참전했던 장수들과 함께 논공행상에 참여한 조인은 고개를 들어 선두에 선 이성휘를 바라보았다.
이성휘는 논공행상에 참석했을 뿐,
신상(信賞) 명단에 이름이 포함되지 않았다.
전쟁에서 거둔 활약이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하여 조조가 독단으로 벼슬을 결정할 수가 없었다.
일단 군세를 이끌고 진류군으로 돌아간 다음에 조정대신과 의논하여 이성휘의 활약에 대한 포상을 결정하기로 결정했다.
“화살들이 빗발치는 상황 속에서도 장졸들을 엄격하게 지휘했다고 들었다. 자효, 과연 하늘이 내린 장수와도 같은 용맹이다.”
“여포 장군과 장료 중랑장이 도와 준 덕분입니다.”
조조의 찬사에 조인은 겸손한 모습을 보였다.
다른 사촌 동생과는 확연히 다른 반응이었다.
전투에서 쌓은 공헌과 활약을 여포에게 돌리는 조인의 모습에 병주 출신의 장수들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꼈다.
“부관.”
“예, 맹덕 님.”
“향후에 귀관의 행상을 정하도록 하겠네. 잠시 기다려주게.”
“알겠습니다.”
뒤이어 조조는 전투의 주축을 담당했던 병주군에게도 벼슬을 내렸다.
여포를 진군장군(鎭軍將軍)으로,
장료와 고순을 비장군(卑將軍)에 임명했다.
또한 병주 출신의 장수들을 모두 중랑장(中郞將)의 관위를 내렸다.
낙양 전투의 활약을 통해 병주군은 황실과 조정을 향한 충성을 입증했다. 정원과 동탁을 배신했던 것처럼 언제 또 배신할지 모른다며 우려하던 이들도 이번 활약을 통해 병주군을 신뢰하게 되었다.
“흠흠.”
역적을 척결하여 사예주를 구해 냈다.
변절자의 꼬리표를 떼고,
황실과 조정의 장수로서 무명을 떨쳤다.
깊은 고양감을 느꼈는지 진군장군의 벼슬을 하사받은 여포는 만족스러움에 물든 반응을 보였다.
다른 장수들도 모두 마찬가지였다.
낙양을 어지럽힌 정원과,
전횡과 폭정을 일삼았던 동탁의 측근으로 움직였다는 전적 때문에 조조군 내부에서 눈칫밥을 먹어야 했던 그들은 이제야 비로소 부담을 떨쳐 낼 수 있었다.
“맹덕이 대체 어떤 포상을 줄지 기대되는데? 요즘 들어 제법 대담해져서 말이야.”
“큭! 무슨 생각하는 거냐.”
“글쎄.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을까.”
히죽 웃으면서 건넨 하후돈의 농담에 흑발의 여인이 얼굴을 붉히면서 대답했다.
부관에게 줄 포상.
분명 남들에게는 보여 줄 수 없는 파렴치한 무언가를 생각했음이 틀림없었다.
조조는 도둑이 제 발 저리듯이 하후돈의 가벼운 농담에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포상.”
조조와 하후돈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던 조인은 무언가를 떠올린 듯 작게 중얼거렸다.
포상.
과연 언니께서는 12만 대군을 무찌른 어림총사에게 어떤 포상을 내리실까.
빠르게 머리를 굴리던 조인의 뇌리 속에 한 가지의 상황이 그려졌다. 본인의 희망과 욕망을 가득 담아낸 망상에 가까운 생각이었다.
‘귀관 덕분에 우리 패국조씨 가문은 동탁을 몰아내고 중원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었네! 자렴만 첩으로 삼게 하는 것은 인색하게 보일 수 있으니, 자효 또한 귀관의 첩으로 삼아주게!’
이성휘는 항우재림이라 불릴 정도의 용맹과 무력을 겸비한 최강의 맹장이다.
절대로 그를 놓쳐선 안 된다.
중원제일 검은 천하통일의 대업을 완수하기 위한 일등 공신이 될 것이기에.
앞으로의 유연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확고한 유대를 형성해야 했다.
조인은 패국조씨 가문의 대업과 중원제일 검과의 유연한 관계를 위해서라도 자기 한 몸을 기꺼이 희생하겠다며 들뜬 마음을 드러냈다.
‘하늘과 같은 언니의 결정이시라면… 이 조자효, 기꺼이 따를 수밖에….’
만약 언니께서 어림총사의 첩으로 들어갈 것을 권유한다면,
어쩔 수 없이…,
정말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겠지.
무표정을 유지한 채 논공행상을 지켜보고 있던 조인은 이성휘가 질색할 정도로 터무니없는 망상해댔다.
“자효.”
“예.”
논공행상의 명단에 이름을 올린 공신들에게 빠짐없이 벼슬과 봉토를 하사한 조조가 사촌 동생을 호명했다.
조인은 이성휘와 함께 일등 공신에 봉해졌다.
전선을 직접 지휘한 것은 물론,
휘하 기병들을 이끌고 적들에게 둘러싸인 이성휘를 구출하는 성과를 올렸기 때문이다.
서주에서 하마터면 이성휘를 잃을 뻔한 아픈 기억을 가진 조조였기에, 적진에서 이성휘를 구한 조인의 활약을 매우 높게 평가했다.
“자효, 부관을 구해주어 고맙다.”
“응당 해야 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조조가 진심 어린 눈빛을 보내면서 조인에게 감사를 전했다.
주군으로서가 아닌,
한 명의 여인으로서 자신이 연모하는 사내를 구해 낸 은인을 향한 감사였다.
눈물을 떨어트릴 것처럼 촉촉하게 젖은 사촌언니의 붉은 눈동자를 본 조인은 날카로운 비수가 가슴을 쿡 찌르는 것만 같은 아픔을 느꼈다.
어째서일까.
경애하는 언니가 진심 어린 감사를 보냈음에도 마냥 기뻐할 수가 없었다.
분명 기쁘다.
분명 기쁜데도….
이상하게 가슴이 아팠다.
“…….”
사랑을 담은 눈길로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조조와 이성휘의 모습에 조인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