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4화
============================
낙양 전투,
훗날 낙양대전(洛陽大戰)이라 불리게 될 전투가 조조 군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사예주를 침공하여 중원에 영향력을 행사하려 했던 동탁이 참살되고, 12만 대군이 모두 궤멸되었다는 승전보가 한나라 전역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중원제일 검의 무명이,
다시금 천하를 진동시키기 시작했다.
* * *
드디어 역적이 죽었다.
왕망에 비견될 만고의 역적이 마침내 참살되었다.
“역적이… 역적이 죽었다!”
“중원제일 검이 만고의 역적을 처단했다!”
낙양대전의 승패가 알려졌다.
승패를 듣고 가장 크게 기뻐한 곳은 당연히 하내군이었다.
홍농군, 하동군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었던 동탁 군의 다음 표적이 바로 하내군이지 않았는가.
조조 군에게 물자를 지원하면서 사활을 걸었던 하내군 사대부와 호족들은 기쁨의 함성을 내지르며 기뻐했다. 그들 중에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면서 기적적인 승리를 축하하는 자도 있었다.
“중원제일 검이 휘하 기병들을 이끌고 12만 대군을 돌파하여 동탁의 목을 벴다고 하더군!”
“팽성에서 고황제(高皇帝)와 제후들을 크게 무찔렀던 서초패왕(西楚覇王)과도 같은 기염일세!”
항우가 다시 돌아왔다.
하내군 호족들은 이성휘를 항우재림(項羽再臨)이라 부르며 경외와 존경을 표시했다.
항우가 환생하여 돌아온 것이 아니라면 어느 누가 이러한 기염을 토해낼 수 있었겠는가. 낙양대전의 승패를 들은 호사가들은 항우의 환생이 분명하다며 이성휘를 더욱 치켜세웠다.
“들었느냐, 중달아!”
전(前) 경조윤(京兆尹) 사마방의 장남이며,
사대부와 호족들을 설득하여 조조 군에 물자를 공수했던 낙양대전의 숨은 공신.
사마랑이 환열에 찬 웃음을 터트리면서 벽지에 덕지덕지 묻은 곰팡이처럼 방구석에 틀어박혀 있는 여동생을 두 팔로 덥석 껴안았다.
“켁… 켁켁! 오라비, 숨 막힘!”
“하하핫!! 네 말대로 중원제일 검이 이겼구나!!”
“그, 그렇다고 하지 않았음?!”
오라비의 과격한 애정공세에 여동생은 크게 부담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중달아, 어찌 조조군이 이길 줄 알았느냐? 승기가 전혀 보이지 않았던… 실낱같은 승산이었을 텐데.”
“흥흥.”
놀라움에 물든 두 눈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오라비의 모습을 본 여동생이 콧방귀를 끼며 대답했다.
“중원제일 검은 낙양 출신의 무관임. 누구보다 전장의 지형을 훤히 꿰뚫고 있었을 게 아님?”
또 그 말투냐.
심각한 고질병 같은 여동생의 독특한 말투에 설명을 듣던 사마랑이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학당에서 무슨 영향을 받았는지, 학당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계속 저 이상한 말투를 쓰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12만 대군이지 않느냐?”
“중원제일 검의 위세에 놀라 장안으로 도망쳤던 놈들이잖음.”
“사납기로 유명한 강족과 저족… 거기에 서량의 군벌들도 있었다.”
“강족과 저족은 중원의 싸움을 모름. 게다가 지휘계통이 통일되지 않은 오합지졸에 불과함. 그리고 서량의 군벌들도 난세를 틈타 반란군을 규합했던 잡졸이었음.”
12만 대군은 허영에 불과했다.
허장성세로 위용을 과장했을 뿐인,
알맹이가 없는 빈껍데기에 지나지 않았다.
반면 조조 군은 어떠한가.
비록 주군을 두 번이나 바꾼 전적이 존재했지만 병주군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최정예병이다.
또한 병주군을 이끄는 장수들 역시 수많은 전투들을 경험했던 숙장이었다.
“흠…. 그렇다고 하더라도 3만의 군세로 12만에 이르는 대군을 궤멸시킨 것은 분명 놀라운 일이 아니더냐.”
“물론 본좌도 그렇게 생각함.”
감탄에 물든 오라비의 말에 여동생이 어깨를 으쓱이면서 대답했다.
“솔직히 모든 것을 치밀하게 계산한 본좌도 이렇게까지 조조군이 크게 이길 줄은 몰랐음.”
격퇴를 예상했을 뿐,
설마 낙양 벌판에 새카맣게 몰려든 동탁 군을 모조리 궤멸시킬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다.
사마씨 가문의 우수한 동량들 중에서도 최고의 재녀로 손꼽히는 사마랑의 여동생은 어림총사 이성휘의 활약에 혀를 내둘렀다.
“우리 사마씨 가문은 이제부터 조조군을 따르기로 했다. 다른 사대부와 호족들도 마찬가지다. 은혜를 입었으니 응당 그 보답해야 하지 않겠느냐.”
“음, 본좌는 찬성함.”
조조군,
나쁘지 않은 선택이다.
머지 않아 조조 군은 사예주까지 장악하게 될 터. 본격적으로 천하통일의 대업에 착수할 것이다.
가문의 우수한 동량들이 조정에 임관하여 조조 군의 대업을 적극적으로 돕는다면 삼공(三公)까지는 아니더라도 구경(九卿)에 오르는 영예 정도는 차지할 수 있으리라.
“오라비 정도의 능력이라면 후원(後苑)에서 준마들을 키우는 관직 정도는 차지할 수 있을 거임.”
소 악마처럼 익살스러운 웃음을 지으면서 오라비를 향해 농담을 건넸다.
그 농담에 사마랑이 여동생의 두 손을 덥석 잡으면서 두 눈을 빛냈다.
“그거 좋은 판단이구나! 이 오라비와 함께 연주성으로 가 조조 군에 임관하도록 하자!”
“엥?”
오라비의 갑작스러운 결정에 여동생… 사마의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임관?
내가…?
학당 등교거부.
자택관리인 1년차.
장래 희망 방구석지기.
교제관계가 전무한데다가,
사교성과 소통능력에 장애가 있어 지금까지 친구가 단 한 명도 없었다.
“미, 미쳤음?!”
전(前) 경조윤(京兆尹) 사마방의 장녀이며,
수많은 신동들을 배출한 사마씨 가문에서도 굴지의 재녀라 불리고 있는 촉망받는 인재.
사마의.
자는 중달.
그녀는 오라비 사마랑의 터무니없는 요구에 아연실색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 * *
12만 대군을 상대로 완승을 거둬낸 이성휘는 한나라를 대표하는 전쟁 영웅으로 등극했다.
낙양대전,
사예주에서 전개된 총력전은 난세의 주도권이 완전히 조조에게 넘어왔음을 알리는 전투였다.
대규모 전투에서 완패를 당한 동탁은 패자(覇者)로서의 위엄과 영광을 모두 상실한 채 역사의 저편으로 쓸쓸히 퇴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전투에서 승리를 거둔 조조는 천하의 제후들을 호령할 자격을 갖춘 새로운 패자로 등극하게 되었다.
“명부, 낙양에서 도망친 잔당들이 홍농군에서 병력을 재정비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좌장군 동민이 세력의 새로운 구심점으로 등극한 모양입니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머리카락을 금발로 염색한 여인이 인상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죽여도 끝이 없는 벌레처럼,
전투에서 대패를 당했음에도 동탁 군은 병력을 추스르면서 재기를 노리고 있었다.
홍농군에 집결한 병력만 하더라도 족히 3만이 넘는다. 오랫동안 동탁을 보필하면서 충성을 다해온 무리들답게 의기와 결집력이 상당했다.
“놈들이 다시 낙양을 노릴 것 같은가?”
조조가 물었다.
그에 순유가 고개를 저었다.
“아뇨, 동탁 군은 병력을 추스른 뒤에 다시 장안으로 돌아가려 할 거예요. 그들은 어림총사의 손에 수장을 잃었으니까요.”
동탁 군…
아니, 이제 그들은 동탁 군이 아니다.
폭정과 전횡을 일삼았던 만고의 역적은 중원제일 검의 손에 참살되지 않았던가.
홍농군에 모인 병력들은 황실과 조정을 겁박하면서 한나라를 기만하는 역적의 무리일 뿐. 무슨 일이 있더라도 반드시 멸해야 할 반란군에 불과했다.
“동탁과 그 일파들의 수급을 성문에 매달았는가?”
“예, 그렇습니다!”
조조의 물음에 허저가 예를 취하며 대답했다.
상국(相國) 동탁.
낭중령(郎中令) 이유.
세력을 주도했던 거두들은 물론,
일군을 이끌었던 장수들은 모두 그 수급이 성문 위의 창대에 매달리는 수모를 겪게 되었다.
또한 피투성이가 된 사체들은 낙양 시가지에 저잣거리에 내던져졌다. 특히 비대한 몸집을 자랑하는 동탁의 사체는 낙양을 잃은 사예주 백성들로부터 참혹한 조리 돌림을 당했다.
“천하의 패권이 이제 명부에게 넘어왔습니다.”
난세는 오로지 힘의 논리에 의해 움직인다.
힘을 잃은 구(舊) 세력은 퇴장할 뿐이며,
힘을 얻은 신(新) 세력은 패자로 등극한다.
뿔뿔이 흩어졌던 세력들을 규합하면서 탄생하게 된 전국칠웅(戰國七雄)처럼 낙양대전에서 완승을 거둬낸 조조는 천하의 제후들을 거느릴 수 있는 힘의 정통성을 지닌 대군벌이 된 것이다.
“휘하 제장들이 크게 활약해준 덕분이다. 특히 이번 전쟁은 야전에서 직접 병력을 지휘했던 부관의 역할이 매우 컸다. 부관의 활약이 없었다면 오늘과 같은 영광을 결코 없었을 것이다.”
조조는 이성휘야말로 낙양대전의 일등 공신이며, 또한 이성휘와 함께 병력을 지휘했던 휘하 제장들의 활약이 매우 컸음을 언급했다.
‘나중에 부관을 따로 불러 노고를 치하해야겠군.’
이왕이면 단둘이 있을 때를 노려서.
주군으로서가 아닌,
그를 진심으로 사모하는 여인으로서 노고를 치하해 줄 생각이었다.
분명 기뻐해주겠지.
흑발의 여인은 군사회의가 끝난 뒤에 곧바로 이성휘를 호출하여 잔뜩 응석 부리려 했다.
* * *
전투가 종결된 이후,
이성휘는 전투에 참전했던 부하들의 상태를 살피면서 무사를 확인했다.
치열한 격전이었던 만큼,
전투 과정에서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다.
굴지의 정예답게 병주군은 격전을 치렀음에도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었지만, 그들도 결국 사람이었기에 십만 대군과의 결전으로 크게 지친 상태였다.
“부상은 괜찮으십니까.”
“…….”
새하얀 뺨에 생긴 붉은 상흔에 금창약을 바르고 있던 흑발의 여인에게 다가섰다.
제법 상흔이 깊은 듯했다.
맨눈으로 보기에도 쉽게 아물 상처는 아니었다.
혹시 평생 흉터가 남진 않을까. 날카로운 화살촉에 뺨이 베인 조인을 걱정스럽게 바라보았다.
“저는 괜찮습니다.”
그녀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무표정인 상태였다.
무슨 생각하는지 모를 정도로,
뺨에 상처를 입었음에도 냉혹하게 보이는 무표정은 여전했다.
“구원을 와주셔서 감사합니다. 만약 자효 님이 제때 오시지 않았다면 목숨이 위태로웠을 겁니다.”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이성휘의 감사에 조인은 예를 취하면서 매우 정중하게 답했다.
그리고 시작된 침묵.
할 말을 다 했는지 뺨에 금창약을 바르던 조인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항상 무표정이라… 심중에 무슨 생각하고 있는지 전혀 모르겠군. 분명 나를 원망하고 있겠지. 궁지에 몰린 나를 구하려다가 평생 남게 될 흉터를 얻었으니까.’
새하얀 뺨에 새겨진 상흔을 본 이성휘는 필시 조인이 자신을 내심 원망하고 있으리라 여겼다.
그녀는 책임감이 강한 장수였지만,
장수의 신분이기 이전에 개국공신 가문의 귀한 여식이었다.
얼굴에 남게 될 흉터는 혼사에 큰 장애로 작용하게 될 터. 언젠가 사대부 공자를 만나 혼인을 치러야 하는 여식 처지에서는 끔찍한 저주나 다름없을 것이다.
‘어림총사….’
뺨의 상흔에 금창약을 바른 흑발의 여인이 입을 꾹 다문 채 이성휘를 조용히 응시했다.
나를,
부상을 입은 나를 걱정하고 있다.
상냥한 사람. 멋있는 사람.
근사한 사람. 용감한 사람.
‘좋아, 좋아합니다…. 진심으로 좋아합니다. 어림총사를 구할 수 있다면 이깟 상처 따위는… 설령 온몸이 흉터투성이가 될지라도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
맹렬한 마음이 담긴 조인의 눈빛에 이성휘는 어깨를 움찔 떨었다.
싸늘하게 내려앉은 눈빛이다.
사냥감을 낚아채려는 맹수의 눈을 하고 있었다.
조인은 선천적으로 매섭고 날카로운 삼백안을 가지고 있었기에 애절한 사랑을 담은 눈빛조차도 매우 살벌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