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3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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핏물이 뚝뚝 흐르고 있는 수급을 목격한 동탁 군 장수들은 살의에 찬 고함과 함께 두 눈을 번뜩였다.
놈이 주군을 시해했다!
서량의 대군벌이 처참하게 죽임을 당했다.
오랫동안 동탁의 휘하에서 봉직해온 장수들은 주군의 복수를 갚겠노라며 죽음도 마다하지 않고 이성휘에게 달려들었다.
“이, 이놈!!”
“감히 동중영 어르신을…! 여기서 네놈과 사생결단을 내겠다!”
푸줏간에 매달린 고깃덩이처럼 핏물을 뚝뚝 흘리면서 대롱대롱 매달린 중년남성의 머리.
비명에 찬 표정을 한 채 혀를 쭉 내밀고 있는 동탁의 얼굴은 실로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천하를 호령했던 대군벌의 비참한 최후를 본 장수들이 복수에 두 눈이 돌아간 채 달려드는 것도 어쩌면 당연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다 덤벼라.”
이성휘는 탈진에 허덕이는 두 팔을 애써 재촉하면서 검을 휘둘렀다.
동탁을 척살하기 위해 단기필마로 뛰어들었던 이성휘는 적들을 사방에서 맞이해야 했다.
동탁 군 장수들이 사방을 포위했다.
겁에 질려 패주하는 병력을 수습하기 위해 본진을 나섰다가 비보를 듣고 달려온 장수들은 날카로운 창검을 휘두르면서 생사결을 벌였다.
“크하악!”
“빌어먹을 놈이!”
12만 대군을 이끌었던 수괴의 목이 떨어졌지만 아직 전투는 끝난 게 아니었다.
여전히 잔당들은 차고 넘쳤고,
동탁을 따르는 장수들 또한 수도 없이 많았다.
그들은 구심점과 전열을 잃었을 뿐, 모든 병력들이 일소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중원제일 검의 손에 주군이 전사했다는 소식을 들은 동탁 군 군세들이 계속해서 본진으로 밀려들면서 이성휘는 사면초가에 내몰리게 되었다.
“어림총사를 구원하라!”
그때,
사방을 겹겹이 에워싸던 포위망이 뚫리면서 흑발의 여인과 기병부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성휘가 동탁을 참살했다는 소식을 듣게 된 조인은 휘하 기병부대와 돌격을 감행했다.
사방에서 빗발치는 화살들과,
앞을 가로막는 병력들을 모두 돌파해낸 끝에 조인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인 이성휘와 재회할 수 있었다.
“총사!”
조인이 급히 이성휘에게 다가왔다.
망설임 없이 말에서 내린 뒤,
피투성이가 된 이성휘에게 자기 말을 양보했다.
“여기는 제가 상대하겠습니다. 총사께서는 어서 동탁의 수급을 들고 본영으로 돌아가십시오.”
사촌언니를 향한 충성심만큼 이성휘에게 절대적으로 충성하는 그녀다운 행동이었다.
사방이 모두 적이다.
그런데도 조인은 이성휘를 구해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사지(死地)로 뛰어들었으며, 이성휘에게 기꺼이 자기 말을 양보하기까지 했다.
철옹성처럼 견고한결연함을 자랑하는 조인의 얼굴에서는 일말의 두려움도 찾아볼 수 없었다.
“전황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적의 주력군단들이 모두 궤멸되었습니다. 현재 전장에 남은 잔당들을 소탕하는 중입니다.”
이성휘와 조인은 서로에게 등을 의지한 채 사방을 포위하는 동탁 군 장졸들을 경계했다.
적들이 새카맣게 몰려들었다.
조인과 함께 본진을 급습한 기병부대가 크게 활약하고는 있었지만 매우 위태로운 상황이었다.
‘절영이 탈진으로 쓰러지지만 않았어도 무사히 탈출하는 것을….’
이성휘를 동탁 군의 본진까지 이끌었던 말은 조조가 아끼는 준마들 중 하나였다.
절영(絶影).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른 속도로 내달린다는 뜻으로 이름이 붙여진 대완마(大宛馬)는 계속해서 이어진 전력 질주에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지금쯤이면 아마도 무관들에게 이끌려 본진으로 돌아가고 있을 터였다.
“어르신을 시해한 놈이다!”
“반드시 중원제일 검을 척살하라!”
벌떼처럼 달려드는 동탁 군 장수들의 모습에 이성휘는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자신을 학대하듯 몰아붙였던 몸은 한계를 맞이하고 있었다. 온몸이 천근만근처럼 무거웠고, 긴장을 풀면 당장에라도 뒤로 넘어갈 것처럼 위험했다.
“크흑!”
무수히 많은 적들을 상대로 사투를 계속해서 벌이고 있었을 때,
등을 의지하고 있던 조인이 침음을 흘렸다.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았다.
어디선가 화살이 날아들었는지,
조인의 새하얀 뺨에 깊은 상흔이 새겨져 있었다.
비단처럼 부드러운 뺨을 타고 핏물이 뚝뚝 흘러내렸다.
“저는… 괜찮습니다!”
흑발의 여인은 혹시라도 이성휘에게 부담을 줄까,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피를 거칠게 닦아냈다.
“잠시만 견뎌주십시오. 제가 놈들을 모두 일소하겠습니다.”
이성휘는 등을 의지한 채 배후를 경계하는 조인을 힐끗 쳐다 보면서 다시금 전의를 불태웠다.
싸움이 길어지면 불리해질 뿐,
어떻게든 빨리 놈들을 쓸어버려야 한다.
떨리는 두 손으로 칼자루를 쥔 이성휘는 호흡을 가다듬으면서 복수심을 불태우고 있는 동탁 군 장수들을 노려보았다.
“중원제일 검을 도모하려 들기 전에 먼저 이 여봉선을 쓰러트려야 할 거다, 이 더러운 역적 새끼들아!!”
이성휘가 적들을 향해 달려들려 했을 때,
붉은 갈기를 가진 적마(赤馬)가 맹렬한 울음소리를 토해내면서 적진으로 뛰어들었다.
그와 동시에 적마에 타고 있던 여걸이 무거운 방천화극을 휘두르면서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들을 단번에 쓸어 버렸다.
“여봉선, 이 배신자 년!”
“주군의 은혜를 배신한 변절자 같으니라고!”
여포,
병주 기병대를 이끌고 이성휘를 구원하기 위해 달려온 여걸은 여포였다.
그녀의 등장에 동탁 군 장수들이 이를 빠득 갈았다.
격노를 발산하는 그들의 모습에 비웃음을 짓던 여포는 주인 없는 공처럼 흙바닥에 떨어진 동탁의 수급을 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 * *
형양에 매복하고 있던 정예부대를 일소하고 동중랑장 동월을 참수한 조조군이 마침내 낙양에 도달했다.
낙양 인근의 벌판에서 벌어진 전투,
조조군과 동탁 군의 전투는 어느덧 종막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
“주변을 점령하라!”
“기병대를 나를 따르라!”
낙양에 당도한 조조 군은 주변을 빠르게 제압하면서 군영을 형성한 뒤, 기병부대를 급파하여 동탁 군 잔당들을 일소하고 있던 장료와 합류했다.
사방이 모두 시산혈해였다.
피와 시체들로 점철된 낙양의 광활한 벌판을 목격한 장졸들은 충격을 금치 못했다.
형체를 알아보기 힘든 고깃덩이들이 돌탑처럼 쌓여 있었으며, 또한 주인 잃은 팔다리들이 자갈처럼 사방을 구르고 있었기 때문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주, 주군! 저기를 보시옵소서!”
척후들을 이끌던 우금의 외침에 조조는 그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뒤이어 충격적인 참상을 목격했다.
장마철마다 항상 범람하며 수해를 야기했던 사수가 제방에 꽉 막힌 것처럼 끊어져 있었다.
무려 수만 명에 달하는 동탁 군 병사들의 시체가 넓은 폭과 깊이를 자랑하는 사수를 봉쇄했다. 대체 얼마나 많은 시체들이 쌓였는지 강물이 꽉 막힌 상태였다.
“어서… 어서 부관을 찾으라! 가용할 수 있는 모든 병력들을 동원하여 부관을 수색하라!”
전투가 치러진 낙양 인근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한 지옥도를 형성하고 있었다.
시체들로 산을 이루었으며,
흘러내린 핏물이 청명한 강물을 붉게 오염시켰다.
시산혈해의 현장을 목격한 조조는 불길함이 앞섰는지 장수들을 재촉하여 이성휘를 찾게 했다.
“이성휘는 무사한 것 같아.”
핏물로 붉게 물든 지평선 너머를 바라보던 하후돈이 입을 열었다.
혼란이 가라앉았다.
전투는 어느새 소강기를 맞이했다.
동탁 군의 12만 대군과 싸웠을 아군 군세가 벌판을 종횡무진하며 전장을 누비고 있었다. 그들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본 하후돈은 필시 저 무리 중에 이성휘와 조인이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주군!”
전황을 살피고 돌아온 이전이 조조에게 예를 취하면서 보고했다.
“곧 어림총사가 동탁의 수급을 들고 본영에 당도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그게 정말인가.”
선두에서 전투를 이끌었던 이성휘가 동탁의 수급을 들고 돌아올 것이라는 소식에 조조가 화색을 지었다.
부관과 만나게 될 것이다.
12만 대군을 격파한 중원제일 검과 곧 만날 수 있다.
조조는 하후돈에게 이성휘과 휘하 병력들을 호위할 것을 명령했다. 그리고 자신은 참모들과 함께 떨리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어림총사가 당도했습니다.”
호위장 허저가 보고했다.
그에 조조는 빨리 이성휘를 들일 것을 명령했다.
“맹덕 님.”
“부관!!”
무뚝뚝한 인상의 남성이 피칠갑한 모습으로 걸어왔다.
그 모습에 조조는 소스라치게 놀란 토끼 같은 반응을 보이면서 다급한 발걸음과 함께 이성휘에게 다가섰다.
“모, 몸은… 일단 몸은… 괜찮은가?!”
조조는 전투의 과정과 승패를 묻기 전에 먼저 이성휘의 안위부터 물었다.
과정과 승패보다도,
조조에게는 이성휘의 안위가 가장 중요했기 때문이다.
“저는 괜찮습니다.”
“후우…! 정말 다행일세, 내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는가!”
대체 어느 여자가 놀라지 않을까.
사랑하는 사내가,
12만 대군을 대적하는 기상천외한 짓을 벌였는데.
연주에서 낙양까지 달려오는 동안 얼마나 많은 걱정을 했는지 모른다. 혹시라도 적들에게 포위당한 채 비참한결과를 맞이했을까, 얼굴을 마주한 지금도 가슴이 쿵쿵 요동치고 있었다.
“동탁의 수급입니다.”
이성휘가 수급을 내밀었다.
동탁의 수급은 핏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는 보라색 보자기 안에 동봉되어 있었다.
그것을 건네받게 된 조조는 망설임 없이 보자기를 풀어 동탁의 수급을 확인했다.
“도, 동탁이 분명하오!”
“세상에… 정말로 동탁이 죽었단 말인가!”
정욱과 모개가 놀란 목소리로 외쳤다.
다른 장수들도 마찬가지였다.
목이 잘린 채 혀를 쭉 내밀고 있는 중년남성의 얼굴을 본 장수들은 서량의 대군벌이 목 없는 귀신으로 전락한 것에 경악을 토해냈다.
“맹덕 님, 분부하신 대로 역적 동탁의 수급을 가져 왔습니다.”
“…수고 많았네.”
동탁을 참살하고 12만 대군을 무찔렀다.
조금은 오만한 모습을 보여도 좋으련만,
천하를 요동치게 만들 정도의 업적과 대활약을 세운 당사자는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을 보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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