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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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시작된 전투는 어느덧 오후를 맞이하고 있었다.
자욱했던 물안개가 걷혔고,
동쪽에서 솟은 해는 서쪽으로 내걸리기 시작했다.
낙양 전투가 치러지고 있는 사예주의 날씨는 무척이나 맑았다.
하늘은 구름 한 점 없이 청명했다.
아침까지 시야를 확 가릴 정도의 물안개가 지상을 자욱하게 낀 날씨였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남은 잔당들을 모두 분멸하라!!”
선두에서 병력을 지휘하던 흑발의 여인이 검을 치켜들면서 소리쳤다.
적진이 완전히 붕괴되었다.
조인은 우여곡절 끝에 잡아낸 승기를 결코 놓치지 않았다.
동탁의 주력부대들은 모두 궤멸.
전의를 잃은 병졸들은 흩어졌으며,
서량 기병군단은 여포가 이끄는 병주 기병군단과의 싸움에서 패주를 반복한끝에 전멸하고 말았다.
“놈들이 도망친다!”
“추격하라! 끝까지 추격하라!!”
12만에 이르는 대군을 격파한 조조 군은 급히 말머리를 돌려 서쪽으로 달아나는 동탁 군을 매우 집요하게 추격했다.
놈들을 살려 둬선 안 된다.
기필코 이 낙양에서 그 숨통을 끊어 낼 것이다.
정예부대를 이끌고 잔당을 토벌하던 조인은 척후들을 이끌던 성렴으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듣게 되었다.
“어림총사께서 동탁을 참살하셨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단기필마로 12만 대군을 돌파하는 만인지적의 기염을 토해낸 이성휘가 마침내 동탁을 참살했다.
한나라를 훔친 역적을,
황실과 조정을 유린했던 만고의 역적을 참륙했다.
심중을 알기 어려울 정도로 항상 무표정한 모습만 보이던 조인의 얼굴이 잠시나마 움찔하면서 흔들렸을 정도로 기적적인 승전보였다.
“어림총사께서 역적을 참살했다!”
“동탁이 죽었다! 황실을 기만하고 조정을 유린했던 국적이 죽었다!!”
말을 탄 무관들이 전장을 종횡무진하듯 크게 가로지르면서 목청을 높였다.
목청이 터질 것처럼 소리쳤다.
아랫배에 힘을 꽉 주면서 고함을 내질렀다.
중원제일 검이 역적의 목을 벴다. 이성휘의 무명과 무위를 크게 흠모하고 있었던 병주군은 경외와 존경의 감정을 담아 중원제일 검의 승전보를 알렸다.
“퇴각하라!”
“어, 어르신께서…! 전군 퇴각하라!”
상국 동탁이 중원제일 검의 손에 참살되었다는 소식이 동탁 군에게도 알려졌다.
군세가 더욱 빠르게 분열되었다.
사예주를 제패하기 위해 동관을 넘었던 대군이 결국 와해되고 말았다.
서량 군벌들은 동탁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는 곧바로 전선을 이탈했으며, 동탁과 동맹을 맺고 전쟁에 참전했던 강족과 저족 또한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이더니 부리나케 달아나버렸다.
“기병들은 나를 따르라. 지금부터 어림총사를 호위한다.”
“예!”
조인이 거칠게 박차를 가하면서 말을 재촉했다.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흑발의 여인은 수백 기를 이끌면서 거침없이 적의 본진으로 뛰어들었다.
* * *
정예부대를 이끌고 형양에 매복하고 있던 중군교위 동황과 동중랑장 동월은 연주에서 출격한 조조 군에게 대대적인 공세를 당하게 되었다.
마침내 조조가 당도했다.
3만의 군세를 이끌고 형양에 입성한 조조는 맹공을 퍼부으면서 동황과 동월을 쉴 새 없이 몰아붙였다.
난데없이 배후에서 적을 맞이하게 된 동탁 군은 살얼음이 부서지듯 단번에 압살되는 신세에 놓였다.
“형양을 돌파하라!”
“이대로 놈들을 뚫고 낙양으로 간다!!”
하후돈과 하후연이 적들의 거센 저항을 뚫고 양무현(陽武縣)을 돌파했다.
우금은 원무현(原武縣)을,
악진과 이전은 형양현(滎陽縣)을 단번에 돌파하면서 기염을 토해냈다.
설마 이렇게 빨리 조조군이 사예주에 도달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다.
낙양 방면에서 이성휘가 패주해 오기를 기다리던 동황과 동월은 조조의 공세에 제대로 된 반격조차 못한 채 패퇴할 뿐이었다.
“다 죽여라!”
언월도를 휘두르면서 동탁 군 무관들을 여럿 베어낸 붉은 머리카락의 여걸이 소리쳤다.
사방에서 화살들이 쏟아졌다.
자칫 눈먼 화살에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위험한 형국이었음에도 하후돈은 자리를 고수했다.
하후돈의 대범한 기개를 본 조조 군은 사력을 다해 동탁 군의 방어선을 뚫어냈다. 결국 동탁 군은 봉쇄하고 있던 형양을 조조 군에게 내주게 되었다.
“중군교위는 어서 피하십시오! 제가 후미에서 놈들을 막겠습니다!”
“알겠네! 낙양으로 달려가 숙부님에게 원군을 청할걸세!!”
조조 군의 맹공에 빠르게 무너지고 있던 후군(後軍)을 동월에게 맡긴 동황은 휘하 장수들과 함께 전선을 이탈했다.
한시라도 빨리 낙양으로 가야 한다.
지금쯤이면 낙양 전투가 아군의 대승으로 마무리되었을 터.
‘비록 조조… 그 빌어먹을 년의 공세에 형양을 뚫리게 되었지만 임무는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다!’
동황은 숙부님께서 이성휘의 목을 베고 3만에 불과한 병력을 모두 일소했을 것이라고 여겼다.
3만 병력과 12만 대군의 총력전.
어른과 어린아이의 싸움처럼 승패가 정해진 것이나 다름없지 않은가.
숙부님께서이 직접 대군을 이끌고 형양에 당도 한다면 제 분수도 모르고 설치는 환관 년은 크게 아연실색하여 금방 연주로 물러날 것이었다.
“적의 후미를 쳐라!”
“동탁 군이 도망치고 있다! 놈들을 낙양까지 쓸어버려라!!”
형양에 주둔하고 있던 동탁 군 병력이 낙양으로 물러나기 시작했다.
조조군이 승기를 거두었다.
동탁 군에게 봉쇄되어 있던 길목들이 모두 열렸다.
허저와 호위병들의 엄호를 받으면서 병력을 지휘하던 조조는 검을 치켜들면서 추격을 명령했다. 필사적으로 도망치는 적들을 끝까지 추격하여 낙양까지 밀고 나갈 생각인 듯했다.
“공로(攻路)가 열렸다! 연주의 장졸들은 모두 낙양으로 진격하라!!”
흰 갈기를 가진 백마를 탄 흑발의 여인이 팔을 들어 올리면서 장졸들을 계속해서 재촉했다.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금쯤 이성휘가 적의 대군에 포위당한 채 절체절명의 위기에 내몰렸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의 병력은 최소 10만이 넘는다.
물론 이성휘가 적들의 공세에 무력하게 당할 리는 없겠지만, 무려 3배가 넘는 대군을 상대로 교전을 치르고 있을 것이기에 분명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으리라.
“명부, 지금 아군은 낙양의 정세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일단 형양에 주둔한 뒤에 척후들을 파견하여 동탁 군의 동태를 살피시지요!”
무리할 정도로 진군을 속행하는 조조의 모습에 진궁이 강한 우려를 드러냈다.
비록 형양을 빼앗았지만,
여전히 낙양은 동탁 군의 소굴이나 다름없었다.
게다가 아군은 불과 3만 밖에 안 되는 군세이지 않은가. 십만 대군을 자랑하는 동탁 군과 전면전을 치르는 것은 사실상 자살행위였다.
“지금 부관은 사력을 다해 고군분투를 치르면서 본대가 오기만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한시라도 지체할 순 없다. 이대로 적들을 뚫고 낙양에 도달하겠다.”
적의 동태를 전혀 모르는 상태로 군사를 무리하게 움직이는 것은 최악의 결과를 야기할 수 있는 실책이다.
그러나 조조는 망설이지 않았다.
군사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면서도 공격을 강행했다.
자칫 이성휘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공포와 불안감이 끊임없이 마음을 뒤흔들었기 때문이다.
“무리한 줄 알고 있지만… 때로는 무리한 줄 알면서도 해야 될 때가 있는 거잖아?”
언월도를 어깨 위에 올린 하후돈이 큭큭 웃으면서 진궁에게 말했다.
그 말에 진궁은 걱정에 찬 표정을 지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 그렇습니다만….”
만약 이성휘가 적들의 공세에 포위된 상태라면 당연히 한시라도 빨리 구원해야 마땅했다.
적의 군세는 무려 10만.
어쩌면 더 많은 병력을 보유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이성휘는 천하통일의 대업에 결코 잃어선 안 될 중요한 인물이다. 설령 적들의 급습으로 병력과 치중의 대부분을 잃게 될지라도 이성휘와 휘하 장수들을 구원해야 했다.
“기병대는 나를 따르라!”
“우리가 먼저 낙양으로 진격한다!”
동월이 이끄는 후군을 격파한 하후연과 우금이 기병들을 통솔하며 앞으로 나아갔다.
망설일 여유는 없었다.
이성휘를 구원하기 위한 병력이 형양을 뚫고 낙양으로 향했다.
후군을 대파하고 동중랑장 동월을 참수한 조조 군은 기세를 몰아 사예주를 가로질렀다. 조조는 궁지에 몰린 부관을 구하기 전까지는 절대로 연주로 귀환하지 않겠노라고 스스로에게 다짐한 상태였다
“주군!”
형양을 돌파한 조조군이 낙양으로 들어가는 입구인 사수관에 도달했을 때,
한 발 앞서 낙양으로 보낸 척후들이 돌아왔다.
“어림총사가 대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승전보를 올린 척후들의 목소리에 희열이 담겨 있었다.
마치 기적을 직접 목도한 것처럼,
낙양의 동태를 살피고 돌아온 척후들의 목소리에서 환희가 느껴졌다.
3만의 군세를 이끌었던 이성휘가 동탁의 십만 대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냈다는 승전보를 전한 척후들은 이윽고 상세하게 정보를 전달했다.
“어림총사가 동탁의 12만 대군과 건곤일척의 싸움을 벌인 끝에 완승을 거뒀다고 합니다! 군세를 이끌었던 동탁은 어림총사의 손에 참살되었고, 휘하 군세들 또한 지리멸렬하여 무너졌습니다!”
환호가 담긴 척후들의 보고를 듣게 된 조조는 잠시 벙찐 표정을 지었다.
진궁은 물론,
하후돈 역시 마찬가지였다.
믿을 수 없는 승전보에 생각이 잠시 멈췄다.
4배가 많은 대군을 상대로 야전에서 압승을 거둬낸 중원제일 검의 기염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 승전보가 인식과 분별을 아득히 초월했기 때문이다.
형양을 돌파한 이후부터 저돌적인 진격을 거듭하던 조조군 본대는 잠시 행군을 중지했다.
* * *
사예주를 천하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으로 삼겠다는 동탁의 야망은 낙양에서 저물고 말았다.
십만 대군이 뿔뿔이 흩어졌다.
또한 세력을 이끄는 군주였던 동탁은 이성휘의 칼끝에 목숨을 잃었다.
충성스러운 부하들의 도움으로 우여곡절 끝에 목숨을 건지게 된 동백은 농서동씨 가문의 수장이며, 일찍 여윈 부모를 대신하여 자신을 애지중지 키워주었던 조부가 비참한 최후를 맞이했다는 소식을 듣고 광인처럼 절규를 토해냈다.
“할아버지께서! 할아버지께서 적장의 손에 돌아가셨단 말입니까!”
피눈물을 흘릴 것처럼 붉게 충혈된 눈을 부릅뜬 동백이 이를 빠득 갈면서 장수들을 노려보았다.
대체 이 빌어먹을 놈들은,
대체 이 무능한 놈들은 어떻게 보필했기에 할아버지께서 적장의 손에 참살되는 비극을 맞이했단 말인가.
12만 대군의 궤멸이 문제가 아니다.
동탁 군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는 서량의 대군벌이었던 동탁의 사망 소식이었다.
그저 병력을 잃었을 뿐이라면 장안으로 돌아가 권토중래하며 다시 기회를 도모했겠지만, 군주였던 동탁이 이성휘에게 목숨을 잃게 되면서 동탁 군은 재기를 도모할 수 없는 절망의 구렁텅이에 내몰리게 되었다.
“일단 몸을 피하셔야 합니다!”
“비록 본대가 전멸했으나 도독 서영이 지휘하는 후군이 건재하지 않습니까!”
전선에 참전했던 모든 부대들이 전멸했다.
중랑장 장제가 이끌었던 선봉은 물론,
2군과 3군… 본대 역할을 하던 동탁의 4군마저 전멸하면서 재기불능 상태에 놓였다.
동백과 휘하 장수들이 전장에서 수습한 병력은 불과 5천 명에 지나지 않았다. 위풍당당했던 십만 대군이 겨우 5천도 안 되는 소규모 부대로 전락한 것이었다.
“장평.”
“예, 위양군.”
복수심에 찬 눈길로 쑥대밭이 된 아군 진영을 바라보고 있던 동백이 휘하 장수를 불렀다.
그에 장평은 예를 취하면서 명을 기다렸다.
“당장 병력을 이끌고 하내군의 군현들을 모두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세요. 조조 군에게 빌붙어 물자를 제공했던 놈들입니다. 가축 한 마리 남기지 말고 모조리 진멸하세요.”
“명 받들겠습니다!”
조조 군은 십만 대군을 상대로 크게 승리를 거두는 성과를 올렸지만 아직 전황을 수습하진 못했다. 사방으로 흩어진 동탁 군의 병력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
그 혼란스러운 틈을 노려 동백은 조조 군에게 물자를 제공했던 하내군을 모조리 잿더미로 만들려 했다.
“위양군, 어서 피하셔야 합니다!”
장수 장평이 2천에 달하는 병력을 이끌고 하내군으로 진격하려 했을 때,
서영과 함께 후군을 이끌던 고석이 급히 동백에게 달려왔다.
“하내군에 원소군이 당도했습니다!”
연주 동평국에 주둔하고 있던 순우경이 원소의 명을 받고 사예주 하내군에 도착했다.
무려 1만에 이르는 병력이 강 건너에 위치한 하내군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조 군에 이어 원소군까지….
동탁을 장안까지 축출했던 두 거두들이 동탁 군 세력의 패망을 선언하고자 낙양으로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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